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달을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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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夜月香
작품등록일 :
2007.07.21 10:46
최근연재일 :
2007.07.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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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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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月)을 베다 4 회

DUMMY

▣ 제 4 회 후츄성(府中城)의 인연(因緣) 1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시마쓰의 등 뒤에서 듣던 명(明)이 오히려 다급해 졌다. 물론, 그들이 명분을 내걸고 떠드는 말들이야 오로지 누가 먼저 힘을 발휘하는가 하는 저희들끼리의 주도권 싸움일 뿐이다. 그러나 명(明)에게는 일본 본토의 상륙이 지상과제였다. 그런데 도공들을 이곳에 정착 시킨다면 자신도 도공들과 함께 이곳에 남아야 하는 형편이 아닌가!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좌중을 살피던 명(明)의 시선이 대마도주 요시도시와 마주쳤다. 순간, 요시도시의 눈빛이 변하더니 장내의 모두를 바라보고 빙긋 웃었다. 마에다의 말 한마디에 무겁게 변한 이 연회의 자리에 분위기를 바꿀 여흥거리가 생겼다는 득의의 미소였다.


“여러분, 지금 이 장소에 특이한 인물이 자리해 있습니다. 그의 무예가 탐이나 시마쓰장군이 자신의 곁에 둔 조선의 청년이외다. 철군에 억눌린 기분도 전환시킬 겸 우리 모두 그의 특출한 무예를 견학해 봄이 어떨지?”


서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기 싸움으로 얼룩진 연회의 자리에 흥도 되살리고, 시마쓰가 굳이 조선의 청년을 측근으로 두어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이 난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던진 한마디였다.


“오호, 생각지 못한 손님이로고. 조선의 청년이라? 얼마나 뛰어난 기량을 지진 청년이기에 시마쓰님이 욕심을 내어 거두셨는가? 내 휘하에 다카다(高田)라는 월도(月刀)의 명인이 있다. 그와 한번 겨루어 보겠는가?”


젊은 시절부터 무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마에다가 아닌가? 그 옛날 이누찌요로 불리던 그 시절, 서루 칼부림을 벌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동료 쥬아미(十阿彌)를 베고, 어린각시 마츠를 등에 업은 채 낭인의 신세가 되기도 한 마에다였다. 무슨 이유로 이 청년을 시마쓰가 굳이 경호무사로 삼았는가? 마에다의 눈동자 속에는 명(明)의 정체를 살피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명(明)이 고개를 돌려 시마쓰(島津)의 기색을 살폈다. 아무리 상석에 앉아 모두를 내려다보는 마에다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상관이 허락하지 않으면 한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무언의 몸가짐이었다.

그 순간 시마쓰의 표정도 굳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임해야 할 이 자리! 명(明)을 그들 앞에 내세워 이 뛰어난 조선의 인물을 측근으로 삼은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하고도 싶었다. 그렇기는 하나 그러나 월도의 명인이라는 무사 다카다의 재주를 너무나 잘 아는 시마쓰로서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마쓰의 마음을 짐작한 명(明)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 미소의 뜻을 짐작한 시마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으음, 마에다님의 부탁이다. 겨루어 보겠느냐?”


대답은 없었다.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뜻을 전한 명(明)이 뚜벅뚜벅 걸어 나가 연회장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왼손의 대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우뚝 섰다. 그런 명(明)에게 마에다가 한 번 더 다짐을 했다.


“그의 월도(月刀)에는 눈이 없다. 허니 지금 그만두어도 좋다.”


목숨을 건 대결이라는 말이다. 명(明)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호오, 대단한 용기. 여봐라, 다카다를 들라하라!”


그렇게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손에 쥔 긴 창끝의 반월도(半月刀)를 비스듬히 아래로 향하고 상대를 고요히 바라보는 다카다란 무사의 자세는 조그만 허점도 발견할 수가 없다. 과연 마에다가 자랑할 만한 창술의 달인이었다.


“다카다라 하오. 진검승부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소. 덤비시오!”


스르르 오른발을 앞으로 한발 내딛으며 그림자처럼 다가들었다. 다카다의 앞에 대치해 있는 명(明)은 왼손에 들었던 대나무 지팡이를 오른손에 옮겨 잡을 뿐 미동도 없다.

일각, 이각,

그렇게 서로가 마주보며 움직임 없이 대치를 한 시각이 어느새 한 시진, 비무를 위해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보다 오히려 구경꾼들이 긴장을 해 숨소리조차 멈추었다. 그 정적 속에서, 다카다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똑똑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귀를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명(明)의 오른손에 들려진 지팡이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동시에,


“하핫, 간닷!”


고요하던 정적을 깨고 다카다의 월도(月刀)가 바람을 갈랐다. 대나무 지팡이가 흔들리는 그 짧은 찰나, 빈틈을 발견한 다카다가 명(明)의 왼쪽 무릎 아래로 부터 오른쪽 어깨를 향하여 비스듬히 그어 올린 것이다.


“엇, 아앗!”


명(明)이 아니라, 연회장에서 숨죽이고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긴 정적 끝에 단 일합(一合)의 마주침에서 명(明)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지며 선혈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목도한 것이다.


- 탁, 휘잉!

- 쿵, 털썩!


헌데 뜻밖에도,

다카다의 손에서 떠난 반월도가 허공을 날아 연회장 입구의 기둥에 깊이 박혔다.


“어어어... 저, 저 놈이!”


피를 튀기며 쓰러지듯 보였던 명(明)의 모습은 환영(幻影)이었다. 오히려 바닥에 넘어져 있는 인물은 명(明)이 아닌 다카다였다.


“으으, 강하다. 틈을 보인 순간이 유인의 함정이었구나. 내가졌소. 어서 목을 치시오!”


다카다 역시 시절을 풍미한 무사, 두말 않고 명(明)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그대의 월도(月刀)또한 가공할 위력이었소이다.”


씨익 웃으며 손을 내민 명(明)이 처분을 기다리는 다카다를 일으켜 세웠다.


다가드는 월도를 몸을 비틀어 흘려보낸 후, 대나무지팡이속의 검은 뽑지도 않은 채 그 순간 중심이 무너져 빈틈을 보인 다카다의 단전을 지팡이로 번개같이 찌르고 한발 뒤로 물러선 명(明)이다. 동시에 호흡조차도 흐트러지지 않은 표정으로 시마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연회장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 * * * * * * * * * * * * * * * *


비무를 끝낸 후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연회장을 빠져나온 명(明)은 후원의 정원을 거닐며 잘 가꾸어진 연못의 물속에 노니는 붉은 잉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마음대로들 헤엄쳐 돌아다니구나. 연(蓮)누님은 이런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 어느 구석에 붙들려 있는 건 아닌지!”


조선을 떠날 때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혜암스님의 눈빛, 어느 날 복천암의 선방(禪房)에서 연(蓮)과 자신을 앞에 두고 조용히 이르던 혜암스님의 말을 되 내었다.


‘연(蓮)아, 내가 미처 달려가지 못해 너의 불행을 막지 못했다. 허나 다행히 그 자리에 계시던 어른은 놈들의 눈을 피해 피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른도 다가올 운명을 예측해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 이 전란이 끝나면 조정에 바른 말을 고하는 모든 중신들은 삭탈관직을 당하여 힘을 쓰지 못할 운명이다. 해서, 그 당시 어른께서 내게 부탁한 지극한 당부의 말이 있었다. 너의 몸에는 나라의 명운이 걸린 물건이 숨겨져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연(蓮)아, 너는 그 말을 명심하여 스스로 자신을 아끼고 그 중요한 물건을 목숨이 다하도록 간수해야 할 것이니라.’


그 연(蓮)이 왜군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명(明)이 일본 땅을 밟으려 할 그때,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계시던 혜암스님의 눈빛에서 스님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明)은 마음으로 들었다.


‘어서가거라. 가서 꼭 연(蓮)을 도와 조선으로 돌아오너라!’


이상한 말이다. 연(蓮) 구해오라는 말이 아니고 그녀를 도와 도아오라고 말한다. 정녕 이상한 당부였다. 허나 당시 명(明)의 마음은 그 당부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다급했다. 아니 그보다, 혜암스님의 눈빛은 더욱 절실했다.


어린 명(明)이 복천암에서 무예를 단련하며 지낸 그 하루하루, 명(明)의 슬픈 가슴을 포근히 감싸주던 연(蓮)은 명(明)에게 어머니며 누나였다. 그리고 점점 자라 이제 명(明)에게는 떨어질 수없는 은애(恩愛)의 마음을 간직하게 된 연(蓮)이었다. 때문에 혜암스님의 그 절실한 눈빛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연(蓮)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명(明)의 운명이었다.


‘그래, 이 대마도에서 나고야를 향하는 귀항선을 기필코 타야만 한다. 혜암스님의 염원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연(蓮)누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허나 도공들이 여기에 남는다면?’


이런저런 궁리에 젖어있던 명(明)의 귀에 갑자기 여인의 날카로운 호통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웬 놈들이냐?”


언뜻 정신을 차린 명(明)의 눈앞에 벌어진 광경, 연못 건너 저편 정자위에서 해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치고, 그 여인의 앞에는 검은 복면을 한 무사들, 아니 무사라기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을 검은 옷을 두르고 얼굴을 가린 세 명의 닌자(忍者)들이 두 자 길이의 소도(小刀)와 낫처럼 생긴 무기를 손에 쥐고 여인의 앞을 그림자처럼 막아서고 있었다.


“이놈들,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나는 도주 요시도시의 안사람이다. 어서 썩 물러서지 못할까!”


그들이 점점 다가오자 여인은 손을 가슴 앞에 들어 손칼(手刀)의 자세로 방어의 태세를 취하며 호통을 쳤다.


“예, 알고 있습니다. 마님을 모시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뭐라, 나를 모신다? 혹시 네놈들은?”


뭔가 느끼는 게 있었다. 해서 묻는 말에 검은 그림자들은 두말 않고 답했다.


“예, 마님!”

“역시 그렇구나. 이가(伊賀)냐 고가(甲賀)냐?”

“고가입니다. 마님을 극비리 우도성으로 모시라 주군께서 명(命)하셨습니다.”

“고가라, 그렇다면 아버님이로구나. 왜, 무엇 때문이냐?”

“저희들도 이유를 모릅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지요. 그저 은밀히 모시라는 주군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이들이 마님이라 부르는 여인의 아버지, 즉 대마도주 요시도시의 장인은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다. 그리고 이들은 고니시가 부리는 고가 마을의 닌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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