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의혈문 義血門 1)
둥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진무상단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기 때문인 것이다.
원래 호위무사들의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연무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니 들어차 있었다. 연무장의 규모가 작은 까닭이었다.
파벌들끼리의 다툼은 지부에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있었다.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현재 무맹은, 장로들의 죽음으로 특급 경계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본맹에 국한되고 있었다. 물론 공석이 된 지역의 지부는 정신없이 돌아갈 것이었다. 재 선출 준비가 한창인 때문이다. 결국 귀주의 일은 무맹에서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귀주에는 대문파라고 해야 단목세가가 있을 뿐이었는데 장로들의 횡사에서 요행히도 빠져있었다. 그들은 지금 소림파벌과 협상중인 상황이었다. 단목세가 역시 자신들의 터전인 귀주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련의 요인들이, 진무상단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음에도 주목을 받지 않는 까닭인 것이다.
어림잡아도 이천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멸사대를 비롯한 삼백의 부대가 가장 좌측에 도열했다. 그 옆으로는 귀주지부의 이백이십구 명이 오탁의 지휘 하에 정렬하고 있었다.
큰 악행이 없었던 오탁이었다. 합류 하게 된 까닭이다.
다시 그 옆으로는 진무상단의 호위무사들 이백이 섰고, 우측으로 중소문파에서 선별된 오백의 무인들이 각기 줄을 맞춰 서있었다. 팽호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지부의 일이 마무리된 후 팽호가 가장 먼저 한일이 중소문파의 규합이었다. 다소 걱정하면서 추진했던 일이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했었다. 그간의 억눌림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그로인해 인원이 부쩍 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열 개의 무리로 나뉘었다. 문파마다 오십 명씩 보내온 것이다. 규모로 보자면 문파 전력의 오할 가까이 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지부에 소속되었던 팔백 가까운 종복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도 모두 운남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다. 입막음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원이 부족한 까닭이었다. 연휘의 둥지에는 종복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있어서는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동행의 가장 큰 원인인 것이었다.
대열의 앞에는 거대한 수레들이 보이고 있었다. 수레 하나에 보통 열 마리의 말들이 끌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무려 오십대나 되었다.
“출발하라!”
곽우의 호령에 종복들이 수레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보대가 출발하고 수레들이 뒤를 이었다. 열대의 수레가 지나가자 중소문파의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열대의 수레가 따르기 시작했다. 멸사대는 가장 마지막으로 연무장을 나섰다. 진무상단을 나서는 일행들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기대와 불안함, 그리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긴장감 등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곽우는 팽호, 방송등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차림새나 전반적인 일행의 모습으로 보면 완벽한 표행의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었다. 대대적인 표행을 떠나는 것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방송의 여식은 다소 당돌한 면이 있었다. 병법과 관련해 그녀를 보았을 때 포권 하던 모습을 떠올린 곽우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허허...”
팽호가 웬 웃음이냐는 듯 곽우를 돌아보았다. 방송의 표정도 팽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괜히 멋쩍은 곽우다.
“방소저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허허”
팽호가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곽우는 이유를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송은 소태라도 씹은 듯 낭패한 얼굴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허허”
소혜는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약간의 단장을 하고 곽대주를 만나러 갔다. 지난번의 서류정리와는 격이 다른 것이다. 그만한 격식을 갖춰야 할 것이었다.
“곽대협,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곽우에게 포권을 하며 건넨 말이었다. 딴에는 강호인의 모습을 보이고자 했음인데 어쩐지 어색해 보이기만 했다.
“허허, 병법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진즉 알았다면 마음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인데, 이번에도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소.”
짐짓 그녀의 행동을 따라 포권을 하며 답을 해보는 곽우다. 그녀가 다시 포권을 해왔다.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곽대협께서는 말씀을 편히 하시기 바랍니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허... 어찌 그럴 수 있겠소. 과년한 처자에게 그리 할 수는 없는 것이오. 게다가 도움을 받는 입장 아니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오.”
하다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계속되는 곽우의 흉내에 소혜가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는 곽우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왜 그리도 빤히 보는 것이오?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일고 있었다. 눈물이 비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울어 버렸다. 통곡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섧게 우는 것이었다. 오히려 곽우가 당황하고 있었다.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던 방송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저, 왜 우는 것이오... 허어, 이리 난감할 데가...”
“혜아야 왜 그러느냐... 곽대협께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그렇게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다. 한참을 울어 대던 그녀가 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곽우에게 대뜸 따지고 들었다.
“저를 놀리셨지요? 제 행동을 흉내 내시면서 놀린 것이지요? 재미 있으셨나요? 흑, 강호의 호협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기에 흑, 했던 것인데. 흑, 놀림이나 당하고 흑흑, 우와아앙, 엉엉 어떻게 해, 엉엉”
오전에 시작된 울음이 저녁시간이 돼서야 끝이 보이고 있었다. 물론 곽우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서 통 사정을 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날은 그저 하루 종일 우는 모습만 보고 말았다.
다음날이다. 이천이나 되는 인원을 어찌 이동할 것인지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어제의 모습이 떠올라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또한 미덥지 못하다는 것도 조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채 반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방법을 강구해 낸 것이다.
표행으로 위장하자는 것이었다. 수레와 이동할 때의 진형까지 일사천리로 말을 해대는 그녀였다.
곽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제의 그녀와 오늘의 그녀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비록 어려 보이지만 스물셋의 과년한 처자였다. 혼기를 놓친 처자의 우는 모습과 당찬 모습이 비교된 까닭이었다.
양면을 모두 겪어본 곽우가 새삼 헛웃음을 짓는 이유인 것이다. 팽호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반면에 방송은 쥐구멍이라도 찾는 듯 애꿎은 땅만 둘러보고 있었다.
팽호가 운남으로 전서를 띄웠다. 양위에게 유람이나 하자고 한 것이다. 크게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안면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중간에 양위가 합류한 까닭인 것이다.
연휘의 얼굴에 웃음이 일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혜의 고개는 더욱 수그러들었다.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는 그녀였다.
“모두들 수고 하셨소. 대주급 들은 모두 가서 일을 보도록 하라. 그리고 방소저는 잠시 남아 주시겠소? 두 분 지부주님도 잠시 계셔주시면 좋겠습니다만...”
대주들이 돌아가고 자리를 좁히게 된 회의실이다.
“일단 현 상황부터 정리를 좀 해 보겠습니다. 파벌들의 횡포는 이미 하루 이틀 계속된 것이 아니니 따로 얘기할 사항은 아니고, 목표는 파벌들을 징치하는 것입니다. 썩어버린 무맹을 징치하려는 것이지요.”
연휘의 말에 팽호가 토를 달고 있었다.
“그들의 전력은 물경 이십만이 넘어 갑니다. 어찌 상대를 하시려오?”
“대문파의 전력을 대략 일만의 인원으로 본다면 이십만이 되겠지요. 일천으로 이십만을 상대하는 격입니다. 개별적으로 상대한다 해도, 처음에야 크게 무리가 없겠지만 중반 쯤 부터는 힘들어 질 것입니다. 해서 군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마침 방소저의 책략이 하늘을 속인다 하니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전력의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겠소? 일개 문파라 해도 무려 일만의 정예들인데 가능 하다고 보시오?”
양위였다. 연휘가 한 문파의 수장이 된 까닭에 반 존칭을 하는 것이다.
“충분하지요, 언가의 사천정예를 괴멸시켰습니다. 삼백의 인원으로 말이지요. 당시는 병법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흠... 그야 알고 있던 사실이오만...”
양위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방소저를 군사로 임명하려 합니다. 문제없겠지요?”
광도와 검마가 당연하다는 듯이 찬성을 하고 있었다.
“비문 문주의 신분으로 방소혜를 군사에 임명한다. 비록 여인의 몸이기는 하나 파벌의 징치에 혼신의 힘을 다하도록 하라!”
연휘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였다. 허나 곧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예의 그 포권이 나왔다.
“군사 방소혜, 파벌의 징치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연휘가 웃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팽호 또한 연휘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소혜가 의아해 했다. 하지만 이유를 말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소혜가 그런 연휘와 팽호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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