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오인 사격
“ 정말.. 엄청난 무기를 얻었네.. “
라티안도, 아리나도 감탄하며 피렌의 활을 바라본다.
사라와 레일리도 넘어질 뻔한 차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피렌을 바라본다.
“ 휴우.. 그러게 말이야.. 참고로 마나를 담을 수 있는 무기는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서, 사용하는 마법의 종류에 따라서 위력이 천차만별이야. 그러니까.. 2등급인 네가 바람이라는 마법을 활용해서 활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서 이만한 위력이 나온 거지. “
음.. 그렇다는 것은 지금의 화살은 무기가 좋아서가 아닌 피렌의 힘이라고 봐도 되는 것인가.
“ 물론 아무리 조합이 좋다지만.. 2등급이 무기를 들면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알았어.. “
레일리가 감탄하며 살짝 소름이 돋았다.
4등급인 레일리는 저만한 파괴력을 낼 수 없는데.. 2등급의 차이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피렌은 화살을 걸지 않고 다시 한번 활을 들고 조준해본다.
분명.. 아까 모두가 감지해내지 못했던 망령들을 피렌 혼자서 발견하고 공격했다.
지금까지 화력 면에서 다른 동료들에 비해 낮았던 피렌이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 음..? “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멀리서 춘향이 이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뭐.. 달려나갔으니 달려오는 건 당연했지만.. 춘향의 꼬리가 매우 길었다.
“ ...다들 차에 타. 어서..! 출발할 준비해!! “
“ 어딜 도망가려고!! 같이 싸워야지!!!! “
춘향의 뒤에는 피렌이 화살을 쏴 시선을 끌어버린 망령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 망령의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춘향조차도 도망가고 있는 수준이라면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45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는 실제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어서 타! 바로 달릴 거야! “
-부릉.
강력한 엔진소리와 함께 최고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 최대한 차로 벗어나다가 여차하면 차를 버리고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거야!! 다들 그전까지 최대한 저항해!! “
레일리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속도로 자동차가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 우왁!!! “
이정도 자동차를 탔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라티안과 피렌, 아리나는 여전히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사라가 혀를 찬다.
“ 야 너희 정신 안 차려?! 너희가 이러고 있으면 어찌하라는 거야! 원거리에서 빨리 견제해!! “
어느새 따라온 춘향이 레일리의 옆에서 달려가며 말을 건넨다.
“ 아~.. 이게 최고속도야? 따라잡힐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 “
물론 레일리도 알고 있다.
하필 9-9시 지구는 사막이다.
자동차로 아무리 최고속도로 달려봤자 망령들이 달리는 것보다 느리다.
특히나 사막에 사는 거대 전갈 망령은..
-키기기기긱!!!
이렇듯 갑자기 눈앞에서 모래를 꿰뚫고 튀어나온다.
“ 반가운 얼굴이네! “
춘향이 한순간 자동차보다 빠르게 튀어 나가 한쪽 다리를 전부 절단하며, 그대로 몸통을 타고 올라가 꼬리까지 베어버린다.
“ 크읏..! 운전 빡쌔..! 사라! 어디로 갈까! “
사라를 흘끗 바라보자 잠시 뒤 대답이 들려온다.
“ 지원요청은 해놨어!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9-9시 지구로 들어가지는 못해! 이대로 지구를 중심으로 돌면서 망령들을 유도하고 조금씩 갉아 먹는 게 최선이야! “
“ 망령은 얼마나 있는 건데?! “
“ ...대략 3천! 땅 밑에서 더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해!! “
레일리는 이를 꽉 깨물고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은 전갈을 전투 불능상태로 만들고 어느새 차 위에 올라탄 춘향이 상황을 재밌게 받아들인다.
“ 이야~ 이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쫄아있는 콩나물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 “
“ 큭.. 하지만.. 아까보다 운전이 거세단 말이야..!! “
라티안과 피렌, 아리나는 뒷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다 같이 쏠렸다가 왼쪽으로 쏠리기를 반복하며 무서운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 흐음.. 안전벨트를 안 매면 확실히 법에 걸려야지.. “
-촤르르르륵
춘향이 검은 마나를 차에서부터 뽑아내 사슬을 만들어 라티안과 피렌, 아리나의 몸을 묶는다.
그중에서 피렌과 아리나는 살짝 헐렁하게 묶어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
“ 자! 이제 일어나서 받아쳐! 너네 둘이 원거리 담당인데 이렇게 날로 먹으면 쓰냐! “
확실히 검은 사슬로 몸을 묶은 덕분에 아까보다 안정감이 생겼다.
물론 사슬에 의해 몸이 눌리는 건 조금 아프긴 했지만.. 이 정도면 버틸 만하다.
“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좀 해주지..! “
피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활을 겨눈다.
동시에 춘향이 추가로 사슬을 뽑아내 자세를 고정해준다.
마치 거대한 새가 귀에다 대고 온 힘을 다해 소리 지르듯 날카롭고 매서운 소리가 들리더니 피렌의 손에서 바람의 화살이 날아가 망령들의 행렬에 구멍을 낸다.
-콰콰콰쾅!!!!!!
피렌이 옆을 보니 아리나도 어떻게든 의자를 붙잡고 일어나 번개를 내려치고 있었다.
“ 으으... 무서워..!! “
망령들이 달려오는 게 무섭다기보단 차가 달리는 것을 역방향으로 보는 것이 무서운 모양이다.
“ 큭큭큭.. 좋아~ 후방은 할 수 있는 수는 다 했고.. 야! 콩나물 1번! “
춘향이 원거리 교전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던 라티안을 부른다.
라티안은 대답 없이 눈만 돌려 춘향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춘향이 라티안의 무릎 위로 올라타 눈을 마주친다.
“ 뭐.. 에?! 무슨...! “
“ 너도 이제 수준이 올랐잖아? 일해야 되지 않겠어? “
...?
“ 춘향! 앞을 봐! 오른쪽에서 망령이 튀어나오고 있어!! “
사라가 탐지기를 확인하고 춘향이 달려나가 거대 전갈 망령을 쳐부수고 복귀했던 것을 활용할 모양인지 춘향을 향해 지시하기 시작한다.
“ 들었지? 난 왼쪽을 맡을 테니 오른쪽은 너가 맡아! “
“ 어...? 뭐?! 억..!! “
그 순간 라티안의 생명줄이었던 검은 사슬이 사라지며 동시에 춘향이 라티안의 멱살을 잡아 오른쪽으로 집어다 던져버렸다.
“ 야!!! 너 무슨!! 라티안!!!! “
“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차 멈춰!!! “
피렌과 아리나가 화가 나서 춘향을 향해 소리치자 춘향은 오히려 코웃음 친다.
“ 참나.. 니네 동료는 예전의 고기 방패가 아니야. 잘 보라고? “
춘향이 가리킨 방향에서 라티안은 빛을 두르고 이 악물고 차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래.. 그때 콩나물 1번이 부딪힌 마나는 크람 녀석들이 사용하던 빛이다.
가끔씩 보여주었던 춘향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를 내는 힘도 전부 빛이었다.
이제 그 힘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된 거겠지.
“ 저 자식 진짜...! 이 일 끝나면 죽여버릴 거야..!!!!! “
그대로 손에 푸른 불꽃의 검을 7개 만들어내 오른쪽에서 등장한 거대 지네 망령을 향해 휘두른다.
“ 큭큭.. 난 왼쪽을 맡을게~ 또 나타나면 큰 소리로 말해줘~! 들릴진 모르겠지만! “
그대로 춘향은 차량의 왼쪽으로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한다.
-슈우우우우... 콰쾅!!!!!!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폭격하는 것이 확인된다.
“ 이제서야 지원이 오는 거냐..! 좀 늦잖아..!! “
언제나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원망스러운지 사라가 있는 힘껏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동시에 춘향과 라티안이 차량으로 복귀한다.
“ 휴우.. 힘들다.. 넌 진짜... 할 거면 말이라도 하라고!! 던지는 건 싸우자는 거냐!! “
“ 아하하! 잘해놓고 왜 그래? 아무튼 지원이 시작됐으니까 조금 쉬도록 해! 조금 있다가 다시 뛰어내릴 거야! “
망령들의 수가 꽤 많이 줄어들었다.
뭐... 활의 위력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사건이었지만..
어찌저찌 이렇게 잘 마무리될 것 같다.
갑작스러운 전투였지만 이 정도 수의 망령도 줄일 수 있었으니 결국 잘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아직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긴장을 풀면 안 되지만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놀이처럼 즐기던 단 한 사람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 음~.. 어... 음...? “
춘향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계산한다.
저 포탄의 궤적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분명 망령 사냥을 지원하는 포탄인데 저 포탄은 왠지 모르게 여기로 향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앞쪽의 전갈을 노린 궤적인가..?
앞자리의 사라에게서는 아무런 신호도 없다.
그렇다면...
“ 하늘!! 하늘을 조심해!!! “
춘향이 그림자를 뿜어내며 수많은 토끼들을 만들어 포탄을 향해 날린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아무 말 없이 화살을 쏘고 있던 피렌이 주변의 검은 토끼들에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고 화살 한 방을 포탄을 향해 쐈다.
-콰콰콰콰콰콰아아앙!!!!!!!!!!!!!!!!!!!
“ 큭..!!!! 왜 이쪽에..!!! “
“ 꺅!! 살려줘!!! “
순간적인 폭발에 차량이 흔들려 자리에서 일어나 조준하고 있던 아리나가 떨어질 뻔했다.
다행히도 춘향이 손을 붙잡아 겨우 건져냈다.
“ 9-9 응답하라!! 똑바로 조준 안 하냐!! 왜 이쪽을 향해 쏘는 거야!!!!! “
잔뜩 화난 사라가 소리를 지른다.
-무슨 소리지? 우린 망령을 향해 쏠 뿐이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대놓고 차를 향해 쐈잖아!! 여기에 망령이 어디있.. “
..
사라의 눈이 춘향을 향한다.
“ ..아~.. 나 때문인가? 하하! “
“ 으으으으으~! 진짜 이 외계인들은 뭐 이렇게 방해밖에 안 돼!!! “
사라가 계획을 전부 무너뜨리고 새로 쓰기 시작한다.
뒤에 몰려오는 망령의 수는 현저히 줄었다.
9-9시 지구는 춘향도 적으로 취급하고 공격하고 있다.
망령을 가지고 인간이라고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 어떻게 할까 사라!! 빨리!! “
레일리가 정면보다 하늘을 바라보며 포탄을 피하고자 이리저리 운전하기 시작한다.
피렌도 꾸준히 하늘을 보면서 포탄을 공중폭파시키고 있었다.
“ ...일단 쭉 달려..!!! 9-9에서 멀어져야 해! 싸울 수 있는 망령보다 싸울 수 없는 포탄 쪽이 더욱 위험해!! “
“ 거.. 거긴.. 알았어..! 일단 간다..!! “
사라의 말을 계속 따르던 레일리마저 조금 난감한 모양이다.
하긴... 도시를 벗어나 망령들이 점령하고 있는 땅으로 달리라는데 당연히 의심될 수밖에.
“ 어쩔 수 없어! 일단 달려서 쫓아오는 망령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방법을 찾아낼 수밖에!! “
춘향이 토끼들을 뿜어내고, 피렌이 포탄을 요격한다.
아리나가 후방의 망령들을 처리하고 라티안이 이따금 뛰어내려 앞에서 등장하는 거대 전갈 망령이나 거대 지네 망령을 처리한다.
-끼이이익!!!!
갑자기 레일리가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모두가 앞으로 쏠렸다.
“ 우왁!!!! “
“ 앗..! “
이번에는 춘향도, 사라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쏠려버렸다.
“ ..레일리 왜 그래? “
레일리의 눈이 흔들린다.
“ ...지도에 이런 곳이 없었어? “
분명.. 사라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지도를 확인하며 길을 알려줄 텐데.. 눈앞의 거대한 균열을 놓칠 리가 없었을 텐데..
“ ..이거 뭐야.. 설마.. 갱신이 안 된 건가...?! “
레일리는 핸들을 꺾어 억지로 방향을 틀고 달리기 시작한다.
“ 우와아아아앗..!!! “
차량에 탑승한 모든 인원이 앞으로 고꾸라져있던 가운데 억지로 옆으로 꺾어 몸이 쏠린다.
덕분에 한순간 후방견제를 일절 하지 못했다.
잠깐 망설이던 그사이에 망령들이 차량에 전속력으로 부딪혀 왔으며, 하늘에서는 포격이 떨어져 충격으로 차가 밀려난다.
그대로 모두가 탄 차량은 균열 아래로 떨어진다.
“ 떨어진다!!! 다들 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아!!!! “
춘향이 왼편에 붙은 망령을 낫으로 썰어버리며 혀를 찬다.
“ 칫... 이래서 안전벨트는 꼭 해야 했는데...!!! 이 시대 인간들은 안전에 대한 개념이 왜 없는 거야! “
- 작가의말
안전벨트는 필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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