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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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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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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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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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얼핏 보면 그저 되는 대로 카메라를 대고 찍는 것 같다.

그런데 류지호가 찍는 영상에는 분명 어떤 규칙과 콘셉트가 있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연상시키는 네온사인이나 디자인 혹은 소품들만을 골라서 화면에 담고 있었던 것.

그렇다고 해서 한인타운의 한글 간판을 촬영하진 않았다.

다양한 언어로 된 네온사인 간판 가운데 최대한 한글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것들만 찾아 닥치는 대로 촬영을 했다.

LA 다운타운의 다양하고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모자라 5~6시간 떨어져 있는 라스베이거스도 다녀왔다.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날씨, 가시거리, 미적인 부분 등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화이트밸런스를 반대로 맞춰서 찍어보기도 했다. 포커스와 노출 장난도 쳐보았다.

거창하게 포장하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했다.

사실은 장난에 가까운 초단편 영상물이다.

타이틀은 <Quiz>.

3분 분량의 이 영화는 대사나 효과음이 전혀 없다.

오로지 Joy의 ‘Touch by Touch’ 노래만 삽입되어 있다.

한글을 연상시키는 모양에서 관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잠시 정지화면, 그 사이에 삽입되는 네온사인은 포커스가 흐리거나,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노출이 안 맞거나...

얼핏 보면 엉망진창으로 찍은 커트들이 의미 없이 나열처럼 보인다.

영화라기보다는 비디오 아트(video art)에 가깝기도 하고.


[Do it just do it night and day

(밤낮으로 사랑을 나누어요, 나누어요.)

You are my all time lover

(당신은 나의 영원한 연인이에요.)

Do it just do it in a way

(밤낮으로 사랑을 나누어요, 나누어요.)

Like there is no other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Touch by touch

(당신의 손길)

You are my all time lover

(당신은 나의 영원한 연인이에요.)]


‘ㅅ’을 연상시키는 영어 알파벳 ‘L‘의 그리스어 ‘Λ’ 이 몇 초 보인다.

이어서 ‘ㅓ’를 닮은 사물이나 구조물을 촬영한 영상이 나온다.

다시 영어 알파벳 ‘O' 를 보여준다.

이 셋을 합치면 한글로 ‘성’이 되는 식이다.

그렇게 자음·모음이 조합되는 영상이 모두 끝이 난다.

때로는 그런 영상이 오버랩 화면으로 보이며 명확하게 글자를 인식하도록 배려했다.

조금 모호한 글자는 원형으로 화면이 좁아지며 화면이 전화되는 기법인 아이리스 아웃 (IRIS OUT)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이리스 아웃 화면 전환은 다른 장소나 상황, 영화의 시작과 끝 등에 주로 사용되는 편이다.

류지호는 그 같은 전통적인 사용법을 모두 무시했다.

러닝타임 3분이 모두 흘러가면 화면이 페이드 아웃(F.O) 된다.

그렇게 암전 된 화면에 한글로 두 줄의 문장이 만들어진다.


[성기는 족보 쓰는 신성한 필기구다.

낙서하지 말자, 다시는.]


시인 함민복의 ‘우울氏의 一日’ 중 ‘자위’라는 시다.

그 아래에 친절하게 영어로 번역한 문장도 넣었다.

영어로 단어를 조합하는 건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시인의 풍자와 해학의 맛이 살아날 것 같지 않았기에.

남들에게 평가받을 생각으로 촬영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본인만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이 한 말이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에 영화의 미래는 항상 단편영화에서 태어난다.

미래를 이끌 만큼의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단편영화.

류지호가 찍은 것은 그런 영화가 결코 아니다.

촬영 연습하면서 재미로 찍은 영화일 뿐.

그런데 훗날 UCLA 기숙사촌에서 <Quiz>의 시구가 전설적인 격언으로 전해지게 된다.

우연히 단편영화를 보게 된 영화과 학생이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의 아니게 전파가 된다.

심지어 한국에서 유학 온 남학생의 필수 관람 영화가 된다.

물론 부작용도 생긴다.

서구권 학생들이 한국에서 온 남자 신입생을 놀리는 데 인용된다는 점.

그로 인해 남학생들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캠퍼스 커플을 만들게 된다.

류지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찍은 초단편 혹은 비디오 아트일 뿐.

그런데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법이다.


❉ ❉ ❉


겨울학기가 끝나면 일주일간의 브레이크 타임이 주어진다.

초단편 <Quiz>를 마무리한 류지호는 UCLA 입학 후에 썼던 단편 시나리오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런 후에 찍을 순서와 상관없이 4편의 단편 시나리오를 추렸다.

3편은 일상에 관한 연작단편이고, 남은 한 편은 비참한 슬럼가의 현실을 풍자한 단편영화다.

영화마다 제각기 표현방식이 다 달랐다.

메시지나 주제는 연작 세편이 비슷했다.

그런데 스타일면에서는 제각각이다.

심지어 한 편은 흑백필름으로 기획되었다.

한국에서 찍은 단편과 달리 예산도 평범한 영화과 학생들이 감당할 만큼만 쓸 생각이다.


“편집까지 혼자 다 해결한다고?”


낸시가 그것이 가능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장난도 아니고.


“배우, 포커스풀러, 스크립터까지 내가 다 할 순 없겠지. 최소한의 스태프는 구성하려고.”

“어떻게.... 전공생들에 부탁할 거야?”

“영화 전공 3학년 로이와 아담스에게 이미 부탁해 놨어.”

“더스틴과 쉐인은? 그리고 쉘라도 안 끼워주면 삐질 텐데?”

“그 친구들은 낸시가 부탁해 봐.”

“좋았어!”

“첫 번째로 촬영할 영화 스크립트야.”


낸시가 류지호의 UCLA 첫 번째 단편영화 스크립트를 읽어보았다.

<내 삶의 물고기>.

한적하고 아름다운 미국의 농촌.

홀로 떨어져 외롭게 살고 있는 한 중년부부의 판의 박힌 듯 이어지는 일상.

그러다 불현 듯 찾아온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삶의 아이러니.

10분 안쪽의 전형적인 단편 스토리다.

상업영화의 주인공은 관객이 동경할 수 있거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인물임과 동시에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반면에 단편영화는 주인공이 무기력하거나 지질하거나, 소외되었거나, 무언가 결핍된 인물을 많이 다루게 된다.

조금 극단적이랄까.

<내 삶의 물고기>의 주인공도 그렇다.

한적한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일을 하며 사는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한 때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삶의 미래에 대한 낙관과 긍정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그들의 삶은 활력을 잃었다.

하루하루가 그저 일상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도 식었다.

노동은 일상이다.

하루하루가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심지어 매일 아침 아내가 내오는 팬케이크 두 장마저 지루한 일상일 뿐이다.

그런 일상에서 오는 외로움 속에서 이를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러온 파국.

류지호는 단편 <내 삶의 물고기>를 통해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러온 예상치 못한 아이러니를 다루려 했다.


“촬영은 어디서....? 스티브가 시골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지인에게 부탁 해 보려고.”

“지인 누구?”


류지호는 대답 대신 그저 웃기만 했다.

학생작품이나 독립영화는 지인들의 집이나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 등에서 많이 촬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 가정은 섭외도 힘들고 제작비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세트를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러는 것철머 류지호 역시 지인에게 부탁했다.

그 지인이 보통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고마워요. 브랫 아저씨.”

- 매튜는 형이고, 난 왜 아저씨냐?

“하하하. 그럼 앞으로는 형이라고 부르도록 할 게요.”


류지호가 통화하는 상대는 저 멀리 시카고에 살고 있다.

파커 필드 본사의 중역이자 파커 가문의 셋 째 아들 브랫 파커다.


- 차라리 8월이나 9월에 아이오와에 와서 찍는 게 어때? 그 때가 파커 농장의 들녘이 장관이야.

“너무 멀어요. 그곳까지 갈 여건이 되지 않네요.”

- 나중에는 꼭 그곳에서 찍어 봐. 정말 끝내주니까.


류지호는 파커 가문 남자들이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 주제에 시골 중에서도 깡촌에 살고 있다.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밀농사와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 스케일이 남 달랐지만.

경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파종과 수확은 모두 트랙터를 동원하는 등 기계식·기업형 농업을 하고 있다.

파커 가문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그렉과 노아의 일상은 맥주, 미식축구, 야구 그리고 농사가 전부다.

얼핏 들으면 별스러울 것 없는 미국 농부의 일상이다.

그런데 일반 농부가 우리 돈으로 1억 원에 달하는 할리데이비슨 커스텀 바이크를 타거나, 농한기에 가족들과 럭셔리 요트를 타고 휴가를 즐기고, 시카고 컵스의 트리플A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렉과 노아는 경비행기와 헬기조종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다.

농약도 자가 경비행기나 헬기를 직접 조종해 살포한다.


“농부와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놀 때는 부자답게 즐긴다.”


그들 형제가 한 말 중에 가장 웃긴 말이다.

농부와 부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니까.

어쨌든 류지호는 섭섭해 하는 브랫을 달랬다.


“아이오와 파커 필드에서는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를 찍을 게요.“

- 언제든지 환영이야.

“고마워요. 브랫.”

- 고맙긴. 필요한 것이 있으면 파커 필드 캘리포니아 지사에 말해. 웬만한 건 다 들어 줄 거야.

“알겠어요.”


지인을 통한 촬영장소 섭외의 일차 작업이 끝났다.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 지인이 파커 필드의 부사장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물이었기에.


❉ ❉ ❉


주말을 맞이해서 류지호가 오랜만에 LA를 벗어났다.

LA 북쪽으로 약 110마일 떨어져 있는 베이커즈필드(Bakersfield)라는 도시까지 날아왔다.

그곳에서 파커 필드가 내준 경비행기를 타고 세쿠아 국유림부터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 이어져 있는 수많은 목장(Ranch) 상공을 날아갔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농산물 생산지역이다.

특히 과일·채소·축산업의 중심지다.

미국 전체 생산량의 20%를 책임지고 있다.

관개수가 발달했고 기후조건이 좋아서 부가가치가 높은 고품질 과일과 채소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류지호는 촬영장소 탐색이라는 애초의 목적도 잃은 채 발 아래로 펼쳐진 엄청난 규모의 사유지 농장과 목장들을 감상했다.


“이건 뭐... 비행기로 날아가도 끝이 없네!”


류지호는 질릴 정도로 드넓은 들판과 분지를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렇게 하늘과 지상을 넘나들며 농장지역을 둘러본 끝에, 파커 소유 드넓은 농장지역에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버리진 농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으로 구릉도 없이 시야가 탁 트인 들판에 홀로 떨어진 폐가다.

농가에서 도보로 30분가량 이동하면 얕은 개울이 있었고, 다리는 널빤지를 대충 깔아놓았다.

정확히 류지호가 상상하던 그림과 일치했다.

농가 내부는 집기 하나 없이 먼지만 가득했다.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나무 바닥은 곳곳이 움푹 파여 있다.

혹시 야생동물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새둥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류지호는 가방에서 감독용 뷰파인더(Director's Viewfinder)를 꺼내들고, 꼼꼼하게 농가와 주변 풍경을 확인했다.

길 안내를 해준 파커 필드 LA지사 직원이 류지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곳에서 촬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합니까?”

“마음대로 찍으십시오. 이 목장을 포함해 일대가 모두 파커의 사유지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목장은 얼마나 하는지 궁금했다.

묻지는 않았다.


‘지호가 캘리포니아의 목장을 가지고 싶어하더라.’


그런 소문이 파커 사람들에게 퍼질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로케이션을 확정했다.


“농가 내부도 찾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당한 곳이 있겠습니까?”

“수년 째 방치된 오두막(cottage)은 이 목장에도 여러 개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안하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농부가 사는 오두막(hut)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집 내부는 따로 근처의 농가를 섭외해야 할 것 같았다.

돈을 쓰면 폐가를 그럴 듯한 농가로 만들어 촬영할 수 있다.

류지호는 일단 돈을 최대한 안 쓰면서 촬영하는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했다.


✻ ✻ ✻


UCLA 학생들이 짧은 봄방학을 즐기고 있을 때 류지호는 파커 필드 LA지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촬영장소 헌팅에 박차를 가했다.

그 사이 여자 친구 낸시는 배우조합을 통해 중년 부부 배우 오디션을 진행했다.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낸시는 뮤지컬 공연 경험이 꽤 있었다.

따라서 낸시에게 배우 오디션과 캐스팅을 일임했다.


“쉘라가 그림까지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어.”


스토리보드 그림을 쉘라가 그렸다.

그림 솜씨가 제법이다.

류지호의 칭찬에 두 볼을 빨갛게 물들인 쉘라를 낸시가 놀려댔다.


“쉘라, 이 부끄럼쟁이.”


쉘라가 슬그머니 낸시의 엉덩이를 꼬집었다.


“아얏!”


낸시가 엉덩이를 부여잡고 발딱 일어서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봄학기가 시작되고 류지호의 기숙사 거실이 단편영화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거실 벽에 온갖 로케이션 사진을 붙여놓고, 비디오와 모니터까지 들여놓았다.

물론 낸시와 쉘라는 새벽시간에 그녀들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처음 낸시와 뜨거운 밤을 보낸 이후로 단 한 번도 기숙사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대신 웨스트우드 시내에 마련한 아파트를 가끔 이용했다.

암튼 미국이라고 해서 단편영화 프리프로덕션이 더 쉽거나 어렵지는 않다.

경험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고, 풍부하다면 쉽다.

LA는 미국 영화산업의 본진이다.

비디오를 찍든 16mm를 찍든 35mm를 찍든 70mm를 찍든.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다.

따라서 류지호는 보름 만에 단편영화 촬영 준비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 ❉ ❉


하하하.

호호호.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캠핑트레일러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캠핑트레일러 한쪽에 쌓여 있는 카메라 박스, 렌즈박스, 레프 그리고 조명장비 박스 등이 없었다면 어디 캠핑이라도 떠나는 모습이다.

봄학기 첫 주말.

류지호와 친구들이 파커 필드 소유의 목장(Ranch)으로 향했다.

일행은 단편영화 <내 삶의 물고기>의 로케이션 촬영에 나선 것이다.

육중한 픽업트럭 두 대가 각각 캠핑트레일러를 끌고 있다.

운전자는 류지호의 경호원인 티노와 말릭이다.

그 뒤를 FX(특수효과)팀의 검정색 밴이 따르고 있다.


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캠핑트레일러 안은 몹시 흔들렸다.

장시간 덜컹거리는 캠핑트레일러를 타고 가는 것이 고역이지만, 누구하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들 낯선 곳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는 것에 한껏 들떠 있는 모습이다.

3학년 로이 캠벨(Roy Campbell)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픽업트럭을 운전하는 근육맨 아저씨들은 누구야?”

“경호원.”

“우리가 촬영할 곳이 위험해?”

“아니.”

“그런데 경호원은 왜 고용했어?”

“사실은.....”


류지호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부분은 빼고, 뉴욕의 투자회사에 대한 걸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친구들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낸시는 이미 들어 알고 있어 놀라지 않았다.

또 한 명의 3학년 아담스 영(Adams Young)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Jay가 아시아의 왕족이었어?”

“사우스 코리아는 민주주의 국가야 친구. 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어.”

“근데 어떻게 부자가 되었지?”

“부자인지 어떻게 알아?”

“월가에 투자회사를 가지고 있다며? 그렇다는 말은 최소 몇 백만 달러를 움직인다는 거잖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어.”

“무슨 사업?”

“결혼식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파는 사업.”

“오오. 그런 것도 사업이 되나?”

“어떻게 접근하는 가에 따라 사업이 될 수 있지.”


류지호는 촬영장소인 버려진 농가로 향하는 동안 친구들에게 자신의 웨딩비디오 사업 경험담을 들려줬다.


끼익.


무려 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도착했다!”


친구들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스태프로 참여한 친구들은 주로 대도시에서만 생활했다.

같은 미국땅이라고 해도 처음 접하는 광경이다.


“티노, 말릭. 캠핑트레일러는 저 언덕 너머에 주차하도록 해요.”

“예.”


티노와 말릭이 버려진 농가에서 4~5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터로 캠핑트레일러를 몰고 갔다.

촬영을 하기로 한 농가가 드넓은 들판에 위치했다.

때문에 류지호는 캠핑카를 두 대 준비했다.

불가피하게 하루를 이곳 허허벌판에서 묵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찍자는 생각은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친구들과 3학년 선배들은 영화를 찍는 것이라 고생스러운 걸 받아들일 수 있다.

직업 배우들에게까지 강요할 수 없었다.

캠핑카 한 대는 스태프로 합류한 여성들이 쓸 예정이고, 남은 한 대는 배우가 사용할 예정이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계획이다.


"풍경 감상은 나중에 하고. 다들 촬영준비하자!"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분량은 오늘 모두 찍어야 했다.

내일은 남자 배우 잔여 분량, 타임랩스 촬영, 풍경, 익스트림 롱샷 인서트 위주로 찍을 계획을 짰다.

류지호가 캠핑트레일러에서 카메라 박스들을 꺼내며 더스틴에게 지시를 내렸다.


“FX팀 준비시켜줘. 로케이션 씬의 마지막 커트부터 찍을 거야.”

“Roger!”


더스틴이 후미에서 따라오던 FX(특수효과)팀을 향해 달려갔다.

류지호는 포커스풀러로 합류한 로이와 함께 16mm 카메라를 조립했다.

카메라는 1982년 최초로 출시된 ARIFLEX 16SR2를 빌렸다.

전에 <영정사진>을 촬영할 때는 16BL을 썼다.

학교 장비실에는 16ST와 칸논 스쿠픽(Kwanon Scoopic) 기중뿐만 아니라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스위스 제품 보랙스(Bolex)까지 준비되어 있다.

류지호는 익숙한 16BL보다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16SR2 사용하기로 했다.

필름 로딩도 직접 해보고 싶었다.

괜히 미숙한 자신이 손을 댔다가 필름만 손상될 수 있어서 촬영전공을 하고 있는 로이에게 전담시켰다.

FX팀이 농부 남편의 옷과 똑같은 의상을 입혀놓은 더미(dummy)와 피분수 효과를 내는 장비들을 챙겨 류지호에게 왔다.


“따라오세요.”


류지호가 FX팀 농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개울가로 데리고 갔다.

수풀이 우거진 지대로 좀 더 들어가 위치를 설정해줬다.


“이곳에서 더미를 쓰러뜨려 주세요.”


털썩.


류지호의 양 무릎이 땅에 닿는 순간, 아주 짧게 멈췄다가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FX팀에게 더미가 보여야할 움직임을 류지호가 직접 시연을 해보인 것이다.


“목이 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무릎을 꿇는 느낌으로 쓰러지면 됩니다.”

“간단하군요.”


FX팀이 더미를 꺼내 류지호가 지정한 위치에 놓았다.

목 잘린 시체의 더미는 어설펐다.


‘돈을 조금 더 들였어야 했나?’


마네킹의 딱딱한 재질이 아닌 약간 말랑말랑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옷을 입혀놓았을 때 뻣뻣한 느낌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기계장치로 머리 부분이 분리되어 튀어 오르도록 제작되어 있다.

목 부분에서 피가 품어져 나오는 장치도 되어 있다.

류지호가 섭외한 팀은 B급 영화를 주로 하는 소규모 업체 소속이다.

이번 촬영에 가져 온 더미는 B급 좀비영화에서 사용하는 더미다.

물론 충무로에서는 이 정도조차 꿈도 꾸지 못한다.

만들 수도 없거니와 더미 하나 제작하는데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류지호가 계약한 업체 역시 이 더미를 재활용해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디스트로이어의 정 기사님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네.’


모르긴 몰라도 정두원 기사에게 이들이 사용하는 더미를 하루만 빌려주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비슷한 수준의 더미를 만들어 낼 터.

그 정도로 대단히 열정적이고 탐구심이 많은 스태프다.


“로이. 표준렌즈로 찍을 거야.”


표준렌즈는 우리 눈과 거의 흡사한 원근감을 가지는 렌즈다.

보통 50mm렌즈가 35mm 카메라의 표준렌즈고, 16mm 카메라의 표준렌즈는 25mm다.

로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라저!”


류지호가 한국말로 혼자 중얼거렸다.


“자식들이... 오케이나 올 라잇이라고 하면 되지. 괜히 멋 부리기는....”


‘ROGER‘는 항공기와 관제탑 간에 교신할 때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항공용어다.

received의 'r'을 통신 부호로 ‘ROGER‘라고 부른 데서 나온 말이다.

즉 당신의 말을 알아들었고 그렇게 행하겠다는 뜻이다.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UV는 물려있지?”


UV(Ultra Violet) 필터는 가장 많이 쓰이는 필터 중 하나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태양광선에서 나오는 자외선을 흡수해주면서 가시광선만 투과시키는 필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 보다 보통 렌즈 보호용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응. PL? ND? 뭘 쓸 거야?"

“PL!”

“라저!”


PL(Polazing filter. 편광필터) 필터는 사물 표면에서 생기는 반사광을 제거하고, 잡광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필터다.

하늘을 촬영할 때 좀 더 선명해지는 효과가 있다.

ND(Netural Density filter)는 중성농도/광량감소 필터라고 하고, 빛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선글라스를 쓰는 것 같이 강한 빛을 감소 시켜주는 필터다.

류지호가 촬영하는 장소는 LA와 새크라멘토 사이의 대평원이다.

개활지다.

날씨까지 무척 화창했다.

노출은 조리개를 조이면 된다.

하늘의 파란 색깔과 디테일한 구름까지 함께 표현하기 위해 편광필터를 쓰는 편이 좋았다.

로이가 줄자로 더미까지 거리를 재고 돌아왔다.


“Jay! FX팀은 스탠바이래!”

“좋아. 피는 뿜지 말고 액션만 한 번 해보자!”

“라저!”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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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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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Life Goes On. (2) +7 22.06.07 6,013 193 25쪽
184 Life Goes On. (1) +9 22.06.06 6,197 194 26쪽
183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3) +7 22.06.04 6,154 200 22쪽
182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2) +10 22.06.03 6,212 190 26쪽
181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1) +8 22.06.02 6,274 169 23쪽
180 가진 것이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3 22.06.01 6,292 191 27쪽
179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2) +9 22.05.31 6,254 177 25쪽
178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1) +6 22.05.30 6,400 177 23쪽
177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4) +7 22.05.28 6,362 181 26쪽
176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3) +9 22.05.27 6,307 181 25쪽
175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2) +4 22.05.26 6,287 179 21쪽
174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1) +13 22.05.25 6,428 184 24쪽
173 우리는 항상 승자 쪽에 있어야 한다! +5 22.05.24 6,494 180 25쪽
172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5) +11 22.05.23 6,514 200 24쪽
171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4) +7 22.05.23 6,257 165 21쪽
170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3) +8 22.05.21 6,672 177 25쪽
169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2) +7 22.05.20 6,638 188 25쪽
168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1) +6 22.05.19 6,668 179 23쪽
167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7) +9 22.05.18 6,280 191 24쪽
166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6) +5 22.05.17 6,336 167 23쪽
165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5) +7 22.05.16 6,328 174 23쪽
164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4) +6 22.05.14 6,379 176 21쪽
163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3) +6 22.05.13 6,367 159 22쪽
»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2) +9 22.05.12 6,541 172 22쪽
161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1) +9 22.05.11 6,714 179 22쪽
160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8 22.05.10 6,773 182 25쪽
159 괜찮은 인디배급사 하나 인수합시다! +14 22.05.09 6,875 182 30쪽
158 부자(父子)에게 부자(富者)란..... +8 22.05.07 6,894 184 23쪽
157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3) +6 22.05.06 6,866 187 26쪽
156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2) +9 22.05.05 6,862 19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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