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연재수 :
1,017 회
조회수 :
744,033
추천수 :
21,451
글자수 :
5,647,234

작성
20.11.29 19:25
조회
3,735
추천
92
글자
11쪽

죽어가는 영국 병사

DUMMY

참호 안에는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으아아악!!!”


“젠장!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의무병들도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너무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에게는 그저 마취제를 투약해줄 뿐이었다. 몇 부상병들은 어차피 병원에 도착해도 며칠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을 것이 뻔했다.


참호 바닥에 한 신병이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 신병은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더니, 자신의 소총을 입 안에 넣었다. 슈타이너 상병이 그 신병을 보고 말했다.


“이···이봐···잠깐만···진정해···”


신병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슈타이너 상병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소총 레버를 젖히고 재빨리 탄환을 꺼냈다. 옆에 있던 모리츠 상병이 신병의 머리를 내려쳐서 기절시켰다. 그 때, 롬멜 소위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슈타이너 상병이 말했다.


“신병이 자살을 시도해서 탄환을 꺼내고 기절 시켰습니다.”


롬멜은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매우 피폐해 보였다. 롬멜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당장 전출시키게.”


순간, 이 상황을 보고 있던 한스는 그 신병이 너무 부러워졌다.


‘나는 열심히 목숨 걸고 싸우다가 부상까지 당했는데 저 신병은 전출이라고?’


한스는 그 얼빠진 기절한 신병에게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지난번 전투 이후에 참호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보초를 서고, 보급을 나르고, 부상병을 나르고. 하루에 수면 시간은 5시간을 넘지 않았다. 적군의 포탄에 대피호가 무너져 버렸기에 새로운 대피호를 파야 했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똥과 진흙이 섞인 물을 버리느라 고생해야 했을 것 이다.


적군에게 식량, 식수 보급로를 끊겨, 보급은 미뤄졌다. 그렇다고 참호 바닥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실 수는 없었다. 참다 못한 한스는, 기관총 속에 넣어두었던 물을 먹었다. 조금 있다가 오줌으로 채워 넣으면 될 것 이다. 다행히 다음 날 식수와 식량은 보급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메뉴는 순무, 그리고 톱밥이 가득 찬 빵이었다. 안톤이 투덜거렸다.


“순무는 지겨워···차라리 영국놈들의 비상식량이 나아.”


영국놈들의 비상식량 비스킷은, 너무나도 단단했기에, 차나 물에 오랫동안 담가두어서 불려서 먹어야 했다. 그게 힘들 때는, 개머리판으로 부셔서 먹어야 할 수준이었다. 요나스가 억지로 빵을 먹으며 말했다.


“빵이 아니라 톱밥을 먹는 것 같아.”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카드 놀이에 열중했다. 그들의 쥐꼬리만한 월급을 불릴 수 있는 기회였기에, 잠도 자지 않고 매일 카드 놀이를 하면서 돈 내기를 하곤 했던 것이다. 모리츠 상병은 카드 놀이에 꽤나 능해서, 다른 병사들의 돈을 곧잘 따고는 했다.


겁쟁이 요나스는 탄피를 이용하여 전투기, 나이프, 병따개 등을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요나스뿐 아니라 참호에서는 탄피 등을 이용하여 실용적인 물건, 예술품 등을 만드는 병사들이 종종 있었고, 이는 트렌치 아트라 불리웠다.


어떤 트렌치 아트 작품들은 놀랄 만큼 정교해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기도 했다. 요나스의 작품은 점점 정교해졌고, 적군 정치인의 얼굴을 금속에 세기거나, 장교들의 모자 모양으로 탄피를 조각하기도 하였다. 병사들은 돈과 담배로 요나스의 작품을 사기도 했다.


슈타이너 상병이 자신의 아내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를 요나스에게 부탁했고, 요나스가 제법 멋들어지게 만들어주었다. 슈타이너 상병이 요나스에게 술 한 병을 건네주며 말했다.


“편지와 함께 아내한테 보낼 거라네.”


한스를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대부분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사들은자신이 가족에게 받은 편지를 동료들 앞에서 읽어주고는 하였다. 우편물이 늦어져 가족의 편지를 못 받는 병사들이 있었고, 이들에게는 동료가 가족과 주고받는 편지를 대신 듣는 것 만으로도 꽤나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스는 편지를 쓰는 대신, 종이에 탱크, 기관총, 소총 등의 설계도를 그리고는 했다. 루이스라는 이름의 신병도 가족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을 눈치챘다. 한스는 설계도를 그릴 종이가 더 필요했기에, 루이스에게 말했다.


“이봐 루이스, 종이 좀 줄 수 있어?”


루이스가 한스에게 군말 없이 자신의 종이를 주었다. 그러고는 한스에게 물었다.


“가족에게 편지라도 쓰시나요?”


“아니, 나는 탱크 설계도를 그리고 있어. 이것 봐.”


“멋지네요.”


“나라면 주포를 이렇게 앞에다 달 거야. 그리고 장갑을 무작정 두껍게 하기보다는 이렇게 이중으로 만들걸세.”


“가족에게 편지는 안 쓰시나요?”


“아, 그냥. 사이가 안 좋아서 말이지.”


“부럽네요. 전 쓰고 싶어도 못 쓰는데.”


“못 쓴다고? 왜?”


한스가 묻자, 루이스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글씨를 모릅니다.”


한스는 김나지움에서 공부했기에 당연히 글을 쓸 줄 알았고, 지식이 많았지만, 그 당시 독일에는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었다. 글을 모르는 병사들도 동료에게 부탁하여 집에 편지를 보냈지만, 루이스는 성격이 소심했기에 누구에게도 부탁을 하지 못한 것 이었다. 한스는 루이스에게 받은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내가 써주겠네.”


“네?”


“불러봐. 내가 써줄 테니.”


“사랑하는 어머님. 휴가는 당분간 힘들겠지만, 동료들과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롬멜 소위님은 참 훌륭한 분이에요. 운 좋게 좋은 상사와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어요. 가능하면 속옷이랑 양말을 조금 보내주세요. 루이스”


“자.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탁하라고.”


며칠 뒤, 적군의 포격은, 참호 근처에 아주 커다란 포탄 구덩이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을 본 롬멜 소위가 명령했다.


“저 포탄 구덩이까지 청음 초소를 파게.”


청음 초소란 것은, 적군을 제일 먼저 맞닥뜨려야 하는 교전 참호에서, 적군이 있는 방향으로 더 욱 더 깊이 땅을 파서 파고든, 작은 소규모 진지를 말한다. 청음 초소에서는, 적군이 접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적군의 공격, 전투기나 정찰기의 비행을 더욱 빨리 알고 아군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물론 청음 초소에서 보초를 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스가 동료들과 포탄 구덩이까지 삽질을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내가 청음 초소에서 근무하지는 않겠지···’


안 그래도 한스와 동료들은 슐츠 중위의 고약한 명령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슐츠 중위가 말했다.


“제군들! 자네들이 용기 있는 병사가 되도록, 매일 순서에 맞게 정찰을 나갈 것을 명령하네. 독일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적군에게 확실히 보여주도록.”


슐츠 중위의 이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한스를 포함한 모든 이등병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무인지대로 정찰을 나가게 되었다. 예전에 슐츠 중위는, 군기가 해이하다는 이유로, 한 병사를 무인지대 20m 앞까지 갔다 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슐츠 중위는 고리타분한 군사 서적을 신봉하는 얼간이였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전술을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롬멜을 매우 싫어했으며, 롬멜이 지난번 전투에서 영국 전차로부터 진지를 방어하지 못한 것을 고소해하고 있었다.


이등병들이 정찰을 갈 때는 저격에 능한 모리츠 상병이 무인지대를 봐주고는 하였다. 어느덧 한스가 루이스, 요나스와 함께 정찰을 나가는 날이 왔다. 며칠 동안 병사들이 정찰을 나갈 동안은 적군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모리츠 상병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내가 잘 봐주고 있을 테니 안심하고 다녀오라고.”


한스는 모리츠 상병이 영 못 미더웠다. 그는 실력은 좋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족속이었다. 한스, 루이스, 요나스는 참호 밖으로 무인 지대에 납작 엎드린 상태로 천천히 기어갔다.


‘오늘은 안개도 전혀 없군···’


무인 지대는 참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무인 지대에 있는 쥐들은 거의 고양이만큼 덩치가 커져 있었고, 철조망에 이리 저리 널려 있는 시체에는 온갖 벌레가 꼬여 있었다. 이때,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으으···”


한스, 루이스, 요나스는 공포감에 질려 서로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손에 권총을 쥔 채로, 서서히 그 쪽으로 다가갔다. 놀랍게도, 영국 병사가 크게 부상을 입은 채로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죽지도 못하고 버티고 있었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스 일행이 다가가자, 그 영국 병사의 표정은 공포로 가득 찼다.


무인지대에서 총을 맞고 일주일 넘게 버티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병사들이 있다는 말을 간혹 들었다. 하지만 이 영국 병사는 당장 병원에 가도 살 수 없는 상태였다.


한스가 루이스 요나스와 함께 영국 병사의 가방을 뒤졌다. 벽돌 같은 영국군 비상 식량 쿠키, 술 말고는 건질 것이 없었다. 요나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할까?”


한스가 대답했다.


“두고 가야지.”


루이스가 자신의 소총으로 영국 병사를 겨누었다. 한스가 기겁하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루이스가 말했다.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편하게 해주어야···”


“총 소리가 들리면 적군이 이 쪽에 포탄을 퍼부을 거야. 어쩔 수 없네.”


적군 병사는 루이스가 소총을 들이대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면서 공포에 질렸다. 그의 표정을 본 루이스는 소총을 거두었다.


병사의 얼굴은 핏기 없는 하얀색에 입은 바싹 말라 있었고,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물을 계속 먹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한스는 적군 병사의 가방에 있던 술을 그 병사의 입에 조금씩 넣어 주었다. 공포에 질려 있던 그 병사의 표정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이 보였다.


한스가 루이스, 요나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한스, 요나스, 루이스 순서대로 돌아왔던 길을 따라서 아군 참호로 천천히 다시 기어갔다.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그 영국 병사를 다시 바라 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동료들을 따라 아군 참호로 기어갔다.


참호가 왠지 전보다 북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전투로 하도 많은 병사가 죽었기에, 그만큼 신병들이 보충된 것 이다. 한스는 아까 목격한 영국 병사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 참호 보수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 쪽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스가 소리쳤다.


“이보게, 아돌프. 자네, 살아있었군!”

20201129_191959.jpg

삽화는 대전차 무기를 쓰는 독일 병사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최고의 교관 +7 20.12.10 2,973 93 11쪽
43 전차병 훈련 +2 20.12.09 2,891 74 11쪽
42 A7V 시험 주행 +8 20.12.09 2,950 81 11쪽
41 뜻 밖의 소식 +4 20.12.08 2,984 80 11쪽
40 마크 VS 생샤몽 +2 20.12.07 2,980 74 11쪽
39 단 한 대라도 +3 20.12.06 3,136 80 11쪽
38 생 샤몽 +4 20.12.05 3,086 83 11쪽
37 새로운 철갑 괴물 +4 20.12.05 3,193 83 11쪽
36 전차를 지켜라 +4 20.12.04 3,187 80 11쪽
35 암표범 +6 20.12.03 3,256 87 11쪽
34 씻을 수 없는 죄 +1 20.12.03 3,320 89 11쪽
33 두 번째 전차 노획 작전 +1 20.12.03 3,463 85 11쪽
32 철십자 훈장 +9 20.12.02 3,540 83 11쪽
31 대의명분 +5 20.12.02 3,464 85 11쪽
30 전차 VS 전차 20.12.02 3,523 89 11쪽
29 영국군의 전차 공격 +4 20.12.01 3,637 87 11쪽
28 티거 +8 20.12.01 3,631 99 11쪽
27 최초의 독일 전차장 +3 20.12.01 3,687 97 11쪽
26 전차 노획 작전 +3 20.11.30 3,673 92 11쪽
25 무인지대에 피어오르는 불꽃 +5 20.11.30 3,633 99 11쪽
24 아돌프의 조언 +6 20.11.30 3,755 94 11쪽
» 죽어가는 영국 병사 +8 20.11.29 3,736 92 11쪽
22 패배 +4 20.11.29 3,767 90 11쪽
21 마크 전차와 한 판 승부 +4 20.11.29 3,863 95 11쪽
20 탈영병 처형 +5 20.11.29 3,926 91 11쪽
19 스톰트루퍼 +2 20.11.28 4,063 94 11쪽
18 빗줄기 속에 참호전 +6 20.11.28 4,259 97 11쪽
17 죽음의 안개 +7 20.11.28 4,134 99 11쪽
16 비 속에 불꽃 +9 20.11.27 4,278 98 11쪽
15 빡빡이가 된 독일 병사들 +5 20.11.27 4,393 99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