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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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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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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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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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부자(父子)에게 부자(富者)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의 가족이 뉴욕으로 떠나는 날이다.

류민상과 심영숙 부부는 아들의 UCLA 입학식에 다녀왔다고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류아라는 전날부터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슈우웅!”


아침댓바람부터 류아라는 두 팔을 쭉 펼쳐 비행기 흉내를 내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이란 나라에 가는 것보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

그것이 더욱 류아라에게는 중요하고 신기할 뿐이다.

반면에 류순호는 어딘지 못 마땅한 표정이다.


‘그냥 형이 오면 되지. 귀찮게스리....“


자신의 밴드와 연습을 하기도 바빠 죽겠다.

솔직히 미국여행을 간다고 하니 성가신 기분이다.

어쨌거나 류지호의 가족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나래안전시스템 컨설팅을 마친 데본 테럴과 박성규가 류지호의 가족을 뉴욕까지 수행하기로 했다.

일행이 수속을 밟고 꽤 오랜 시간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드디어 일행이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슈우우웅!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가운데 남매의 몸이 붕 뜨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남매의 귀가 먹먹해 졌다.

류아라가 당황해서 심영숙을 찾았다.


“엄, 엄마....! 귀가, 귀가....!”


류아라는 자신의 귀를 막으며 겁에 질렸다.


“아라야, 침 삼켜. 꿀꺽.”


침을 꿀꺽꿀꺽 삼키자 귀가 약간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창가 쪽에 앉은 류아라는 저 아래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성냥갑 같은 건물들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순호야, 멀미가 심해?”


심영숙이 자신의 손바닥을 류순호의 이마에 대며 물었다.


“엄마, 나 좀 잘게.”


잠을 청하는 작은 아들의 모포를 덮어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심영숙이다.

가족의 첫 해외여행은 아이들의 멀미로 인해 시작은 좋지 못했다.


❉ ❉ ❉


뉴욕의 JFK공항.

류지호가 경호원들과 함께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겨우 반년 동안 헤어졌던 가족이다.

그 동안 자주 미국을 오가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도 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출장과 유학은 달랐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들!”

“어서 오세요!”


류지호는 아버지 품에 안겨있는 파김치가 된 류아라를 발견했다.


“아라 제게 넘겨주세요.”

“괜찮다.”

“피곤해 보이세요. 그냥 제게 맡기세요.”


류지호가 아버지 품에서 류아라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류아라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큰오빠....?”

“응. 오빠야.”


류순호가 질린 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우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순호는 괜찮아?”

“나도 죽겠어, 형.”

“그래 빨리 파커가로 가서 쉬자.”


장시간 여행에 지친 가족을 빨리 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서부의 LA와 동부의 뉴욕은 세 시간의 시차가 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한 나라 안에서도 시차가 있는데, 한국과 뉴욕은 말할 것도 없다.

14시간의 시차적응이 원활하지 않은 이들은 크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동생들이다.

류지호가 가족들을 공항 밖으로 안내했다.

그들 주위를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둘러싸서 이동했다.

그런 광경이 잠시 공항 이용객들의 시선을 붙잡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각자의 용무로 돌아갔다.

공항을 빠져나온 류민상은 인천과 날씨가 꽤나 비슷하다고 느꼈다.


“미국 날씨나 우리나라 날씨나 똑 같구나.”

“오늘은 날씨가 좋은 편이에요. 그래도 두툼한 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에 고생할 수도 있어요.”


류지호의 품에 안겨있는 류아라가 몸을 뒤척이다가 품 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12월의 뉴욕은 춥다.

그럼에도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이 겨울치고는 포근한 편이다.


“......”


류민상은 뉴욕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이 푸른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류지호의 가족을 태운 차량 행렬이 천천히 공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곧장 파커가 저택으로 가지 않았다.

맨해튼으로 한참을 돌아서 갔다.

해가 저물어 도시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라서 차가 꽤 막히지만 가족들에게 화려한 맨해튼을 보여주고 싶었다.


“형! 여기가 미국영화에 나오는 거기 맞지?”

“타임스퀘어란 곳이야.“


뉴욕의 유명 관광 명소인 타임스퀘어를 지나쳤다.

류순호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이 영화를 통해 봤던 곳이다.

직접 두 눈으로 타임스퀘어를 보게 되니 비로소 자신들이 미국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류순호는 넋이 나갔다.

낯선 땅에 대한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많이 느껴졌다.


“형, 미국은 다 이래?”

“그럴 리가. 뉴욕은 우리나라의 서울이라고 생각하면 돼. 인천 같은 곳도 있고,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강화 같은 시골도 있어. 뉴욕은 고층건물도 많고, 세계에서도 가장 화려한 도시야.”


형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파커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진짜 부자구나.’


파커 가문의 저택.

이건 숫제 집이 아니라 대궐이다.

넓다는 걸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크기의 정원.

고풍스런 외벽의 주택은 집안의 전통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의 집들도 별로 없고, 자신들의 연수동 아파트 단지를 모두 합친 것만큼의 저택 부지가 가족들의 기를 질리게 만들었다.

다만 류민상은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어릴 적 만석꾼 집안에서 자랐으니, 비록 동서양의 주거문화가 다르다곤 해도 그에게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하늘에서 저택 전체를 봤다면 그 침착함도 금방 깨졌을 테지만.

심영숙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류지호에게 물었다.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 맞는 거니? 자연농원 같은 놀이동산이 아니고?”

“파커가문의 최고 어른이 3대째 살고 있는 저택이래요. 조용하죠?”

“윌리엄 어르신의 성품을 닮은 집 같구나.”


류민상이 저택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그런 편이죠. 자 다 왔네요.”


류지호의 가족은 파커 가족에게 큰 환대를 받았다.

시차적응에 애를 먹는 류아라를 배려해 곧바로 게스트 하우스인 별채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류지호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집사 브래드는 입맛이 없는 가족들을 배려해 부담 없으면서 약간의 식욕을 자극하는 식단을 준비했다.


“고마워요 브래드.”


류지호는 그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가 할 일입니다.”


류지호에게 대답할 말을 빼앗긴 브래드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류지호는 정원을 구경시켜 줄 겸 가족들과 야간산책을 나갔다.

시차적응이 힘들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약 한 시간 정도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잠에서 깬 후에도 적당한 스트레칭과 간단한 운동 등을 해주면 몸의 움직임을 시간대에 맞게 활성화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생체 시계를 현지 환경에 맞출 수 있도록 해준다.

UCLA에서 알게 된 의대생이 해 준 말이다.

류지호는 시차적응에 애를 먹는 가족을 위해 일부러 산책을 하면서 적당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정원을 돌아다녔다.

그 덕분일까.

가족들은 여행의 여독을 풀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제임스 부부와 레오나가 저녁식사 전에 저택에 도착했다.


“까악! 아라!”

“레오나!”


레오나와 류아라가 서로 손을 맞잡고 반가움에 소란을 피워댔다.

두 소녀는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죽이 잘 맞았다.

파커가의 저택에서 두 집안이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벌였다.

다음날부터는 뉴욕의 관광명소를 돌았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류지호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캐서린이 데리고 다니는 곳만 돌아다녔다.

이제는 안전하고 볼만한 관광지는 얼추 알게 됐다.

뉴욕 지리를 잘 아는 한인 교포가 가이드를 해주었다.

경호원으로 죠셉도 합류했다.

뉴욕은 이틀 동안 둘러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구경할 곳이 많다.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도 올라가 봤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지나친 타임스퀘어도 가봤다.

다양한 민족들의 민속음식과 풍물도 함께 즐겼다.

자연사 박물관이나 세인트 패트릭 성당, 브루클린 브리지 등을 둘러봤다.

해가 지면 맨해튼의 야경까지 감상했다.

북쪽으로 올라가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하려고 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관광은 초호화판이었다.

코스는 여타 관광객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매 식사가 최고급이었다.

회원제 레스토랑과 백화점을 드나들었다.

간간이 캐서린이 류지호의 가족들을 쇼핑 지옥으로 안내했다.


“괜찮습니다.”


류민상은 캐서린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신 뉴욕 관광을 기념할 만한 저렴한 물건들을 사 모았다.

외가식구들과 한국의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산 것이다.


“지호야, 아빠한테 네 사무실을 보여주지 않겠냐?”

“사무실이요?”

“혹시 어디 구석지고 지저분한 사무실에서 라면 먹으면서 고생하고 있는지 걱정이 돼서 아빠가 그러는 거야.”

“사무실이 다 거기서 거지죠 뭐.”


단순히 사무실 공간을 보고 싶어 한 것이 아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직원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건 아닌지, 동양인이라고 서양 사람들에게 경원시 당하는 건 아닌지.

그런 걸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잠깐 구경하는 걸로 그런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부부는 구경이라도 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가족은 월 스트리트의 G&P 빌딩에 입주해 있는 가람 인베스트먼트 사무실을 구경했다

부부와 안면이 있는 매튜와 제나가 근무하고 있었다.

수시로 전해지는 원유가의 등락과 예측보고서들.

원유 선물거래로 정신이 없는 매튜를 보며 류민상이 물었다.


“매튜 청년은 이제 정신 차린 거냐?”

“저 형이 다섯 달 만에 제가 3년 동안 번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줬어요.”

“호형호제하기로 한 것이냐?”

“네.”

“이왕지사 그런 관계가 되었다면 우애를 돈독히 하도록 해봐라. 심성이나 성품이 나쁜 청년처럼 보이지는 않더구나.”

“한 동안 방황했던 것은 몰두할 걸 잃어버려서 그랬나 봐요.”

“너는 매튜 청년을 반면교사로 삼고, 매튜 청년은 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거야.”

“네. 아버지.”


그렇게 뉴욕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긴 가족들이 귀국을 앞두고 있다.

저택에서 피로를 풀고 있는데, 윌리엄이 류민상과 류지호 부자를 서재로 불렀다.

윌리엄은 피로함이 살짝 서려 있는 류민상의 두 눈을 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군. 그렇게 즐겁게 놀았으면 패트릭이라도 피곤했을 거야.”


윌리엄이 언급한 패트릭은 뉴욕 연고의 NBA팀 닉스의 파워포워드 패트릭 유잉을 뜻했다.


“어땠나. 뉴욕의 부자들의 문화는?”


윌리엄이 툭하고 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류지호가 통역을 했다.


“......”


류민상은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당연히 너무도 좋았다.

관광도 좋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출입조차 힘든 곳을 드나드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사치스러웠다.

재미에 익사를 해 버릴 만큼 사치스러워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류민상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윌리엄은 그런 류민상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극진히 대접한 것이니.


“알지 모르겠지만 지난 며칠 간 자네가 즐긴 것들은 뉴욕의 부자라면 아니 중상층 이상이라면 누구든지 언제나 가볍게 누릴 수 있는 것이네.”


나지막하게 퍼지는 윌리엄의 말에 류지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치 우월함과 특별함을 자랑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 것이다.

갑자기 류지호는 윌리엄이 아닌 대니얼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응당 나와 같은 부자들이 누려야 할 것들이지.”


류지호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류민상이 그런 류지호를 쳐다봤다.

할 수 없이 류민상에게 윌리엄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내 말이 거북한가?”

“......”

“거북한가 보군. 그렇다면 자네는 큰 사람의 부모가 되려면 한참 멀었어. 아니 계속 그런 마음을 고수한다면 평생 가도 부모로서 인정받을 수 없을 거야.”


움찔!

류지호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윌리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가진 자의 사치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지. 자네는 이 당연함의 무게를 모르고 있다네.”


류지호로부터 통역을 전해들은 류민상이 다소 격양된 어조로 길게 말을 늘어놓았다.


“사치 어디에 당연함이 있다는 겁니까? 그 사치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와 같은 노동자와 누군가의 피와 눈물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그게 당연하다는 건지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파커씨 가문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겁니까? 사치 대신에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세금을 많이 내야하는 것 아닙니까?”


윌리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유로운 몸짓은 사라지고, 그의 몸에서 기백이 뿜어져 나왔다.


“우리 같은 가문들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 왔네. 모든 가난과 야만스러운 위협으로부터 말일세. 내 가문에 속해 있는 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바치는 피와 땀을 먹었지. 그런 각오로 피와 땀을 먹으며 살을 찌운 거야.”


류지호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 무슨 궤변이세요?”

“그 각오를 지키기 위해 이런 사치를 부리는 거야. 미치지 않기 위해서.”

“.....?”

“동양의 의학에는 어떤 약이든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라고 말이 있다지? 부자든 오래된 가문이든 그들의 사치도 그런 개념이었네. 작은 일탈로 인한 정신적 압박의 해소.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우리 가문에 속해있거나 종사하는 사람들의 가정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중압감. 파커나 그레이엄이나 다를 것이 없어. 욕망, 지혜, 책임감. 이 세 가지를 갖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지. 성품? 상관이 없네.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지 않고, 가문과 그에 속한 사람의 삶을 잘 유지할 수 있으면 된다는 거지.”

“할아버지, 그렇다면 맷처럼 매일 밤 파티를 하고 아무 여자를 안고 마약을 해도 용납이 된다는 거예요?”

“난 그런 것을 싫어해. 아니 증오해. 하지만! 녀석이 그레이엄 가문의 정점에 설 자격이 있었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지. 아까 말한 그런 의미를 알고, 중압감을 짊어질 만한 배짱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제가 알고 있는 유서 깊은 가문과는 다르군요. 모범까지는 아니어도 도덕적인 개념은 있을 줄 알았는데.”

“독한 술이나 마약이나 매춘부와 섹스를 하는 거나 거기서 거기라는 소리야.”


류민상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다릅니다.”

“그렇지 않다네. 우리에겐 같은 개념이야.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되네.”

“.....?”

“내 자식들은 열심히 돈을 벌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네. 이 늙은이는 은퇴해서 자식들이 벌어오는 돈을 펑펑 쓰고 있지. 제임스는 때로 남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릴 일을 서슴없이 벌이지. 그렇게 번 돈을 난 불쌍한 사람들에게 쓰고.”

“.....?”

“우리의 사치는 그저 작은 일탈일 뿐이야. 또 정치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윌리엄이 팔을 들어 자신을 한껏 드러내 보이며 밀을 이었다.


“내 모습이 어떤가? 이 저택에 살고 있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건 내가 부자임을 즐기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진정으로 가진 자는 그래. 그러나 세상에 널려 있는 일반적인 가진 자는 다르지. 그들에게 사치란 자신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니까.”

“아.....”


류지호의 입에서 탄성이 삐죽 새어나왔다.

윌리엄의 태도가 너무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뽐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게 사치는 수단이 아니야. 그저 일상일 뿐이지. 굳이 사치가 아니더라도 나를 뽐낼 것들은 널리고 널려 있어. 내가 흘린 피와 땀, 재능을 뛰어넘어 그것에 대한 갈망과 만족.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 내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 변해 가는 그들의 경제 사정, 그들의 칭송. 비즈니스 능력, 재력이 만드는 영향력 등등. 이 외에도 수만 가지의 것들이 나를 뽐내게 하는 거지. 굳이 나를 드러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알아서 뽐내게 만들어. 세상 사람은 이런 것을 모두 가진 자를 두고 이렇게 말해. 진정한 부자라고.“

“......?”

“이제 자네 아들도 그런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어. 그렇다면 부모인 자네와 부인도 그런 삶을 살게 되겠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네.”

“저와 안사람은 자식 덕 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누가 덕을 보라고 했나? 부모로서 자식의 삶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어야지.”

“지호는 이미 부모 품을 벗어나서 홀로 걷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래라저래라 할 단계를 지났다는 뜻이 되겠지요.”

“자식을 훈육하라는 말이 아닐세. 자네 자식의 인생이 거대해 질수록 부모의 삶도 스케일이 커지는 거라네. 자네와 처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게 될 거야. 진정한 부자로서 사치를 부리게. 자선행사가 있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불쌍한 아이들이 보이면 그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지게. 자네 아들이 남의 지갑에서 돈을 빼앗아 오면 그 돈을 다시 누군가 불쌍한 이의 지갑에 채워 넣어주게.”


윌리엄이 류지호의 가족을 뉴욕으로 초대한 진정한 이유가 밝혀졌다.

단순히 관광을 시켜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류지호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그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부자?

글쎄.

좋은 사치?

글쎄.

말장난 같은 윌리엄의 말 속에 두 부자의 숙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호가 정상에서 중압감에 시달릴 때 혹여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탈을 벌인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실망하지 말게. 그 고통과 일탈은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류민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호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아들이 성인군자가 되기를 바랐다면 종교에 귀의 시키거나 철학을 탐구하는 학자가 되도록 했어야지. 사업을 시켜서는 안 되었네.”

“올바른 사업가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난 살면서 바른 사업가인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진 사업가는 봤어도 완벽하게 올바른 방법만으로 성공한 사업가를 본적이 없네.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 선한 행동으로 성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내가 살아왔던 비즈니스 세계가 그랬고, 지호가 살아가게 될 미래도 별로 바뀌지 않을 것 같군.”


통역하는 류지호는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그걸 듣는 당사자 류민상은 오죽 할까.


“어르신. 저는 피곤해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도록 하지요.”


류민상이 윌리엄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서재를 빠져나갔다.

류지호가 서재를 빠져나가는 아버지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저와 술 한 잔 하실래요?”

“아니다. 너무 피곤하구나.”

“그럼. 쉬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그래. 쉬거라.”


아버지를 배웅한 류지호가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할아버지! 아버지한테 꼭 그렇게 말씀하실 것까진 없잖아요?”


류지호가 윌리엄에게 따지듯 물었다.

윌리엄은 태연했다.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예.”

“글쎄다. 이 할아버지는 잘 난 네 녀석이 가족에게 발목이 잡혀있는 것 같아 답답한데?”

“그런 적 없어요.”

“가족에게 독해지란 말이 아니다. 너는 네 삶이 있는 거고. 부모는 부모만의 삶이 있는 법이야.”

“전 부자도 아니고, 정점에서 남을 지배하고 싶지도 않아요.”

“이미 늦었다.”


그랬다.

류지호에게 가족을 제외하고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전문경영인에게 각각의 사업을 맡겼다고 해서 그걸로 류지호가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활주로를 날아오른 비행기는 추락하거나 안전하게 착륙하기 전까지 땅에 내려올 수 없는 법이야.”

“에휴! 대니얼 할아버지도 아니고 할아버지까지 왜 그러시는 건데요?”

“네 위치를 봐라. 백인과 흑인 사이에 끼어있는 소수인종. 한국계 미국인도 아닌 오리지널 한국인.”

“......?”

“현대 사회엔 계급 따윈 없다고 하지. 개소리야. 계급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도 계급은 분명히 존재해. 법제화 되지 않았고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자신들을 타 계급 사람들과 구분하려고 든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저와 달리 한국에서 평탄한 삶을 살 거라고요.”


윌리엄의 진심이 통한 건지 류지호의 목소리는 전보다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두 눈은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말이다.

윌리엄이 냉소했다.


“흥. 코리아라고 다를 것 같으냐? 네가 미국에서 본 얼핏 본 것보다 더욱 야만스러울지도 모르는데?”

“저와 가족더러 상류사회에 들어가 그들처럼 오만한 사람이 되라는 건가요? 사치를 부리면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오만해도 된다. 그 자격에는 권력, 재력, 인격 다 포함되는 거야. 하나라도 모자라면 오만해서는 안 된다. 자격이 안 되면 겸손해야 한단다. 자격을 갖춘 사람의 사치는 아까 말한 것처럼 뽐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상이 되는 것이란다.”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차차 알게 될게다.”


‘알고 싶지 않아요.’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분에 찬물을 부어버린 윌리엄에게 류지호는 서운함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모든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류지호도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류민상은 마음이 무거웠다.

윌리엄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자식의 인생이 거대해 질수록 부모의 삶도 스케일이 커지는 거라네. 자네와 부인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게 될 게야.’


류지호의 삶이 변하면서 연쇄적으로 가까운 사람의 삶도 바꾸어 놓게 되었다.

그 삶을 어떻게 영위하는가.

오로지 당사자에게 달려있다.


작가의말

행복한 주말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파커 저택의 모티브가 된 메가 맨션은 뉴욕 롱아일랜드 소재 억만 장자 이너 레이트의 fairfield pond라는 곳입니다. 심심하실 때 유튜브 검색해보시면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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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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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Life Goes On. (2) +7 22.06.07 6,013 193 25쪽
184 Life Goes On. (1) +9 22.06.06 6,198 194 26쪽
183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3) +7 22.06.04 6,154 200 22쪽
182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2) +10 22.06.03 6,212 190 26쪽
181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1) +8 22.06.02 6,275 169 23쪽
180 가진 것이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3 22.06.01 6,293 191 27쪽
179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2) +9 22.05.31 6,254 177 25쪽
178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1) +6 22.05.30 6,400 177 23쪽
177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4) +7 22.05.28 6,362 181 26쪽
176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3) +9 22.05.27 6,308 181 25쪽
175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2) +4 22.05.26 6,287 179 21쪽
174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1) +13 22.05.25 6,428 184 24쪽
173 우리는 항상 승자 쪽에 있어야 한다! +5 22.05.24 6,495 180 25쪽
172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5) +11 22.05.23 6,514 200 24쪽
171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4) +7 22.05.23 6,257 165 21쪽
170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3) +8 22.05.21 6,672 177 25쪽
169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2) +7 22.05.20 6,638 188 25쪽
168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1) +6 22.05.19 6,668 179 23쪽
167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7) +9 22.05.18 6,280 191 24쪽
166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6) +5 22.05.17 6,336 167 23쪽
165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5) +7 22.05.16 6,328 174 23쪽
164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4) +6 22.05.14 6,379 176 21쪽
163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3) +6 22.05.13 6,367 159 22쪽
162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2) +9 22.05.12 6,541 172 22쪽
161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1) +9 22.05.11 6,714 179 22쪽
160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8 22.05.10 6,773 182 25쪽
159 괜찮은 인디배급사 하나 인수합시다! +14 22.05.09 6,875 182 30쪽
» 부자(父子)에게 부자(富者)란..... +8 22.05.07 6,895 184 23쪽
157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3) +6 22.05.06 6,866 187 26쪽
156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2) +9 22.05.05 6,862 19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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