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달을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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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夜月香
작품등록일 :
2007.07.21 10:46
최근연재일 :
2007.07.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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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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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月)을 베다 19 회

DUMMY

▣ 제 19 회 영걸과 혜녀(慧女)


에에야스와 에도성의 많은 중진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본전의 뜰에 명(明)과 야스다(安田)가 마주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명의 정안을 향해 겨누어진 야스다의 대도(大刀)에는 예리한 기운이 흐르고 그의 눈빛은 이글거렸다. 한편, 한 치 흔들림 없이 그와 마주한 명의 눈동자는 호수처럼 맑았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대면하게 된 부모님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마음의 동요가 없으랴만 잠시 방심하여 사다에의 연심(戀心)에 낭패를 본 명(明)인지라 다시 한 번 스승의 당부를 명심하는 순간이었다.


“저놈은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목숨으로 대신해야만 할 불공대천의 원수, 어찌 해야 하는가!”


목숨을 가를 절체절명의 대결임이 분명하다. 허나 명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를 궁리하는 게 아니라 이미 끝난 승부라 여기고 상대를 살려주느냐 목숨을 끊어 철천지의 원한(怨恨)을 갚아야 하는가 그 결말을 고뇌하고 있었다.


“크흐흐... 애송이, 내 칼을 받아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터! 자, 간다. 원극의 세(勢)!”


어전시합에 장원을 해 기세가 등등해진 야스다. 한껏 자신감이 넘쳐, 손에 든 그의 대도(大刀)가 명(明)의 눈앞에 일직선으로 뻗어와 두자 앞에서 멈추었다. 그 순간 대도의 끝에서 푸른빛이 번져 나더니 점점 청광(靑光)의 범위가 넓어지며 이윽고 야스다는 칼 빛의 테두리에 숨어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동시에 마당에 가득한 검광이 명을 목덜미를 노리고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어허!”


긴장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네노리의 얼굴에 영려의 표정이 스쳐 지났다. 아니 무네노리뿐 아니라 고로의 표정을 더욱 불안해 보였다.


‘원극의 세(勢)라 했다. 지금껏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군베에(軍兵衛)의 절정기예! 언제 야스다가 그 원극의 검(劍)를 익혔단 말인가?’


무네노리뿐 아니라 고로까지 마음속에 걱정이 가득한 그 순간에도 명의 표정은 한가롭기가 그지없었다.


“원극의 세라..., 좋은 자세로고!”


얼굴에 엷은 미소까지 머금은 명(明)이 천천히 대나무지팡이속의 칼을 빼어들고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쥐어 검 끝으로 하늘의 중앙을 찌르듯 천천히 밀어 올렸다.


“허면 난 월영검(月影劍), 자..., 팔방허무(八方虛無)의 형(形)이다.”


순간 명(明)의 귀에는 스승 혜암스님의 말씀이 벼락같니 울렸다.


‘명아, 월령검이 아니더냐. 심검(心劍)이다. 눈을 감고 달의 그림자를 베어 보아라!’


스르르 눈을 감았다.

푸른 검광(劍光)의 뒤에 가려져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야스다의 칼에서 뻗어난 검기는 이제 명의 목덜미뿐만 아니라 한 치의 틈도 없이 을 전신을 에워싸고 날아들었다. 허나 명은 미동도 않는다. 다만 하늘을 향해 치켜든 검 끝을 정점으로 하여 조금씩 아래로 이동해 큼직한 원을 그렸다.

원월(圓月)의 자세다. 하늘을 향해있던 명(明)의 검 끝이 서서히 한 바퀴 돌아 지상을 향하는 순간, 그 고요함 참지 못한 야스다의 입에서 날카로운 기합이 터졌다. 푸른 검광속에 몸을 숨기고 기회를 보던 야스다가 명의 자세에 언뜻 드러난 빈틈을 발견하고 바람을 가른 것이다.


- 휘익, 슉! 슈우욱!


투명하리만치 예리한 칼날이 명(明)의 목을 섬뜩하게 베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동시에,


“악, 아아악!”


비명이 터졌다. 두려움을 참지 못한 처절한 비명이었다. 헌데 그 비명은 명의 입에서가 아니라, 장중의 한쪽에 서서 두 사람의 대결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사다에의 입에서 터진 것이었다.


명의 몸에서 머리가 잘려 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광경이 그녀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아연실색 놀란 마음에 저절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다에의 귀에 낭랑한 웃음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하하하하, 이놈 야스다. 그대의 죄는 죽어 마땅하지만 내, 개과천선을 바라는 마음으로 목숨만은 살려두마. 나머지 인생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불쌍한 백성을 위하는 일에 전념하라.”


웃음소리가 자지러드는 것과 동시에 명(明)의 검이 번쩍 섬광을 뿜으며 번개처럼 야스다의 허리를 스쳤다.


“악, 아아악!”


땅바닥을 뒹구는 야스다의 곁에 조그만 살덩이가 툭 떨어지며 그의 고간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 올랐다. 두 손으로 다리사이를 부여잡고 때굴때굴 구르는 야스다를 내려다보며 명(明)이 한마디를 더 던졌다.


“이제 네놈을 사내구실을 하지 못할 터! 네놈의 그 음욕 때문에 목을 매고 죽어간 조선의 모든 여인들에게 속죄를 하며 남은 세월을 보내도록 하라!”


* * * * * * * * * * * * * * * * * *


이에야스의 내전에 불려온 명(明)과 윤충 그리고 설아의 눈빛이 놀라움에 흔들렸다. 순간 무네노리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상하다. 야스다와의 목숨을 건 대결에서도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던 명공자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 저 두 남녀도 역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허나 저 공자와 두 사람의 눈빛이 다르다. 그렇다면 각각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가 다르다는 말인데?’


과연 무네노리였다. 그 짧은 순간에 명과 윤충 그리고 설아의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그런 무네노리는 아예 도외시한 듯 명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있다. 이에야스의 곁을 지키는 여인 때문이었다.


이에야스의 옆에 다소곳 앉아 있는 조선옷 차림의 여인, 분명 연(蓮)이었다. 오매불망 그 흔적을 찾아 헤매던 연(蓮)이 뜻밖에도 이에야스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의 조그만 탁자위에 놓여 진 옥함(玉函), 다름 아닌 헌원비록(獻元秘錄)을 담아 둔 옥함이 아닌가? 때문에 윤충과 설아 그리고 명의 마음이 흔들린 원인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묘한 차이까지 감지한 무네노리은 과연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겨우 평정심을 되찾아 태연을 가장하는 사람은 그들 뿐 아니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연(蓮)역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모른 척 외면을 했다.


“대단한 청년이로다. 허나 그대에게는 야스다를 용서 못할 깊은 원한이 있는 듯 했다. 진검승부라고 내게 청하던 그대가 어찌하여 야스다의 목숨을 살렸는가?”


명(明)이 인정을 베푼 이유가 궁금해진 이에야스의 은근한 물음이었다.


“예, 장군. 한 하늘아래에서는 도저히 더불어 살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원죄는, 장군처럼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일본국의 다이묘(大名) 대영주들이 작당하여 조선을 침략한 그 일에 있겠지요. 하찮은 저놈의 목숨을 거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헛,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 따위 망발을!”


명(明)의 대답에 당황한 무네노리가 노여움을 나타냈다. 허나 이에야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괜찮다. 그냥 두어라. 조선의 유민이었더냐? 많은 원한이 사무친 말투로다. 허나 우리가 패한 전쟁이 아니더냐!”

“섬나라 왜국(倭國)이 어찌 동방의 인국(仁國) 조선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결과이지요.”


그 말에는 이에야스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일본을 얕잡아보는 말이라고 여긴 탓이었다. 하지만 이에야스도 대인중의 대인, 얼굴에 금방 미소를 떠올렸다.


“어허, 내 너를 중히 여기려 했건만! 너의 그 말은 원수를 눈앞에서 만난 분노 때문이라 여겨 더는 문제 삼지 않으마. 더는 나서지 말고 입을 다물라.”

“후후후, 장군께서도 조선 출병의 예비대로 남아 계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히데요시님이 살아계셨고 조선의 전쟁이 길어졌다면 장군역시 바다를 건넜을 것입니다. 어찌 전쟁을 일으킨 참상을 회피하려 하십니까?”

“당돌한 놈, 그만 입을 다물라 했거늘!”

“예, 다물지요. 허나 장군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히데요시님은 점점 커가는 다이묘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그들의 입막음으로 조선을 택한 것으로 압니다. 만약 장군께서 이 나라를 통일해 정국이 안정 된다면 또다시 전철을 되풀이 할 요량이십니까?”

“이놈이, 그래도! 크하하하..., 그 기개를 내가 높이 사마! 됐다. 내 너의 재주를 중히 여겨 더 이상 추궁은 않으마. 그래, 장원을 한 야스다를 이기면 한 가지 청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말해 보아라.”

“좋습니다, 정군! 그러시다면 장군의 곁에 앉아있는 저 조선의 여인을 저에게 내려 주십시오.”

“뭐, 뭐라 했느냐?”


모두가 명(明)의 엉뚱한 제안이라 여겼다. 그러니 이에야스뿐 아니라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의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에야스의 눈 속에 기광이 번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알았노라. 내 깊이 생각해 보마. 무네노리는 이들에게 숙소를 마련해 주도록 하라.”


이에야스의 명에 따라,

긴 마루를 돌아 성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숙소에 안내를 받은 명(明)이 윤충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윤공, 긴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내전에서 그토록 놀란 이유를 말씀해 보시오.”

“아셨소이까? 그러나...”

“이보시오, 윤공. 그 자리에 함께 한 무네노리까지 흔들림을 감지를 했소이다. 지금쯤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겠지요.”


두 사람의 대화에 설아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충(忠)오라버니, 알려드리세요. 아니 제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이제는 서로 협력을 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설아, 이 자리에는 외인도 계신다!”


숙소를 안내받아 자리한 뒤에도 무네노리를 따라 돌아가지 않고 명의 곁을 지키는 사다에를 염려함이었다. 윤충이 그런 사다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자 사다에는 명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염려마세요. 지금 이 순간의 사다에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일 뿐입니다.”


* * * * * * * * * * * * * * * * * * *


헌원비록(獻元秘錄)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는 설아의 차종치종설명을 듣던 명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비록이 담긴 옥함을 내전에서 발견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조선의 안위가 달려있다 합니까?”

“그 책자에는 각고의 노력으로 터득한 새로운 무기의 제조법과 조선 해안 연, 근해 깊고 얕은 물길을 철저히 탐사한 해도(海圖)가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흠. 해도는 새삼스러울 게 없고, 새로운 무기의 제조법이라?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예. 그 헌원비록 속에는, 화승총(火繩銃)을 개선해 화승(火繩;화약심지)이 아닌 격발(擊發;탄환 발사를 위해 방아쇠를 당겨 화약에 불붙임)로 총을 발사 하는 장치를 개발한 설계도가 들어 있습니다. 소총과 대포까지 모두 적용되는 엄청난 발명이라 하였지요.”


말대로라면 진정 대단한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화승에 불을 붙여, 심지가 타기를 기다리는 동안 목표가 움직이면 총을 발사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무기가 화승총이니 소리만 클 뿐 오히려 활보다도 불편할 수가 있다. 그런데 격발로 발사가 되는 총이라면 조준하여 발사하는 대로 상대를 쓰러드릴 수가 있다. 과연 경천동지할 발명품이었다. 또한 조선 해안의 해도라면 해전시 적선을 유인하거나 공격할 때 철저히 이용되는 지도가 아닌가? 과연 목숨을 걸고라도 찾을 수밖에 없는 헌원비록이었다.


“그렇다면 큰일이구려. 그 소중한 책자가 이들의 손에든지 오래이니 이미 책자의 내용은 모두 저들에게 알려졌겠습니다.”


이미 이들이 내용을 파악했다면 신무기의 제작을 서두르고 있을 것이 아닌가? 진정 큰일이었다.


“명공자님,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옥함은 특이한 열쇠가 없으면 열지를 못합니다. 혹여 억지로라도 열어보려 한다면, 그 옥함속의 기관 장치에 의해 책자는 순식간에 재가 되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 옥함을 열지를 못해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요? 불행 중 다행이입니다. 그러나 필히 되찾아야만 할 책자임은 분명합니다. 허나 경거망동 마시고 오늘은 푹 쉬시도록 하십시오. 내 잠시 다녀올 데가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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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붉은 달(月)을 베다 6 회 07.07.20 1,39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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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붉은 달(月)을 베다 4 회 07.07.20 1,461 5 11쪽
3 붉은 달(月)을 베다 3 회 07.07.20 1,741 6 13쪽
2 붉은 달(月)을 베다 2 회 07.07.20 2,046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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