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을 수 없는 죄
쌍안경을 보고 있던 에밋이 속삭였다.
“저···저기···”
저 쪽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나는 쪽을 주시하였다. 한스는 바로 기관총을 쏠 준비를 했다. 인기척이라면 새나 동물일 수도 있었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오늘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지만···에밋이 말했다.
“사람입니다! 3 명!”
루이스가 말했다.
“어떡합니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한스는 새하얗게 질렸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훈련소에서도 군에서도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어느덧 낙엽을 밟으며 사각사각 걸어오는 소리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거너가 말했다.
“같은 독일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헤이든이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자들이 걸어오는 쪽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독일인이 아니었다. 프랑스인이었다.
그 때, 누군가의 소총에서 먼저 총알이 발사되었다.
타앙!
총 소리가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병사의 소총에서도 총알이 발사되었다.
타앙! 타앙!
한스가 외쳤다.
“쏘지마!!!쏘지 말라고!!!!!”
그러나 이미 여러 자루의 소총에서는 불꽃과 연기가 자욱하게 나오고 있었다. 한스 일행에게 다가오던 그 자들이 총소리에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외쳤다.
“동료들에게 우리가 있다는 걸 말할 거야!”
타앙!
다시 누군가의 소총이 발사되었고, 한 사람이 등에 총을 맞고 땅에 쓰러졌다. 하지만 남은 둘은 등을 보이며 계속 달아났다. 한스가 외쳤다.
“젠장!!!!”
한스가 전투에서 여러 번 했던 것처럼, 기관총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한 번 긁었다.
드드드득
타앙! 타앙!
조용하던 숲 속에 왠 청천벽력 같은 기관총과 소총 소리에 새들이 놀라 푸드덕 날라갔다. 참호 속에서 익숙하던 화약 냄새가 병사들의 코를 찔렀고, 낙엽 위에는 금속 탄피들이 굴러다녔다.
에밋이 외쳤다.
“셋 다 쓰러졌습니다!”
한스가 기관총 방아쇠에서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말했다.
“가서 확인 좀 해봐.”
하지만 병사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요나스, 안톤, 니클라스도 일어날 생각을 하질 않았다. 결국 한스가 권총을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요나스가 대신 기관총을 잡았다. 기관총은 한스의 땀으로 절여져 있었다.
한스는 양 손으로 권총을 세게 쥐고, 여차하면 쏠 수 있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죽은 척 하는 건가?’
“그르륵···그르륵···.”
거칠게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한 명은 폐에 총을 맞은 것이 확실하다. 참호에서 그렇게 폐에 총을 맞은 부상병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그들은 전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나머지는?
“그르륵···그웩···.”
도저히 듣고 싶지 않은 숨 넘어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런데···목소리가 조금 이상했다.한스는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총을 겨눈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 쓰러진 자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젠장!!!!!!!!!!! 구급상자!!!!”
낙엽 위에 세 사람이 피를 흘리며 널부러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민간인이었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 커다란 짐꾸러미가 옆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달걀들이 여러 개 굴러 나왔다. 중년 남자와 중년 여자는 숨이 끊어졌지만, 젊은 여자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에밋이 물을 젊은 여자에게 먹이려는 순간, 루이스가 외쳤다.
“복부에 총을 맞았어! 먹이면 안돼!”
“지혈해! 지혈!”
니클라스가 말했다.
“됐어. 끝났어.”
여자는 숨을 헐떡이더니, 이윽고 텅 빈 눈이 되었다. 거너가 부들거리며 말했다.
“우···우리 잘못이 아냐.”
헤이든이 애써 합리화하며 말했다.
“이···이런 곳에 지나간 것이 잘못이지.”
그 때, 마이어씨와 다른 기술자들이 달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호프만씨가 민간인의 시체를 보고 분노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헤이든이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이 자들이···갑자기 튀어 나왔어···내가 쏜 게 아니야···이 자들은 우리 동포도 아니잖아?”
에밋이 말했다.
“나..나도 내가 맞춘 게 아니야.”
안톤이 말했다.
“어떻게 하지? 상부에는 보고해야 하나?”
니클라스가 말했다.
“절대 보고하면 안돼!”
한스가 머리를 양 손으로 감싸고 주저앉았다. 한스의 명령을 전혀 듣지 않던 그들이, 이제는 모두 한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요나스가 한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지?”
노이만씨가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보고하지 않는다면 저희도 입을 다물겠습니다.”
마이어씨와 노이만씨는 병사들이 입막음을 위해 자신들을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호프만씨도 대충 상황을 눈치채고 말했다.
“전시 중에는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기술자들은 다시 전차를 수리하러 갔고, 병사들은 나뭇잎으로 대충 시신들을 덮어 주었다.
이 때, 눈치를 보던 루이스가, 민간인들이 가지고 가던 달걀이 들어있는 식료품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아무도 루이스를 탓하지 않고, 같이 바구니를 살펴 보았다.
그 안에는 버터, 베이컨, 빵이 있었다. 머뭇거리던 병사들은 결국 기술자와 운전병과 함께 이 것을 나눠 먹었다. 참호 안에서 배급 받는 다 식은 음식, 톱밥이 가득한 빵, 영국군에게 노획해서 얻게 되는 벽돌 같은 비스킷만 먹다가 제대로 된 음식을 보게 되니, 머리 속에 갖고 있던 죄책감, 도덕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졌다.
요나스가 베이컨을 맛보며 말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고기냐.”
안톤이 빵에 버터를 발라 먹으며 말했다.
“잼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나 안톤은 입에 빵을 가득 넣은 채로 울음을 터트렸다.
“으흑흑···으윽···..”
덩치 큰 안톤이 질질 짜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참호에서 이렇게 질질 짰다면 모두에게 욕을 먹고 놀림감이 되었을 것 이다. 하지만 아무도 안톤을 놀리지 않았고 그저 음식을 입에 쑤셔 넣기에 바빴다. 잠시 뒤, 마이어씨가 외쳤다.
“수리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연료를 주입하고 연료 밸브를 열었다. 그리고 모두가 긴장하는 와중에, 헤이든이 시동을 걸었다.
“드드드드드”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해치는 물론 관측창도 모두 열어두었다. 포수 역할을 맡은 루이스가 말했다.
“지금은 교전 중이 아니니, 저는 밖에서 전차를 호위하며 가도 되겠습니까?”
한스가 이를 허가했다. 루이스는 안톤, 니클라스, 요나스, 기술자들과 함께 전차를 호위하며 같이 걸어갔다. 한스는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고, 지형을 살펴보며 운전을 지시했다. 혹시나 궤도에 무리가 갈 수 있기에 천천히 전차를 운전하며 전진했다.
30분 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에밋이 다시 연료를 주입하였다. 마이어씨가 외쳤다.
“휴식할 때는 시동을 꺼 두시는 게 좋습니다!”
마이어의 말에 전차의 시동이 꺼졌다. 전차의 소음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시동을 켜두는 것은 근처를 지나는 적들에게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노이만씨가 외쳤다.
“연료 밸브도 잠가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일산화탄소가 전차 밑바닥에 깔립니다.”
호프만씨가 말했다.
“전차 안에서 담배는 절대 안 되고, 스파크 같은 것도 조심하십시오.”
한스는 에밋, 거너, 헤이든과 함께 전차 밖으로 나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한스는 평소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니클라스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니, 한 대 피우고 싶어졌다.
“나도 한대만 주게.”
니클라스가 한스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한스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쏘지 말라고 했어. 내 명령을 듣지 않은 다른 병사들의 책임이야.’
그러나 한스는 자신도 기관총을 쏘았음을 떠올렸다. 고작 한 발씩 나가는 다른 병사들의 소총보다, 자신의 기관총이 그들을 죽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도대체 어쩌자고 자신은 방아쇠를 눌렀던 것인가. 하지만 주변에서 총소리가 나니, 한스는 자신의 머리 속 의지와는 다르게, 참호전에서 했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기관총을 발사하고 말았던 것 이다.
니클라스가 한스에게 말했다.
“자네 어떻게 할 건가?”
한스가 입을 열었다.
“이건···내 책임이 있네···”
한스는 비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슐츠 중위에게는 모두 내 책임으로 보고서를 올리겠네.”
니클라스가 담배를 끼고 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는 일등병일 뿐일세. 우리 모두가 전사해도 상관 보고서에는 이름조차 올라가지 않네. 그 말인즉슨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소리야.”
한스가 니클라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니클라스 외에 다른 병사들도 모두 한스를 보고 있었다. 니클라스가 말을 이었다.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으니 책임도 쥐꼬리만큼 지는 게 맞지 않나? 저 신병들은 훈련소에서 장전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어. 아까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뭘 어찌할 수 있나? 어차피 우리는 처벌도 받지 않을 걸세. 기껏해야 진급 누락이나 좌천이지만, 우리가 더 내려갈 직위라도 있는가?”
문득 한스는 엉뚱한 생각이 났다. 이번 일이 보고가 되면···티거 전차장에서 물러나게 될 지도 모른다···보고한다고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한스가 티거를 잃을 뿐이다.
요나스가 말했다.
“나는 안 그래도 쥐꼬리만한 봉급을 우리 가족에게 보낸다고. 감봉되고 싶지 않아.”
한스는 생각했다.
‘내가 받을 벌이라면 달게 받겠다···하지만 티거는···.’
마침 동료들은 모두 이번 일을 덮고 싶어한다. 이것은 한스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었다. 한스가 말했다.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겠네.”
그렇게 전차 노획단은 한 대의 암컷 마크 전차를 노획하는 것으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였다. 한스는 상등병으로 승진했다. 두 번째 마크 전차 노획 소식에 병사들이 이 전차를 구경하러 왔다. 한 병사가 말했다.
“이 놈은 루이스 기관총이 달려 있군.”
에밋이 말했다.
“이렇게 기관총만 달려있는걸 암컷 전차라 불러. 포를 쏘려면 전차가 멈춰야 하는데, 이렇게 기관총이 달려 있으면 멈추지 않아도 적군을 쏠 수 있으니 편하지.”
한 신병이 말했다.
“적진을 공격할 때, 이런 전차 한 대만 있다면 정말 든든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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