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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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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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맹주 盟主 6)

DUMMY

검왕과의 일전을 대비한 채 무맹에 들어와 있는 네 사람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독 누가 더 심한가는 따질 것도 없었지만 종리격의 얼굴은 차마 마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굳어있었다.

제갈문의 협박이 주로 그에게 집중된 탓이었다. 아무래도 은연중에 좌장(座長)의 역할을 맡아 왔던 때문인 듯싶었다.

“슬슬 마중을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운룡대협 사일의 말이 고요를 깨고 말았다. 검왕이 벌써 반 시진 거리까지 왔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래야겠지. 어차피 맹 내에서 싸우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정문 까지는 마중을 가야 할 것이야.”

“그럼 다들 준비하게. 어쩌면 검왕과 붙기도 전에 팔천의 인원에 의해 그냥 제압당하고 말 수도 있을 것이네. 아이들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되면 놈들도 아이들에게 해코지는 않을 것이라 보네.”

조화선옹 제순에 이은 탈혼검 서문화중의 한 마디였다. 특히 서문화중의 말은 이들에게 그나마 희망을 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무사할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것이야. 우리들이 잘 못 된다 해도 아이들만은 무사할 것이네. 제갈문 그 놈이 그 정도의 생각은 갖고 있다고 봐야겠지.”

종리격이 그 희망에 조금 더 살을 붙였다. 그의 굳어있던 얼굴이 약간은 풀어져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네. 우리도 아이들도 모두...”

“이만 나가자고. 운명이라면 하늘이 정해 놓은 뜻이 있겠지. 당장 할 일은 검왕을 만나는 일이네.”

누군가 운명이라 말했다. 조화선옹이 첨언(添言)을 하고 있었다. 세월을 비켜 갈 수 없는 것이 사람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운명이라는 말은 남들이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것이다.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 배는 길었던 까닭이었다.

“무운을 비네.”

종리격의 말을 끝으로 숙연한 표정들을 한 채 문을 나서는 십대고수의 사인이었다. 이들 친우들은 어쩌면 오늘 잘 못 될지도 몰랐다. 누군가 남을 수도 있었고 어쩌면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모두가 목숨을 잃는다면 나을 것이다. 남게 되는 사람은, 남은 생을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먼저 간 친우들에 대한 그리움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을 까닭이었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모두가 살아남는 것이었다. 종리격의 마지막 말처럼 무운을 비는 수밖에는 없었다.


당가량의 수 없이 많은 수하들이 개미떼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침착하게 놈들을 응시하던 연휘의 손이 급박하게 떨어졌다.

“쉭! 쉬쉭! 쉬쉬쉬쉭!”

오백 명이나 되는 연휘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이 일제히 쏘아대는 화살은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앞에서 올라오던 당문도들을 휩쓸었다.

“컥! 커걱! 끄으으!”

많은 당문도들이 쓰러졌다. 허나 놈들의 대응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당가량의 주위로 꽤 넓게 포진한 오십여 명은 화살을 보고도 오히려 앞으로 달려 나왔다. 쉽게 쳐내는 동작에 화살들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예상외로 화살에 의한 공격은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기껏해야 삼백 정도가 쓰러졌을 뿐이었다.

“놈들이다! 자세를 낮추고 속히 산을 올라라!”

당가량의 호통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껏 자세를 낮춘 놈들이었다.

“쉭! 쉬쉿! 쉬쉬쉬쉿!”

“큭! 크윽!”

화살의 강도는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욱 거세어 졌지만 오히려 비명은 줄어들었다. 그만큼 대비를 한 까닭이었다. 두 번째의 공격에 당한 놈들은 모두 백여 명에 불과했다. 효과가 극히 미미한 것이다.

그사이 선두에 선 오십여 명은 연신 화살을 쳐내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허나 그들은 곧바로 허탈함에 빠져들고 말았다. 기를 쓰고 올라왔건만 적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두 번의 화살을 날리고 모두 철수한 의혈문이었다. 벌써 백여 장은 벗어난 그들이 당문도의 눈에 보일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당가량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입술을 짓이기며 잔뜩 노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쫓아라!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도륙을 내라!”

“가주님 말씀 들었느냐! 한 놈이라도 놓친다면 그 만큼 네놈들의 숨통을 죌 것이다. 빨리빨리들 움직여라! 야 거기 너! 어정쩡하게 서 있는 놈! 넌 대체 뭐야! 빨리 안 쫓아가나!”

오십여 명의 암혼대(暗魂隊)를 이끄는 당율이 일반 문도들 중에서 유난히 지쳐 보이는 자를 일별하고 호통을 쳤다. 놀란 수하가 황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크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허나 이미 당율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한 다음이었다. 눈을 부라린 당율이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수하들을 다그쳤다. 그로 인해 당문의 움직임이 확연히 빨라졌다.

후미가 중턱을 올랐을 즈음 선두는 벌써 산을 넘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때 팽완이 이끄는 수하들이 당문의 후미를 사정없이 들이쳤다.

“쉬쉬쉬쉿! 쉬쉬쉿!”

“크으, 큭!”

산을 오르느라 훤히 드러낸 놈들의 뒷목에 화살이 정확히 틀어박혔다. 어느새 삼십 장도 채 안 되는 거리까지 접근해 화살을 날리는 의혈문도들이었다. 이런 거리라면 움직이는 토끼의 연수까지 명중시킬 수 있는 그들이었다. 놈들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갔다.

허나 앞서있던 당문도들은 미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숨을 헐떡거리며 산을 오르기 바쁜 탓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공격이 있었다. 많은 수의 동료들이 쓰러지면서 지르는 비명에 그 때서야 놈들이 신형을 돌렸다.

허나 팽완을 비롯한 대원들은 벌써 멀어진 상태였다. 두 번째 화살을 날리고는 바로 뒤 돌아 도주한 까닭이었다. 뒤 늦게 후미의 문도들이 당한 것을 알게 된 당가량의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번의 습격으로 칠백이나 죽었던 것이다. 조금씩 피해가 누적되어 온 것이 어느덧 이천이 넘어가고 있었다. 당율을 향한 그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반을 이끌고 후미를 쫓아라. 놈들이 어떤 술책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신중하게 움직여라. 또 다시 수하를 잃는다면 네 목숨은 없다.”

그렇게 두 패로 나뉜 당문이었다. 당가량은 여전히 연휘를 쫓아갔으며 당율은 팽완의 뒤를 급하게 따르고 있었다.

어느덧 산을 넘어 아래까지 내려온 당가량이 연휘의 종적을 놓치고는 이를 갈아 댈 때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왕좌왕 하던 그들에게 또 다시 재앙이 닥쳤다. 이미 내려왔던 산 위에서 화살이 날아들며 수하들을 꿰뚫기 시작했던 것이다.

“놈들이다! 놈들이 뒤에서 나타났다!”

수하 한 놈이 요란을 떨며 소리쳤다. 그것이 그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당문이었다. 다시 뒤 돌아 산을 오르려니 벌써부터 숨이 막혀왔다. 허나 적은 산 위에 있었다.

암울한 눈빛들을 한 채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 화살이 쏟아졌다. 지친 그들이 이전만큼 쉽게 쳐내고 피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당문도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다시 정상에 올랐을 땐 팔백에 달하는 인원이 비어있었다.

정상에 올라 망연히 수하들을 보던 당가량이다. 그의 눈에서 핏물이 흘렀다. 수하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당율이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을 터였다.

놈들은 아주 치밀했던 것이다. 미리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자신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얄밉게도 치고 빠지며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은 산꼭대기에서 놈들의 그림자도 보지 못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놈들을 쫓아 봐야 수하들의 희생만 늘어날 뿐이었다. 지쳐버린 수하들이 자리에 퍼질러 앉아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당가량의 입술에 붙은 피딱지가 굳어갈 즈음 노성이 터졌다.

“퇴각한다! 분하고 원통하지만 일단 물러난다!”

결국, 버티지 못한 당가량이 물러나려는 것이다. 통한의 피눈물을 흘리며 울분이 가득한 소리로 뱉어내는 말이었다. 수하들의 지친 얼굴에서도 눈물들이 보였다. 많은 동료들을 잃고 얻은 것도 없이 산을 내려가야만 했다. 안도와 더불어 원통함이 이들을 감싸고 있었다.

당율은 훨씬 더 비참한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분명히 뒤를 쫓아 전력으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사라져버린 놈들이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후미가 공격을 당했다. 그가 몸을 돌려 후미에 이르렀을 때는 또 다시 놈들이 사라진 후였다.

미처 분노를 표현하기도 전에, 후미가 되어버린 뒤 쪽에서 적의 공격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당율이 부랴부랴 도착했을 땐 이미 일천도 안 되는 수하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당가량이 산을 내려와 당율을 만나기까지 양 쪽 모두 한 번씩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산을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몇 번을 더 당하고 나서야 지난 밤 여장을 풀었던 곡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이익!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것이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콰당탕! 쿠당! 퍽!퍽!”

“.....”

당가량이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며 의자 같은 것들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곡성 곳곳에 퍼졌다. 곁에 있던 당율 역시 분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가주와 같이 행동할 수는 없었다.

곡성에 들어선 뒤 인원을 점검해 본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직접 붙어서 깨진 것도 아니었다. 계속되는 적의 습격에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못 해본 채 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두 활에 의한 기습이었다. 그렇게 끝나고 돌아온 인원은 고작 이천 명이 채 안 되고 있었다.

칠천이 보무도 당당하게 성도를 떠나 온 것이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오천이 넘게 죽어버리고 말았다. 당가량이 이렇게 흥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당문이 다시 예전의 위세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언가나 해남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꼴로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원 없이 분풀이를 해 대던 당가량이 기가 빠졌는지 널브러진 채 허탈하게 말을 뱉어냈다. 기운이 쭉 빠진 노인네의 모습이었다. 모든 의욕을 잃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촌로가 되어 버린 그였다.

그런 당가량의 옆에 있는 당율 역시 십년은 늙어 보였다. 그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연휘가 팽완을 비롯해서 양위와 팽호 등 수뇌부와 전과를 논하는 자리다. 승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흉신악살도 아니고 지극히 정열적인 천생 무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비록 적이라 명명된 당문 이었다하지만 너무도 많은 죽음을 만들어낸 까닭에 침울해 있는 것이다.

“어차피 치렀어야 할 일이오. 그들이 죽지 않았으면 우리들이 그들 대신 차가운 땅에 몸을 눕히고 말았겠지요. 모두들 마음을 풀기 바라오.”

“한 번은 겪어야만 했을 일입니다. 다만 애꿎게 죽어간 저들이 불쌍할 뿐이지요. 헛된 공명심과 수뇌의 욕망이 낳은 결과라 하기에는 참으로 안타깝기만 한 것입니다.”

연휘의 말에 팽완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들 숙연한 분위기였다. 심지어는 검마 진여송조차도 그렇게 숙연해하고 있었다. 당문에 원한이 있는 그였다. 허나 실질적인 원수는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애꿎은 사람들의 목숨만을 빼앗고 말았다. 그것에 대한 자책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오. 대신 우리 수하들은 다치지 않았으니 그만해도 다행 아니오. 피곤할 터이니 모두들 그만 쉬도록 합시다.”

마무리를 하는 연휘로 인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술병을 입에 물고 있는 광도의 모습이 보였다. 맞은편에는 검마가 앉아있었다. 곽우가 있었으며 하륜과 유택도 자리를 했다. 다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상태였다.

술은 아직도 벌컥거리며 광도의 목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흐흐흐흐, 그나마 다행이야. 멀리서 화살에 의해 죽어갔으니...”

술병을 입에서 떼고 난 후 광도가 첫 마디를 뱉어냈다. 검마가 동의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곽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광도의 말에 답하고 있었다.

“비록, 원수를 잡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애꿎은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 해도 이래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물론 그리 안했으면 우리가 당했겠지...”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지요. 썩어도 너무 썩어버려서 어떤 놈을 징치해야 할 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저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면 다시 운남 에서처럼 그리 살아야지요.”

하륜이었다. 검마의 말에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표출하는 것이다. 그들이 술기운을 빌어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연휘가 들어섰다. 팽완을 비롯한 장로들도 함께 들어왔다.

“이런 자리에 나를 빼다니 서운하네. 아니면 내게도 술병을 보내던지 했어야지. 게다가 장로들도 계시지 않은가.”

연휘가 부러 술 얘기를 꺼냈다. 민망해진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연휘가 손짓으로 만류했다. 그러고는 털퍼덕 땅에 앉더니 전서를 꺼내 들었다. 남충에 있던 소혜로부터 온 것이다.

“검왕이 일을 냈다.”

“무슨...”

“제갈천이 죽었다.”

“헉!”

“그럴수가!”

“검왕이 그랬다는 말씀이십니까?”

다들 경악을 토해냈다. 술기운에 몽롱해 있던 그들이 일시에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를 치러오던 제갈천을 화음에서 죽이고 팔천의 동원군과 함께 맹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소식이다.”

애써 정신을 수습한 곽우가 좀 더 설명을 해달라는 눈빛으로 연휘를 보았다. 아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는 길어질 것 같아 보이자 연휘가 아예 전서를 넘겼다.

광도가 몸을 부르르 떨어 댔다. 이윽고 검마가 전서를 넘겨받았다. 그 역시 광도와 다를 바 없었다. 곽우에 이어 하륜, 유택까지 모두가 전서를 읽고 난 후 그들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잘 되면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것처럼 생각된 것이다.

광도가 술병을 연휘에게 넘겼다. 검마도 자신의 앞에 있던 술병을 팽완에게 건네주었다. 다들 술을 마시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자신들이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궁리 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검왕이 제대로만 해 준다면 우리가 나서서 할 일은 없을 것이오. 기대해 볼 만한 일이지 않소? 허나 검왕 역시 제갈천과 마찬가지로 맹을 이끌어 간다면 지금보다 더한 희생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소. 결국, 검왕의 행보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뜻이오.

그리고 이참에 정주로 갈까도 생각해 보았소. 전 인원이 움직이기에는 불편할 것이니 모두들 홍구와 운남으로 돌아가고 몇몇만이 움직이는 편이 좋을 듯싶소. 자세한 것은 남충으로 가서 군사와 의논을 한 후 결정할 것이오. 그리들 알고 계시오.”

술자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문도들의 죽음으로 인해 침울했던 그들이었지만, 검왕에 대한 소식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다소 들뜬 듯싶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모용강이 정주에 발을 들여놓았다. 초입에서부터 그를 환영하는 인파가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어린아이부터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까지 얼굴에 기대감을 물씬 풍기며 길가로 나온 것이다.

이미 진즉부터 빼곡하게 들어찬 길의 양편이었다. 더는 들어설 자리가 없자 인근 언덕이며 야산까지 사람들이 올라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나오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환영인파는 초입에서부터 무맹의 정문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새로운 제왕 검왕의 등장인 것이다. 잠시 후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었다. 이들은 새롭게 쓰게 될 무림사의 한 장에 기록되어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제왕이 정주에 발을 디딜 때 수많은 인파가 그를 환영했다.> 이런 문구가 틀림없을 터였다. 그 수많은 인파속의 한 명이기를 원하는 이들인 것이다. 앞으로의 무맹이 어찌 흘러갈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부패한 제갈천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내 보인 검왕이었다. 이전과는 뭔가 달라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했다.

“검왕이다!”

“정말, 검왕이야.”

“드디어 오셨다! 새로운 맹주님이 등장하셨다!”

“검왕 만세!”

“만세! 검왕 만세!”

정주가 떠나갈 듯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갖은 패악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동안 속으로만 품어 왔던 희망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감히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은 듯이 지내야만 했던 이십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고 싹이 돋은 것이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가며 검왕을 맞이했다. 위풍당당한 모용강의 모습에 그들은 다른 말은 꺼낼 생각도 못했다. 그저 목이 터져라 외칠 뿐이었다.

“검왕 만세!”

우르르 몰려가는 군중들이 서로 얽히고 있었다. 어느새 모용강은 군중들에게 에워 쌓이고 말았다. 손은 고사하고 그가 탄 말이라도 만져 보려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얽혔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모용강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뿌리칠 수도 없는 것이다. 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난감해진 그가 결국, 몸을 띄웠다. 가볍게 말 등에 오른 모용강이다. 그의 눈에 끝없이 펼쳐진 사람들이 보였다. 허나 일단은 무맹에 들어가야 했다. 정통성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그였지만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주까지 오는 동안 접한 소식에 의하면 각료들은 아직도 뻔뻔하게 무맹에 남아있었다. 가족들을 모두 피신시키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중에 십대고수들 넷이 있다고 들었다. 대적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랐다. 허나 어쨌든 시대 최강이라는 고수들 넷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각료들과 십대고수를 만나야 했다. 필요하다면 모두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환영하는 사람들이 걸렸다. 도저히 한 발짝을 옮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말 등을 살짝 찬 모용강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잠시 멈췄다 싶던 그의 모습이 어느새 쏜살같이 사라졌다. 무맹이 있는 쪽이었다.

“와아! 검왕 만세!”

“역시 검왕의 신위다. 검왕 만세!”

사람들의 환호가 연신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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