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러와의 거래
한스는 그 서류를 보고도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독일 제국의 명운이 달린 상황인데 수녀원 같은 이런 자잘한걸로 내 시간을 뺏는지는 모르겠소. 이런건 내 관할이 아니오."
안경 속에 힘러의 눈은 도무지 그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자잘하다고는 하지만 이 서류에 관심이 많아보이는구려. 읽어보시겠소?"
힘러는 서류를 한 페이지 펼쳤다. 한스는 관심없는척하면서 그 서류를 흘끗거렸다. 힘러가 읽었다.
"현재 독일 제국군에서 전차 격파 1위를 자랑하는 오토 파이퍼는 티거 중전차 대대로 부대가 개편되기 전까지 구데리안 2기갑군, 24차량화군단, 3기갑사단에 배속되어 있었오. 맞소?"
한스는 손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깨에 근육 경련까지 오기 시작했다.
"그렇소만."
힘러는 한 재판 결과에 대한 서류를 내밀었다.
"귀관의 아들, 오토 파이퍼가 소속된 중대에서 한 21세의 파르티잔 여성을 포로로 잡았소. 그 여성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고 파르티잔으로 활동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혐의로 풀려났소.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라 본토에 수녀원으로 보내졌지. 파이퍼 부인께서 전쟁 피해자에 대한 자선 사업을 한 덕분이오. 정말 대단하군."
한스는 손에 식은 땀이 난 것을 감추려고 바지에 손을 비볐다. 한스는 완전히 표정이 굳어있는 상태였다.
'저 새끼는 분명 증거가 없을거다. 전부 다 추측일 뿐이고 내 자백을 원하는거다. 말려들 필요 없다!!'
힘러가 말을 이었다.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소. 그 파르티잔 여성은 본토로 이송되었을때 성폭행 흔적이 있었다더군."
한스의 이마에서도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여자 포로가 소련군 포로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은 흔하고 이러한 사건이 몇번 발생한 이후 현재 제국군에서는 여자 포로를 철저하게 보호하여 격리하고 후방으로 신속히 이송하고 있소. 그 파르티잔은 아마 소련군 포로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것 이오. 애석한 일이군."
힘러가 씨익 웃었다.
"대다수는 그렇게 추리할 것 이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일에 매우 흥미를 느꼈고 사람들을 시켜 이 일을 더 조사하게 했소."
한스는 자신의 홀스터 안에 권총을 만졌다. 한스의 홀스터 안에는 발터 P38이 있었다. 한스는 오발율이 높은 루거보다는 발터 P38을 선호했다. 지금 책상 밑에서 이 권총을 발사한다면 하인리히 힘러의 불알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이었다. 힘러가 말을 이었다.
"내 요원들이 수녀원을 몇 번 방문해서 조사를 했는데 수녀원장께서 작은 오해를 하신 것 같더군!"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게슈타포로 조사했다고? 이런 비열한 새끼!!!'
한스가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게슈타포를 이용해서 어딜 들쑤시고 다니건 내가 알바 아니오. 지금도 전선에 많은 병력이 굶주리고 탄약과 연료를 보급받지 못하고 있소. 허튼 소리로 내 시간을 빼앗을거면 다른 곳에 가시오."
"파이퍼 부인께서도 이 수녀원에 몇 번 방문하셨더군..정말 천사같은 아량이 아닐 수 없소!"
'!!!'
"그런데 그거 아시오? 파이퍼 부인께서 두번째 방문한 다음 날, 내 요원이 그 피크라는 여인에게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서 방에 있던 약통을 조사했었지. 평범한 신경안정제였는데, 약을 바꿔치기하면 정신이 돌아와서 증거를 잡을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오! 그런데 그 약통이 매우 재미있었소! 모든 알약은 신경안정제였지만 맨 밑바닥에 있는 알약 한 개가 청산가리였던 것 이오!"
힘러는 안경 너머로 한스 파이퍼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다. 힘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수녀원장께서는 내 요원들의 방문에 공포감을 느낀 것인지 이 여인을 외국에 한 수녀원으로 보냈다오.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 아니오? 그런데 자네에게도 다행인지는 모르겠군..."
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슈납스를 자신의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힘러의 잔에는 따르지 않았고 한스는 혼자서 슈납스를 마셨고, 이런 졸렬한 태도의 힘러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육군 참모 총장께서는 이런 사소한 일에 관심이 없으시겠지. 근데 이 피크라는 여인이 서류 상으로 혼인 신고가 되어있더군."
'!!!'
"앙뚜완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 것 이오. 랭스 지역의 한 수녀원을 후원해주지 않았소?"
한스의 얼굴은 완전히 하얗게 질린 상황이었다. 한스가 말했다.
"세...세계대전때 수...수 많은 저...전쟁 고아가 생겼고 이들을 도...돕고 싶었을 뿐이오."
한스가 젊었을때 말을 더듬던 버릇이 다시 튀어나왔다.
"정말 인격자시군. 그 앙뚜완이라는 녀석은 현재 502 중전차 대대에서 상당한 공을 세우고 있다고 들었소!"
한스는 최대한 태연한척 하기로 했다.
"내 덕택이지!"
힘러가 가방에서 두 번째 서류를 꺼내어 책상에 던졌다.
'!!!'
"자네가 후원한 랭스 수녀원을 조사한 결과 미사카라는 여인이 앙뚜완을 출산하고 자살했다더군. 그리고 이건 내 견해인데 말일세! 그 앙뚜완이라는 녀석은 자네와 상당히 닮았더군."
한스는 이제 어깨가 완전히 근육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힘러가 안경을 내리고 한스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인간말종 쓰레기가 있나...아들이고 아내고 전부 지옥에 떨어져야겠군..."
"증거도 없는 정황만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군...이런게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될 것 같소?"
"그럼! 뚜렷한 증거는 없지! 무엇보다 그 미사카라는 여자는 죽고 피크라는 여자는 정신병에 걸렸으니 말이오! 하지만 이를 총리에게 보고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원하는게 뭐요."
힘러는 다시 안경을 내리고 매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만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이오. 빌헬름 3세가 왕좌에 오르겠지. 현재 총리 또한 국민의 지지가 없어지면 자리에서 물러나고 은퇴를 생각하고 있소. 뭐 지금 지지율을 보면 당분간은 계속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최근에 아드님에게 있었던 일을 보면 그것도 모르지."
한스는 힘러에게 총을 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치당의 당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속셈이군...'
"현 SS는 시민들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고 좌파 지식인과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인원도 서서히 줄이고 유명무실한 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지. 난 SS에 실질적 권력을 원한다네. 제 1 SS 기갑군단 전차 대대의 편성을 원하네."
'이 새끼가!!! 감히 티거를!!!'
한스는 자신의 아들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힘러가 티거를 원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힘러가 다음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지금 쓸모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하는 것은 자네일세. 파이퍼."
'이 시발놈을...88mm 대공포로 날려버려야!!!'
힘러가 한스를 보며 생각했다.
'이 한심한 놈...아무래도 지금 내가 원하는걸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군...'
"에이스 전차장도 몇몇 이 쪽으로 보내주시오."
그로부터 얼마 뒤, 502중전차 대대의 미하엘 비트만은 제 1 SS 기갑군단 전차대대로 가게 되었다. 비트만은 계속해서 502중전차 대대에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들 아쉬워했다. 한 502중전차 대대원이 수근거렸다.
"힘러가 카리우스 소대장에게도 제의했다는데 거절했다더군!"
카리우스가 비트만에게 말했다.
"우리 대대에 에이스가 너무 몰려있긴 했지."
앙뚜완도 비트만을 배웅했다.
"끝나고 술이나 먹자고!"
비트만은 자신의 전우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시 모스크바의 오토에게로 돌아가자. 오토의 4호 전차는 골목에서 양쪽 궤도가 모두 대전차 소총에 저격받아 기동불가가 되어버렸다.
"우측 건물에 유탄 기관총 사격!!! 우벤에게 구조 요청해!!"
오토의 4호 전차의 포탑이 우측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트으으으으
그리고 4호 전차의 유탄과 기관총이 우측 건물을 향해 불을 뿜었다.
티잉!!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와장창!! 쿠과광!!!
우측 건물에 매복해있던 소련군 저격수가 기관총을 맞고는 사살되었다. 오토가 외쳤다.
"좌측 건물에도 사격해!!!"
그 때, 나타샤가 줄에 걸린 수류탄을 들고는 4호 전차 차체 위로 올라왔다.
"꺄아아악!!!"
지난번에 뽀록으로 독일군 전차의 주포를 아작 낸 탓에 나사탸는 이번에도 독일군 전차의 주포를 수류탄으로 격파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 이다. 나타샤는 4호 전차의 포탑 위로 올라간 다음 주포에 수류탄을 걸고는 도망쳤다.
콰과광!!!
4호 전차의 주포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4호 전차의 포탑이 선회하며 계속해서 기관총이 긁어졌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그렇게 나타샤는 아까 전 좌측 건물에서 4호 전차의 궤도를 격파하는데 성공한 류드밀라에게 달려갔다.
"빨리 도망쳐!!!"
하지만 류드밀라는 꼭 독일군 전차장을 사살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너 먼저 도망쳐!!"
그렇게 류드밀라는 좌측 건물 안에서 웅크리고 앉은 다음 수류탄을 꺼냈다. 나타샤는 류드밀라를 내버려두고 도망쳤다.
'알아서 하라지!!'
류드밀라는 수류탄을 꺼낸 다음, 은밀하게 건물 밖으로 달려나왔다. 나타샤가 한 것 처럼 포탑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으면 될 것 이었다. 현재 4호 전차의 포탑은 류드밀라가 있는 곳의 반대 방향으로 기관총을 긁으며 건물 창문을 모조리 작살내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르르륵
류드밀라가 4호 전차 차체 위에 올라간 순간, 오토 파이퍼가 전차장 해치 위로 MP40를 들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류드밀라가 수류탄을 던지기 전, 오토가 류드밀라에게 MP40을 발사했다.
탕!! 타앙! 탕!!
류드밀라는 MP40를 맞고는 4호 전차 뒤로 굴러떨어졌다. 4호 전차에서는 연막탄이 발사되었다.
펑!! 퍼엉!! 펑!!!
그 틈을 타서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4호 전차 밖으로 탈출했다. 우벤의 4호 전차가 좀 있으면 이 쪽으로 와서 구조해 줄 것 이었다. 류드밀라는 총알을 맞고는 신음하고 있었다.
"아...아아..."
오토 일행이 근처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반대편에서 소련군의 모신나강 총성이 들렸다.
탕! 타앙!! 탕!!
소련군 보병 1개 분대가 이 쪽으로 오고 있는 것 이었다. 오토가 외쳤다.
"하수구로 들어가!!!"
오토,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는 모두 하수구로 들어갔다.
"으아악!!!"
"빨리!!!"
그렇게 오토 일행은 잽싸게 하수구로 들어간 다음 빠른 속도로 달렸다.
첨벙 첨벙!!
'으아아악!!!'
"쉿!! 천천히 걸어!!"
그 때, 소련군이 철퍽거리며 하수구를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오토 일행은 우측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똥물이 거세게 흐르는 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에밀은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똥물에 빠질뻔했다.
'으익!!!'
오토는 MP40를 들고는 소련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철퍽
소련군의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렇게 오토 일행은 30초 정도 기다렸다.
'자..잘못 들은건가?'
바로 옆에서 하수구 물이 거세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철퍽
소련군은 분명 천천히 이 쪽을 수색하고 있었던 것 이다. 마티아스는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그 때, 반대편에서 수류탄의 핀이 뽑히고 이 쪽으로 던져지는 소리가 들렸다.
데구르르르
수류탄이 굴러간 곳은 현재 오토 일행이 숨어있는 곳으로부터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파편이 튀면 죽거나 뒤질 수도 있었다. 결국 오토 일행은 다같이 하수구 똥물로 점프했다.
'으아아악!!!'
쿠과광!!
오토 일행은 하수구 똥물에 점프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토 일행은 거센 물길에 휩쓸려서 어딘가로 떠내려갔다.
"으아악!! 으아악!!!"
그렇게 오토 일행은 똥물을 뒤집어쓴 채로 4호 전차도 잃어버리고 중대 본부에 복귀했다. 다행히 잠시 뒤, 비가 오기 시작했고 오토와 전차병들은 중대 본부 옥상에서 옷을 모두 벗고 비누칠을 하며 샤워를 했다. 추워뒤질 것 같았지만 할 수 없었다.
마티아스가 울부짖었다.
"이 냄새는 앞으로 10년은 갈 것 같습니다!!"
오토 소대 소속의 바실리가 옥상으로 올라와서 현재 남은 탄약 수량을 보고했다. 참고로 바실리는 소련군 형벌 부대 출신인데 오토의 소대에서 전차병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보고를 마친 다음 지독한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으웩!!!'
그렇게 샤워를 마친 다음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군복도 깨끗이 빤 다음 벌거벗고 중대 본부 건물에 있는 난로 앞에서 몸을 녹였다. 추워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으아아아..."
고기를 못 먹어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건강이 안 좋아진 상태였다. 영양소가 부족하니 판단력도 떨어지고 예전보다 반사 신경도 느려진 것 같았다. 포수 에밀이 투덜거렸다.
"이래서 잘 먹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슈바인학센 먹고 싶다..."
같이 건물을 쓰고 있는 우크라이나 놈들은 얼굴에 기름기가 번드르르했고 상태가 좋아보였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저 녀석이 왜 우크라이나 놈들이랑 같이 있지?'
소련군 출신의 데니스는 예전에 마호르카 담배를 삐라로 말아 피우다가 총살형을 받았다. 그런데 총살형을 받기 직전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하고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하지만 데니스의 가족은 소련군에게 모두 총살당했고, 데니스는 이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군과 같이 소련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던 것 이었다.
첩자의 가능성도 있었기에 우크라이나 부대에서는 소련군 출신을 절대 받지 않지만 데니스가 어찌나 호전적이었던지 다들 데니스를 인정하고 있었다. 뭐 어찌되었건 오토는 고기 생각이 간절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유리병에 우유를 담아서 배급하고 있었고, 이를 긴빠이치면 약간의 영양 보급이 될 것 이었다. 결국 오토는 우유라도 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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