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님의 놀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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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21.12.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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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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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화.

DUMMY

이곳 세상에서는 영지에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강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 마물이 넘어올지 모르는 세상.


마물들은 대개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약자보다는 소수라도 압도적인 강자가 필요했다. 지구에서도 유명한 장수들 중에는 일당백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인간인 이상 도검에 상처를 입기에 수백 수천 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에 반해 상급의 마물들 중 대부분은 일반적인 도검으로는 상처를 입히기 힘들기에 마나를 활용하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반인은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마물들은 대개 아주 짧은 시간에도 베렌령과 같은 어촌 마을 하나쯤은 충분히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보통 이들에게는 그런 마물들을 잡을 강자가 최대한 가까이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는가?


특히나 여기 베렌령의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옆 영지의 도시도 말을 타고 달릴 때 꼬박 사나흘은 가야만 하는 오지. 그런데 제대로 된 기사라고는 오로지 헤카인 혼자뿐. 그래서 오랫동안 베렌령의 영지민들은 항상 불안감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헤카인 경이 막지 못할 괴물이 있다면?

헤카인 경이 부재중에 괴물이 넘어온다면?

헤카인 경의 사후에 두 제자들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면?


영지민들이 신임 영주 제이크의 취임과 그를 따라온 젊고 유능한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 레이시아를 환영하고, 또 최대한 두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했던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레, 레이시아 경이 상급이시라고요?!”


그런데 익스퍼트 중급인 줄 알았던 레이시아가 알고 보니 헤카인과 같은 경지인 상급의 기사란다.


이 믿지 못할 기쁜 소식에 상단주 마리나가 기겁을 했다.


익스퍼트 상급이 무슨 옆집 애 이름인가? 20살에 익스퍼트 중급이 된 것만으로도 사실상 고아인 몰락귀족 레이시아가 귀족가, 그것도 다음 대 승계서열 1위인 백작가문의 후계자의 정혼 상대로 매파를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익스퍼트 상급은? 단순히 급으로만 따지자면 당장에 왕가에서 제의가 들어와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여기 대륙인에게는 그게 당연한 상식이었다.


영주든 왕국이든 결국 실력자를 확보해야 하는 건 똑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실력의 상당부분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러를 다루는 재능이나 마법의 재능 또한 일종의 유전으로 이어지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계와 부계 중 어디에서 이어져 발현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젊고 예쁘며 실력까지 갖춘 여기사 레이시아의 가치는 상계에서 오래 잔뼈가 굵은 마리나 역시 쉽게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였다.


“네. 얼마 전에 그분과 영주님 덕분에 겨우 발을 딛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레이시아의 진중한 답에 평소에는 여유 있던 크레신 촌장까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도리어 이들에게는 영주님의 신비로운 능력보다는 헤카인 경과 같은 경지의 기사라는 점이 좀 더 피부에 절실하게 와 닿았다. 오히려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신비와 기적보다는 익숙한 기사, 그것도 상급 익스퍼트 기사란 점이 더욱 현실감 있게 놀랄 수 있는 포인트였다.


참고로 아델린 왕국에서 수도를 제외하고 전체 47개의 영지를 다 뒤져봐도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가 둘이나 있는 곳은 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허어. 영지의 축복이로다.”


촌장 크레신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뇨. 내 축복인데요.”


그리고 제이크가 맞받아치다가 레이시아에게 깨갱하고 혼이 났다.



* * *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레이시아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악... 하악.”


오러는 성장과 강화의 힘.

특히나 기본적으로 기사들이 오러를 사용하는 방식은 주로 육체를 강화해주는 방향이므로, 익스퍼트 상급에 다다른 기사는 웬만하면 지치는 법이 없다.


“하악... 하악.”


그런데 지금 익스퍼트 상급의 여기사 레이시아는 거칠게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후배님, 그만할까요?”


상대는 이제 막 발을 내딛은 레이시아에 비해 20년도 전에 상급에 먼저 올라선 헤카인이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조금만 더 부탁드립니다!”

“허허.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영주님께 미움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헤카인 경이 흘끔 옆을 보며 눈짓을 준다. 상대인 레이시아를 놀리려는 것도 아니고, 레이시아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려는 배려. 실전이든 대련이든 상대에게 눈을 떼서는 안 되지만, 레이시아는 이미 한참 전부터 헤카인이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의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누나! 파이팅! 그래도 힘들면 무리하지 마! 그러다 다치면 안 되니까!”


레이시아가 눈을 돌리자 제이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응원을 했다.


“...앗.”


제이크가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지금은 부끄러운 레이시아가 황급히 얼굴을 바로 하였다. 그렇지만 빨개지는 얼굴까지 바로 잡을 수는 없었다.


“허허허. 혹여 후배님께서 다쳤다간 경비대장직에서 쫓겨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설, 설마요.”


사실 레이시아도 요즘의 제이크라면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답변에 확신이 없었다.


“후배님에게는 참 좋은 영주님입니다.”


실직 위기에 처한 헤카인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정말로 좋은 영주님이에요.”


내 동생이라고요. 물론 이 말은 속으로 삼킨 레이시아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마치 엄마가 자식의 칭찬에 자랑스러워하듯 레이시아는 제이크의 칭찬에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었다.


“허허허. 그럼 좋은 영주님께 눈도장이나 한 번 제대로 찍어볼까요?”


헤카인의 말은 이제 다시 들어오라는 것.


“알겠습니다. 선배님.”


레이시아는 헤카인이 든 대검에 한참 못 미치는 짧은 롱소드를 들고 힘차게 몸을 날렸다. 아무리 신체적으로는 꺾인 나이라고 하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대상으로 노려볼 수 있는 건 의외성과 속도 뿐.


“하앗!”


레이시아의 검이 위, 아래, 위를 번갈아가며 찔러 대는 동안 질끈 묶은 머리도 바람에 흩날렸다.


챙강!


물론 당연히 헤카인에게는 턱도 없는 어설픈 공격이었다.


“...아.”


야심차게 찌른 세 번의 검은 모두 빗나가고 레이시아의 턱 밑에는 어느새 헤카인의 대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건한 젊음이 오래된 경험을 넘어서기에는 아직은 너무나도 정직하고 순수했다. 익스퍼트에 오르고 두 달 남짓의 수련은 20여 년의 세월의 힘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레이시아는 마나 영약으로 상급에 올라선 것이지 천재적인 재능으로 상급에 올라선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허허. 후배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앞으로 많은 시간이 있지 않습니다.”

“...네! 후우. 감사합니다!”

“허허. 아닙니다. 이 몸도 오랜만에 흥이 나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떨까요?”

“저, 저야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럼 영주님께 허락은 후배님이 받으시는 걸로 합시다. 어떻습니까?”


헤카인은 지긋이 웃으며 흘끔 눈짓을 보냈다.


“누나, 괜찮아? 헤카인 경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누나 괜찮지? 아픈데 있으면 말해야 해. 미련하게 참고 그러면 안 돼. 괜찮아?”


어느새 다가온 제이크가 호들갑을 떨어대었다.


“어... 어. 괜, 괜찮아.”


어딜 가도 남부끄럽지 않은 제이크였지만, 이럴 때는 아직 조금 제이크가 부끄러운 레이시아였다.



* * *



내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마나석이 필요하다는 말에 촌장과 경비대장이 자발적으로 마나석을 걷어다줬다. 공짜는 아니라 상행에 앞서 선대금결제 및 투자에다가 마을 발전에 대한 감사의 개념이지만, 어쨌든 하급 마나석이 생겼다.


“아이고. 고마워라. 제자님 챙겨주신다고 노력하시네.”

“제, 제이야.”

“흐흐. 혹시나 헤카인 경이 못 살게 굴면 꼭 말해.”

“그, 그러실 분이 아니야.”


물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도 또 없긴 하지. 흐흐.’


그런 호구 같이 헌신적인 기사가 있기에 레이시아는 공짜로 고액 과외에 해당하는 베테랑 익스 상급 기사의 지도 대련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영지의 치안이라는 막중하고도 복잡한 업무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다.


“뭐 고맙기는 하지. 그래도 누나 다치게 하면 못된 사람이지 뭐.”

“제이야!”

“아 몰랑. 일단 충전부터 해야겠네.”


중급 이상의 마나석은 다음 베렌 상단이 상행에서 하급 마나석으로 바꿔올 예정이었고, 급한대로 일단 받은 하급 마나석을 모두 전환하니 8,207 다이아가 되었다. 하급 마나석의 사용은 영지민들에게 일임 받았으니, 레이시아와 진지한 논의 끝에 이번에는 일단 마나 올인으로 가기로 했다.


“마나만 있으면 목재를 계속 생산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마나를 1만까지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마나만 늘릴게.”


처음에 세운 영지 발전 계획의 가장 첫 시작은 1, 2성에 즐비한 ‘길 카드’들로 도로를 정비하는 것이었지만, 굳이 ‘카드’만큼의 효율은 아니더라도 [대지의 정령]으로도 충분히 정비의 효과를 낼 수는 있다.


‘길로 돈을 벌 것이 아니면 굳이 카드에 목멜 이유는 없지.’


생각해보면 마나만 충분하다면 [대지의 정령]으로 경운기나 트랙터를 대신해서 밭을 갈 수도 있다. 농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사에서 심경深耕이란 개념으로 통해 밭을 깊게 갈아엎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뉴스에서 공사장의 돌 같은 것을 밭에 부어서 문제가 된 것도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돌멩이와 단단하게 굳은 흙 등을 부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역시 정령이 생활 1티어 맞네.’


그리고 나는 [대지의 정령]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무의 정령]만으로는 순식간에 씨앗에서 나무를 키워내지는 못하지만, 지구의 식물영양제나 비료 이상 정도로는 생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정원의 정령]으로는 꽃과 풀과 작물 등을 잘 자라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모내기 도입하면 잡초 제거도 기가 막힐 일이지.’


그뿐만 아니라 [물의 정령]과 [불의 정령]에 [대지의 정령]과 [정원의 정령]이 합쳐지면,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나는 약초들도 재배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빛의 정령]과 [어둠의 정령]을 잘 활용하면 더더욱.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나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이나 동굴 같은 곳에서 자라는 식물도 모두 가능하다.


‘역시 장기적으로 보면 정령이랑 마나에 투자하는 것이 맞아.’


1시간 마다 최대 마나량의 1%가 회복되므로, 마나가 많을수록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었다.

8,200의 다이아를 마나로 전환하면 820.

최대 마나량 1,820의 경우에는 하루에 436의 마나가 회복된다.


“오.”

“괜찮아?”


반대로 레이시아가 나를 걱정해주었다.


“그럼 괜찮지. 흐흐.”

“응?”

“그냥 좋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당연히 시작은 상품 확보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 * *



나스 대륙은 대체적으로 지구와 식생이 비슷한 것들도 많지만, 지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엘프와 드워프와 마법과 정령과 몬스터 등등. 일단 이종족과 몬스터와 마수들을 제외하고, 동식물에만 한정해도 족히 수십 수백 가지는 다른 것들이 존재한다.


빌딩만큼 거대한 나무인 세계수.

날개가 달린 사자.

꼬리에 불꽃이 달린 원숭이.

단단한 바위로 덮인 거대한 파충류.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꽃과 달빛의 정기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태양처럼 뜨거운 성질의 풀.


얼마 전 내가 카드로 설치한 엘피스 나무 역시도 지구에서와는 다른 여기 대륙만의 특별한 나무였고, 오늘 심을 강철목이라는 별명이 있는 하레드 나무 역시 지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나무였다. 질 좋은 강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싸구려 고철보다는 단단하면서도 매우 가볍고 오러나 마나를 잘 받아들이는 하레드 나무는 마법사의 스태프나 기사의 창, 활 또는 화살, 방패와 마구馬具 등으로 오랫동안 각광받는 소재라고 했다.


“흠.”


그런데 막상 1성 조경시설 [나무] 카드와 홀로그램에서 최대로 키웠을 때의 기준으로 마나 324를 잡아먹고 만들어진 하레드 나무는 3m 남짓의 작은 나무였다.


‘뭐야. 무슨 나무가 이렇게 작아? 젠장.’


목재를 팔아 어서 빨리 대박을 터트리고 싶은 내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사이즈였지만,


“헙.”

“이보게, 데켈.”

“네? 네! 영주님!”“혹시 이거 크기가 보통 이런 나무가 맞는가?”

“아, 아닙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형태면 정말 최상품 중의 최상품입지요! 제, 제가 듣기로는 아주 대단하신 귀족님들의 숲에서도 이런 건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1년에 요만큼도 자라지 않는 놈입니다. 이 정도면 최소 3백 년 가까이 있어야 할 겁니다.”


다행히도 그건 내 오해인 모양이었다.


“아~ 그런가?”

“네! 저도 말로만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곧은 형태는 정말 찾기 힘들 것입니다.”

“음... 그러면 일단 베어보게나.”

“네?”

“뭘 놀래는가? 어차피 베어야 쓸 거 아닌가.”


숲지기를 하다가 정말 나무를 사랑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울상인 데켈이 마지못해서 도끼를 들었지만...


깡! 깡!


강철목이라는 별명 이외에도 ‘도끼학살자’와 ‘나무꾼의 천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하레드 나무를 찍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 나는 감히 레이시아에게 반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데켈을 조금 골려주고 싶었을 뿐, 능력이 부족한 것을 탓할 사람은 아니었기에 너그럽게 용서를 해주기로 했다.


“누나. 부탁할게.”

“응.”

“다치면 안 돼. 조심해.”


레이피어가 가장 잘 어울릴 법한 레이시아가 도끼를 집어 들었다. 자루까지 통짜로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식한 벌목도끼. 나름 근육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형이 워낙에 가느다란 레이시아에게는 상식적으로는 안 어울려야 할 언밸런스한 장면이지만, 패완얼의 끝판왕 레이시아는 무식한 벌목도끼도 명품백마냥 소화를 해내었다.


“오오오.”


역시 레이시아는 완벽하다.


“제이, 위험하니까 물러나있어.”

“에이~ 괜찮아. 나 정령도 있잖아.”

“그래도...”

“아, 알았어. 오케이. 여기 있으면 돼?”

“응. 그러면 금방 벨게.”


도끼가 빛이 난다.

레이시아가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익스퍼트 상급부터 가능한 권능, 검기가 벌목도끼를 감쌌기 때문이었다.


스윽-


그리고 레이시아는 숲지기이자 숙련된 나무꾼 데켈은 수백 번 동안 애를 먹었던 하레드 나무를 한 번에 찍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털썩! 쾅-!


비록 작은 나무라고 하나 밀도가 빽빽하여 묵직한 나무는 지면과 충돌하며 커다란 굉음을 내었다.


“와우.”


걸크러쉬 미쳤다. 우리 눈나 최고. 이게 진짜 레알 걸크러쉬지.


휘잉-


레이시아의 첫 번째 팬인 나는 미리 불러놓고 있었던 바람의 정령으로 레이시아님에게 행여 갈 흙먼지를 막고 모아서 가라앉혔다.


“누나 괜찮아?”

“으응. 고마워~.”


레이시아는 내 덕분에 흙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헐. 존예 진짜.’


미소에 나도 찍혀나간다. 이게 진짜 걸크러시다.


“크흠.”


레이시아가 나를 100번 정도 찍어줬으면 좋겠다.


“응?”

“아, 아니야. 이게 그 심이구나.”

“응. 이게 얼마만큼 크고 곧은지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래.”


잘린 나무는 나이테처럼 동그라미들이 여러 개가 그러져 있는데, 가장 안쪽은 아예 검은 색에 가까운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하레드 나무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 가지나 외피 쪽은 나무치고 조금 단단한 정도지만, 이 검은 심이 바로 싸구려 고철보다도 단단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면 이건 비싸겠지?”

“응!”

“좋아. 그러면 첫 번째 나무는 누나 만들고 싶은 거 만들자.”

“어...?”

“창이든 뭐든 누나 하고 싶은 거 하자고.”

“아, 아니야. 괜찮아! 하, 하려면 제이 너부터 뭘 해야지.”

“에이 됐어. 레이디 퍼스트.”

“...응?”

“아무튼 누나 먼저라고.”


결국 나중에는 직위로 찍어 누른 후에 벌목되어 둥치만 남은 [나무]의 내구도를 확인해본다.


[내구도: 10%/100%]


뿌리와 둥치만 남은 나무의 내구도는 10%.


[카드 수리 시 필요한 마나량]


[1성 카드: 1%당 10]

[2성 카드: 1%당 100]

[3성 카드: 1%당 1,000]

[4성 카드: 1%당 10,000]

[5성 카드: 1%당 100,000]


보통은 이제 죽은 나무가 되겠지만, 시스템의 힘으로 마나 900과 약간의 시간이면 다시 처음의 나무로 되돌릴 수가 있다.


[Tip. 1% 수리에 1시간이 소모됩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보통의 하레드 나무는 1년에 1cm 남짓 자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 * *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어촌 마을.


배를 이용하거나 산을 넘어갈 것이 아니라면, 일단 상행은 광장에서 출발하여 병영 앞을 지나 관문을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

■■■■□□⑤▨▨▨▨▨▨▨

■■■④□③□①▨▨⑦⑦▨▨

□⑥□□■□□■▨▨▨⑦⑦▨

■■■■■■②■■▨⑦⑦⑦▨

■■■■■■■■▨▨▨▨▨▨


■: 산맥 및 절벽 □: 평지 ▨: 바다


①: 항구 ②: 영주관 ③: 촌장의 집 및 광장 ④: 병영 ⑤: 조선소 ⑥: 관문 ⑦: 무인도


그런고로 첫 번째 상품으로 선택한 하레드 나무와 데트린 나무를 병영 안에 설치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귀찮음을 제외하면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영주관에 지을 걸 그랬다. 이거 일일이 와서 수리하는 것도 일이네.”


내가 투덜거리자 레이시아는 슬쩍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리고 누나가 수련하는 동안 나도 활을 좀 배워볼까 싶어.”

“응? 활을?”

“응. 언제 어디서 싸울지도 모르는데 정령으로만 싸울 수가 없을 때도 있을 거 아냐. 누나가 나의 검이니까 나는 활을 들려고.”


근접전이 무서워서 활을 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활 재료랑 화살 재료도 여기 있잖아.”


강철목이라는 이명이 있는 하레드 나무와 고급가구의 소재로 쓰이는 데트린 나무는 충분히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활의 재료였고, 내가 만들어내는 [나무 울타리]를 잘 가공하면 화살도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렇겠구나.”


내 입장에서는 팔아먹을 상품이지만, 레이시아의 입장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라서 나무 울타리 화살까지는 차마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정령이 중급만 되어도 마나석에 기운을 담을 수 있잖아. 내 기준으로는 3단계이고.”

“아! 그걸 직접 쏘려고?”

“응. 뭐. 유사시에는? 아까워도 쓸 때는 써야지 뭐.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긴 하지만, 결국 가장 위험할 때는 나랑 누나밖에 없을 때이지 않을까? 누나 수련할 동안만 나도 수련하려고.”


사실 그보다는 헤카인 경이야 믿을 수 있다지만, 수많은 젊은 남정네들이 득실거리는 병영에 레이시아 혼자 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겸사겸사 활을 익히기로 했다.


“응. 제이는 잘 할 거야.”

“응. 잘 해볼게. 헤헤.”


거기에 레이시아의 격려까지 더해지니 내가 활을 배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어라? 활이란 놈은 결코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헤카인 경이 소개를 하여 붙여준 베렌령 최고의 궁수에게 2주간 개인 교습을 받았지만...


“에고. 잘 안 되네.”


집중이 흔들린 탓인지 화살이 과녁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잘 하고 있어. 방향은 잘 잡았잖아. 그 정도면 잘 배우고 있는 거니까 너무 조바심 내지 마.”

“그래도... 이게 옛날에 검술이랑은 영 다른 느낌이네. 쩝. 재주의 정령이 있어서 빨리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네.”


사실은 양궁의 민족이라서 나도 금방 잘 쏠 수 있을 줄 알았다. 제이크가 검술의 천재이기도 했으니까 활도 금방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지구에 있을 때는 한 게임의 프로게이머들이 다른 게임도 잘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은퇴한 유명 선수들이 다른 운동도 잘 하는 모습을 TV에서 많이 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활이라는 것이 참 어렵더라.


일단 팔이 아픈 건 둘째 치고, 화살의 궤적자체가 바람, 습도 등에 영향을 받으니 총처럼 견착과 가늠자만 잘 본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고, 특히나 화살이 공산품이 아니라서 미묘한 차이가 있기에 내가 제대로 쏘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그래도 군대에서는 20발에 16~17발 정도를 쏠 정도로 나름 사격에 자신이 있었는데, 활은 뭔가 쏠 때마다 새롭다.


핑!


또 표적지가 아닌 옆에 가서 박혔다.


“에고.”


레이시아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면목이 없다. 여기 세상에서도 활은 오랫동안 숙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특히나 대부분 마물을 상대하기 위한 활은 지구에서보다 더 크고 관통력과 파괴력에 중점을 둔 방향으로 발전했기에 좀 더 오랫동안의 숙련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남자는 원래 항상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생명체이지 않는가. 여자도 반대로 항상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명체지만, 레이시아는 이미 그 점에서는 충분하다 못해서 완벽하다.


“잘 하고 있으니까 너무 그러지 않아도 돼. 최소 3년은 익혀야 그래도 궁병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다고 하잖아.”


그렇지? 여기 세상에서는 그런 격언이 있다.


창병을 키우는 데는 일주일이면 되고, 검병을 키우는 데는 한 달이 걸리고, 궁병을 키우는 데는 3년이 넘게 걸린다는 것.


그러니 배운지 3주도 안 된 내가 활을 제대로 못 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음. 기운이 난다. 레이시아는 상담교사를 했어도 충분히...


“응?”

“아, 아니야. 하하하.”


사실 믿는 구석이 있긴 하다.


재주의 정령과 강신.


정령을 몸으로 강신이 가능한 4성부터 특수정령은 그것에 관한 재능을 직접 받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손재주가 좋아지겠지. 여차하면 바람의 정령에게 조종을 맡겨도 되는 거고.’


그러니까 여차하면 ‘해줘’가 된다는 말.


그렇지만 결국 뭐든지 최소한의 베이스는 있어야 하고, 레이시아에게도 열심히 잘 보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여기 촌동네에서는 마땅히 즐길거리도 없기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으로 열심히 활을 당겼다.


핑-!


지구에서 누군가 세월은 쏜 화살과도 같다는 말을 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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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님의 놀이동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리메이크 공지입니다. 22.01.27 86 0 1쪽
33 033화. 22.01.26 56 0 23쪽
32 032화. 22.01.25 54 1 23쪽
31 031화. 22.01.24 55 1 22쪽
30 030화. 22.01.22 49 0 25쪽
29 029화. 22.01.21 48 0 24쪽
28 028화. 22.01.20 49 1 18쪽
27 027화. 22.01.19 54 1 21쪽
26 026화. +1 22.01.18 53 1 21쪽
25 025화. 22.01.17 61 1 21쪽
24 024화. +2 22.01.15 58 2 20쪽
23 023화. 22.01.14 57 1 23쪽
» 022화. +1 22.01.13 63 1 23쪽
21 021화. 22.01.12 59 1 24쪽
20 020화. 22.01.11 60 1 24쪽
19 019화. 22.01.10 65 1 20쪽
18 018화. +1 22.01.08 69 1 18쪽
17 017화. +1 22.01.07 70 1 19쪽
16 016화. +1 22.01.06 72 1 20쪽
15 015화. +1 22.01.05 70 1 21쪽
14 014화. 22.01.04 75 1 18쪽
13 013화. +1 22.01.03 81 3 18쪽
12 012화. 22.01.01 79 1 18쪽
11 011화. 21.12.31 80 1 16쪽
10 010화. +1 21.12.30 83 1 20쪽
9 009화. +1 21.12.29 91 1 16쪽
8 008화. +1 21.12.28 99 1 16쪽
7 007화. 21.12.27 97 2 15쪽
6 006화. +1 21.12.25 111 1 20쪽
5 005화. 21.12.24 131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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