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겸업백작
작품등록일 :
2023.02.19 16:48
최근연재일 :
2023.03.17 12:0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22,617
추천수 :
870
글자수 :
158,740

작성
23.02.20 18:00
조회
1,423
추천
38
글자
13쪽

신이한 도련님(1)

DUMMY

“어디보자... 그러고보니 올해가 벌써 도련님이 태어나신지도 14년이 지났네요. 돌이켜보면 참 신이한 날들이었지요.”


야심한 밤, 대저택가의 창고 한구석에서 두 노비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아랫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는 주인 내지는 그에 준하는 귀족가의 신변잡기들. 오늘은 이 저택의 주인인 이찬 박문원네 장남이 반찬이었다.


“무엇이 그리 신이했단 말인가?”


“형님은 아직도 못 들은 겝니까? 어찌 이 집 식구가 소주인님을 모른단 말입니까?”


재밌다는듯 일을 열던 젊은 노비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며 물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집안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인 탓이다.


“아! 그야 난 지난 달에야 왔잖은가. 백날 농사만 짓다가 와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있어야 말이지.”


“허참... 곤란한데요.”


나이 많은 노비는 그대로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본래 경주 외곽 식읍에서 평생 밭일을 하다 운 좋게 금성으로 자리를 옮겨온 그에겐 여기서의 하루하루 그자체가 신이한 일인셈. 적응하느라 바빠 이런 잡담을 하는 것도 그에겐 처음이었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 이 사람아!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봐. 안그래도 비슷헌 얘길 몇 번이고 들었는데 당췌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 그야 하나하나 말하자면 날밤을 다 까도 부족하지요.”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거 몇 가지만 말해보게.”


역정에 젊은 노비는 턱을 어루만지며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머리를 굴리던 젊은 노비는 조금만 더 애태우면 화라도 낼 것 같은 상대의 표정에 이내 입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도련님이 태어난 날부터가 신이했지요.”


“태어날 때부터?”


“암요. 도련님은 태어날 때 빼고는 여태 단 한번도 운 적이 없답니다. 세상에나 부처님도 아기였을 땐 울었을텐데 말이지요.”


“크음... 아기가 울지를 않아? 그것 참 신이한 일이구먼.”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걸까 걱정하겠지만, 고대엔 그조차도 신령하게 여겨지는 일이 많았다. 특히나 세간의 관심을 받는 고위층의 일이라면? 작은 사건도 크게 부풀려지다보면 민심에 영향을 줘 관직이 오르내리는 수가 있었다.


“거기다 태어난 날 강보에 싸여있던 도련님이 어느 순간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인님을 쳐다봤다지 않습니까. 꼭 어른처럼요!”


“호오....”


“그때 주인님이 어찌나 놀라셨다던지...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지요. 커가시면서 똑똑하시기는 또 어찌나 똑똑하신지 몰라요... 돌이 지나기가 무섭게 말을 하시더니 셋을 넘기기도 전에 글을 깨우치시고 두 해를 안 지나서는 그 어렵다는 경서들을 다 떼었답니다. 박사들도 어려워한다는 그 경서들을요!”


“호오오오오....”


갈수록 커지는 감탄사에 괜히 으쓱해진 젊은 노비가 마저 말을 이었다.


“어릴 때만 그런 게 아니랍니다. 도련님이 어찌나 재주도 많으신지. 말도 타고 활도 쏘고... 또 얼마 전부터는 신물들을 만들어내셔서 저희들 일이 어찌나 편해졌는지 몰라요.”


“신물?”


기나긴 칭송 와중 난데없이 튀어나온 신물이란 용어에 늙은 노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신난 젊은 노비가 또다시 입을 떠벌렸다.


“예, 예. 말그대로 신물입죠. 비밀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제가 보기에 그건 하늘이 내린 물건이에요. 저어기 안주인님댁 뒤뜰에 우물 있잖습니까. 기억나죠?”


“어... 음... 알지.”


“우물 옆에 자그마한 철탑이 있는 것도 보셨지요? 그게 우리 도련님이 만든 거랍니다.”


“어... 그게 도련님이?”


늙은 노비는 애써 기억을 돌아보며 그때의 우물을 연상했다. 정신없어 가물하지만 말을 들어보니 분명 무언가를 봤던 것 같기도 했다.


“아, 글쎄 그 탑에 달린 막대를 누르면 물이 솟아나온다니까요! 우물바가지 넣을 일도 없이요!”


“뭐어?! 정말 이 댁에 그런 신물이 있었단 말인가?”


“그럼 제가 공연히 거짓말을 합니까? 덕분에 저희가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요. 거 물 뜨자고 한 바가지씩 퍼올리면 얼마나 힘든데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걸 도련님이 만들어...? 세상에 뭘 보고 그걸 만든다냐... 누각박사들도 수십년을 배워서 만드는게 철탑인데... 암만봐도 그건 헛소문 같다.”


늙은 노비는 여전히 못 믿는 눈치. 그걸 본 노비는 도리어 역정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나참! 못 믿겠으면 창지기 어르신한테 여쭤보시든가요. 그분도 비밀이라고 엄청 으르시겠지만은.”


“허... 그게 참이라면 정말 우리 도련님은 신동이 맞는가벼.”


마지못해 믿는 듯한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긴하지만 젊은 노비는 마저 말을 이었다.


“뭐... 공공연한 비밀입니다만... 몇 년 전 어무상심도 도련님을 가리킨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요.”


“어무상심이라면... 남산에서 임금님이 추셨다는 그것 말인가?”


“그거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시기로 보나 뭐로 보나 우리 도련님이 신장이라는 건 명명백백한 일인걸요. 주인님은 워낙 걱정이 많으셔서 비밀로 하시지만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문입니다.”


몰입하는 모습에 젊은 노비는 다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비록 노비에 불과한 신분이나 기왕이면 잘 나가는 집안 노비가 좋지 않겠는가, 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부스럭


“이야... 어쩌면 정말 우리 도련님이 신장일수도....”


그리고 그런 마음에 몇 마디를 더 보태려는 찰나, 갑자기 들려온 인기척에 젊은 노비가 황망한 고개를 돌렸다.


“쉿! 쉬이이잇!!!”


“어, 왜 그러나?!”


재차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 노비가 입에 손가락을 올리며 쉿, 을 연발하는 바람에 늙은 노비가 순간 당황했다. 젊은 노비는 그러거나 말거나 입을 막아가며 조용히할 것을 요구했고 그 탓에 둘이 한동안 숨을 죽이자 이내 인기척은 사라졌다.


“휴우... 아무튼. 모두가 아는 이야기긴 하지만 또 아무도 알아선 안되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주인님이 다들 입조심하라고 엄청 으르셨거든요.”


“흐음... 왜 그런 건가.”


“요즘 도성이 워낙 흉흉하잖습니까. 주인님도 그걸 염려하시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형님도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괜히 신나서 떠들어대다간 경을 칠 수가 있다구요. 아셨죠?”


“끄응... 알겠네. 입조심하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론 너무 유난을 떠는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늙은 노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밤공기가 찹니다, 도련님. 이만 들어가시지요.”


“그래, 알았다.”


박경휘가 시종 예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밤하늘을 바라봤다.


빛공해가 없는 고대답게 하늘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건 적당한 두께로 베어물린 초승달. 신라의 군기로 시작해 지금은 왕실, 더 나아가서는 신라 자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은 밤이었다. 지난 십여년간은 크게 고민하지 않던 노인과의 약속이 부쩍 연상되는 탓이다.


“넌 아까 창고쪽에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느냐.”


“그렇습니다, 도련님.”


그런 핑계로 머리를 정리할겸 밤산책을 나온다는 것이 외정문 근처 창고까지 이른 참이었다. 우연찮게 창고에서 나누는 노비들의 대화를 엿듣게돼 잠시 걸음을 멈췄건만, 시종은 아무 소리도 못들은 것 같았다.


“쥐라도 돌아다닌게 아닐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오랜 시간 예견을 보아왔기에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그보단 자신의 귀가 비정상적으로 밝아졌다는게 신빙성이 있을 터.


박경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은 퇴비창고로 가자.”


“서쪽 농지 말씀이십니까?”


“그래.”


“준비해 놓겠습니다.”


마침 내일은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퇴비를 만들면서 겸사겸사 만든 초석밭을 살펴볼겸 행차하기엔 제격인 타이밍.


나이와 학문적 성취를 고려하면 슬슬 관직을 받아 활동할 시기이기에 공들여온 화약제조에도 마저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다.


‘진골로 태어난 것까진 좋았다.’


박경휘는 걷는 내내 노인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노인은 그때 말한대로 진골, 그것도 훗날 왕이 될 인물로 태어나게 해줬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빙의한 인물은 동명이인인 박경휘. 800여년만에 다시 박씨 왕통을 연 신덕왕이 바로 그였다. 얼핏 생각하기엔 술술 풀려갈 운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유를 부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거기다 기록이 너무 소략해 어떤 식으로 왕이 되었을지 알 수도 없고.’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 후삼국의 개막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한데다, 원체 기록이 소략해 박경휘가 어떤 식으로 권력을 쥐는지도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원역사대로라면 현재 박경휘의 부친인 박문원은 조만간 사망할 운명. 이 역시 사인이나 시기가 불분명해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사실상 정보가 없다고 봐야겠지. 모든 진로가 내게 달려있다는 건데.’


훗날 양부가 될 박예겸은 5년 전 신홍의 반란으로 책임을 물어 시중자리를 박탈당해 근신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전주인 경문왕을 구심점으로 한 상대등 김위홍 계파가 칼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서라벌에는 여전히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달이 밝다고는하나 밤에 책을 읽으시면 눈에 좋지 않습니다, 도련님.”


“알고 있다.”


마침내 다다른 침소 앞에서 시종 예견이 고개를 숙여왔다. 어느덧 훌쩍 큰 키 탓에 시종은 이제 박경휘의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여러모로 섣불리 움직이기엔 불리한 상황이다. 이찬이라는 높은 지위에도 부친이 몸을 사리는데엔 이런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럼 저는 옆방에 들어가보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바로 불러주십시오, 도련님.”


“그래.”


침소에 들면서 시종마저 시야에서 사라지자 고민은 한층 깊어져갔다. 희미한 호롱불만이 어두운 방을 밝히는 와중, 박경휘는 여전히 정좌한채 깨있었다.


비로소 필요로 하던 정보가 모두 들어온 건 최근의 일이었다. 박경휘의 신분이 높다고해도 고대 특유의 느린 정보교류와 나이라는 장벽이 정보수집에 있어서는 장애물로 작용한 탓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다.


“역시 첫째론 군사력이 필요하겠지.”


가만히 있자면 박경휘에게 주어질 관직은 문관일 확률이 높았다. 국가의 병권은 어느 시기나 핵심 계층이 맡게 돼있으니까. 지금 신라에서는 김씨족 진골이 그런 계층이었다.


평시라면 문관이 승진속도나 영향력면에서 탁월한 길이겠으나, 지금은 원종 애노의 난까지 5년 남짓 남은 시점. 이후 열릴 전란을 생각할 때 문관으로선 역부족이었다. 단순히 살아남는다는 목표가 아니라 노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당장 자체적인 군사력을 갖추는게 시급했다.


“그러고나선 전란에 앞서 일어날 민란과 반란들을 막아내고....”


박경휘가 오른손을 꽉 쥐어보이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인기척들에 귀를 기울였다. 노인의 약속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정말 나이가 들수록 섬세해지는 육신의 감각들이 전생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왕성한 성장 역시 그에 부합하는 변화 중 하나.


“지방의 난을 조기에 진압하면 호족들의 발호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겠지.”


곪아터지기 직전이나마 신라가 아직도 통일국가의 꼴을 하고 있는 건 중앙정부의 통제력 덕분. 그것도 전적으로 군사력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굳이 원종 애노의 난을 기점으로 후삼국 시대가 열린 데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번 시간을 늦게나마 개혁에 쏟는다면....’


물론 그러자면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이긴 했다. 곧 활약할 영웅들을 빼고서라도. 어디든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법이니까.


‘제일 쉬운 방법은 사병... 그중에서도 가장 합법적인 명분을 갖춘 사병세력을 만들어보자면....’


다행히 신라엔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이 시기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유서깊은 제도가 남아있었다. 비록 옛날만큼의 기백은 잃은지 오래지만. 그마저도 현재의 시점에선 몹시 아쉬운 상황.


물론 이 역시 쉬운 길은 아니다. 그래도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은 그뿐이었다.


‘화랑이 되어야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입니다 +3 23.03.19 462 0 -
28 굴기의 시간(1) +1 23.03.17 479 19 12쪽
27 출사 +2 23.03.16 484 18 12쪽
26 굴러온 돌(6) +1 23.03.15 484 22 13쪽
25 굴러온 돌(5) +1 23.03.14 495 22 11쪽
24 굴러온 돌(4) +2 23.03.13 510 21 12쪽
23 굴러온 돌(3) +2 23.03.12 549 23 11쪽
22 굴러온 돌(2) +4 23.03.11 618 26 14쪽
21 굴러온 돌(1) +2 23.03.10 607 32 13쪽
20 논공행상(3) +3 23.03.09 672 26 12쪽
19 논공행상(2) +2 23.03.08 702 34 13쪽
18 논공행상(1) +2 23.03.07 712 35 12쪽
17 호환(4) +5 23.03.06 713 36 11쪽
16 호환(3) +2 23.03.05 730 32 12쪽
15 호환(2) +2 23.03.04 748 31 11쪽
14 호환(1) +2 23.03.03 757 30 13쪽
13 김위홍(2) +5 23.03.02 768 34 14쪽
12 김위홍(1) +2 23.03.01 768 29 13쪽
11 김효종 +5 23.02.28 830 34 13쪽
10 금성의 군자(5) +2 23.02.27 826 33 13쪽
9 금성의 군자(4) +4 23.02.26 836 34 13쪽
8 금성의 군자(3) +3 23.02.25 886 39 13쪽
7 금성의 군자(2) +3 23.02.24 896 33 12쪽
6 금성의 군자(1) +3 23.02.23 976 35 13쪽
5 뜻 밖의 조우 +3 23.02.22 1,002 36 12쪽
4 신이한 도련님(3) +4 23.02.21 1,058 36 13쪽
3 신이한 도련님(2) +3 23.02.20 1,192 34 13쪽
» 신이한 도련님(1) +3 23.02.20 1,424 38 13쪽
1 프롤로그 +9 23.02.20 1,850 48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