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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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로비트
작품등록일 :
2023.02.0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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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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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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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악마종

DUMMY



발끝에 빗방울이 튕겼다.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던 베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각성계에도 비가 내릴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후드득


빗방울이 하나둘씩 바닥에 색깔을 칠하며 소나기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지만 베르는 그저 멍하니 비를 맞고 있었다.


어릴 때 이후로 비를 맞은 기억이 없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비가 올 것 같지 않아서 우산을 갖고 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비 맞고 올 것을 걱정한 어머니가 뒤늦게 우산을 갖고 오셨지만 어린 현우는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우산을 들고 오던 엄마에게 뛰어가서 물이 뚝뚝 흐르는 채로 씩 웃는 현우에게 현우엄마는 화를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홀딱 젖은 생쥐 꼴인 현우를 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미 젖었으니 어쩔 수 없이 씻고 일찍 자라고 하셨다.


결국 현우는 그날 저녁 펄펄 끓으며 열이 올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드물게 서로 화를 내며 싸우셨다.


그 뒤로 현우의 기억에 비를 맞은 적이 없었다.


가끔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날이라 해도 우산을 챙겨서 다녔다.


쏟아지는 빗속에 서있으니 혼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이제는 누가 야단칠 사람도 없다.


이제는 누가 대신 화내주지도 않는다.


대신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수많은 존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쏴아아아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소리도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감각의 대부분이 작동하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나던 날도 이런 밤이었다.


자신은 여전히 사고로 흉터를 얻은 그날 그 자리에 서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진현우의 삶은 그때 멈춘 게 아닐까? 그럼 지금의 이 삶은?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일까?


신? 악마? 아니면 동료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나게 되거나 연관되는 사람들도 그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실루엣은 점점 가까워졌다.


두근.


흐릿한 실루엣으로 보아 여자였다. 누구지? 로테? 머콘? 소라? 아니면 데스티니?


다가오던 실루엣이 멈칫했다. 그러더니 옆으로 비껴서 지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여학생이 빗속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를 맞고 있는 자신을 피해서 빙 돌아서 지나갔다.


약간은 겁먹은 듯한 여학생이 그렇게 지나가고 나서야 베르는 지금 자신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히 세상에는 여전히 자신을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많았는데, 왜 자신은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걸까?


“꼴이 이게 뭐야?”


“... 그냥 좀.”


쫄딱 젖은 채로 숙소에 도착한 베르를 보고 페스는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별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 씻고 일찍 자라.”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베르에게는 울컥하는 추억 속의 한마디였다.


“... 그래.”


-----------------------------------


스쿨은 마시려던 차를 입만 대고 내려놓았다.


“조금 이르지 않았을까?”


베르의 걱정(?)과는 다르게 데스티니는 숙소에 다 같이 모여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씁쓸한 표정의 루드가 말했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움직이고 미래를 보는데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니...”


“하지만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야? 저번과는 다르겠지.”


“그래. 적어도 알베르트처럼 끝나지는 않겠지.”


단디는 가장 안색이 좋지 않았다.


루드는 그런 단디의 안색을 보고 말을 이었다.


“어떻게 봤을 땐 이제 정말 뒤가 없어. 우리로서도 할 수 있는 건 다 떼어 준 셈이니까.”


조용히 있던 단디가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보다는 낫다는 것에 동의한 거잖아?”


스쿨이 말을 끊고 루드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한 거야?”


“뭘?”


“시간을 돌렸다고 한 거 말이야.”


“그거나 그거나.”


어이없어하는 스쿨을 무시하고 루드가 말했다.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온 거나 뒤로 돌아간 거나 무슨 차이가 있어? 그냥 그렇게 설명하는 거지.”


“한 바퀴 돌았다고? 그냥 끼워 넣은 것뿐 아니야?”


루드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과거는 나의 영역이지. 미래는 너의 영역이고. 너는 미래를 읽을 수 없고 나는 과거가 계속 바뀌고 있어. 이건 그냥 변화가 아니라 빙빙 돌고 있는 거야.”


“그럼 우리가... 윤회하는 거라고?”


“무슨 헛소리야? 신이 윤회를 왜 해? 어디가 시작점인지 끝점인지 모른 채로 꼬리를 문 뱀처럼 돌고 있다는 뜻이지.”


단디가 다시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 이유가 둘 때문인 건 알고 있는 거지?”


루드와 스쿨이 입을 다물었다.


“... 그럼 정확히... 베르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이 순환의 고리를 잡아당겨서 부숴버릴 정도의 중력(gravity)을 기대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스쿨의 질문에 단디가 잠시 말을 멈추자 루드가 이어받아서 말했다.


“우리는 이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면 다행인 거고...”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베르한테 넘겨준 것들 말이야.”


“... 그건 나도 몰라.”


루드의 말에 스쿨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불확실한 미래에 거는 거야? 내가 미래의 여신이어도 그걸 확신을 못 하는 데?”


단디가 스쿨을 제지했다.


“진정해. 이미 한 번 회수한 적이 있잖아?”


“저걸 회수된 거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어?”


“물론 컨트롤이 되는 상황은 아니지.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우리가 원하던 대로 흘러가고 있잖아?”


스쿨이 루드를 쳐다봤다.


“다른 것보다, 각성계는 어떻게 할 거야?”


“... 스트루프로 완전히 분리시키고 나면...”


“그러고 나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자.”


스쿨의 화가 폭발했다.


“평생 루드로 살 생각이야? ‘Urd’로 돌아가지 못하고?”


“뭐... 최악의 경우에는 그러겠지만 적어도 네가 ‘Skuld’가 되지 못하거나 단디가 회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스쿨이 움찔했다.


“적어도 ‘죽음’을 회수하지 못해서 불멸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


베르는 밤중에 눈을 떴다.


“잠이... 깬 건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래도 어라우절은 꽤나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멤버들은 각자의 방을 하나씩 쓰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물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베르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읍...!!!”


소리치려는 베르를 상대방이 입을 막았다.


“처음도 아닌데 이러기야?”


머콘이었다.


서서히 베르의 심장소리가 진정이 되는 걸 듣고 나서야 머콘은 베르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아니 대체...!”


“쉿! 다 깨울 생각은 아니겠지?”


머콘이 야릇한 미소를 짓는 순간 베르는 등골이 오싹했다.


바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마주치질 못하더라고.”


“무슨 말이요?”


베르는 예전에 머콘이 한밤중에 집에 찾아왔을 때가 생각났다.


“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후- 하고 심호흡을 하고 나니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 너무 놀라서 그런 거거든요.”


“그래? 정말?”


“네.”


단호한 베르의 모습에 머콘이 눈에 띄게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


“아... 음...”


베르는 위로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 그... 무슨 일이에요?”


“... 베르가 고민하는 거에 대해서 해줄 말이 있었는데... 이제 안 해줄 거야.”


이게 무슨...


“제가 고민하는 거요?”


“그래. 여전히 각성계와 현실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을 거 아냐?”


“그렇죠?”


“스트루프가 강해지고 있는 것도.”


“... 그렇죠.”


“그거에 대해서 해줄 말이 있어서.”


“... 각성계에 대해서요?”


“응.”


베르는 맥이 탁 풀렸다.


이미 데스티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만큼 들은 상태였다. 물론 셋이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고 복잡하긴 했지만.


하지만 이미 알만큼 안다고 하면 머콘이 실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망설였다.


“사실 예전에 말해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까먹었어.”


머콘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 그래요?”


“... 어째 별로 기대가 안 되는 눈치인데?”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 머콘이 눈치가 빠르다는 것을 깜빡했다.


“아니. 나름 고급 정보를 가지고 온 건데 너무 태도가 심한 거 아니야?”


“하하하...”


머콘은 베르의 반응이 생각보다 별로인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각성계의 신을 만났어도 그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뭐... 신들이 보통 진실하지는 않죠.”


이번에 데스티니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으면서 깨달은 사실이었다.


머콘은 입술을 삐죽이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내가 이 밤중에 몰래 와서 이야기할 정도면 중요한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심지어 언니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물론 까먹어서 그랬지만’이라고 중얼거리는 머콘이었다.


“그래서... 각성계의 비밀이 뭔데요?”


각성계는 현실계의 신이 만들었다... 정도려나? 아니면 각성계는 현실계의 데이터로 만들었다거나...


하긴. 나도 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 정보들이니 엄청나게 고급 정보이긴 했다.


가르쳐주는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놀라는 척이라도 해야지.


“그건 바로... 나야!”


“...”


“아니 노골적으로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베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겨우 말했다.


“... 뭐... 네...”


“아니 조금 더 재미있고 극적인 효과로 말하려고 한 것뿐인데!”


머콘은 씩씩거렸다.


“베르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어...”


갑자기 직구가 몸 쪽에 꽂혔다.


“나는 서큐버스야. 알고 있지?”


“... 네.”


“그 이야기는 악마종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야. 알겠어?”


“... 네?”


애매하다. 아니 맞나?


스쿨이 현실계와 연결해서 꿈과 이야기와 동화들에서 뽑아 넣은 것들이 존재하니까... 당연히 악마도 각성계에서는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머콘은 잠시 베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뜨는 것 같다가 금세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아니. 너무 쉽게 받아들이네?”


“원래도 각성계에 악마가 있다는 건 어라우절에서 기본이었는데요 뭐.”


“진짜 본론은 여기에서부터야.”


응? 본론이 아니었어?


“내가 스트루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


“... 그렇죠?”


“그런데 나는 왜 현실계에서 머무를 수 있을까?”


“네?”


“간섭력이 엄청나게 소모될 텐데 내가 현실계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 말이야.”


“음...”


그러고 보니 백야가 현실계에서 머무르는 것 자체는 별 간섭력에 소모가 들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 한번 왔다가 돌아가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 내가 무슨 불법체류자라도 되는 줄 알아?”


머콘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내가 지금 별다른 활동을 못하는 이유가... 나 말고도 2명을 더 돌보고 있기 때문이야.”


“2명이요?”


“그래. 자이와 티그.”


그러고 보면 자이와 티그도 스트루프를 했다. 티그는 왠지 거의 밖에 나오지 않지만 자이는 나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돌본다는 게 무슨 뜻이죠?”


“내가 그 애들에게 간섭력을 나눠주고 있다는 뜻이지.”


그을음이 생각났다. 악마만 쓸 수 있는 방법의 일종인가?


“왜냐하면 나는 스트루프의 영향을 받지 않거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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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0. 폭탄 돌리기 23.06.21 60 1 13쪽
140 139. 유산의 무게 23.06.20 75 1 15쪽
139 138. 자기만족 23.06.19 65 1 14쪽
138 137. 간섭력 +2 23.06.18 65 2 13쪽
137 136. 진실의 조각 23.06.17 57 1 13쪽
136 135. 신만이 아는 것 23.06.16 62 1 14쪽
135 134. 너의 소원을 +1 23.06.15 56 2 13쪽
134 133. 비공개 오디션 (3) 23.06.14 54 1 14쪽
133 132. 비공개 오디션 (2) 23.06.13 56 1 14쪽
132 131. 비공개 오디션 (1) 23.06.12 59 1 14쪽
131 130. 제작사 어라우절 23.06.11 5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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