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연재수 :
962 회
조회수 :
4,127,694
추천수 :
127,041
글자수 :
10,687,409

작성
22.05.10 10:00
조회
6,773
추천
182
글자
25쪽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겨울학기를 시작한지 몇 주가 지난 1월 말.

류지호가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나타났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해 파리를 빠져나갔다.

류지호 일행은 프랑스 중부지방인 퓌-드-돔주(Puy-de-Dôme)의 주도이자, 오베르 뉴 지역의 중심도시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으로 이동했다.

클레르몽-페랑에서 6.8Km 떨어진 곳에 오베르 뉴 공항이 있었지만, 환승시간이 맞지 않았다.

파리에서 운행하는 기차는 경호상의 이유를 들어 경호팀이 추천하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소요되는 프랑스 국내선을 제외하고, 기차나 자동차 이동 모두 4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었기에 류지호는 경호팀의 의견을 순순히 따랐다.


“도시가 전체적으로 검은 느낌이네.”


클레르몽-페랑의 첫인상이다.

파란 하늘 아래 도시는 검은빛이 감돌았다.

흐린 날은 조금 우울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다.

도시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검은 돌로 지어진 대성당 때문인 것 같다.

철학자 파스칼의 고향이자 대학의 도시.

매년 1월에서 2월 사이, 이곳에서 세계 3대 단편영화제로 꼽히는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류지호의 옆자리에 앉은 티노가 창밖을 가리켰다.


“보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화산이었다고 합니다. 도시의 건물이 검은색인 이유는 저 곳 화산에서 나온 돌로 지어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류지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조금 독특한 도시 분위기가 풍겼군요.”

“조금 추울 수 있으니 코트는 꼭 챙겨 입으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 작은 도시는 10년이 흐르면 세계 단편영화의 수도가 된다.

류지호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이 도시에 나타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단편영화 <Help Me, Please>가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의 국제경쟁부분 본선에 올랐던 것.

한국의 공연윤리위 검열로 인해 류지호는 미국으로 필름을 반출한 후에 UCLA 재학생 신분으로 출품했다.

시카고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 영화제 초청이다.


‘처음 씨네 클럽을 만들었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훗날 단편영화제의 대부가 되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이 영화제는 1979년 끌레르몽-페랑 문과대학 강의실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을 위한 다섯 차례의 시사회 형식으로 시작되었던 씨네 클럽에는 당시 1,200명 정도의 관객이 모였다.

그리고 80년대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성에서 많은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프랑스 문화성의 지원과 관객들의 폭발적인 지지에 힘입어 규모를 키우기 시작한 영화제는 지역 행사에서 이제는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파스칼의 고향이라는 중세의 전통.

미슐렝 형제.

근세기에 발달한 공업도시.

전통과 산업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는 끌레르몽-페랑은 사회주의적 경향이 무척 강한 곳이다.


'함께 노력하고 일하며 함께 나눈다.‘


클레르몽-페랑의 정신이다.

아마 한국의 꼰대들은 이 영화제에 초청된 것만으로 ‘빨갱이‘로 몰아붙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에서는 단편영화제 따위 관심도 없을 테지만.

<Help Me, Please>가 경쟁부문 본선에 올랐음에도 영화진흥공사에서 어떠한 지원과 안내를 받지 못했다.

혹여 수상을 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조금은 관심을 가져줄지도 몰랐다.


‘김칫국 마시지 말자. 맘 편하게 유럽영화 분위기만 즐기다 돌아가자.’


어쨌든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는 1979년 '단편 영화 상영 주간'으로 소박하게 시작했다.

1981년까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다가 1982년부터 경쟁 섹션을 도입했다.

해외 작품들은 특별 프로그램 형식으로 상영되었는데, 1988년 가서야 경쟁 섹션을 신설했다.

또한 1986년에는 단편 영화 마켓을 처음으로 열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칸 필름 마켓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편영화 전문 마켓이다.

클레르몽-페랑 영화제는 10회까지 국내영화제였다.

그러다 3년 전 국제영화제가 되었다.

경쟁부문이 프랑스 국내 및 국제경쟁, 두개로 늘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제 위원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14명의 임원들이 위원회를 이루어 함께 이끌어가는 시스템이다.


‘큭. 재밌네.’


류지호는 이전 삶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한국인이 클레르몽-페랑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수상하는 것은 1993년 <호모비디오쿠스>다.

2000년대 후반에 가서는 한국의 재능 넘치는 젊은 단편영화감독의 수상 소식이 매년 들려왔던 것으로 기억했다.


[클레르몽-페랑 영화제는 새로운 흐름을 가늠케 하는 다양한 성향의 수작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야.]


이전 삶에서 류지호가 오동석에게 자주 듣곤 했던 말이다.

올해만 해도 50개국에서 뽑아온 300편의 영화가 10개의 상영공간에서 시사된다고 했다.

클레르몽-페랑은 대학도시다.

그런 덕분에 영화제가 학생층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학생 관객들은 지적이고, 분노에 차있으며, 굉장히 자존심도 세다.

만약 관객과의 대화가 열린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 ✻ ✻


류지호 일행은 호텔 르 리옹에 여장을 풀었다.

영화제 측에서 왕복항공권 2장과 호텔 객실을 제공했다.

호텔로 오동석과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 그리고 심선미가 찾아왔다.


“주 대리, 인사드려. 여기 류 감독님이 WaW의 회장님이셔.”

“안녕하십니까. 주태열입니다. 감독님!”


주태열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다소 통통한 체격에 검은색 뿔테의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첫인상은 전형적인 책상물림처럼 보였다.

류지호도 자신을 소개하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류지호입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선미씨도 오랜 만이에요.”

“네. 감독님.”


인사를 나눈 일행이 서로의 근황을 확인했다.


“학교 수업은요?”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했어요.”

“몇 개 듣는데요?”

“세 과목.”


심선미가 부럽다는 듯 설레발쳤다.


“우와! 날라리 대학생!”

“여러분이 몰라서 그래요. 얼마나 빡센 데요.”


류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하하하.

호호호.


몸서리치는 류지호의 모습이 우스운지 일행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2의 칸’으로 불리게 될 클레르몽-페랑의 필름 마켓은 5년 전에 문을 열었다.

영화제 5일 동안 수백편의 영화가 25개의 국제배급사들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오동석은 사전에 영화제 측에 WaW 부스를 신청했다.

구석자리의 작은 부스를 할당 받았다.

영화진흥공사나 한국 영화사들이 이곳에 관심을 기울이기까지는 아직 한참이 걸린다.

WaW 픽처스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라는 안정된 영화 공급처를 확보하자, 오동석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일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 제작된 단편영화의 해외 세일즈였다.


“오 실장, 단편영화는 많이 모아왔어요?”

“아카데미 학생들이 찍은 영화 몇 편 가져왔습니다.”


영화제 마켓에서 <<Help Me, Please>>를 세일즈 하는 김에 한국단편영화도 팔아 볼 생각이다.

따라서 오동석은 주로 영화 아카데미 졸업 작품 중 호평을 받은 작품 위주로 골라서 가져왔다.


“어떤 영화들을 가져왔죠?”

“<칸트씨의 발표회>, <백일몽>, <창수의 취업시대>, <가변차선>, <지하생활자> 그 외에도 서너 편정도 더 가져왔습니다.”


일부 작품은 이미 유럽에 소개가 된 한국단편영화들이다.


“판매 가격에 얽매이지 마세요. 일단 한국영화를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시고요.”

“저도 잘 팔릴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해외 바이어들에게 우리 영화를 노출하겠다는 마음으로 부스를 여는 겁니다.”

“좋아요. 여기 모인 관계자들 중 대한민국이 어디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겁니다. 개별적인 영화를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단편영화라는 걸 더욱 어필해 주세요.”


바이어 혹은 영화관계자에게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서 가져 온 영화를 소개하는 것과 어느 정도 문화적으로 성숙한 나라에서 가져온 영화를 소개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해외 영화제에 한국 단편영화들을 소개하다보면 이전 삶보다 훨씬 앞당겨 한국영화 부스가 자리를 잡을 터.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정부 부처가 나서지 않는다면 민간에서 할 수밖에.

WaW 픽처스가 잘되자고 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 ❉ ❉


9일간 열리는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다.

그럼에도 행사의 주 무대인 문화의 집 ‘장 콕토’ 실내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1,000석이 넘는 객석을 꽉 채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개막식은 두 번 반복해서 열렸다.

오전 8시에 그리고 10시에.

류지호와 일행은 두 번째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야! 행사가 겉치레 없이 깔끔하네요.”


심선미의 감탄 그대로다.

개막식이라고 하면 온갖 식순에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질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 곳 영화제는 달랐다.

심사위원들에 대한 짧은 소개와 주최 측의 영화제 절차에 대한 설명이 전부다.

그 대신 이 영화제 특유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젊은 감독들이 무대에 올라 강연 아닌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감독들이었는데, 오베르 뉴 지역의 실업자들을 대신해 자신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에 울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독립영화의 사회적 중요성과 시민연대 그리고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

불어를 알지 못하는 일행에게 주태열 대리가 그들의 열변을 간략하게 통역해 주었다.

그렇게 개막식을 시작으로 상영장마다 단편영화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티노와 말릭은 어떻게 할래요?”

“무얼 말입니까?”

“나는 인터뷰를 제외하고 주로 낮 시간 동안 영화를 보러 다닐 겁니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교대로 수행하겠습니다.”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 마켓에는 유럽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수십 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참가해 우수한 작품을 사갔다.

그를 통해 독립영화 감독이나 단편영화 감독들은 다음 작품의 제작비를 얻을 수 있었다.

단편영화의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전문 마켓이 존재함으로 해서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가 문화상품으로서 공급될 수 있는 길을 개척해온 셈이다.

반드시 상업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제작, 후원 등 단편영화 작가들을 위한 지원의 측면에 있어서도 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있다.

괜히 3대 단편영화제 가운데 첫손에 꼽는 것이 아니다.


✻ ✻ ✻


WaW 픽처스가 처음 부스를 열고, 하루 이틀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류지호의 <Help Me, Please>가 공식적인 영화제 상영 전에 클레르몽-페랑 필름 마켓의 '스페셜 스크리닝'에서 상영되자, 바이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일본 영화인가?

- 사우스 코리아 감독이 찍은 영화라던데?

- 좀비영화에 공포와 혐오 대신 부성애라니!

- 좀비를 다루는 건 매우 유연하고 변화무쌍한 괴물을 다룬다는 의미가 되지.

- 맞아. 요즘은 이 장르에서 점차 시대를 반영하고 있어. 초창기 좀비영화는 죽어서도 영혼이 다시 불려나와 좀비가 되는 이야기였어. 되살아나서까지 노예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공포가 가장 컸지.

- 좀비영화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군.

- 그래도 좀비가 이성이 있다는 설정은 억지 아닐까?

- 이성이 있다는 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거야. 이 감독은 인간의 숭고하고 따뜻한 마음을 죽음조차 어쩔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본질적인 것이 괴물이 되어서까지 육체에 각인 되어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나봐.

- 이 영화의 공포의 대상은 좀비가 아니야. 같은 인간이지.

- 군인들을 말하는 거지?

- 끔찍하군.

- 감독 본인이 살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풍자할 걸까?

- 그렇지 않을까?

- 저예산으로 대충 찍은 B급 영화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 영화의 품질도 훌륭해. 꽤 높은 수준의 영화였어.


단편영화 필름 마켓에서 <Help Me, Please>를 관람한 바이어들이 저마다의 감상을 늘어놨다.

그런 분위기는 다른 한국단편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충무로 영화도 칸에 가져가 팔고 싶은데, 우릴 믿지 못하나봐.”


오동석이 아쉬워했다.


“실망할 필요 없어. 모든 일은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트라이-스텔라가 도와줄 수 없어?”

“둘은 전혀 별개의 회사야. 난 WaW가 트라이-스텔라에 잡아먹히지 않길 바라.”


류지호는 단호하게 두 영화사의 포지션에 선을 그었다.

미국에서의 개봉은 당연히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전폭적으로 돕겠지만, 세계 시장은 WaW 픽처스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해외 필름 마켓에서 한국영화 배급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그것이 WaW 픽처스가 되는 것이 류지호의 바람이다.


“영화진흥공사는 어때?”

“형식적이지.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해야 하는데,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투니까.”


완전히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프랑스 문화원 측에서 부스를 열긴 했다.

한국에서 영화진흥공사 직원이 외유성 출장을 나와 있는 모양새다.


“개별적으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뭔가 힘을 모아 단일창구로 가는 편이 좋은데 말이지.”

“그러게. 우리영화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의 영화니까.”

“형, 5월에 열리는 칸 필름 마켓에 올해 흥행한 한국영화 몇 편 모아서 부스를 열어봐.”

“우리 같은 신생 배급사에 부스를 줄까?”

“일단 영화부터 모아 봐. 정 안되면 트라이-스텔라 부스의 귀퉁이라도 떼어 줄 테니까.”

“진짜?”

“올해 개봉한 몇 편의 영화는 좋은 가격은 못 받아도 충분히 해외 판매를 할 수 있을 거야.”


참고로 한국영화의 해외 판매 역사는 한국영화 역사에 비해 매우 짧다.

본격적으로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팔리기 시작하게 되는 것은 90년 중후반에 들어서다.

그때 가서야 한국영화가 상업적 가치가 있는 문화 상품으로 해외 시장에서 인식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영화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라고 류지호는 생각했다.

우리 영화에도 십년을 앞 서 간 예술을 추구한 감독의 작품이 있었고,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영화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영화제에 출품할 생각을 했어도 외국에 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류지호는 영화를 물건으로 비하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처음에 물건을 팔 때는 팔아봐야 어떻게 팔리고 얼마를 받을 수 있고 또 사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법이다.

시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고 이 정도로는 외국에서 거들떠도 안 볼 거야라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코미디 같은 현실은 이탈리아의 준포르노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는 그 영화보다 훨씬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한국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은 고품격의 영화를 만들어 해외에 팔아보지도 못하면서 저급한 영화를 사와서 극장에 배급하는 현실.


“영화를 모으지 못해도 좋아.”

“그럼 부스를 어떻게 열어?”

“WaW의 <하얀 메달> 선판매. 시네 누보에서 기획하고 있는 <결혼 생활> 선판매. 굳이 완성된 영화만 판다는 생각은 버려.”


흔히 영화의 해외 세일즈는 완성된 영화를 수출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영화 제작의 여러 단계에서 판매가 가능했다.

감독과 배우 혹은 장르나 스토리 등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있다면 훨씬 이른 단계에서부터 판매가 가능했다.

오동석은 류지호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했다.


“외국 영화사들이 하는 것처럼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 시장 문을 두드려보자는 거지?”

“만약 해외 바이어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소재와 배우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해외 시장을 염두하고 준비할 수 있잖아. 바이어들을 통해 해외 시장의 요구를 알 수 있고, 그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임선택 감독님이나 강주연씨 같은 경우는 유럽에서 약간의 인지도가 있으니까.”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경력이 있는 두 사람이다.

해외 업계 관계자들은 그들의 출신국가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연출했거나 출연한 영화는 대강 알고 있다.

큰 메리트다.


“보통 칸 마켓에서는 해외 펀딩이나 선판매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

“보통 열장 내외의 분량으로 시나리오를 요약한 영문 트리트먼트(Treatment)와 콘티(Continuity) 혹은 콘셉트 비주얼 같은 선재(Material)를 노출하는 편이야. 이미 촬영에 들어갔다면 한 5분? 10분? 그 정도 길이의 홍보 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하더라. 대개 시나리오를 영문으로 번역해 바이어에게 제공하는 것 같은데,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서 반응은 미적지근한 것 같더라고.”


류지호가 이전 삶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경험한 것과 동일했다.


“우리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꾸준히 해외 모든 필름 마켓에서 WaW를 노출하자.”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내가 어떻게든 지원할게.”

“에휴! 괜히 단편영화를 여기서 팔자고 해서는....”


오동석은 일 년 내내 해외 영화제만 돌아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생각해 봐. 제작 과정에서부터 해외 마케팅과 세일즈에 필요한 선재 일정을 공유하고, 국내 마케팅과 동시에 진행한다면 비용 절감이 될뿐더러, 후반 작업에 여유를 갖고 해외 배급 파트와 의논해서 해외용 마스터를 만들 수 있겠지? 그렇다면 선재가 해외에서 품질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거야.”

“트라이-스텔라나 하는 걸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모르면 배워. 주 대리는 불어 말고 영어는 좀 해?”

“당연하지. 저 놈은 일본어도 할 줄 알아.”


류지호가 대견하다는 듯 오동석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야아. 우리 동석이형 인복 있네?”

“인복이 아니라 월급의 힘이야. WaW만큼 월급 주는 영화사가 어디 있냐?”

“안 망해. 걱정하지 마.”

“돈 벌 생각을 해야지. 류 감독은 돈 쓸 생각 밖에 안하니까 그렇지.”

“작년에 겨우 두 편 수입해서 배급했는데, 매출이 어떻게 되더라?”

“60억 조금 못 되지 아마.....?”

“것 봐. 단 두 편이야. 올해는 최소 다섯 편이고.”


작년 연말에 개봉해 아직 극장에 걸려있는 <토탈 리콜>을 빼고 올린 매출이다.

극장과 나누고, 문예진흥기금 같은 것도 떼고, 세금 떼고, 수입 비용, 배급비용 등을 모두 제하고 난 WaW 픽처스의 순수익은 7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사실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UPI가 직배한 <사랑과 영혼>의 경우 서울에서만 160만 명을 동원했음에도 순수익을 6억 원으로 예상하는 상황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UPI는 WaW 픽처스보다 광고마케팅 비용을 몇 배 이상 쓰고, 세금을 더 많이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류 감독, 과연 한국영화가 제 값을 받을 수나 있을까?”

“영화 수출의 중요한 특징이 뭔 줄 알아?”

“글쎄?”

“영화가 문화 상품이라는 거야. 문화 상품은 단순히 수출 가격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여러 가치를 창출해. 단발 이벤트인 올림픽과는 다른 긍정적인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대외에 알릴 수 있어. 물론 우리 문화와 역사도 알릴 수 있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을 생각해 봐.”


미국이 할리우드라는 영화 공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전 세계에 어떤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라는 문화 상품은 그 나라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강력한 대중 흡인력을 가진 매체다.

이전 삶에서 2020년 전후로 그 위력을 전 세계에 증명한 것이 한국의 문화콘텐츠다.


“최대한 많은 국가에 팔리는 게 그래서 중요해. 한국이란 나라를 대외에 알리는 것.”


한국영화 수출 실적을 단순히 가격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인식을 바꿔야했다.


“처음부터 크고 높게 이상을 잡을 필요는 없어. 우리와 인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비슷한 공감대가 있는 국가부터 팔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일본, 홍콩, 대만 같은 나라.”

“걔들이 우리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들지 않냐?”

“형은 마켓에서 각국에서 엄선 된 영화만 보니까 그렇지. 걔들 나라에서 제작되는 모든 영화가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충무로도 1년에 80여 편 가까이 제작되지만, 관객이 볼 때 영화 같다고 느끼는 영화는 10편도 채 되지 않잖아.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오동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주 대리 레벨의 언어능력자를 구하기 쉽지 않겠지만, 해외 배급팀에 기본적으로 영어가 되는 직원 몇 명 더 보강해. 내가 트라이-스텔라의 스탠 크레이그에게 말 해 둘 테니까. 다음 달에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부터 그들을 따라다녀 봐.”

“스탠 크레이크는 북미 담당 아니었어?”

“이번에 해외 파트로 자리를 옮겼어.”

“콜롬비아스와 제휴라며?”

“올 해 안에 프랑스에 지사를 내보려고.”

“허 참! 트라이-스텔라 진짜 잘 나가는 구나?”


오동석의 말처럼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발걸음을 빨리하고 있다.

반면에 WaW 픽처스는 이제 막 걷는 법을 알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먼 길을 가려면 여행 준비를 단단히 하고 떠나야겠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처럼 WaW 픽처스 역시 한 발 더 앞서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쉽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쨌든 WaW 픽처스의 한국영화 세계 배급의 시작은 단편영화 판매부터다.

몇 년 후부터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그 선두에 WaW 픽처스가 자리하고 있을 터.


✻ ✻ ✻


영화제 마지막 날 프랑스 국내외 본선작 중 수상작품들이 결정되었다.

<바다를 보지 않고, 디에프로 가라>.

대상 작품(Grand Prix)의 제목이다.

류지호로서는 정서적인 차이 때문인지 강렬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수상작의 수준이 시카고국제영화제보다 높은 느낌이 들었다.

<Help Me, Please>는 심사위원 청소년상(Youth Jury Prize)과 관객상(Audience Prize) 두 개 부분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축하해요.“


축하 인사를 건네는 WaW 픽처스 직원들 가운데 심선미가 공연히 성을 냈다.


“대상도 받을 수 있었는데! 편파적이야!”


류지호가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여러분.”


두 번째 단편영화제 수상.


‘변변치 않은 상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상복이라도 생겼나?’


처음 영화제에서 수상할 때만 해도 류지호는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처럼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자신의 소유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서 워낙 대단한 영화들을 다루다 보니, 눈이 높아진 모양이다.

단편영화의 러닝타임이나 표현방식의 한계에서 아쉬움이 컸다.

그럼에도 공부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학교로 돌아가면 영화부터 찍어야겠어.’


매년 한 편씩 찍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가고, 어느 순간 비즈니스에만 몰두한 것 같았다.

좋은 소식은 이것만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답게 냉철하면서 다소 손익계산을 따지는 분위기였는데, <Help Me, Please>가 미국 산 좀비영화와 결이 다른 방향성으로 좀비를 다루는 이탈리아 쪽 관계자들이 흥미를 보였다.

프랑스의 카날 플러스와, 스페인의 아르테 방송사, 미국의 아톰필름 등이 <Help Me, Please>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보였고, 단편채널을 갖고 있는 일본의 Man Union 역시 판권구매를 문의해 왔다.

결국 <Help Me, Please>를 포함해 세 편의 한국단편영화가 판매되었다.


“오 실장.”

“네. 감독님!”

“한국으로 돌아가면 <Help Me, Please>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선물 돌리세요.”

“기념품이요?”

“그건 그것대로 준비해 가시고, 뭔가 각자 필요한 것들로요.”

“각자 필요한 거?”

“참여 스태프 숫자도 많지 않으니까, 20만 원 선에서 영화제 수상 기념 선물을 해주세요.”

“상금이 얼마나 된 다고요?”

“축하회식 한 번 하고 끝내면 잠깐 즐겁고 말잖아요. 그렇다고 소액 현찰을 돌리는 것도 이상하고요.”

“알겠습니다.”


함께 노력하고 일하며, 함께 나눈다!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가 추구하는 정신이다.

류지호는 <Help Me, Please>의 마무리를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가 받은 이 영화제에서의 상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니까.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일해서 얻은 소중한 성과이자 그것에 대한 칭찬이기에.


작가의말

날씨가 좋습니다. 그럼에도 야외에서 마스크 안 쓴 사람 찾기가 힘듭니다. 마스크 벗으려면 괜히 눈치가 보입니다. 가을에 더 쎈 놈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던데...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5 Life Goes On. (2) +7 22.06.07 6,014 193 25쪽
184 Life Goes On. (1) +9 22.06.06 6,198 194 26쪽
183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3) +7 22.06.04 6,155 200 22쪽
182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2) +10 22.06.03 6,215 190 26쪽
181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1) +8 22.06.02 6,276 169 23쪽
180 가진 것이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3 22.06.01 6,293 191 27쪽
179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2) +9 22.05.31 6,255 177 25쪽
178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1) +6 22.05.30 6,401 177 23쪽
177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4) +7 22.05.28 6,362 181 26쪽
176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3) +9 22.05.27 6,308 181 25쪽
175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2) +4 22.05.26 6,287 179 21쪽
174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1) +13 22.05.25 6,429 184 24쪽
173 우리는 항상 승자 쪽에 있어야 한다! +5 22.05.24 6,495 180 25쪽
172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5) +11 22.05.23 6,515 200 24쪽
171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4) +7 22.05.23 6,257 165 21쪽
170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3) +8 22.05.21 6,673 177 25쪽
169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2) +7 22.05.20 6,638 188 25쪽
168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1) +6 22.05.19 6,668 179 23쪽
167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7) +9 22.05.18 6,280 191 24쪽
166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6) +5 22.05.17 6,336 167 23쪽
165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5) +7 22.05.16 6,328 174 23쪽
164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4) +6 22.05.14 6,379 176 21쪽
163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3) +6 22.05.13 6,367 159 22쪽
162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2) +9 22.05.12 6,541 172 22쪽
161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1) +9 22.05.11 6,715 179 22쪽
»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8 22.05.10 6,774 182 25쪽
159 괜찮은 인디배급사 하나 인수합시다! +14 22.05.09 6,875 182 30쪽
158 부자(父子)에게 부자(富者)란..... +8 22.05.07 6,895 184 23쪽
157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3) +6 22.05.06 6,866 187 26쪽
156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2) +9 22.05.05 6,863 191 2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