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포위
한편 에바 히틀러는 아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유예 부대로 갔다는 소식에 기절했다가 깨어난 상황이었다. 에바 히틀러를 위로하던 에밀라 또한 오토가 있는 부대가 모스크바에서 포위되었단 소식을 듣고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에바가 말했다.
"단 한 번도 사고친적이 없는 애야. 뭔가 사정이 있을텐데 아무 것도 내게는 말해주지 않아..."
에밀라 또한 501중전차 대대가 모스크바에서 포위되었다는 소식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에바가 말을 이었다.
"아돌프도 매정하지...마르틴이 너무 가여워..."
에밀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히틀러 총리가 자신의 아들까지 군법에 의해 엄벌에 처하게 할 정도면, 만약 오토가 저지른 일이 밝혀지면 그야말로 끝장이 날 것 같았다. 어쨋거나 일단은 오토가 모스크바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오토 파이퍼는 소련 전차 격파를 174대 격파했고, 중전차 대대 장교 중에서 적 전차 격파 대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련군은 오토 파이퍼의 목에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던 것 이다. 참고로 2위인 스테판은 169대 격파해서 2위였다. 소련군은 확성기로 오토 파이퍼의 목을 내놓으라고 했었다. 에밀라는 에바를 간호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마르틴은 집행유예 부대에 있어도 안전한 임무만 맡고 결국 사면되겠지...하지만 오토는 죽을 수도 있어!'
한편 오토의 여자친구이자 마르틴 히틀러의 누나인 밀리나 히틀러는 자신의 방에서 동생과 남자친구가 보낸 편지를 보며 울고 있었다.
'마...말도 안돼...도대체 무슨 일이...'
오토가 쓴 편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편지가 어쩌면 오토가 보내준 마지막 편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밀리나는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다 잘되고 있는거 아니었어?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밀리나는 독일 주간 뉴스에서 나오는 선전 소식들을 믿고 있었다. 독일군은 전혀 막힘없이 폭풍 진격하고 있었고 오토는 혼자서 소련 전차를 174대 격파한 에이스 중에 에이스였던 것이었고 아직 군대 안간 꼬맹이들의 우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밀리나는 오토가 자랑스러웠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내 남자친구지!'
밀리나는 처음에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남자친구가 전쟁 영웅이면 친구들 사이에서 밀리나의 위치도 올라가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아버지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 이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밀리나는 전선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밀리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밀리나는 이제와서 갑자기 휴전이 되는 것을 상상했다.
'스탈린과 협상하여 휴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염치없는 바램이기는 했다.
'오토가 격파한 전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다 죽은건가?'
밀리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전차가 격파되면 어떻게 죽는거지? 많이 고통스럽겠지?'
전선 신문에 따르면 오토는 소련군의 전차만 격파한게 아니라 수 많은 보병들도 사살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 집행유예 부대에 간 마르틴 또한 소련군에게 사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밀리나는 여태까지 단 한번도 알지 못했던 공포감에 머리가 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남자친구와 남동생이 죽을 수도 있는 것 이었다.
밀리나는 소식을 듣고 어제부터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평범하게 식사를 할때 오토와 마르틴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밀리나는 전혀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고 있었다.
밀리나는 러시아의 민간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까 밀리나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제발 그 둘만 무사해야해...제발...'
밀리나는 어린 시절 오토, 마르틴과 함께 영화나 연극을 보며 놀러다녔던 추억을 떠올렸다. 그 둘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을 것 이었다.
이 시각 한스 파이퍼는 최전선에 구데리안 기갑군 사령부에서 전선에 대한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한스는 구데리안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탈리아가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소. 몬테네그로는 독립국으로 되겠지만, 이탈리아가 슬로베니아를 차지하게 되고 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가 유지하게 될 것 이오. 세르비아는 결국 이탈리아의 괴뢰국 신세가 될 것 이오!"
이탈리아에 의하여 몬테네그로는 독립국이 되고, 슬로베니아는 슬로베니아 자치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에 흡수되게 된 것 이었다.
구데리안이 말했다.
"이탈리아가 발칸 반도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영국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구데리안이 속으로 생각했다.
'영국의 개입으로 제2의 전선이 생기는 일은 막아야 한다.'
"영국과 이탈리아가 비밀리에 협상을 하고 있다고 들었소.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조약을 체결할 예정이오. 현재 포위된 병력의 상황은 어떻소?"
한스는 현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현재 장마가 계속되고 있어서 항공 보급은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고, 하수구 쪽에서는 소련군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하수구를 통한 보급도 어려웠다.
"포병 화력 지원이 가능한가?"
한스는 아군 포병대의 화력 사정권을 검토했다. 현재 위치를 고려했을때 아군 포병대가 화력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한스는 오토와 스테판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수라는 직책에 오른 이상 자신의 개인적인 것보다 더 우선시해야할게 있는 법이었다. 한스는 현재 독일군이 포위된 곳에 적들의 병력을 집중시켜놓고, 소련군이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모스크바로 503 중전차 대대를 투입시키라고 명령했다.
구데리안을 포함한 장성들 모두 이 의견에 동의했다. 한스가 말했다.
"내가 여기 왔다는 정보를 은밀하게 소련군에 흘리도록 하시오."
만약 한스가 최전선 구데리안 기갑군 사령부에 왔다는 것이 소련에 전달되면, 소련군은 독일군이 현재 포위된 병력을 구하기 위해 총공세를 할 것으로 예측할 것 이었다. 이걸 역으로 이용해서 소련군의 허를 찌르는 것 이었다.
구데리안이 속으로 한스를 보고 감탄했다. 솔직히 말해서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장성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에 대해서는 약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한스 파이퍼 같은 사이코패스이자 냉혈한에게는 그조차 약점이 되지 않았다. 발터 모델 3기갑사단장이 한스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 아들 둘을 전부 잃어도 상관없다는건가?'
참고로 한스는 최대한 히틀러를 피해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전황이 워낙 급박했으니 앞으로도 당분간은 피해다닐 수 있을 것 이었다.
'한 달 뒤에 그 얼라(마르틴) 녀석도 사면되겠지...그 때까지만 피하자!!'
한편, 오토는 스테판, 게오르크, 헬무트, 블라덱, 볼프강과 함께 중대 장교 대피소에 있었다. 연료는 조금 있었지만 지금 하늘이 구멍이 뚫린듯이 엄청나게 비가 오는 중이었고, 소련군의 포격에 건물이 여기저기 무너져내려서 도저히 전차가 기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소련군이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는 구역에는 공병들이 지뢰를 이용하여 살상 지대를 설치해두었다. 지금은 전선이 다소 정체된 상황이었다.
게오르크가 말했다.
"조만간 우릴 구하러 올 것이 분명하네!"
지금 군 사령부 쪽에서는 포위된 병력을 구할 것 이라고 계속해서 무선을 보내고 있었던 것 이었다.
블라덱 또한 게오르크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구데리안이 501 중전차 대대를 버릴리 없네!"
오토와 스테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저렇게 무전을 대놓고 보낸다고? 뭔가 이상하다...'
스테판이 말했다.
"소련군의 병력이 우리를 포위하느라 집중한 틈을 타서 다른 곳에서 주공이 공세를 하는거 아닐까?"
"그건 아닐걸세! 자네 아버지가 어떻게던 우리를 구하러 병력을 보낼걸세!"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를 구하러 올 사람이 아닌데...'
하지만 오토는 굳이 동료들의 희망을 깨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 배가 고파 뒤질 지경이었다. 선조부터 대대로 장교였던 헬무트가 말했다.
"전쟁터의 세 가지 법칙 아나?"
"그게 뭔데?"
"첫째, 돈 밝히면 죽는다. 둘째, 여자 밝히면 죽는다, 셋째, 적군이나 민간인을 동정하면 죽는다."
스테판이 말했다.
"다 맞는 말이지. 시시각각 부대가 이동해야하는데, 민가에서 노획이나 하면서 이동이 지체되면 적군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지. 그리고 노획을 하거나 식사를 준비할때가 가장 적군 공격에 취약할 때인데 제때 대비를 못하게 되니 말일세."
"노획품에 신경을 쓰면 부대 이동에도 지장을 받으니 거야 당연하지."
사실 세번째 법칙도 당연했던 것이, 소련군이 부상당한척 도와달라고 했다가 치료해주러 가면 총을 맞고 뒤지는 일이 흔했다. 블라덱이 말했다.
"근데 민간인 동정하면 일찍 죽는건 왜일까?"
"그거 참 희한하게도 맞지 않아? 전투력이랑 별개로 민간인한테 잘해주는 녀석들이 꼭 일찍 죽더군."
헬무트가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들은건데, 적군 민간인 도와주던 장교들은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무사히 전역해도 희한하게도 일이 잘 안 풀렸대. 근데 민간인이고 뭐고 다 쓸어버린 새끼들은 전역 이후에도 사업하고 떵떵거리고 잘 산다더군.."
스테판이 말했다.
"군인의 존재 목적은 자신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있는걸세. 굳이 다른 국적의 민간인들을 구하는 것은 군인으로서의 본분에 어긋나는 것이지. 쓸데없는 동정심 또한 군인으로선 결격사유일세."
이내 오토와 동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배가 고파서 말을 할 힘도 없었다.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면 뇌와 근육의 영양소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6개월에 걸친 고된 전투로 체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고기가 너무 필요했다. 차라리 숲이었다면 벌레라도 잡아서 먹었을 것 이다. 오토가 말했다.
"쥐라도 잡자."
시체가 있는 곳이면 예외없이 쥐가 우글거렸다. 쥐가 많은 만큼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서 쥐를 잡기 위해 썩은 빵조각을 뿌려놓았다.
'저깄다!!!'
쥐 몇 마리가 빵을 주워먹기 시작했고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양동작전으로 쥐를 잡으려고 했다.
"찍! 찍!!"
하지만 쥐는 엄청나게 빠르게 쏜살같이 숨어버렸다. 이건 도저히 사람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쥐를 잡으려고하던 스테판은 게오르크의 궁둥이에 얼굴을 박았다.
"악!"
"시발!!!"
결국 에너지만 뺏긴채로 쥐도 사냥하지 못하고 다들 쓰러졌다.
"됐어!! 그딴거 안 먹어도 돼!"
"분명 기생충이 우글거릴거야!"
그 때, 판쵸 우의를 입은 에밀, 요하네스, 알프레트가 오토를 찾아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미...민간인 사상자가..."
"민간인 사상자는 언제나 있잖아?"
귀찮아죽겠는데 굳이 그걸 보고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소대랑은 관련 없지?"
"없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시는 것이..."
오토는 귀찮지만 동료들과 함께 판쵸 우의를 입고는 그 시체를 보러 갔다. 한 구의 시체가 천에 의해 덮어져 있었다. 오토는 조심스럽게 그 천을 들추어보았다.
"허억..."
"이런 시발!!"
"우웩!!"
게오르크가 입과 코를 틀어먹고 시신을 관찰하고 말했다.
"엉덩이와 허벅지랑 팔뚝 살만 깔끔하게 베어갔어..."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중대 대피소로 돌아왔다.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에밀이 눈치없이 지껄였다.
"이건 틀림없이 식인종의 짓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지방이 많은 부위만 마치 고기를 도축하듯이 잘라가지 않았습니까?"
오토가 에밀에게 말했다.
"자넨 입 좀 닥치고 있게!!"
잠시 뒤, 오토는 동료들과 이 일을 의논했다.
"절대로 이 일에 우리 중대는 엮이면 안되네!!"
안 그래도 포위가 끝나고 살아남는다쳐도 슐레프 중대는 SS에 조사도 받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려야할 것 이었다.
"절대 우리 중대는 아닐세. 다들 비쩍 골아있으니까."
불현듯 오토의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인종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단백질을 섭취했으니 기름이 번드르르할걸세! 주위를 잘 관찰해보라고!"
잠시 뒤, 비가 조금 그쳤고, 오토는 티거를 주요 거점에 잔해 더미 속에 엄폐시켜두었다. 오토의 전사로서의 직감에 의하면 소련군이 공격을 한다면 이 대로를 통하여 진입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인근 건물에는 우크리이나 보병들이 옥상에서 정찰을 하고 있었고, 적 전차나 보병이 보이면 무선을 보내줄 것 이었다.
그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희한하게도 얼굴에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것 같았다. 오토가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저 녀석들이?'
잠시 뒤, 소련군의 스탈린 전차가 이 쪽으로 오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스탈린 전차?'
"경심철갑탄 장전해두게."
경심 철갑탄은 수량이 적었기에 귀했다. 만약 T-34였다면 이 정도 거리에서 일반 철갑탄으로도 충분히 관통이 가능할 것 이었다. 하지만 스탈린 전차 상대로는 경심 철갑탄을 쏴야 했다.
오토는 티거의 관측창으로 전방에 집중했다.
잠시 뒤, 빗줄기 속에서 소련군의 스탈린 전차가 보였다.
"발사!!!"
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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