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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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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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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공범자

DUMMY

수많은 이라는 표현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망령들이 단 한 명을 향해 달려온다.

아마.. 옛날의 앨리스였다면..

지금보다 마나에 대한 지식도, 마나량도, 실력도 부족할 지라도 지금 이렇게 살아서 앨리스를 향해 달려오는 모든 생물을 쓸어버렸겠지.

안타깝게도 앨리스는 이런 슬픈 과거도 함께 끌어안고 나아가기로 마음먹었으며, 언제나 함께하는 동료들도 생겼다.

앨리스를 찬양해주는 사람들도 지상에 있었으며, 앨리스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사람도 있었다.

이미 앨리스는 사람의 따스함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앨리스는 광범위 마법으로 쓸어버리는 선택지 대신 다가오는 망령 하나하나를 온 힘을 다해 성심껏 꿰뚫는다.

오른손의 레이피어를 휘둘러 한 마리,

왼손의 꽃잎 한 장으로 충격파를 쏴 또 한 마리,

왼 다리를 가속해서 또 한 마리,

발로 찬 왼 다리를 다시 축으로 삼아 오른발로 또 한 마리.

모든 망령을 성심성의껏 정확하게 얼굴을 바라보며, 얼굴이 없는 생물은 모든 형태를 기억하며 부순다.

물론 온통 검은색이었기 때문에 다 똑같아 보이지만..

그런데도 앨리스는 전부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베고, 찌르고, 꿰뚫으며, 터트린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의 망령이 앨리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앨리스는 가볍게 막아내고 반격을 했지만, 쉽게 베어내지 못했다.

아마.. 춘향의 옆에 있던 제이콥이라는 망령인 듯하다.

“ 역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마녀답게 강하군.. “

“ ...미안. “

제이콥과 수십 번의 공방을 펼치며, 주위에서 몰려오는 망령들을 모조리 쳐낸다.

이어서 마커스도, 조엘도, 메이슨도 앨리스를 향해 묵직하고도 강한 공격을 퍼붓는다.

하지만 앨리스에게 상처를 입히기에는 역부족이다.


망령은 시체가 남지 않는다.

죽으면 그대로 그림자로 스며들며 사라질 뿐이다.

덕분에 평범한 망령들이 아무리 죽어도 이 전장이 변하는 경우는 없다.

그냥.. 망령들만..

과거의 인간들..

과거의 생물들만 죽어 나갈 뿐이다.

“ 다들... 그만해!!!! “

춘향이 높게 도약해 천장을 발로 차고 앨리스에게 온몸을 처박는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토끼들을 만들고 강하게 폭발시켜 모든 망령들과 앨리스의 시선을 모은다.

물론.. 그 폭발로 인해 다치거나, 망령들이 죽는 일이 없도록 한다.

춘향은 그대로.. 앨리스와 등을 맞대고 선다.

“ ..이게 무슨 짓이지 춘향? “

“ 너는 망령의 편이 아니었나요? “

앨리스의 등을 통해서 춘향이 떨고 있는 것이 보인다.

“ 그래. 아니었어. 온통 새까매가지고 마나만 보면 환장하는 망령들을 내가 어떻게 믿겠어? “

한순간 공기가 변하는 느낌이 든다.

“ ..연기하던 거.. 아니었어? “

“ 아 그래. 연기도 했었지. 망령도 줄여달라고 했었지. 그런데.. 모르겠어. 내 마음도. 내 머리도. 전혀 모르겠어. “

그리고 춘향은 뒤를 돌아 앨리스의 목에 낫을 걸었다.

“ ... “

“ 대답해줘. 어째서 넌 망령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지 않은 거지? “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이콥도, 마커스도, 조엘도, 메이슨도 당황한다.

방금까지 자신의 편이라고 알고 있던 망령이 앨리스의 편에 서더니 다시 또 앨리스를 향해 낫을 들었다.

앨리스는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도 과하게 강하다.

춘향 역시 앨리스만큼은 아니지만 강하다.

둘 다 적으로 두어야 할지, 하나만 적으로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앨리스의 입이 천천히 움직인다.

“ ..내가.. 잘못한 거니까. “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 내가.. 나 때문에.. 모두가 이렇게 된 거니까. “

앨리스는 춘향의 낫을 손으로 쥐고 내린다.

“ 분명..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도 분명 있겠지.. “

그리고 춘향을 바라본다.

“ 하지만.. 난.. 과거로 되돌아가도 똑같이 할 거야. “

그때 앨리스를 향해 비난하던 지구인들의 목소리를, 비난을.

앨리스가 느꼈던 감정을, 외로움을.

그 모든 것들이 붉은 꽃이 되어 앨리스의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 나는.. 파멸의 마녀야. 그렇기에.. 한명 한명 성심성의껏 모든 힘을 다해서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평생을 기억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 “

이번엔 모든 망령을 천천히 바라본다.

“ ...모두들 미안해. 내가.. 이기적이라서.. 인간이라서 미안해. “

미안하지만..

정말 너무 미안하지만..

이제는 앨리스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과거의 죄에 대해 속죄하겠답시고 얌전히 죽을 수는 없다.



춘향은 앨리스의 말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듣는다.

앨리스는.. 과거 지구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춘향 역시 자신이 살고 있던 쓰레기 같은 세상은 부서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다.

그때 앨리스가 어떻게든 참았더라면.. 마나가 퍼지지 않았더라면..

망령이라는 존재가 태어나지 않아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모르겠다..

자신은 망령이지만.. 이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태어난 망령이 아니다.

한 박사가 자신의 연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안타까운 사고로 만들어진 지구 최초의 망령이다.

춘향 역시 앨리스라는 존재에 대해 별생각 없었었으며, 세상이 앨리스에 의해 무너져버린 뒤에도 2000년간 인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망령에 대한 것을 잊어버렸다.

춘향 자신이 감정을 가진 망령이자 인간이듯이.

여기 있는 망령들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자 망령이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앨리스에게 깊은 분노를, 복수심을 모든 망령이 내뿜었을 때 춘향은 깨달았다.

지금의 망령들은..

마나를 먹기 위해 덤벼드는 것이 아닌,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의지가 있다.

“ 하아.... “

진작 알았더라면..

진작 제이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지상을 발전시킬 때 동시에 지하에도 관심을 뒀더라면..

망령에게 망령이라는 죽은 자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제대로 된 이름을 만들어 주었을 텐데..

인간과 망령이 함께 살아가며 지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몸 역시 망령이기 때문일까.

춘향의 눈에는 어느새 지금의 싸움이 파멸의 마녀와 망령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싸움으로 보이고 있었다.

“ ...우리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방법은.. 없겠지..? “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춘향의 말을 들은 모두가 이해하지 못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말을 꺼낸 춘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만약 이뤄진다면..

춘향은 상상한다.

언젠가 망령들이 태양을 극복하고, 지금처럼 마나가 풍족해 더는 인간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인간들도 망령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인간들이 망령들에게 곡식을, 과일을, 그 안에 담긴 마나를 망령에게 나누어 준다.

망령은 끝없는 생명력과 강인한 육체를 이용해 마을을, 도시를 발전시킨다.

그렇게 망령과 인간이 공존해가며 생활한다.

그렇게 점점 서로를 의지하고 강해진다면..

외계의 침략에도 앞에서 망령이 싸워주고, 뒤에서 인간들이 대규모 마법을 통해 외계의 침략을 물리친다.

춘향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지구에 위협이 없어진다.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어진다.


“ 불가능하다. 우린 저 녀석을 죽여버리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 물론.. 지금 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인간들도 함께 쓸어버려야지. “

“ 우리의 땅을 되찾아요. 우리의 삶을 되찾아요. “

춘향의 꿈은 꿈이라는 듯이 망령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 ..미안해.. 내 손으로.. 내가 만든 과거를 끝내고 나 혼자서 품고 나아갈게. “

그런 망령들의 말을 듣고 앨리스도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선언한다.



아아.. 정말.. 싫다..

이건.. 너 혼자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어 앨리스..

지금 이 상황은..

오직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발전에만 신경 쓴..

지하에 관심을 두지 않은..

과거의 인간들을 망령이라는 죽은 영혼으로 취급하고 전부 쓸어버리고 마나를 나눠주지 않았던..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망령은 위험하다고 말해버렸던 내 잘못도 함께 들어가 있다.

나와 너.

둘이서 만들어낸 안타까운 세계다.



춘향이 자세를 잡고 낫을 만들어낸다.

“ 진짜.. 진짜.. 미안하다.. “


제이콥이 춘향을 바라본다.

“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변하지 않는군. 쳐라. “


그렇게 앨리스와 춘향 둘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망령이 이번에는 춘향까지 포함해 공격한다.

춘향은 토끼를 만들어내 폭파하는 방법이 아닌, 앨리스와 똑같이 한명 한명을 붙잡고 낫을 휘두른다.

“ 미안해..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생각이 깊었더라면...! 미안해...! “

앨리스 역시 절대 눈을 떼지 않고 한명 한명 바라보며 레이피어를 휘두른다.

평소와 똑같이 아무 말도 없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죽인다.


앨리스 한 명만을 노릴 때는 어떤 식으로 공격해도 똑같은 상황만 나왔었는데

춘향과 앨리스 두 사람을 노리기 시작하자 오히려 두 명이 망령을 압도적으로 이겨내고 오히려 밀고 나가기까지 한다.

조엘이 앨리스를 한차례 공격하더니 제이콥의 옆으로 다가온다.

“ 이거. 안 되겠는데요. 점점 위험해요. “

제이콥은 주위를 바라본다.

어느새 이곳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들도 꽤 많이 부서져 버렸다.

“ ...그래.. 더이상 망령들도, 기둥들도 위험한 수준까지 왔군... “

제이콥이 오른발을 들고 아주 강하게 땅을 내려찍는다.

-쿵...!!!!!!!

그 순간 모든 망령의 움직임이 멈추고 뒤로 물러선다.

“ ...한 달 뒤. 우린 너희 인간들에게 전면 전쟁을 선포한다. 그 전에 우리를 공격한다면.. 여기 있는 모든 기둥을 전부 부숴버리겠다. “

앨리스가 그 말을 듣고 주위의 지형을 바라본다.

...어느새 이렇게 기둥들이 부서져 있다.

이 일대 땅은 당장이라도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까지 들었다.

“ ...가자. “

제이콥의 한마디에 모든 망령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모두가 떠난 빈자리.

앨리스와 춘향만이 남아있었다.

춘향은.. 어느새 주저앉아 울고만 있다.

“ 아아.. 진짜.. 전혀 몰랐어.. 흑... 나만... 나만 제대로 했었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흑.. 가졌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

앨리스가 천천히 다가와 춘향을 안아준다.

춘향이 정확하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러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마나에서, 표정에서, 목소리에서 느껴진다.

“ .... “

그렇게 춘향은 한참을 울고, 그런 춘향을 앨리스가 아무 말도 없이 끝까지 안아주었다.




춘향이 울음을 그치고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떨리는 입술을 뗀다.

“ ..너가 세계를 부쉈어도.. 살아남은 인간들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어.. “

앨리스는 그대로 가만히 들어만 주었다.

“ ... “

“ 오히려.. 깨끗하고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뻤어.. “

“ ... “

“ 그런 인간들과 함께 지내고.. 함께 나아가고.. 정들고.. 익숙해지고.. 그러다 잊어버렸던 거야.. “

“ ... “

“ 망령을 처음 만났을 때.. 나랑 똑같은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존재로 취급해버렸어.. “

“ ... “

“ 그렇게 죽이고.. 또 죽이고.. 망령은 위험한 거라고 배척하고.. “

춘향은 자기도 모르게 앨리스에게 기대던 몸을 뗐다.

“ ..나도.. 너와 같은 공범자였던 거야.. “

뺨에 흐른 눈물 자국을 억지로 지워내고 억지로 웃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 같은 죄를 지은 사람끼리.. 과거를 가슴에 품고..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다시 세계를 쌓아 올리자. “


작가의말

망령과 함께 생활한다라..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지금은.. 늦었겠죠?
미안하네..
내잘못도 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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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58. 오랜만이야.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어. 23.04.30 261 1 14쪽
163 157. 아무리 강해져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 23.04.29 261 1 14쪽
162 156. 얼마나 강해진 걸까 23.04.28 260 1 13쪽
161 155. 돈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23.04.27 261 1 15쪽
160 154. 서로 다른 시간에서 살아온 지구인 23.04.26 260 1 14쪽
159 153. 어딘가 엇갈린 지구인들의 대화 23.04.25 260 1 12쪽
158 152. 지구로 간다며 사기꾼아 23.04.24 259 1 13쪽
157 151. 족쇄 23.04.23 26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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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49. 세계의 진실 23.04.21 263 1 14쪽
154 148. 신이라는 존재 23.04.20 2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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