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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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백작
작품등록일 :
2023.02.19 16:48
최근연재일 :
2023.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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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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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훤과 효종이 동문을 찾아 달려가는 동안 박경휘는 오로지 감각에 의지해 달려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고성이 들려온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기묘한 침묵이 감도는군.’


다소 이상한 분위기.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도움이 되고 있었다.


‘들려온다. 짐승들의 울음소리, 비명, 그리고 공포. 아니, 심지어 들리지 않아도 느껴진다.’


지난 성장과정을 돌이켜보면 이상한 감각이었다.


보거나 듣지 않았음에도 분명하게 전해지는 목표물. 증거가 없건만 박경휘는 본능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감각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가면 원하는게 있을 것이라고.


박경휘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듯 달려나갔다. 지나는 내내 침묵과 혼돈을 오가는 궁인들이 보였다.


‘아수라장이군. 이제서야 병사들이 모여 대처를 하고 있지만 너무 늦었어. 범들도 이제부터는 사람을 피해다닐 터.’


워낙 정신이 없는 탓인지 박경휘가 지나가는 와중에도 나인들과 병사들은 그에게 신경조차 못쓰고 있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도착한 박경휘는 한번 숨을 고르곤 허리춤에 찬 철막대를 꺼내들었다.


틱틱


부싯돌이 튀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은게 보였다. 원체 미약해서 주변을 밝히기엔 부족한 빛. 깜깜한 시야가 사방에 내려앉았다. 박경휘는 그럼에도 주변이 훤히 보이는듯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감각이 가리키던 장소는 이제 코앞에 있었다.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려라! 폐하를 보위해야한다!”


걸음을 몇차례 옮기자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수풀을 헤치고 나서자 무슨 상황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놈들! 겁이 난다고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놈은 범에게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인다!”


노익장을 과시하듯 장수 하나가 칼을 빼든채 분전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시종들을 베어버릴듯 서슬퍼런 소리에 사람들은 동요하다가도 다시 자리를 지키기를 반복했다. 가운데 있는 남자 하나를 둘러싼 밀집대형이 집채만한 크기의 호랑이와 대치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앞섬에도 대치한 사람들의 다리 떨리는게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곧 한계로군.’


노장수의 분투에도 점점 전열은 벌어지고 있었다. 호랑이의 기세가 만만찮은 탓이다. 애초에 생존의 본능은 억누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당장 눈 앞에 죽음이 있는데 그걸 받아들일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없었다.


[크르르릉]


‘더 지체했다간 늦겠어.’


슬슬 때가 왔음이 느껴졌다. 호랑이의 뒷모습이 심상찮았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듯한 자태. 오합지졸에 가까운 무리를 볼 때 호랑이는 마음만 먹으면 두세사람도 한번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한시가 급한 시점. 박경휘는 수풀에서 나오면서 일부러 주의를 끌었다..


휘이이익!


뜬금없는 휘파람 소리. 덕분에 한창 정신이 팔려있던 호랑이가 화들짝 놀라며 박경휘쪽으로 몸을 틀었다.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건 임금과 시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 누구냐!”


순간 이쪽으로 몰린 시선들이 느껴졌다.


[크르르르르]


박경휘는 장군의 말을 무시한채 호랑이와 마주섰다. 희미한 달빛에 비쳐 번쩍이는 두 눈이 섬뜩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박경휘는 더욱 자세히 보이는 시야 탓에 호랑이의 표정마저도 볼 수 있었다.


“워워.”


갑작스런 등장 탓에 호랑이는 그야말로 흉신악살의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려버릴 듯한 기세였다.


‘잔뜩 약이 올랐구나.’


박경휘는 태연한 얼굴로 호랑이와 대치했다. 조금씩 다가오는 호랑이에 맞서 사선으로 움직이는 탓에 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랑이는 기회를 노리는 듯했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임금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저자는... 어느 초의 장수인가? 저런 괴물을 앞에 두고도 동요치 않다니. 담력이 대단한 자로다.”


“황송합니다, 폐하. 소신도 잘은....”


“대체 어디서 저런 무장이....”


박경휘를 처음 보는 건 임금이나 장군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벙찐 임금의 혼잣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대치는 이어지고 있었다.


[크르르르]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거리.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둘은 서로의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맹수는 사람의 목을, 사람은 맹수의 급소를. 서로가 서로의 목줄을 노려봤다.


‘시간이 멈춘 것 같군.’


한편 박경휘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호랑이와 자신이 아예 다른 시공간에 있는듯했다.


잦게 뛰는 심장고동을 느끼는 가운데, 코로는 심지 타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오감과는 무관한 제6의 감각이 자신을 지배하는 순간, 마침내 타이밍이 찾아왔다.


먼저 달려든 건 호랑이였다.


[크아아아!]


인간의 눈으론 따라갈 수조차 없는 속도. 집채만한 호랑이가 앞발을 앞세우며 뭉개버릴듯 쏟아져 들어왔다.


눈 깜짝할 사이 머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 찰나의 시간. 박경휘는 번개처럼 치켜든 철막대를 호랑이의 안면을 향해 겨누었다. 마침내 범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마저 보일 거리에 다다른 순간, 박경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 순간 번개가 내려 치는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되는듯 눈을 꿈뻑이며 입을 크게 벌렸다.


“무슨!?”


“갑자기 번개가?”


[크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우레와 같은 포효도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달려들 때와는 분명 다른 소리.


둘의 차이를 증명하듯 호랑이는 처음의 기세를 잃은채 나뒹굴고 있었다. 두 번개가 내려치는 사이 박경휘는 몸을 숙이며 옆으로 피해 간발의 차로 호랑이를 흘려보낸 참이었다.


[크륵... 크르르륵... 크르르...]


몸을 일으킨 박경휘가 뒤돌아보자 비틀거리는 호랑이가 피를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와 공포. 두 가지 감정이 혼재된 눈빛이었다.


스릉


박경휘는 미련없이 철막대를 던지고 칼을 뽑았다. 신장에 걸맞게 크고 무거운 곡도였다.


[크르르륵... 크르르르륵...]


호랑이의 얼굴 한쪽이 뭉개져 피가 흐르지만 아직도 살아있었다. 가만 놔두면 죽을 게 분명하나 그게 당장은 아닌 상황. 박경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칼을 쳐들었다.


“과, 과연....”


긴장 속에 가까스로 입을 연 장군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다시 호랑이가 달려들었다. 아까보단 기세가 덜하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공격. 박경휘는 이번에도 정면에서 막아서기보단 옆으로 비껴서는 길을 택했다. 다만 다른 것은 반격의 유무.


서걱


[크와오!]


범의 어깨죽지를 그어버린 박경휘가 연이어 칼을 내질러 앞발을 베어냈다.


[크아아아아!]


재차 호랑이가 달려들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달려들 때마다 깊은 자상이 하나씩 늘어갈뿐 호랑이의 의도와 달리 박경휘는 종이 한장의 차이로 번번이 비켜났다.


[그르르르르]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에 잠식돼가는 표정이 보였다. 덩치와 걸맞지 않게 호랑이의 입에서는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피가 끓는듯한 그르렁 소리와 함께 범의 행동이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허어....”


장군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이제 놀라움이나 안도를 넘어 경악에 다다라 있었다.


“대체 저자는!”


주변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박경휘는 칼끝을 아래로 한채 호랑이를 바라봤다. 기회를 노리는 네 개의 눈. 이번엔 박경휘가 다가설 차례였다.


“헙.”


[크와오!]


박경휘의 접근에 호랑이가 앞발로 땅을 내려찍으며 위협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경휘는 아랑곳없이 걸음을 내디뎠고 호랑이가 내미는 앞발을 교묘하게 베어냈다.


주르륵


거대한 몸집답게 몇 번 베여도 멀쩡해보이지만 바닥의 상태가 객관적인 판도를 보여줬다. 아까부터 쏟아져나온 범의 피로 바닥은 거의 진흙이 돼 있었다. 호랑이 역시 척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 가죽 곳곳이 칼에 베이고 찔려 너덜너덜해져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범의 몰골을 보면서 박경휘는 슬슬 마지막을 직감했다.


‘이제 끝이다.’


[그르르륵... 그르륵]


최후의 발악과도 같은 순간.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내민 왼발이 아예 찍히듯 칼에 맞아 절단됐다.


“허... 저건 마치... 범의 움직임을 미리 알기라도 한듯... 신묘한 몸놀림이구나.”


무예가 일천한 임금조차 놀랄 수준의 몸놀림. 장군도 동감한다는듯 눈을 크게 뜨고 입까지 다문채 묵묵히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르륵...]


몸집이 소만한 범이지만 이제 한계였다.


[그르르르... 그릉!]


더는 의미 없는 고통일뿐. 호랑이는 마침내 꼬리를 말고 뒤뚱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애처로울 수도 있는 그림.


물론 박경휘는 다 잡은 고기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창을 들고 있던 병사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창을 빌려주시오.”


병사는 벙찐 표정으로 박경휘를 바라봤다. 본래 시위부의 무장은 아무에게도 주어선 안되는 법. 하지만 이내 홀린 것처럼 창을 넘겨줬다. 병사는 창을 건네주면서도 여전히 벙찐 표정이었다.


“어... 어엇. 여기....”


창을 건네받은 박경휘가 멀찍이 있는 목표물을 바라봤다. 절뚝이는 탓에 확연히 느려진 범이지만 역시나 멀었다. 기회는 한번뿐. 하지만 본능은 맞힐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었다.


박경휘가 창을 꼬나쥔 채 심호흡을 시작했다.


“흐읍....”


들숨과 함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창을 옭아맸다.


“후우... 흡!”


날숨에선 팽팽했던 근육이 일순간 뻗어나갔다. 창도 튕겨져나갔다.


쉬이이익!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빠르게 날아간 창은 수십여 보를 튀어나간 끝에 땅에 다다랐다.


쉬이이이익... 철퍽!


땅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 고기를 가르는듯한 기괴하고 작은 소리가 이쪽까지 들려왔다.


들썩이는 수풀이 잠잠해졌다. 나뭇가지들을 마구 쥐흔들던 바람도 어느새 그쳐있었다.


“끝이군.”


호랑이는 죽은 것 같았다. 박경휘는 굳이 창을 회수하러 가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돌려 임금의 무리를 향해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


마침내 찾아온 정적. 상황이 끝났건만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시종들과 마찬가지로 얼이 나가있던 임금은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듯 고개를 내저었다. 눈을 몇 번 크게 감았다 떠봐도 보이는 광경은 그대로였다. 마침내 찾아온 정신이 왕으로 하여금 이 침묵을 깨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그대는....”


임금이 말을 더듬었다.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범벅이 된 박경휘는 임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였다.


“어디서 온 장수인가?”


“소인, 이찬 박문원의 아들 박경휘.”


임금과 시선이 마주친 박경휘는 재차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폐하께 인사 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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