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유로비트
작품등록일 :
2023.02.04 13:57
최근연재일 :
2023.07.09 12:54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23,094
추천수 :
472
글자수 :
944,177

작성
23.06.21 07:50
조회
60
추천
1
글자
13쪽

140. 폭탄 돌리기

DUMMY

베르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너의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부담스럽다는 거군.”


베르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조금 어이없네.”


“엥? 왜?”


“내가 방금 말했잖아. 대통령은 선출직이야. 심지어 네가 무슨 왕이 너무 되고 싶어서 정적들을 암살하면서 왕이 된 것도 아니잖아?”


“... 그렇지?”


“그런데 왜 그 영향력을 고민해? 일단 네가 뭘 원하는가가 문제 아니야?”


“...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니까 문제 아니야?”


“...”


페스는 정말 할 말이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 아니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지!”


“... 그 이야기가 아닌데?”


“그럼?”


“하고 싶은 거 네가 얘기했잖아?”


“뭘?”


내가 뭘 말했지?


“진짜 어이없는 녀석이네...”


“아니 진짜야...”


페스가 나를 너무 어이없다는 듯이 보고 있어서 갑자기 쪼그라들었다.


“영향력이 행동에 제약을 준다며?”


“어.”


“행동을 좀 편하게 결정하고 싶은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럼 영향력을 줄일 방법을 찾는 거 아니야?”


“어...?”


그게 그렇게 되나?


“뭐... 왕을 누구에게 물려줘 버리든, 아니면 돈을 벌만큼 벌었으면 아이돌을 은퇴해 버리든 그런 걸로 영향력을 줄이면 되는 거 아니야?”


“... 어?”


설득력이... 있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게 신경 쓰이면 그걸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거지. 아니면 그걸 감당할 정도로 책임감 있는 인물이 되던가.”


“어... 그러네.”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였다.


-----------------------------------


결국 내 사정을 전부 듣지 않고도 페스는 훌륭하게 해결책을 제시해 버렸다.


당장에 아이돌은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으니 각성계의 왕을 내려놓으면...? 그럼 어떻게 내려놓으면 되는지 로테에게 의논을 좀 해볼까?


“... 각성계의 왕을 내려놓을 방법?”


로테는 난감한 얼굴로 변했다.


“... 나는 각성계의 왕인 적은 없는데...”


“적어도 알베르트가 저한테 각성계의 왕을 넘긴 걸 보면 방법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거 신한테 부탁한 거 아니었어?”


아...?


“그... 그런가요?”


“아니 그냥 쉽게 넘길 수 있었으면 멸망의 인도자 같은 걸 계속 짊어지고 갈 생각이 없지 않았을까?”


... 그렇게 생각하니 열받네? 나한테 떠넘긴 거였냐?


생각해 보니까 유산이랍시고 넘겨준 것들이 대부분 부채에 가까웠다.


베르는 왼팔을 흘낏 봤다.


[...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너도 뭔가 나한테 떠넘긴 짐덩이 같은 게 아닐까...?”


[뭐?]


페이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내가 없었으면 너는 이미 교통사고 때 죽었어.]


“어...?”


갑자기 생각났다.


교통사고!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게 신이었는데... 그게 루드와 단디였을까?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 몸이 너의 충격을 받아서 고스란히 왼팔에 흉터 형태로 남아있었으니까 네가 살아있는 거라고.]


“아...”


시작점은 왼팔의 흑염룡이었다.


지금은 왼팔에 문신이 되어버렸지만 붕대를 감고 다녀야 했던 흉측한 흉터였다. 아니 지금도 붕대를 안 감고 다니기엔 좀... 용문신이 뭐야 용문신이...


“그런데 왜 왕을 떠넘기고 싶은 거야?”


“아니 떠넘긴 다기보다는...”


“애초에 누구에게 넘길 생각이었는데?”


거기까진 생각도 안 해봤다. 일단 넘길 수 있는지라도 알고 싶었을 뿐.


“... 그을음?”


벤더일파와 연락이 끊긴 지금은 그을음 정도만... 아니 사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로테가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 너무 많은 걸 짊어지게 해서 미안해. 그걸 알고 있으니까 최대한 돕고 있는 거야.”


“저야 항상 고맙죠...”


진짜로 로테 아니었으면 애초에 포기했을 길이었다.


갑자기 부드러운 손이 베르의 손을 잡았다. 베르는 깜짝 놀라서 손을 빼버릴 뻔했다.


로테는 베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로테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 있으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로테... 로테도 불쌍한 존재다.


사실 그녀와 알베르트는... 단디에 의한 안배였지. 그녀가 그 사실을, 자신의 사랑에 타인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면 슬퍼하지 않을까?


“... 사실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네?”


나에게?


“네 어깨에 걸린 무게만으로도 충분히 무겁다는 건 알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니까.”


“... 뭐가요?”


“나를 다시 시간 축 위에 돌려놔 주라는 거지.”


아...


“나는 이대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살게 되는 걸 원치 않아. 난 이제 다시 시간축 위로 가고 싶어.”


로테의 모습에 백야가 겹쳐 보였다.


“평범함...”


“응?”


“모두 다 원하는 건 평범함이었네요.”


“그게 무슨...”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던 로테는 그게 베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 다들 내려놓기를 바라는 거지. 항상 그다음, 그다음만을 바라볼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에서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으니까.”


“... 그래서 왕을 내려놓고 싶었어요.”


“... 그래서 우리가 방법을 찾고 있는 거지. 신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짐을 내려놓을 방법을 물어보면 될 거야.”


미안해요. 로테.


이미 신은 만났어요.


그리고 당신들도 모두 그 신을 만났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로테가 속삭였다.


“그걸 내려놓고 나는 너와 행복하게 지내면 되지 않을까?”


네? 네? 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프러포즈?


멍해있는 베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로테가 자리를 일어섰다.


-----------------------------------


잠시 맑아진 것 같았던 머릿속이 조금씩 다시 복잡하게 얽혀드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알베르트는 뭐라고 거래를 했던 것일까? 본인의 거추장스러운 각성계의 왕을 떼어달라고 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알베르트의 거래에는 붙어있는 조건들이 꽤나 많았다.


그중 하나는 로테와 로테의 동생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루드에게 속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 봤을 때는 결국 동생들이 전생했고, 심지어는 동생들을 모으는 방법도 있었고, 편안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동생들의 기억을 되찾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각성자가 되는 조건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정말로 로테와 동생들이 그것을 바랐을까?


아니었겠지.


미묘하게 조건을 충족하면서 방법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시간을 돌리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건 알베르트가 제시한 방법일까 아니면...


그것 역시 신들의 장난질에 속아 넘어간 알베르트가 강매(?)당한 것일까?


만일 루드나 단디와 만나서 거래하기 전에 그걸 생각해두지 않는다면 자신도 알베르트 꼴이 나지 않으라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느끼기에 알베르트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완벽을 지향하는 인물이었음에도 그리 당했다. 그렇다면 베르 본인 같은 어리바리 한 사람이라면 위험이 너무 컸다.


“끄으으으... 어떻게 한담...”


로테가 말한 것처럼 누구에게 짐을 넘길 것인가도 문제였다.


대체 알베르트는 무엇을 보았기에 한번 본 적도 없는 생판 남인 나에게 넘긴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 전생이 알베르트인 딱 그 정도인 걸까?


질문이 수십 개인데 하나 같이 만만한 질문이 없었다.


베르는 아무리 봐도 다시 현명한(?) 페스를 찾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뭐 하냐?”


“아...”


베르는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춘봉 어르신과 만운 어르신을 마주쳤다.


만운이 베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했다.


“놔둬라. 베르가 가장 바쁘고 힘들걸.”


꽤나 오랜만에 뵌 두 분은 상당히 분위기가 밝아보였다.


“잘 지내시는 거죠?”


“우리야 잘 지내지.”


왜 이리 활기가 넘치시는 걸까?


“어쨌든 우리가 수십 년을 해온 게 악마를 때려잡는 거니까... 한동안 악마가 없어졌을 땐 우울증이 올 뻔했지 뭐야.”


베르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유명한 게임의 ‘악마사냥꾼’이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그럼 요새 악마를 잡고 계신 거예요?”


“그렇지. 몸을 좀 움직였더니 이제 살만하구나.”


“각주가... 균열 처리를 넘겨주던가요?”


“넘기고 말게 어디 있어? 해주겠다는 데 감사합니다 하고 물러나는 거지.”


춘봉의 패기 넘치는 말에 만운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일단 각주는 어라우절 멤버들에게는 무조건 우대해 줄 것을 이야기해놓은 모양이야. 거기다 우리는 몇 명 안 되잖아? 그래서 우리가 가면 알아서 비켜주는 중이다.”


하긴... 각성계에서 무슨 ‘마석’이라거나 뭐가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미쳤다.


간섭력은?


“... 악마를 잡으면 우리가 좋은 게 있나요?”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아니 예전에 말씀해 주실 때는 사실 악마를 잡아야 현실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어차피 스트루프 때문에 악마를 잡는다는 거 말고 이유가 있나 해서요.”


이춘봉은 박만운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


“... 딱히 없지. 뭐 각성 능력이 세지는 것은 있지만.”


그거다! 그게 아마 간섭력이 아닐까...?


“그게 혹시 간섭력이 쌓이는 거 아닐까요?”


“간섭력?”


이춘봉의 의아한 표정을 뒤로하고 박만운이 말했다.


“악마가 지상에 넘어올 때 필요한 그거 말이냐?”


“네.”


“간섭력이 우리에게도 쌓이는 거 아니냐고?”


“... 그런 게 아닐까요?”


박만운은 턱 끝을 한번 쓰다듬더니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


“어... 아닌가요?”


“정확한 건 모르지. 하지만 예전에도 말했지만 갈수록 주문이 짧아진다고 했잖아?”


“아... 네.”


“주문이 짧아지는 이유가 아마도 균열을 넘을 때 주문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간섭력이 쌓여서 되는 게 아닐까 했다.”


“아...”


말이 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한 가지 의문이 늘어버렸다.


“... 그럼 각성의 주문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간섭력이 어느 정도 늘어났다거나... 보정이 되었다는 거네요?”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거지. 정확한 건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 간섭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있는 건 아니니까.”


의외로 박만운은 부적과 주술을 다루지만 항상 증거와 수치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까먹고 있었군.’


신에게 물었어야 했다.


각성의 주문은 누가 만들었냐고.


각성의 주문에 페이가 있었던 것이나 아니면 각성의 주문이 바뀌기도 했던 것을 보면 누군가가 상황을 보다가 바넘을 통해서 내려줬다는 느낌이 강했다.


바넘이 각성계의 신의 화신이었다는 게 밝혀진 지금은... 그렇다면 그건 각성계의 신이었을까?


“뭐... 사실 춘봉이랑 나는 그걸 고민할 필요가 없지.”


베르는 새삼스럽게 두 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은 평온함이라는 감정이었다. 이미 이 분들에게는 악마를 때려잡는 것은 평온한 일상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부담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어떤 결정이 다른 사람들의 평온함과 평범함을 빼앗을 수도 있다.


페스를 만나서 시원하게 풀어냈다던 감정은 로테를 만나고 이춘봉과 박만운을 만나면서 다시 얽혀 들었다.


베르는 두 분께 인사하고 터덜터덜 엘리베이터를 향해서 걸었다.


자신의 결정에 다른 사람의 영향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해야 하는 걸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알베르트의 기분이 이해가 가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시간을 돌려서 모두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를 줘버리는 건 어떨까?


“안녕?”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베르를 누군가 붙잡았다.


돌아본 곳에는 데스티니의 막내이자 세 여신의 막내인 스쿨이 서있었다.


“다 들었다며? 나랑도 얘기 좀 해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에필로그 관련 공지 +1 23.07.09 49 0 -
공지 본 작품은 허구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23.03.04 63 0 -
공지 현재 연재시간은 매일 오전 7시 50분입니다. 23.02.28 49 0 -
공지 머콘 일러스트 입니다. 23.02.27 117 0 -
공지 표지사진 변경합니다. 23.02.20 117 0 -
154 에필로그 : 백야 (2) +3 23.07.09 57 2 16쪽
153 에필로그 : 백야 (1) 23.07.09 44 2 14쪽
152 151. 결말 +2 23.07.02 83 2 19쪽
151 150. 인간의 신 23.07.01 57 1 15쪽
150 149. 거래 23.06.30 53 1 14쪽
149 148. 환각 23.06.29 58 2 13쪽
148 147. 빌런 23.06.28 57 1 13쪽
147 146. 우로보로스 23.06.27 55 1 14쪽
146 145. 혼돈 23.06.26 59 1 14쪽
145 144. 악마종 23.06.25 58 1 14쪽
144 143. 근원 +1 23.06.24 69 2 14쪽
143 142.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23.06.23 59 1 13쪽
142 141. 흔들리는 진실 23.06.22 62 2 12쪽
» 140. 폭탄 돌리기 23.06.21 61 1 13쪽
140 139. 유산의 무게 23.06.20 76 1 15쪽
139 138. 자기만족 23.06.19 65 1 14쪽
138 137. 간섭력 +2 23.06.18 66 2 13쪽
137 136. 진실의 조각 23.06.17 58 1 13쪽
136 135. 신만이 아는 것 23.06.16 63 1 14쪽
135 134. 너의 소원을 +1 23.06.15 57 2 13쪽
134 133. 비공개 오디션 (3) 23.06.14 54 1 14쪽
133 132. 비공개 오디션 (2) 23.06.13 56 1 14쪽
132 131. 비공개 오디션 (1) 23.06.12 59 1 14쪽
131 130. 제작사 어라우절 23.06.11 55 1 14쪽
130 129. 이슈의 중심 23.06.10 59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