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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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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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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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 솔직히 말해.... 풋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류지호는 얀 호퍼가 장난을 하는 줄 알았다.


- 그런데 그의 부친과 인연을 맺어두면 좋습니다.

“뭐 하는 분이죠?”

- 캐나다 미디어업계에서 꽤 유력자입니다.

“캐나다라.....?”


캐나다는 무역 80% 이상을 미국에 의존 할 뿐만 아니라 국제전화 코드와 운전면허도 상호 공유할 정도로 미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있어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최근에는 벤쿠버가 노스 할리우드(North Hollywood)라고 불릴 정도로 할리우드 프로덕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몬트리올 또한 할리우드 영화와 TV시리즈 단골 촬영지로 부상하고 있다.


- 맥머란 요스트란 분이 있습니다. 캐나다 방송가에서는 알아주는 인물입니다. TV온타리오의 사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이사회 일원이기도 합니다. 특히 캐나다 CBC 방송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보스에게 소개시켜 줄 친구는 그의 아들 존 요스트라는 각본가입니다.

“내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쓴 것이 뭐가 있습니까?”

- CBC에서 방영한 <Hey Dude>, 현재는 <Be That Powers>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류지호가 모르는 드라마다.

캐나다 TV시리즈까지 꿰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혹시 내게 개인적인 피칭을 하길 원합니까?”

- 아닙니다, 영화 스크립트를 직접 전달하고 싶어 합니다.

“호퍼씨과 각별한 사이입니까?”

- 그의 부친인 맥머란과 친분이 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인맥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공식적으로 류지호의 신분이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서 사귄 지인들을 통해 이 같은 청탁 아닌 청탁을 심심찮게 받고 있다.

또한 동부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감독들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대신에 뉴욕의 Garam Invest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파라맥스 인수 이후로 매튜까지 동부 영화인들과 잦은 미팅을 하고 있다.


“한국에 다녀와야 합니다. 그 전에 미팅을 잡아 보세요.”

- 알겠습니다.


❉ ❉ ❉


며칠 후 곧바로 캐나다 출신 각본가와 미팅이 잡혔다.

베벌리힐스의 한적한 카페테리아에서 류지호는 얀 호퍼와 함께 30대 초반의 수더분한 인상의 백인 남자와 만남을 가졌다.

청바지에 푸른색 캐주얼 정장 재킷을 차려입은 남자의 첫인상은 마치 대학원생 같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존 요스트라고 합니다.”

“지호 류입니다. 반갑습니다.”


간략하게 인사를 나눈 일행은 소소한 이야기로 첫 대면의 어색함을 풀어냈다.

20여 분간 대화가 오가다가 존 요스트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 각본의 최초 아이디어는 <Runaway Train>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영화는 원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아이디어였는데, 탈옥한 죄수가 알래스카 횡단 기차에 올라탄 후 기차가 통제 불능 상태에서 폭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류지호가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폭주하는 기관차를 다룬 앤소니 스콧 감독의 <언스토퍼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통제 불능 상황을 LA로 옮겨왔습니다. 기차 대신 버스가 등장하는 거죠.”

“......!”


류지호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했다.

폭주하는 기관차 대신 폭주하는 버스.

허허벌판의 알래스카가 아닌 미국 제2의 도시 로스앤젤리스.

여기까지 들으면 생각나는 영화는....!


“사이코패스가 LA의 노선버스에 폭탄을 장치해 놓고, 자신을 감옥에 보낸 LAPD에게 전화를 겁니다. 시속 50마일 이하로 버스의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하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협박을 하는 겁니다. 폭탄으로부터 승객들을 구출해야 하는 LAPD 요원은 위험천만한 버스를 몰고 러시아워의 LA시내를 좌충우돌합니다.”

“......!”


확실했다.

케이아누 립스와 아네트 불럭, 데니스 호퍼가 출연한 바로 그 영화.


“워킹타이틀이 뭡니까?”

“시속 50마일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것에서 착안했습니다. 초고를 쓸 때는 시속 20마일이었는데, 제 친구 중에 한 녀석이 그건 너무 느리다고 하더군요. 하하”


류지호는 존 요스트의 장황한 설명을 들으며 타이틀을 떠올렸다.


“스피드(Speed)라고 붙였습니다.”


역시나!

류지호는 <스피드>의 정확한 박스오피스는 모른다.

다만 초대박 영화였다는 것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제작비의 거의 10배 수익을 얻는 영화다.


“.....!”


존 요스트는 입안이 말랐다.

갑자기 류지호가 말도 없어지고 인상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무려 1년에 걸쳐 스크립트를 썼다.

캐나다에서 TV·영화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스크립트다.

약간의 피칭만으로 단박에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랬건만.

상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존 요스트의 몸을 달았다.


“직관적이죠? 속도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상황, 시속 50마일을 유지해야 버스가 폭발하지 않는 등, 최소 속도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이전 삶의 기억을 헤집어 영화 한편을 찾아낸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혹시 <총알 기차>라는 일본 영화를 알고 있습니까?”

“일본 영화.... 말입니까?”

“나는 <Runaway Train>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일본 영화 <총알 기차>는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모티브도 시속 50마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류지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93년까지 자신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서 영화선택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물론 대주주로서 밀어붙일 수는 있다.

모리스 메타보이를 포함한 임원들의 신뢰를 깨는 행동이었지만,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


‘어떤 핑계를 대고 개발을 시작하자고 하지?’


무턱 대고 ‘이거 합시다’는 통하지 않는다.

영화판에서 닳고 닳은 노련한 사람들.

베테랑이라는 프라이드까지 무척 강한 이들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임원들이다.

그들의 책상에 수많은 시나리오와 아이디어들이 올라온다.

그 안에서 엄선하고 엄선된 것들만 영화로 만들어진다.


‘감이 왔어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논리다.


“됐어. 핑계 대 봤자. 의미 없고 이럴 때는 직접적인 방법을 쓰는 게 최고지.”


불현 듯 한국말로 중얼거린 류지호에게 두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아! 미안합니다. 요스트씨 혹시 스크립트 보여줄 수 있습니까?”


존 요스트가 망설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2주 안에 요스트씨의 프로젝트에 대한 트라이-스텔라의 입장을 알게 될 겁니다.”

“미스터 류는 긍정적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의 아이디어에 흥미가 동합니다. 그래서 스크립트를 읽고 싶은 겁니다.”

“잠시만.....”


존 요스트가 가방을 뒤져 두툼한 종이뭉치를 꺼냈다.

할리우드 스크립트 양식에 맞춰 타이핑한 문서다.


“당신의 소중한 스크립트,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캐나다 방송업계 유력자 아들과 친분을 쌓는 것은 저 멀리 사라졌다.

류지호는 웨스트우드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존 요스트가 쓴 <스피드>의 스펙 스크립트를 펼쳤다.

꼼꼼하게 읽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자신의 기억과 달랐다.

하지만 전반적인 플롯은 동일한 것 같았다.

어차피 윤색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 삶의 영화와 비슷해질 것이다.


“알아서 찾아온 복인데 발로 찰 필요는 없지.”


곧장 모리스 메타보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 온 답은 예상대로다.

불가.


“그렇단 말이죠? 이 스크립트는 파라맥스로 갑니다.”

“잠깐!”

“내일 트라이-스텔라로 스크립트를 보낼 테니까, 임원들은 한분도 빼먹지 말고 읽어보세요. 기획개발팀에서는 읽을 필요 없습니다.”


류지호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파라맥스 인수는 신의 한수였어. 앞으로 트라이-스텔라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면 미련 없이 파라맥스에서 제작해야지.’


<스피드>의 각본을 읽어본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임원 대다수가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류지호의 협박 아닌 협박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모리스 메타보이와 임원들은 머리가 복잡했다.

잘못하면 마음에 드는 프로젝트를 두고 파라맥스와 경쟁하게 생겼으니까.


“일단 개발부터 시작하세요. 그린라이트는 슈팅 스크립트, 감독, 주연 캐스팅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그때 가서 논의하는 걸로 하고요.”


그렇게 또 하나의 영화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여담으로 <스피드>가 촬영에 들어가기까지는 대략 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할리우드 평균 기획개발 기간이다.


❉ ❉ ❉


“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지만, 운 있는 놈은 가만히 있어도 횡재수가 생긴다고 하더니!‘


요즘 류지호는 신의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스피드> 스크립트가 자신에게 제 발로 찾아오더니, 또 한 편의 대단한 영화가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사연은 이랬다.

류지호가 G&P 최고위직 앞에서 투자설명회를 한 후로 매튜와 어울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 매튜는 뉴욕에서 열린 다양한 파티에 류지호를 데리고 다녔다.

파티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 상류층 자제들, 그리고 망나니까지 어울렸었다.

존 자무슈와 고언형제 같은 독립영화 감독들과 친분을 다지기도 했고, 해리 맥코트 같은 사진예술가와도 친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괴짜들과 안면을 익혔다.

그 중에 뉴욕의 타워레코드에서 일하는 무명작가와 안면을 튼 적이 있었다.

무명작가의 이름은 앤디 K 워커(Andy Kevin Walker).

그는 타워 레코드에서 일하며 열심히 할리우드 각본가로서 꿈을 키워 나갔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대로는 영영 영화와 멀어질 것 같았다.

앤디 워커는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LA로 이사를 와버렸다.

스스로를 절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류지호가 할리우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매튜 그레이엄과 연락이 닿은 앤디 워커는 류지호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간청했다.

마침내 웨스트우드 GARAM Ventures 사무실에서 류지호와 마주하게 됐다.


하하하.


솔직히 류지호는 앤디 워커를 기억하지 못했다.

워커도 눈치 챘다.

그렇다고 내색할 순 없었다.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 일이니까. 고마워 할 필요 없어.”


앤디 워커가 조심스럽게 꺼낸 스크립트.

공포 스릴러 장르의 <Hideaway>다.

류지호는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스크립트다.


“이 스크립트는 파라맥스 자회사 디멘션에 더 어울릴 것 같아.”


류지호가 보기에 <Hideaway>는 그 정도 사이즈의 영화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 글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니....!”

“난 누가 되었든 흥미를 끄는 스크립트라면 언제든지 사줄 의향이 있어. 그것만 명심해.”

“고마워. 지호.”


앤디 워커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할리우드 영화사와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이 대단하다고 볼 수 없지만.

진짜 앤디 워커의 승부수는 따로 있었다.

B급 장르영화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폼 나는 영화.


“지호와 어떻게든 친해져야겠는데.”


류지호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자 앤디 워커의 마음이 급해졌다.

뻔질나게 웨스트우드 GARAM Ventures 주변을 맴돌았다.

지난 2년 동안 힘들게 작업했던 시나리오가 있다.

정말 심혈을 기울였다.

흥미를 보이는 영화사가 단 한곳도 없었다.

범죄스릴러 영화 각본가들의 에이전트 명단을 만들었다.

앤디 워커는 에이전트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까지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사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파라맥스에서 이미 거절당했다.

그러지 않아도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 많은 영화 스크립트가 접수되고 있었다.

투자의향서와 독립 프로듀서들의 피칭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의 영화에 관심을 가져줄 리가 없었다.

때문에 류지호에게 다시 부탁하기 망설여졌다.


“뉴욕에서 듣던 거와 완전 딴 판이네.”


Garam Invest가 인수하기 전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오라이언이나 파인라인 시네마보다 한 단계 처지는 배급사로 인식되었다.

메이저인 콜롬비아스 픽처스에 빌붙어서 그럭저럭 버티는 수준.

이제는 아니다.

작년 연말부터 투자·배급한 영화들이 연이어 큰 흥행을 이루자, 빅6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들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쏟아져 들어왔다.

<늑대와 춤을>과 <나 홀로 집에> 흥행이 그런 분위기에 디딤돌을 놓았고, 파라맥스 인수가 쐐기를 박았다.

이제는 미니 메이저급에서 제일 먼저 찾는 영화사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된 것이다.

류지호는 몰랐지만 영화인들 사이에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문턱이 조금 높아졌다.


“어떤 핑계를 대고 친해지지?”

“그냥 그 주주라는 청년에게 스크립트를 보여줘.”

“그러다가 지호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난 그가 내게 실망할까봐 겁나.”

“그 청년이 소유한 영화사가 세 개라며? 다시 디멘션 필름이라도 소개시켜 주겠지.”

“그럴까?”

“네가 쓴 글에 자신감을 가져. <Hideaway>를 15만 달러에 계약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최소 2,000만 달러짜리 예산의 영화란 말이야.”

“겁먹지 마. 내가 듣기로 그 대주주라는 청년은 자기 마음에 들면 망설이지 않고 9,000만 달러짜리 영화도 돈을 대는 사람이라더라. 고언형제 영화에 1000만 달러를 그 자리에서 결정했대. 일단 보여줘 봐.”


LA에서 사귄 영화 관계자가 앤디 워커를 격려했다.

그렇게 해서 류지호에게 스크립트 하나가 전해졌다.

스크립트 표지에는 칠죄종(septem peccata capitales)이라고 적혀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류지호는 바로 무슨 영화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스크립트 역시 그가 기억하는 것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이름이 윌리엄 소머셋과 밀스라는 것.

모를 수가 없다.

스릴러 영화의 형식을 바꿔버리게 될 영화.

바로 <Se7en>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류지호는 당장 앤디 워커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건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상의할 것도 없다.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섭외하세요. 감독은 그가 아니면 안 됩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친 류지호파 임원들조차 그런 류지호를 걱정했다.

연이은 성공에 도취해 폭주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한 것이다.


“파라맥스로 보내겠습니다.”

“잠깐!”


모리스 메타보이는 <Se7en> 스크립트를 UCLA 맥도웰 교수에게 보냈다.

멕도웰 교수는 매우 꼼꼼하게 리뷰를 보내왔다.

류지호라고 가만있지 않았다.

다소 허술한 앤디 워커의 스팩 스크립트의 각색 방향과 감독, 캐스팅 안, 마케팅 포인트까지 서술한 리포트를 작성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임원들에게 보냈다.


“직접 프로듀싱 하려고?”

“크레디트 주시게요?”

“일단 비밀보장이 확실한 리뷰어들에게 스크립트 돌려보고 판단하도록 하지. 괜찮지?”

“그러세요. 트라이-스텔라가 아니더라도 파라맥스로 보내면 되니까.”


류지호가 강력하게 밀자, 임원들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 역시 제작을 시작하는데 거의 3년이 걸리게 된다.


“Jay. 자넨 이런 프로젝트를 다 어떻게 주워 오나?”

“예전에 알게 된 인연들이 찾아오네요.”

“아무 거나 주워 먹지 말게. 친한 척 접근하는 놈들 대부분이 사기꾼이란 걸 명심하고.”

“그런 말씀하시기 전에 스크립트를 꼼꼼하게 검토 좀 하세요.”


류지호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스크립트 숫자에 매몰되어 메이저 스튜디오 흉내나 내지 말고!”


❉ ❉ ❉


넝쿨째 굴러온 복들을 모조리 챙겨서 배가 부른 류지호는 뉴욕으로 날아왔다.

롱아일랜드 파커 저택부터 들러 윌리엄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파커 저택은 변함이 없었다.

그대로라는 것은 발전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가정에서는 평안하다는 뜻이 된다.

윌리엄이 정정하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평온한 파커 분위기를 확인한 류지호가 안심하고 맨해튼에서 일을 봤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Garam Invest의 투자부분을 점검할 계획이다.


“작년 하반기에 월 평균 870만 부를 판매한 이후로 올해 들어 예년 수준인 630만 부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마 6~18세 연령대가 방학을 하면서 코믹스 판매가 최고점을 찍게 되면 다시 89년 월 평균 판매부수 670만을 다시 회복하긴 할 것 같습니다.”


Garam Invest의 노아 시거가 타임리 코믹스의 최근 판매 실적에 대해 설명했다.


“작년 코믹북 판매만으로 7,000만 달러 매출을 기록했군요?”

“지난 해 타임리 코믹스의 라이선스 수입과 출판 수익을 포함함 총수익이 대략 8,110만 달러, 순이익은 대략 540만 달러입니다. 올해는 매출이 대략 21%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만화책 회사가 타임리 코믹스다.

그런 기업의 연매출이 대략 8,000만 달러에 순이익이 500만 달러가 넘는다.


‘그런 회사가 어쩌다가 파산을 하게 된 것인지. 쯧.’


로니 페럴만 같은 기업사냥꾼이 장난질을 쳐서 그렇다.

어쨌든 타임리 엔터프라이즈가 7월 15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18달까지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얼마나 확보했습니까?”

“Garam Invest, G&P가 각각 2달러에 모두 21%를 확보했습니다.”

“로니 페럴만은요?”

“60%입니다. 이번 상장으로 대략 8,200만 달러를 모았지만 대부분 부채를 상환하거나 페럴만의 회사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페럴만이 타임리를 인수할 때 은행에서 5,000만 달러 이상 끌어왔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상장을 통해 배당 받은 자금으로 그 부채를 탕감하고 보유주식 5% 정도를 더 처분해서 투자금의 대략 5배 정도를 회수하지 않을까 합니다.”

“페럴만이 곧바로 Exit(투자금 회수)하진 않는 모양이군요?”

“아직은 그의 성에 차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최대 10배까지 이득을 보고 털지 않을까 합니다.”

“팔라고 하면 안 팔겠네요?”

“적어도 타임리를 10억 달러까지 키울 겁니다.”


류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노아 시거가 눈빛을 반짝거렸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생각하십니까?”

“페럴만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그와 돈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아요. 그쪽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시간을 두고 최대주주가 되는 걸로 합시다. 최대한 많이 모아두세요.”


공연히 타임리 코믹스를 놓고 악명 높은 기업사냥꾼 로니 페럴만과 진흙탕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

파산보호 신청을 할 즈음에 나서도 늦지 않다.


‘돈 벌기 참 쉬워.....’


Garam Invest가 하는 투자라고 쓰고 돈 넣고 돈 먹기라고 읽은 행위들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사업 쪽에서 아등바등 대면 기록한 수입보다 돈놀이로 버는 수익이 훨씬 크니까.

때로는 크게 잃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체로 돈을 따는 편이다.

마치 도박판 같다고 할까.

이쪽 테이블의 칩이 저쪽 테이블로 갔다가 또 다른 테이블로 옮겨다는.

어떤 부가가가치도 창출하지 않고 기존 가치만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따로 보고를 받아도 되는데, 굳이 뉴욕까지 날아올 필요는.....”


류지호의 귀국길의 선물이라도 주려던 것일까.

데본 테럴이 뉴욕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류지호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바로 본 아이덴티티(Bourne Identity) 영화판권이다.

1980년에 출간된 로버트 루들럼(Robert Ludlum)의 동명 스파이 소설의 영화권리를 데본 테럴이 확보했다.

그뿐 아니라, 1986년에 출간된 속편 <Bourne Supremacy>와 <The Bourne Ultimatum>도 함께 확보했다.

사실 지난 1988년에 워너에서 TV시리즈로 만들어 방영했다.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실제 스파이 세계(?)를 경험한 CIA 출신 데본 테럴이 로버트 루들럼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루들럼은 빨리 영화가 만들어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계약은 어떻게 체결됐죠?”

“10년 안에 영화를 제작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그 기간에 제작이 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영화판권 전체가 원작자에게 돌아가는 계약입니다.”

“이 영화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우리만 알고 있도록 해요.”

“얼마나 숨겨야 하는 겁니까?”

“대략 7~8년 정도....?”

“보스가 직접 연출할 생각입니까?”


데본 테럴로서는 당연한 질문이다.

그 시기 쯤 되면 보스 류지호가 대학을 졸업할 시기니까.


“글쎄요.”


류지호는 이 영화를 자신이 연출할 생각이 없었다.

기억상실에 걸린 스파이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류지호가 연출을 해봐야 원래 감독이 했던 걸 흉내 내는 수준일 테고,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봐야 컴퓨터 그래픽을 넣는 정도일 것이다.

자신이 굳이 연출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게 될 때까지 허튼 짓 하지 않고 정진한다면 자신은 꽤 성장해 있을 터.

지난 삶에서 성공한 영화라고 해서 덥석 메가폰을 잡을 이유가 없다.


❉ ❉ ❉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철저한 성과주의로 살아간다.

20만 달러의 고액연봉을 받는 매니저도 성과에 따라서 연봉의 10~20배를 가져가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한 성과금을 받는 매니저들이 맨해튼 최남단에만 5,000명 이상이 깔려 있다.

그들의 학력은 기본 아이비리그 급이다.

G&P에는 그런 엘리트들이 수백 명이나 근무하고 있다.

Garam Invest로 스카우트 된 몇 명도 그랬다.


G&P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트레이더들과 각 분야별 매니저들.

그들은 단기·장기 상관없이 수천만 달러를 다룬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인물은 수십 억 달러 단위의 돈도 다룬다.

그 특별한 인물이 바로 제임스 파커다.

매튜는 그런 제임스와 류지호를 향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그렇게 살면 숨 안 막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서류를 들춰보고 있던 류지호가 영화 제목에 빗대어 대답했다.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렸어. 내 인생은 앞으로 쭉 서류와 함께 춤을 춰야 돼.”


마침 류지호가 보고 있는 서류가 북미 극장에서 모든 상영을 마친 <늑대와 춤을> 결산서다.

제임스가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보탰다.


“그냥 앞만 보고 나가는 거지. 별 수 있겠어?”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건강도 챙겨. 젊다고 몸을 막 굴리며 늙어서 골골댄다.”

“누구만 할까?”


제임스가 가소롭다는 듯 되물었다.

마약에 찌들었던 매튜의 과거를 꼬집는 것이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 동생이 가르쳐준 숨쉬기도 열심히 하고 있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마다 조깅도 한다고.”


류지호가 피식 웃었다.


“LA에 머물 때는 조깅은커녕 단전호흡 한 번 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네가 안 보이는 데서 했어.”

“그렇다고 해 둘게.”

“진짜라니까!”


탁.

제임스가 확인을 마친 마지막 서류를 덮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소파로 걸어오며 뜬금없이 앓는 소리를 했다.


“도대체 너하고 뭔가를 도모하면 내 심장이 견딜 수가 없다.”


류지호 역시 서류를 덮으며 마주앉는 제임스에게 물었다.


“웬 엄살이에요?”

“내 심장 뛰는 소리 한 번 들어볼래? 운동 좀 해야지 이거 원. 운동해서 심장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

“단일 프로젝트에 10억 달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투자하시는 분이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래요?”


제임스가 보던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영화 쪽 말고.....”


류지호가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한 얼굴로 쳐다봤다.


작가의말

오늘부터 매일 9시에 올라옵니다. <어쩌다 배우>를 완결해서 여유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자주 연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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