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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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백작
작품등록일 :
2023.02.19 16:48
최근연재일 :
2023.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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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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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군자(2)

DUMMY

소녀를 따라가는 길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했다.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됨에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옥들이 굽은 골목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민가에 이렇게 깊숙히 들어오는 건 정말 처음이야.”


뒤따르는 계강의 투정 비슷한 말을 들으며 박경휘가 곳곳을 살폈다. 예리한 눈길이 닿는 곳은 소년들을 구경하러 나온 빈민들의 면면이었다. 모두 땟국물 가득한 얼굴들이라 분별이 쉬운 편은 아니었다.


“이쪽이옵니다.”


소녀의 안내에 따라 마침내 다다른 곳은 그나마 최소한의 구색을 갖춘 초가집이었다. 무너질듯한 토담을 넘어 들어가자 집의 작은 마루 위에 흰수염을 한 노인 하나가 앉아있었다.


“누추한 곳에 귀인들이 오셨구나.”


“손녀를 잘 두셨더군.”


“영 총명한 아이긴 합니다요.”


짧은 인사 뒤에 묻자 노인이 사랑가득한 시선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그대가 이 마을의 촌주라 들었는데. 도움을 좀 받을까 하오.”


“허허, 촌주라니요. 과찬이십니다. 그저 이 마을에 오래 묵은 늙은이인것을... 그나저나 무엇이 필요하신지요. 이 노인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드리겠습니다.”


작은 체구에 골골대는 몰골이건만 노인의 눈빛만은 밝게 빛났다.


“이 마을의 호수와 호구, 그리고 세수에 대한 정보들이 필요하오.”


“오호... 그거라면 소인이 관의 업무를 일부나마 도와드리고 있습니다요.”


노인은 박경휘의 말에 눈을 번뜩이며 급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노인은 장롱에서 꺼낸 종이뭉치들을 한아름 안고 마루로 나왔다.


“촌주가 아니라더니. 실상은 촌주였군.”


“허허허... 그저 조금 손을 보태고 있을 따름입지요.”


겸양을 떨지만 이런 업무가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한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법. 그정도만 해도 이런 고대에선 지식인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이 노인은 못해도 과거엔 하급관리였거나 촌주에 준하는 구성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교육수준이나 집안에도 불구하고 집안이 몰락해 빈민이나 향민이 되는 일은 흔했으니까.


“세상에나... 어떻게 일이 이렇게 풀린데냐.”


“흐하하핫! 내가 뭐랬어! 경휘 말만 잘 들으면 된댔지?”


“계강아 좀 닥쳐. 제발.”


의외의 상황에 소년들은 놀란 눈치였다. 의심하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펼쳐진 탓이다. 아닌척 너스레를 떠는 계강과 달리 박우진의 반응이 좀 더 극적이었다.


“박사님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네!”


박우진은 손뼉까지 쳐대며 소감을 밝혔다.


“금성 내의 마을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유지되는지를 직접 보게 하려는 거였어. 겸사겸사 민생도 살피고 말이야. 단순히 호구조사에 그치지 않고 조세구조까지 연구해오라던 것도....”


가장 중요한 촌주를 찾으라는 단서는 숨겼지만. 어찌어찌 답엔 도달한 형국이었다.


“다 네 덕이로구나.”


물론 이 모든 건 운좋게 마주친 소녀 덕이었다. 박경휘의 칭찬에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업고 있던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만하면 도움이 되셨는지요?”


노인의 말에 눈을 돌리니 다른 소년들이 열심히 종이를 베껴적는게 보였다. 숙제는 이만하면 충분할듯 싶었다.


“충분하오. 덕분에 일이 쉽게 끝났군.”


“허허. 일부 파악하지 못한 주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어디에서도 파악하기 힘든 자들이니 지금 자료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박경휘는 노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빈민촌에서도 가호별 자료를 유지하다니.’


새삼 신라의 저력이 느껴졌다. 망조가 든 나라임에도 최소한 금성 내에서의 행정만큼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불과 몇 십년 전에는 향촌에서도 세세한 재물조사를 했던 걸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한 신라조정은 과거처럼 철저한 행정력으로 자원을 징발하고 싶었을터.’


어쩌면 이런 치밀한 조사가 민란을 부추긴 걸지도 몰랐다.


“이만하면 곡식을 내줘도 아깝지 않다고 보는데.”


“끄응....”


노인은 영 모르겠다는 얼굴이지만 약속은 약속인법. 박경휘는 소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문득 생각난 그 말에 계강을 비롯한 소년들이 헉,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1섬을 낼테니 너희가 나머지 1섬을 나눠 내는게 어떠겠나.”


“....”


잠깐의 망설임. 침묵을 깬 건 이번에도 계강이었다.


“하아... 그래 까짓것. 내지뭐~ 내가 1섬을 낼게. 경휘 너도 1섬만 내. 너희는 그냥 내지마.”


계강은 의외로 순순히 수긍을 했다. 마치 지난 불평들을 만회하기 위한 것인양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제아무리 쌀이 아닌 조나 수수를 내놓는다 해도 혼자 1섬이나 내놓는다는 건 꽤나 큰 지출이었다. 집안마다 체감하는 수준의 차이가 있겠지만 객관적으로도 1섬은 컸다.


“손녀의 허튼 말에 이토록 신경써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요.”


“약속이니까. 게다가 쌀도 아니니 그렇게 고마워할 것 없소.”


애초에 박사가 소년들을 이리 보낸 건 교육 외의 목적도 있을 터였다. 현실을 배우는 한편, 이들과 협조하며 지출을 해서 약간이나마 민생에도 보태려는 의도. 이쯤하면 적절하게 먹혀들어간 셈이었다.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당장 풀이라도 뽑아다 먹어야할 판인걸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해왔다. 아이를 안은 소녀도 눈에 띄게 밝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왔다.


“곡식은 빠르면 금일 저녁까지 내주겠소. 만일 내일이 지나도 기별이 없으면 내가 써준 종이를 들고 이찬 박문원의 댁으로 찾아오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슬슬 마무리를 지을 눈치. 하지만 박경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마디를 더 보탰다.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하나있소만.”


“무엇인지요?”


“이 일대에 아비 없는 가정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소?”


“과부와 자식들만 있는 호를 말하는 것이로군요?”


“그렇소. 촌주의 능력이라면 비단 이 마을뿐 아니라 일대 전체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흐음... 발품을 팔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테지요....”


의외의 질문이었던지 노인은 안그래도 작은 눈을 좁히며 대답해왔다. 목적이 궁금하면서도 어딘가 걱정이 있는 얼굴이었다.


“내 꼭 사례는 하겠소. 따로 공부하는 게 있어 그런 것이니 부디 이 일대의 모자만 있는 호들을 알아봐주면 고맙겠소.”


‘대체 왜? 과부들을 조사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설마... 구휼이라도 하려고?’


무슨 의도인지는 박경휘만 아는 상황. 하지만 옆에서 대화를 듣던 계강은 내심 이상한 데로 생각이 뻗어나갔다.


‘이 자식 아까도 아닌 척하면서 적선하려고... 비록 운 좋게 일이 잘 됐지만 정말 이걸 알고 했겠어? 분명 티 안내고 구휼미를 풀고 싶었던 거겠지. 어휴!’


착각이 이어지는 동안 노인은 약간 고민하는 눈치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수락할지 말지의 고민은 아니었다.


“그... 혹시 소인이 그럼 작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지요?”


다소 걱정이 앞선듯한 눈치. 박경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을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한 일이오나... 혹시 저희 젖먹이 아이를 종으로 받아주시면 안될지요?”


“저 소녀가 안고 있는 아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얼마 전 아이 엄마가 급사하는 바람에 젖동냥으로 키우고 있지요. 요즘은 날씨도 춥고 식량도 모자라 날이 갈수록 어려운 실정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얼마 안가 죽을 운명. 부디 나으리의 댁에서 종으로라도 살아남으면 좋을 것 같아 감히 부탁을 드리는 것이옵니다.”


다소 무리한 부탁이란걸 아는지 노인의 말이 기어들어갔다. 의도와 무관하게 아이를 안은 소녀도 무척 놀란 표정. 박경휘는 노인과 아이를 둘 다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 곡식에 과부에... 거기에 더해 애까지 떠맡는다고?! 이 자식 진짜 표현만 안 한다뿐이지 완전 경전에서나 보던 군자로구만. 아주 그냥 군자났네! 군자났어!’


감격하는 노인과 달리 계강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상한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계강은 박경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이야. 항상 무표정에 온갖 센척을 하지만 마음만은 여리다니깐. 어휴~ 이래서야 원. 역시 이 형님이 꼭 필요하겠어. 흐하하핫!’


이런 기미는 박경휘도 눈치로 알고 있었다. 워낙 계강과는 오래 지내 뻔한 패턴이었다.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로군.’


상반된 생각들이 오가는 와중, 박경휘는 그럼에도 별반 반응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것으로 북서쪽 빈민가의 정보망도 해결됐군. 운좋게 찾으면 다행이고... 아니라도 안면을 익혀둬서 나쁠 건 없다.’


이 모든 귀찮은 일을 맡은 건 따로 찾는게 있기 때문이었다. 박경휘는 나름의 계산을 이어가며 예견에게 눈짓을 했다. 아이를 건네받으라는 의미였다.


***


“과부가정이 50여호에 남아가 35명이라.”


박경휘가 서재에 앉아 종이를 읽고 있었다. 몇 주에 걸쳐 조사를 마친 촌주가 보내준 보고서라 봐도 무방했다. 종이엔 동네별 과부가정과 남아의 수, 그리고 이들의 대략적인 주소가 명시돼 있었다.


“생각한 것보단 도움이 되는군.”


한참이나 종이를 살펴보던 박경휘가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마당쪽에서 들려온 인기척 때문이었다.


‘아이는 도성 내에 머물고 있을 확률이 높다. 사정이야 어떻든 왕실에선 이를 부인하고 있는 모양새... 가능한한 먼저 움직이는게 좋겠지.’


이래저래 작은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이만하면 훌륭한 성과였다.


게다가 지금은 날이 갈수록 부친이 수척해지는 탓에 집안의 대소사가 하나둘 넘어오는 시점. 보통의 자식이라면 슬픔과 버거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이쪽은 영 다른 운명이니 다행일까. 오히려 그 덕에 활동영역이 넓어진 장점이 있었다. 이 성과도 그런 사정 덕이 컸다.


끼이익


박경휘의 귀가 옳았던 건지 안대문이 열리며 노비 하나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무슨 일이냐.”


“도련님을 뵈러왔다는 객이 있습니다요. 월성 시위부에서 온 이훤이라던데... 들여보낼깝쇼?”


노비가 머리를 조아리며 의사를 물었다. 마루에 선 박경휘는 책상에 올려둔 종이를 한번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박공!”


잠시후 노비의 안내에 따라 들어온 사람은 미리 언질을 받은대로 이훤이었다. 꾀죄죄했던 과거와 달리 제대로 복식을 갖춰입자 신수가 훤한 소년무장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처음 만난지도 벌써 한달 가까이 지났군. 그동안 잘 지냈는가.”


“박공의 도우심으로 저희 모두 무사히 시위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찾아뵈려 했는데 신입이라 이리저리 시간이 안 맞아 이제서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비번인 모양이군.”


“그러하옵니다.”


휴일에 인사차 들른 것이라는 걸 증명하듯 이훤의 한 손엔 계란꾸러미가 들려있었다. 소소하지만 이만하면 상경한 지방민에겐 충분한 성의표시였다.


“들어오라하고 싶지만... 마침 식사를 하러 나가려 했던 참이네.”


“이런 제가 잘못....”


“그런 게 아니지.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같이 밥이나 한끼하는게 어떤가 묻는거네.”


“그런... 소... 소인은 영광이옵니다.”


이훤은 황송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옆에 서있던 시종 예견은 금세 상황을 알아차리곤 방으로 들어가 종이들을 정리했다.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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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26 엘멜로이
    작성일
    23.02.24 12:39
    No. 1

    왕실과 관련된 아이 찾는거면 궁예 행방 찾는걸까요? 경문왕 부친 설 채택했으면 69년생이라 마찬가지로 70년생인 주인공과 비슷한 세대이긴 한데, 어디서 자라서 언제 세달사로 들어갔는지 등등 91년에 세달사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궁예의 초기 행적은 명확하지 않죠. 하대로 접어들어 무열왕계 몰아내고 잦은 왕위 다툼으로 인해 약화된 신라라고는 하지만, 원종 애노의 난 터지기 전의 수도 방위를 맡은 중앙군이라면 군율 등이 무너지기 전일테니까요. 당장에 이전에 상경한 견훤이 입구컷 당할뻔한거만 봐도 그렇죠. 그래서 애를 빼돌린 뒷배 없는 유모가 신분 조작 없이 수도에서 빠져나가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거고 자연스레 빈민촌으로 몸을 숨겼다라는 해석도 자연스럽긴 합니다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3.03.08 14:21
    No. 2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3.12 22:05
    No. 3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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