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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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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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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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DUMMY

계속 이어진 경기는 크나큰 함성과 함께 승부가 갈렸다. 승자는 포효를 내지르며 자축하였고, 패자는 크게 다치어 들것에 실려 나갔다.


폭력이 주는 근본적인 재미랄까, 투기장의 온도만 몇십 도가 오른 듯 후끈하다.


4강까지의 경기를 모두 본 베르그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꽤 즐기는 것 같더니 이제야 긴장이 좀 풀렸나 보다.


루비아와 라프리트도 그러했다. 묘하게 나빠 보였던 기분을 풀고, 이런 피를 튀기는 현장을 차분히 즐기고 있었다. 거북해하는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과연 다들 윤리적 사상 같은 게 다르다는 게 확 와닿는다. 현대 지구였으면 인권이 어쩌고 말이 많았을 텐데.


‘애당초 즐기긴커녕 눈시울을 찌푸렸으려나? 뭐, 똑같이 즐긴 내가 이런 말을 할 건 아니지.’


모처럼 타인의 기술을 볼 수 있어서 그랬는지, 정말 예상외로 각 경기는 볼만했다. 적어도 흥미진진하게 관찰할 정도는 되었다. 처음의 흥미 없다는 반응과는 확연한 차이다. 물론 승부 예측도 한 번 틀리지 않고 모조리 맞춰냈다.



“하지만 아쉽네요. 첫 경기 이후로 전략이라든가, 두드러진 기술의 활용이 없네요.”


턱에 손을 얹은 베르그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눈이 즐거워질 뜨거운 투쟁이긴 했지. 하지만 확실히 첫 경기만큼의 박진감은 없었어. 케텝돌 데 벤토 라고 했던가? 그 신입 도전자도 이후의 경기에선 무신류의 진수를 보여주지 않았고. 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건 알지만······ 좀 아쉽긴 했네.”


그의 말대로 4강까지 올라온 그는 손쉽게······는 아니었으나, 적당히 압도하며 4강까지 무사히 안착했다. 덕분에 이번 대회의 강자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노렸던 대로······.


‘저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착각하지 않았다면 그 케텝돌이라는 사람, 아마 그걸 노리는 거 같은데?’


잘못 보지 않았다면 케텝돌은 아마 돈을 걸어줄 한패와 함께 한탕 챙기려는 게 아닐까 싶다. 승부조작을 우려한 것인지 선수의 내기 참가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니.


지금까지는 빌드업을 쌓았다는 느낌이다. 막판에 크게 챙기려 들지 않을까 한다.


잠시 고민하던 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의심한다 한들 운영은 이쪽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이었다. 괜히 오늘 하루 구경 온 사람이 끼어들기에는 망설여졌다.



“응. 그보다는······ 저기, 베르그 전하? 무신류라고 하시던데, 케텝돌 씨였나? 그분의 문파인가요? 소개엔 없던데.”


질문에 엔가 어쩌구가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한심하다며 쳐다보는 시선이 뒤통수에 박힌다.


하지만 역시 그릇이 다른 베르그다. 무례한 누구와는 달리 친절히 미소로 향해온다.



“으음. 제국에 있는 큰 문파 중의 하나라는 건 말했었지? 그 말 그대로 무신류는 제국 내에서 가장 많은 문하생을 거둔 거대 문파라네. 검신류와는 쌍벽을 이루고 있지.”

“검신류요?”

“그렇네. 검술만을 극한으로 단련하는 검신류와 온갖 무예를 단련하는 무신류, 이 두 문파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파일세. 케텝돌이 무신류임을 알아본 것도 그러한 연유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걸음걸이에서 무신류 특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네.”

“정확히 어떤 거요?”

“몸의 중심일세. 무신류는 여러 무기, 무예를 배우는 만큼 전술의 폭이 다양하다네. 그래서 무의식중에 상대를 분석하는 경향이 있지.”

“아하. 본인에게 유리한 전술을 가져가려고요?”

“정확하네. 물론 어느 유파이건 당연하겠지만, 무신류는 조금 더 선택지가 폭넓으니. 다만 그렇기에 몸의 중심을 뒤로 뺀다는―― 무신류 특유의 습관들이 나타나고는 하네.”

“오호. 그렇군요······.”


베르그는 꽤 간단히 말했지만, 매우 자세히 알고 있어야만 나올 지식이다. 필시 그는 상당히 오랜 시간 여러 문파의 모습을 관찰하고 분석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파도 단번에 파악했을 거다.


어쩌면······ 투기장을 제일 처음으로 데리고 온 것도, 그냥 본인이 경기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시간상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 생각할 만큼 그의 열의가 대단하다는 게 느껴진다. 뒤를 지키고 있던 유즈라도 전문적인 지식에 감탄하고는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엔가 어쩌구도 한껏 뿌듯한 기색으로 끼고 싶은 듯했으나, 루비아의 눈치를 보더니 혀를 차는 것으로 그쳤다. 그 대신이랄까, 적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리아를 보았다.


‘내가 뭘 했다고······. 앗! 에르, 참아요. 델리안도요.’


아직까진 살짝 화가나 마력이 꿈틀거리는 정도이나, 조금 더 쌓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리 [염화]로 말해두어 진정하게끔 하였다.


‘후우. 다들 너무 요란이라니까. 사람이 마음에 안 들고 할 수도 있는 거지.’


막말로 페리처럼 느긋이 있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발밑에서 거한 하품 소리가 들려온다.


스윽, 밑을 보니 쪼르르 따라와 발밑에 앉아 거들먹거리며 관객들을 내려다보던 페리가 보인다. 지금은 절찬리 지루하다는 듯 늘어지게 입을 벌리는 중이었다. 벌써 제 안방화가 되어 있었다.


······암만 그래도 속 편한 고양이와 비교하는 건 무리였던 거다.


‘그, 그래! 우리 아이리스처럼 다들 침착하니―― 응? 아이리스······? 그러고 보니 우리 귀여운 아이는 어디 있다냐?’


휙휙 둘러보는 시선에 아이리스는 없었다. 좌측엔 레스, 라프리트, 루비아만 있었고, 우측엔 베르그, 로즈, 헤라드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이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리아는 두리번거리다가 깨닫고 말았다.


애당초 준비된 자리는 7개. 처음부터 아이리스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이런 걸 이제 와서 깨닫다니. 원하지도 않은 상석에 앉게 되어 혼비백산했다지만, 엄마로서 실격이다. 아들은 관심도 없이 저 혼자 앉아 관람한 것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부끄러워 얼굴도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잘못은 잘못. 빠르게 인정하고 실수를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하다.


훌쩍 일어난 리아는 의자의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리스, 일로 오렴.”


여태까지의 경기를 복기하고 있던 아이리스는 찌푸린 미간을 풀고 리아를 쳐다봤다. 아마 잘못들은 건가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


리아는 재차 불렀고, 아이리스는 잠깐 곁에 있는 델리안을 쳐다봤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응.”


고개를 끄덕인 리아는 탁탁, 본인이 앉은 악마의 옥좌를 두드렸다.



“여기 앉으렴. 자리도 넓고 하니 둘이 앉아도 괜찮을 거란다.”

“아뇨, 전 괜찮아요――”

“――어머나? 아이리스. 계속 서 있었니? ‘사용인’처럼?”


갑자기 끼어든 루비아. 다분히 능청스러운 그녀의 말에 몇 명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특히 로즈에 이르러서는 입술마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당연한 반응들이다. 최고 국빈의 가족을 소홀히 한 것이니. 이유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 정식으로 따져 들면 문책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결례였다. 라프리트에게 배운 대로라면.


‘그럴 마음은 없지만.’


애초에 자신도 이제야 알았는데 뻔뻔하게 저들에게 잘못을 덮어씌울 수야 없다.


‘하지만 루비아 씨······ 미리 좀 알려주시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루비아―― 언제나 기가 막힌 눈치를 보여주던 그녀라면 진작 알았을 것이다. 아이리스만 서 있다는 걸. 저 능청맞은 태도로 보아 확실할 터다.


그렇지만 따지고 들진 않는다. 루비아라면 반드시 무언가 뜻이 있기에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약간 풀리긴 했으나 루비아는 지금 화가 나 있는 상태다. 나무랄 용기 따윈 피어오르지 않는다.


‘으응. 겨, 경고 정도로 넘어갈까? 어쨌든 우리 귀여운 아이리스를 이용한 것이니. 그, 그래. 그렇게 하자. 다음번에 또 그러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런 말을 하고 싶거든, 맨 처음부터 의자를 준비하지 않은 저쪽을 탓하라고.”

“헛?! 아, 아니, 그게······”

“됐어. 말했듯 잘못은 저쪽이 한 거니까. 하지만······ 여기서 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네. 모처럼이니 제대로 관람 좀 하고 싶은데 말이야. 어정쩡한 놈들일수록 겁대가리가 없다더니, 모가지가 아깝지도 않나?”

“하하. 루, 루비아 씨?”


루비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지만, 진짜 모양새만이었다. 쏘면서도 아름답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선명히 귀빈실에 퍼졌다.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긴커녕 드물게 라프리트마저 동의하며 참전했다.



“정말 그러하네요. 삼국의 주요 인사가 모두 모인 이 자리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딴 무례나 계속하다니. 너무 황당해서 화가 나기보단 이후 안부가 걱정될 지경이에요.”

“진짜로. 어떻게 저딴 눈치로 당주를 40년째 하고 있다냐? 제국엔 인재가 메말랐나?”

“저, 저기! 두 분······ 다 들린다고요!”


최대한 조심스레 말려 봤으나······ 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들려서 뭐? 이 내가 겨우 투기장이나 운영하는 당주 따위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거야?”

“애당초 저분은 도대체 누구의 허락을 받아 아직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저는 허락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그러게. 뭔데 왕족들이 있는 이 자리에 남아서 혀를 차고앉아 있지? 베르그 전하, 무지하여 죄송합니다만, 제국에선 투기장의 당주를 왕족―― 전하와 비등한 지위로 대우하시는지요?”

“뭣――?!”

“――당연히 아니겠지요. 그런데······ 어찌 또 함부로 끼어든다거나 하는지 모르겠네요.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누가 입을 열어도 된다고 허락했나요?”

“······.”

“쯧. 나의―― 공국이었으면 당장 끌어내렸을 텐데 아쉽게 됐군요.”


아무 말을 못 하는 베르그에게서 눈길을 돌린 루비아는 처음으로 투기장의 당주―― 엔가 어쩌구를 흘겨보듯 노려보았다.



“운이 좋은 분이시어요. 부디 상냥한 제국에서 태어난 걸 감사히 여기시길.”


비꼬는 게 다분한 루비아는 활짝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 이상 경거망동하지 마시기를 충고하죠. 당신이 만만하게 보아 푸대접한 리아는 3국 모두에서 최고 국빈으로 모셔지는 전무후무한 자이니까요. 사실 지금도 당신의 목은 아슬아슬한 징검다리 위에 놓여있는 상태이어요. 제아무리 상냥한 제국이라도 더 무례를 보인다면 감싸주기 힘들 거여요.”


괜히 상석을 양보한 게 아니라고 덧붙이는 루비아.


여러 소문이 자자한 루 몬테르의 공주님이 단언하자 눈을 크게 뜬 엔가 어쩌구는 몸을 떨었다.


제법 두려워하는 것도 같았는데······


아쉽게도 그건 루비아에게만이었다. 언제 공국에서도 최고 국빈으로 임명한 거냐며 놀란 리아와 시선을 마주한 그는 강한 적개심을 내비쳤다.


루비아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언급 없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젓기만 했다.



“필요하다면 부르도록 하죠. 얼른 나가기나 하시어요. 괜찮겠지요, 베르그 전하?”

“물론이지. 도리어 배려하지 못해 실례를 범했네. 이스피리아 공도.”


베르그는 여전히 안색이 창백한 채로 정중히 사죄했다.


그만큼 이번 그의 실수는 귀족 사회에서는 대단히도 큰 문제였다. 걸고넘어지면 무조건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을 것이었다.


압도적으로 국력이 높았다면 또 모른다. 그땐 적당히 항의를 무시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현재 삼국의 국력은 서로 엇비슷하다. 괜히 두 나라와 틀어져 집중 공격받거나, 서로 싸워 다른 나라가 어부지리를 챙기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저 당주 아저씨의 문책은 피할 수 없게 되겠지.’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어쩔 수 없으리라.


그래서 리아는 원활하게――



“사과는 우리 아이리스에게 해주시죠? 사과받을 상대를 착각하신 게 아닌지요?”


――넘기지 못했다.


실수는 어쩔 수 없다지만, 사과는 제대로 해야 하는 법. 저 사과를 받는다면 아이리스를 무시하는 짓이 되리라.


싸늘한 목소리에 로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작은 아버님도 어서!”


딱히 로즈가 닦달하기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베르그도 황급히 일어섰다. 그리고 둘은 아이리스에게 사과했다. 로즈의 경우 베르그가 일어난 시점에 이미 가슴에 손을 얹고는 냉큼 머리를 숙였었다.


둘 다 마음만은 진심이었는지 밖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였다.



“그, 결례를 범했네, 아이리스 공.”

“죄송합니다, 아이리스 님!”

“저는 괜찮습니다. 불편하게 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3 황자 전하, 그리고 제1 황손 전하.”


아이리스는 정중히 미소로 답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완벽하기만 한 예였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엔가 어쩌구는 몹시도 놀란 기색을 풍기며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 또한 아이리스에게만 해당하였다. 슬쩍 리아를 흘겨보는 그 시선에는 여전히 못 마땅해하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내가 뭘 했길래―― 아! 설마, 첫 만남에서 뭐라 한 거로 꿍해 있는 거야?’


그건 너무 쪼잔한 게 아닌가도 싶지만······ 그 외에 딱히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황당함을 느끼는 사이 베르그들이 재차 더 사과하고, 이를 아이리스가 대체로 온화하게 받아 주어 이리저리 잘 정돈되어갔다. 역시 우리 아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만들어낸 엔가 어쩌구는 물러나라는 베르그의 명에 의해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다만, 나가기 직전 호위들과 함께 째려보던 시선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뭔 일 없겠지?’


조금 걱정은 되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암만 생각이 없어도 여기서 뭔가를 더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 문득 중얼거리는 루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석긴······”

“루비아 씨?”

“아냐. 귀찮긴 하지만 적당히 좋은 정도겠지. 마침 너에게도 필요한 경험이었으니.”

“어······ 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는 척 고개나 끄떡였다.


당연하게도 알아본 루비아는 피식 웃었다.



“어서 앉기나 해. 처음보다 관심이 적어지긴 했지만, 지켜보는 놈들은 좀 있으니까.”

“그렇죠······ 자, 아이리스 일로 와서 같이―― 응?”


옆을 보니 아이리스는 없었고, 대신 왼쪽 끝 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실례 좀 할게요, 레스 씨.”

“아, 아니. 나야말로 미안해. 전혀 신경 써 주지 못했어.”

“뭘요.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닌걸요. 제 존재감이 좀 없잖아요?”

“그런 정도는 아닌데······ 확실히 이스피리아 공에 가려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 무, 물론 그렇다고 잊었던 건 아니야! 진짜로.”

“네. 알고 있어요. 경기에 푹 빠지셨을 뿐이잖아요.”

“미안······ 제국에선 타인의 기술을 볼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거든. 특히 유명 유파나 문파 출신의 경우는 더욱 알려지는 걸 꺼리지. 근데 이번엔 제법 기대되는 신인들이 많았어.”

“오호. 그래요? 그럼 죄송한데, 해설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식이 짧은지라······”

“나야 좋지. 안 그래도 좀 근질근질했거든? 원래는 헤라드에게 떠들어대는데, 오늘은 그럴 수도 없었고.”


그대로 자리 잡을 생각인지, 제법 관심을 보인 아이리스는 에르에게 부탁하여 레스의 옆에 의자를 놓았다.


의자는 원래 들고 있던 것이다. 지금 와 엔가 어쩌구를 불러 준비하기엔 번거로우니 그냥 있는 의자를 사용하기로 했다. 모양새가 다르긴 하나 베르다드에서도 쓰던 것이라 막 혼자 붕 뜨진 않았다.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본 리아는 아쉽게 자리를 톡톡 치고는 도로 앉았다.



“그렇게 아쉽냐?”

“네. 귀엽디귀여운 아들이랑 함께 앉는 걸 아쉬워하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흠흠. 그렇군. 근데······ 이런 곳에서 대놓고 공개해도 되는 거야?”

“공개라뇨?”

“아이리스가 네 아들인 거 말이야.”

“그야······ 앗?!”


은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리아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옆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제발 못 들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도 하였다.


하지만 다 부질없었다.


입까지 벌린 베르그는 커진 눈으로 아이리스와 리아를 번갈아 보기 바빴다. 로즈도 그러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리아를 가리키며 “어, 엄마?”라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윽고 사색이 된 베르그는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렇지만 리아는 짧게 손가락을 튕겨 막았다.



“뭐 하시려고요?”


다 알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베르그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놀라면서도 대답하였다.



“몰랐다지만, 친족을 향한 무례――”

“――동생으로 봤어도 친족인 건 여전한데요.”

“아. 그렇긴 합니다만······”


말을 끄는 베르그는 이상하리만치 당혹스러워했다. 어투도 왠지 모르게 훨씬 정중해졌고.


그리고······ 이 모습을 보던 루비아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연신 입가를 가리고는 ‘풉!’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것도 일부러······. 매번 생각하지만 참 성격이 나쁘다.


하지만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눈길을 줄 여유조차도 없나 보다. 베르그는 눈까지 빙글빙글 돌며 패닉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 중이던 그는 이윽고 뭔가를 깨달은 듯 이마를 쳤다.



“아! 그래서 최고 국빈이었군! 달리 명분이 없었던 거야!”


깊은 탄성이 담긴 그의 외침을 루비아가 받아줬다.



“그러네요. 애당초 리아에게 힘이 없었다면 성립하지 않을 이야기였지만.”

“과, 과연. 힘이 없으면 굳이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었겠지. 하지만 힘은 있었고,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공권력이라며 힘을 과시하기도 어려웠을 터. 하물며 이미 결혼까지 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달리 남자를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 그러니 남은 건 최고 국빈뿐이었죠. 그 외에는 달리 평화적으로 묶어둘 방도 따윈 존재하지 않아요.”

“그, 그렇게 된 거였군. 혹시 벨루디스는 ‘그걸’······ 염려해서 최고 국빈으로······?”

“글쎄요. 자세한 사정이야 타국인인 저는 모르죠. 최근 데뷔한 라프리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만약을 고려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는 거죠. 누구라도 경계할 사태잖아요?”

“그렇지······”


사이좋게 대화하는 둘.


본인을 가운데에 두고 화기애애하게 떠들어 조금 심통이 난 리아는 툴툴거렸다.



“그거니 뭐니, 저도 알게끔 대화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 그게······”


당황하는 베르그와 달리 루비아는 여유로웠다. 얼마나 여유로웠으면 눈빛이 매서워지는 라프리트의 시선마저도 능청스럽게 넘길 정도였다.


그 여유로움 그대로 루비아는 경기장을 가리켰다.



“준비가 다 끝났나 보다. 저거나 보자. 아까 하던 소린 관심 꺼. 너랑 큰 연이 없는 이야기니까. 어차피 알게 될 건데, 굳이 좀스럽게 노력할 필요도 없고.”

“알게 된다고요?”

“반드시. 아마 그리 멀지는 않았을 거라고 보여.”

“으음. 알겠어요.”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나 싶지만, 루비아가 허튼 약속을 할 리도 없다. 아직 때가 아니라 생각하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장을 내려다보니 루비아의 말대로 준비가 끝났는지 출입구의 쇠창살이 위로 올라갔다.


안에서 나타나는 건······



“곰?”


그래. 곰이었다.


작가의말

다들 홍수에 피해가 없으셨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2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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