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님의 놀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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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21.12.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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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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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화.

DUMMY

어디선가 비싼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난다.


쨍그랑-!


아이고. 저걸 어째. 누군가가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꽤나 비쌀 텐데 잔 값은 받을 수 있으려나?


“검기다!”

“익스퍼트 상급이라고?”

“마, 마법 검 아닌가?”

“벌써 익스퍼트 상급이라는 말인가! 말도 안 돼!”


그리고 여기저기서 불신에 가득 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조금 남들보다 빠른 성취를 보이는 천재가 아니라, 눈앞에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괴리를 달리하는 것이 22살에 익스퍼트 상급 기사라는 말이었다.


‘모두들 잘 보라능. 저 초미녀 천재 기사짱이 내꺼라능. 후욱 후욱.’


십덕체가 절로 나올 만큼 짜릿한 모습에 내 어깨가 으쓱으쓱 춤을 춘다.


“어머니, 어떻습니까?”


멍하게 쳐다보고 있던 백작 부인이 끼이익 고개를 돌린다.


“뭐, 뭐라고?”

“너무 놀라셨나보군요. 첫째 며느리의 성취를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여쭤본 겁니다. 하하. 제 아내지만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

“음. 너무 놀라셨나보네요. 죄송합니다. 귀띔이라도 해드릴 걸 그랬습니다.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죄송합니다. 어머니.”


만약 둘만 있는 자리라면 으하하하 웃으며 티배깅을 즐겼겠지만, 아직 이곳은 수많은 귀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장소이기에 나는 최대한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 그래. 대,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치아가 걱정될 만큼 이를 꽉 깨문 백작 부인은 억지로 웃으며 답을 했다.


‘쯧쯧. 임플란트 많이 비쌀 텐데...’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마주 싱긋 웃어주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티배깅이 아니라 진짜 동정심에 웃어준 것이다.


뿌드득.


그런데 상대는 오해한 모양이었다.


‘뭐 본인이 꼬인 걸 내가 어떡하라고.’



* * *



데이안 타나티안 백작의 생일 축하 연회는 단순히 축하와 사교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마물들이 여기저기서 넘어오는 세상이므로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북부의 귀족들이 한날한시에 모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므로 토벌 계획, 도로 정비, 식량 분배, 가문과의 분쟁 해결 등 여러 안건 등이 논의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렇기에 가주 및 후계자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떠나고, 남은 자리는 귀부인과 아가씨 등 여자들과 아직 어린 미성년들의 시간이 되었다.


‘...잣 됐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나는 북부의 귀족이 아니라 독립된 베렌령의 남작이기에 그 자리에 갈 수 없었고, 어쩌다보니 사교계의 청일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미성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완전 꼬맹이가 아닌 이상 대부분 직계들은 수업의 의미로 대동하기에 성인 남성은 나뿐이었다.


‘헐. 이거 맞나?’


마치 라이트노벨 같은 것에서 나올 법한 상황에 나는 탈출하고 싶었지만, 사교장이 내 본가인 이상 그런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아다리가 이렇게 만들어지냐? 젠장.’


타나티안 백작가가 베렌 남작령이라는 영지를 가진 것도 왕국에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었고, 북부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사교 기회가 적은 것도 특수한 경우라서 어쩌다보니 겹치고 겹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부인, 좀 살려주시오.”

“후후후.”

“...부인?”


아까 자기를 골려준 것에 대한 대가로 레이시아는 나를 지켜줄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천만다행히도 아까만 해도 추파를 던지던 여자들은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았다.


‘응? 왜지?’


슬쩍 보니 관심은 많은 거 같은데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1번. 임자가 있어서?


그런데 이미 아까도 밝혔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일부다처제를 노리는 이들이 존재했었다. 원래는 어촌 마을 베렌령에 폐인에 망나니였던 제이크였기에 혼담이 뚝 끊겼던 건데, 직접 보니 마음이 동한 아가씨들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영주를 가진 귀족이라면 후처를 들이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타나티안 백작이 흔치않은 케이스일 뿐,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대개 삼처사첩인 경우가 많았다.


2번. 경쟁자가 너무 예뻐서?


이것 역시 내가 레이시아를 꽁꽁 숨긴 것도 아니었지 않는가.


3번. 내가 너무 애처가의 모습을 보여서?


이건 조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그런 것치고는 관심들은 있어 보이는 눈치다. 내가 한 때 전문 짝사랑남이었기에 저런 눈빛이 뭘 말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4번. 그렇다면 경쟁자가 무서워서?


이게 확실한 것 같다. 레이시아가 실력있는 여기사인 것은 알았겠지만, 상급의 익스퍼트인 건 몰랐었겠지.


‘아하.’


흘끔 레이시아를 보니 표정을 굳힌 채로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푹 고개를 숙였다.


‘오! 레기방패.’


든든한 레이시아 덕분에 나는 청일점이라도 안전하게 연회를 즐길...


“후후. 이제야 인사드리네요.”


...수는 없는 모양이다.


‘헉! 이건 또 뭐야?’


레이시아만큼은 못하지만 존예녀가 말을 걸어왔다.


“...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베렌 남작님. 저는 헬릭스 남작가의 여식 로엘라라고 합니다.”

“아... 헬릭스 가문이시면... 그... 텔리오 경의...”

“네. 맞습니다. 텔리오 헬릭스 경이 제 백부되십니다.”


제이크의 기억에도 있는 영애였다.


로엘라 헬릭스. 22. 마법사.


도박장과 술집을 전전할 때 가끔 들었던 이름으로 레이시아가 북부의 얼음꽃으로 불리며 기사로 재능을 뽐냈다면, 로엘라는 북부의 봄꽃으로 불리며 마법사로 유망한 사교계의 유명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백부 텔리오 헬릭스는 타나티안령의 기사단장으로 제이크가 어릴 적에 검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이기도 했다.


“아...! 텔리오 경은 잘 지내고 계시죠?”

“네? 아. 네. 백부님이야 언제나 정정하시죠. 호호호.”

“하하. 그렇군요...”


그리고 더 할 말이 없긴 하다.


‘왜 이렇게 물끄러미 쳐다보는 거야. 대충하고 가지.’


레이시아보고 살려달라고 옆을 흘끔 바라보았더니, 레이시아는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휙하고 고개를 돌렸다.


‘엥? 아까 놀렸다고 진짜 삐진 건가?’


레기방패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


“남작님.”

“네?”

“혹시 영지에 마법사 하나 안 필요하세요?”


나는 무의식중에 대답하고 말았다.


“마법사요? 필요는 하죠?”


나스 대륙에서 고급 인력인 기사, 마법사, 성직자, 드워프 대장장이, 엘프 궁수, 정령사는 영지에 묶어두고 부릴 수만 있다면 다다익선.


“혹시 아시는 마법사라도 있으세요?”

“저요!”

“...네?”

“저는 어떠신가요?”


이게 뭔 소리지?


헬릭스 남작가는 비록 왕국법상의 영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타나티안 백작가에서는 오랫동안 신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가신. 제이크의 기억 위키로 보면 북부에서는 꽤나 꿀영지를 봉토로 가지고 있었다. 구멍가게 자영업보다는 월급 받는 대기업의 임원이 훨씬 나은 것처럼, 베렌 남작령보다는 훨씬 형편이 좋은 곳이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민망하지만, 저 제법 실력 있는 마법사거든요.”


민망하면 말을 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을, 로엘라 영애는 레이시아를 힐끔 보고 난 후에 후후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후후. 남작 부인님께 비하면 대단치 않겠지만요. 그래도 저도 제법 쓸 만 하실 걸요.”


그리고 로엘라 영애는 요사스럽게 윙크를 찡긋 하였다.


헉. 뭐지? 나한테 한 거 맞지?


짧은 시간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촉망받는 영애가 베렌령의 마법사로 오려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레이시아야 제이크의 의남매였기에 온 것이었지만, 로엘라 영애는 제이크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접점이 없었다. 12살 사고 이후로는 사교계에 한 번도 참석해본 적 없었던 제이크였기에 로엘라를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어도 만나서 이야기해본 적도 없었다.


‘...그럼 뭐야? 하레드 나무와 힐트렌 약초를 노리고? 쓰읍. 그런 건 인공재배가 불가능하단 것이 상식이잖아. 아니면... 페라인 상단에서 정보가 샜나?’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오지까지 가려는 것은 말은 안 된다. 지금까지 오픈된 수준으로는 로엘라 영애 정도면 백작가나 후작가와 결혼하면 충분히 얻고도 남을 재력이지 않는가.


“남작님?”

“...네?”

“저 월급도 많이 받지 않을게요. 어떠신가요?”

“그... 어...”


뭐지?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로엘라.”


그때 레이시아가 출동했다.


“왜요? 베렌 남작 부인.”


어라? 둘이 아는 사이인가?


“그만 장난쳐.”


레이시아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면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하긴 동갑에 레이시아도 2년 정도는 타나티안령에서 지냈으니까 만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레이시아가 친하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후후. 죄송해요 베렌 남작님. 그런데 진짜 장난은 아니었어요.”

“......?”

“잠깐. 로엘라, 너 도대체 무슨 말이야? 제, 아, 여, 여보. 잠시 로엘라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음? 으음. 그, 그렇게 하시오.”


소리의 정령을 불러내어 훔쳐 들을까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레이시아가 있으니 믿고 가만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와. 그런데 그림은 그림이네.’


솔직히 지금도 레이시아가 훨씬 예쁘긴 하지만, 레이시아 옆에 있어도 크게 안 꿀리는 사람은 처음인 거 같다.


‘...소리의 정령아.’


레이시아는 믿고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싶은데, 솔직히 저렇게 예쁜 여자들은 서로 어떻게 애기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집에서 자꾸 결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싫어서 도피를 하고 싶다는 거지?”

“도피가 아니라 직장을 고르는 거지. 음음.”

“그러면 굳이 왜 우리 영지야. 다른 곳도 많잖아.”

“다른 곳에 가면 거기 영주들이 귀찮게 굴 거잖아. 그런데 베렌령에 가면 일단 베렌 남작님은 최소한 안 그럴 거 아냐. 다른 귀족도 없다며. 헤헤. 그러면 네가 남작 부인이니까 나 지켜줄 수도 있고. 아까 남작님이 너 엄청 좋아하시는 게 티가 나더라. 그건 좀 부럽던데?”


...아하. 그러니까 결혼하기 싫어서 도피처로 택한 건가? 다른 곳은 남자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니 친구의 남편이 있는 베렌령을 택한 거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해가 된다.


“부, 부럽기는...”

“킥. 너 부끄러워하는 거 진짜 웃긴다 얘. 예전에는 동생, 동생하더니만 남편이 될 줄은 정말 몰랐네. 진짜 나 완전 깜짝 놀랐잖아. 서신이라도 좀 보내지. 서운해. 정말.”

“미, 미안... 너무 바빠서...”


둘이 퍽 친하긴 한가보다. 레이시아가 나와 백작양반 말고 저렇게 쩔쩔매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치이! 나 완전 연락 기다렸었는데... 그런데 너 언제 상급된 거야. 진짜 말도 안 돼. 너 알고 보면 영웅급 아니니? 나중에 역사서에 이름 남기는 거 아냐? 진짜 대단하다. 내 친구가 이렇게 대단하다니. 나 아까 정말 놀랐잖아. 사실은 나도 이번에 4써클 돼서 자랑하려고 했는데... 진짜... 아! 그리고 너 그거 몰랐지? 나 성문에서 너 봤었다. 백부님께 너 온다는 이야기 듣고 깜짝 놀라게 하려고 성문에서 몇날며칠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남작님이 너보고 부인이라고 하는 거야. 백부님이 그건 말씀 안 해주셨었거든. 나 진짜 깜짝 놀라가지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었잖아.”


그리고 두 사람 간에서는 주로 로엘라 씨가 수다를 떨고, 레이시아는 얌전히 듣는 친구의 형태인 것 같고.


“그리고 말이야. 연회가 시작하면 재깍재깍 인사를 와야지. 응?!”

“그, 그러는 너도 안 왔잖아. 나는 백작님도 있고, 제, 남, 남편도 있으니까 움직일 수가 없었지.”

“프흐흐. 아직은 제이가 더 익숙한가봐?”


과거에 두 사람간의 대화에서 나를 ‘제이’라고 불렀단 것을 보면 다시금 친분을 재확인 할 수도 있었다.


‘...이제 그만 들을까. 조금 양심에 찔리네.’


그냥 예쁜 애들도 친구 간에는 편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는 결론과 함께 나는 소리의 정령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진짜 베렌령으로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로엘라 씨 덕분에 나도 중요한 안건이 생겨버린 것 같다.



* * *



나와 레이시아는 타나티안 백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로 영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나석은?”

“여기 있습니다.”

“물건은 다 실었지? 마차는 다 점검했나?”

“네. 영주님.”

“그럼 빨리 돌아가자고.”


같이 있으면서 굳이 백작 부인의 성질을 계속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비록 인프라는 떨어지지만 백작가의 저택이 최고급 목재를 사용한 우리 영주관보다 불편하기도 했고. 이리저리 연줄을 만들려고 달려드는 귀족들도 불편한데다가, 개인적으로는 제이크의 부친 타나티안 백작도 내게는 부담이었다.


“충!”

“그래. 고생들 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휴우. 이제 됐죠?”


베렌령으로 동행하게 된 로엘라 씨 덕분이었다.


‘둘이 그렇게 친할 줄은 몰랐었네.’


단순히 그냥 예쁜 애들끼리 친해진 것이 아니라, 레이시아는 백작 양반의 의붓딸쯤 취급을 받고 있었고, 로엘라 씨는 헬릭스 가문의 양녀였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미모와 실력 때문에 남자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반대로 여자들에게는 은근한 질시를 받는 것도, 출신으로 은근히 뒷담을 듣는 것도 모두 같았다. 그리고 로엘라 씨의 집요한 호감도 표시에 제이크 때문에 힘들어하던 레이시아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그 후로 로엘라 씨가 삼촌인 기사단장의 저택에 머물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들었다.


‘나 때문에 레이시아가 포기한 게 얼마나 많은데... 나도 그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지.’


결코 로엘라가 유망한 마법사이고, 미모가 레이시아에 필적할 만하고, 남친이 아니라 여친이며, 저렴한 가격에 고급 인력을 부려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마나의 맹세를 했으니까 대충 믿을 만 하겠지.’


어차피 이미 영지에 내가 특별한 정령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별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았고, 기사단장인 텔리오 경도 조카의 도피를 승인해준 터라서 거리낄 건 없었다.


“후후. 감사합니다. 남작님.”


나는 일편단심 레이시아니까, 진짜 레이시아의 친구를 도운 것에 불과하다.


‘갑자기 수집형 RPG 땡기네.’


아 물론 가챠 게임 말고.


‘...성직자 친구랑 엘프 친구는 없겠지?’


달리는 마차 안에서 나는 문득 레이시아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 전에 비밀이란게 뭐예요?”

“...네?”

“마차에서 말씀해주신다고 하셨었잖아요.”


다만 일단은 갑자기 합류한 신규 마법사 아가씨의 적응 문제부터 도와야 할 터였다.



* * *



마법사魔法師.


거대하고 강력한 마물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마나로 신체와 병기를 강화하여 물리력으로 적을 상대하는 기사와 달리 마법사는 마나 자체를 집중적으로 강화하고 조합하여 그 힘으로 마물들과 대적하는 이들이다.


비록 차원의 뒤틀림과 불안정성으로 인해서 공간을 다루지 못하면서 과거에 비하면 현대의 마법사들은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마법은 여전히 강력한 힘이다. 게다가 단순하고 정직한 힘인 오러에 비해서 마법은 공격부터 시작하여 아군을 지원할 수도 있고, 신호를 보낼 수도 있으며, 다양한 마법물품을 제작할 수도 있기에 상대적으로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이다.


일단 나스 대륙의 마법사는 심장에 몇 개의 마나 고리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경지를 구분할 수 있다.


보통 1~2써클은 아직 마법을 배우는 단계인 입문자.


3~4써클은 독립하여 정식마법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단계.


5~6써클은 마탑의 지부나 독립된 분파를 차릴 수 있는 정도이며,


7~8써클은 왕국이나 대륙 전체에서 손꼽히는 경지이다. 참고로 현재 대륙 전체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7써클은 12명, 8써클은 3명뿐이고, 그 중에서 7명이 엘프이다.


마지막으로 9써클은 마법사들에게는 꿈의 경지로 애석하게도 신마전쟁 이후로는 오를 수 없게 된 것이 있다. 사실 신마전쟁 당시에 멸종되어버린 드래곤들에게나 가능한 경지였고, 창세 이후로 극소수의 영웅들에게만 가능했을 뿐 원래도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단계이긴 했다.


“3써클의 마법사가 있다고?”


4써클의 천재까지는 아니고 수재 마법사 로엘라가 되물었다. 사실 마법사들은 하급이라도 일반인은 할 수 없는 재능이기 때문에 모두 천재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전교 1등들이 모인 대학에서도 다시 천재와 범재로 나뉘듯이 마법사 사회에서는 수재급인 로엘라 헬릭스였다.


“응. 마탑을 수료한 마법사가 있어.”


제이크가 자리를 비워주었기에 로엘라는 친구 레이시아에게 편하게 묻고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몇 살인데?”

“생일을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만남 때는 42살이셨어.”

“아! 정말?”


마탑에서도 자기보다 나이 많은 이들을 성취로 제쳤을 때 받았던 시기와 질투가 떠오른 로엘라는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런데 하메르 마법사님은 영지 내에서 활동하는 마법사이시지, 영지 전속 마법사는 아니시니까 너랑 상관없을 거야. 주로 마도구 수리가 전문이시거든.”


친구 레이시아의 말에 로엘라는 안도했다. 짧은 시간 동안 베렌 남작령에 대해서 정보를 구하긴 했었지만, 외부인이 없는 곳이라 타국 이상으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로엘라는 하나씩 베렌령에 대해서 알아가는 중이었다.


“아 그래? 다행이다. 또? 다른 마법사는 없어?”

“...아무도 없어.”

“와. 진짜 작은 동네긴 한가보다. 헤헤. 그럼 내가 베렌령의 1인자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친구 레이시아를 보고 로엘라는 헤실헤실 웃으며 낯선 곳으로 떠나는 불안감을 달랬다.


“그런데 너희 남편 비밀은 뭐야? 혹시 오러홀이 다시 고쳐진 거야? 아니면 정령?”

“어? 어떻게 알았어?”

“뭐야? 진짜 맞구나?”

“......”

“후후. 역시 나는 똑똑하다니까. 하레드 나무랑 힐트렌 약초보고 알았지. 정령사들이 나무랑 약초 같은 건 귀신 같이 발견하니까. 안 그래?”


제이크의 친모가 하프엘프의 정령사였다는 사실은 웬만한 이들은 다 알았고, 제이크가 오러홀이 망가진 후에 마법도 배우고 성직자가 되기 위한 시도도 해봤다가 실패했었다는 것도 로엘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지의 비밀이 아니라 영주의 비밀, 오러홀이 복구된 것이 아니라면 정령이라는 것을 유추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후우. 그래. 네 말이 맞아.”

“와! 무슨 정령을 다루셔? 역시 물의 정령?”


레이시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와! 마실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후후후.”

“응. 왜 그렇게 웃어? 아 뭔데? 응? 뭐냐고.”


잠시 후 로엘라는 멍하게 입을 벌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신님께 선택받은 사도님이시라고? 네, 네 남편이? 제, 제이크 공자님이?!”


레이시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이, 농담하지 마. 너 그러다 천벌 받는다. 여신님의 사도님이라니. 나 진짜 심장 약... 설, 설마 진짜야? 정, 정말이라고?”


비록 오래 사귄 친구는 아니지만, 로엘라가 살면서 가장 깊게 사귄 유일한 친구 레이시아는 결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맙소사.”


그리도 다행히 로엘라는 친구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도, 잠시 후 직접 그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 우습고도 흥미롭다.


“헉!”


불의 정령, 물의 정령, 바람의 정령과 대지의 정령을 꺼내들 때마다 예쁘장한 로엘라 씨의 눈이 커지며 흔들린다.


번개가 빠직.


“번, 번개?!”


새하얀 빛이 반짝.


“빛, 빛의 정령?”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고.


“어둠?!”


나무를 흔들어볼까?


“......?”


아니, 굵직한 나뭇가지가 서서히 움직인다.


“설, 설마 나무의 정령?! 엘프 여왕만 가진다는...?!”


거기에 금속은 여기 세상에서는 알려진 적도 없는 정령이었다.


“마, 마법이 아니라 금속도 정령인가요?!”


역대로 몇 가지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는 종종 있었지만, 지금 나처럼 모든 속성의 정령을 다루는 이는 없었다. 거기에 청소, 요리, 관리, 재주 등 나스 대륙에는 존재치 않았던 특수한 정령을 상정한다면 더더욱 사도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확인하실래요?”


그리고 모두가 한결 같이 놀라는 마나석 흡수 시연회.


“아, 아니에요. 마나석 맞네요.”

“그럼 마나석을 그분의 힘으로 흡수하겠습니다.”

“...네.”


뚫어져라 내 손을 바라보는 로엘라 양을 보니 은근히 장난기가 샘솟았지만, 아직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 한 번 참았다.


“크흠.”


페라인 상단과 거래로 받은 하급 마나석을 다이아로 바꿨다.


“헉!”


진짜 마법사 앞에서 선보인 마술 같은 변환 쇼.


“자, 로엘라 양, 어떻습니까? 여신님의 힘이 맞죠?”


수많은 정령들.

공간 마법이 개입되지 않은 마나석의 흡수.

거기에 정령과 마법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치유의 힘(응급의 정령)까지 확인한 이상에 아무리 의심 많은 마법사라도 버텨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그렇네요.”


이상하게 예쁜 여자는 똑똑할 때보다 멍할 때가 더 예쁜 거 같다. 이게 막 백치미 그런 건가? 아니지. 레이시아를 두고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이냐!


“크흠. 그러면 비밀은 지켜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네? 네. 네.”

“좋습니다. 그러면 레, 크흠. 제 아내와 마저 얘기하시죠.”


레이시아 덕분에 미녀에 대한 면역은 생겼지만, 자주 이야기는 하면 안 될 것 같다.


‘미소녀, 아니, 미녀 마법사 획득 완료!’


비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미녀 마법사에게 레이시아를 양보하느라 외로운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가 생겨서인지 좀 더 밝아진 레이시아의 모습을 보니 충분히 참을 수가 있었다.


“둘이 애기는 언제 낳을 거야?”


소리의 정령이 볼륨을 황급히 키웠다.


“어? 어... 애기?”


꿀꺽.


“응. 여행 중이라서 좀 그런가. 미안. 헤헤. 레이샤 너야 원체 예쁘고, 남작님도 훤칠하시니까 조카님이 엄청 궁금하단 말이야.”


나와 레이시아를 닮은 애기라...? 와... 딸이면 더 좋겠지?


“무, 무슨 소리야.”

“왜? 내가 못할 말을 했어? 헤헤. 말이 나와서 그런데...”

“...뭐, 뭐!”

“밤에는 어때? 좋아? 처음에는 어땠어? 우리 사이... 억! 읍! 으읍!”


언론 탄압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로엘라 열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무튼 로엘라 양 덕분에 레이시아의 귀여운 모습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고, 부부 연기를 좀 더 몰입감 있게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여러모로 유익한 동행이었고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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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리메이크 공지입니다. 22.01.27 86 0 1쪽
33 033화. 22.01.26 56 0 23쪽
» 032화. 22.01.25 55 1 23쪽
31 031화. 22.01.24 56 1 22쪽
30 030화. 22.01.22 49 0 25쪽
29 029화. 22.01.21 49 0 24쪽
28 028화. 22.01.20 49 1 18쪽
27 027화. 22.01.19 54 1 21쪽
26 026화. +1 22.01.18 54 1 21쪽
25 025화. 22.01.17 61 1 21쪽
24 024화. +2 22.01.15 58 2 20쪽
23 023화. 22.01.14 57 1 23쪽
22 022화. +1 22.01.13 63 1 23쪽
21 021화. 22.01.12 59 1 24쪽
20 020화. 22.01.11 60 1 24쪽
19 019화. 22.01.10 66 1 20쪽
18 018화. +1 22.01.08 70 1 18쪽
17 017화. +1 22.01.07 71 1 19쪽
16 016화. +1 22.01.06 72 1 20쪽
15 015화. +1 22.01.05 71 1 21쪽
14 014화. 22.01.04 76 1 18쪽
13 013화. +1 22.01.03 81 3 18쪽
12 012화. 22.01.01 80 1 18쪽
11 011화. 21.12.31 81 1 16쪽
10 010화. +1 21.12.30 84 1 20쪽
9 009화. +1 21.12.29 92 1 16쪽
8 008화. +1 21.12.28 99 1 16쪽
7 007화. 21.12.27 98 2 15쪽
6 006화. +1 21.12.25 112 1 20쪽
5 005화. 21.12.24 132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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