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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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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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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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공행상(1)

DUMMY

“이찬... 박문원?”


박경휘의 인사에 임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익숙한 이름을 들은 덕에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박문원의 아들... 박경휘라 하였는가? 예부령 박문원의 장남 박경휘?”


“그러하옵니다, 폐하.”


헌강왕의 뇌리를 스치는 건 지난번 박문원과의 독대였다. 긍휼미 건을 치하하기 위해 불렀던 그 순간, 박문원은 그때 분명 이 모든게 장남의 덕이라고 말했었다.


‘단순히 아들을 후원해달라는 의미인줄 알았건만....’


신장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평소 알던 박문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꽤나 신선했던 기억이었다. 자식을 위해선 위신이든 명예든 다 내려놓을 수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하지만 눈 앞에 나타나 본인은 박경휘라 일컬은 자의 위용은,


“허, 허면... 그렇다면... 바로 네가....”


임금이 숨이 차는듯 허덕이며 말을 더듬었다. 박경휘는 그런 임금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흔들리는 임금의 눈과 달리 박경휘의 눈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아무 말 없는 응시. 그것으로도 임금은 충분히 뜻을 이해할 것 같았다.


“폐하! 폐하! 어디 계시나이까!”


통성명은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저 멀리에서 한 무리의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상당히 뒷북에 가까운 시점. 원체 많은 무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까닭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들을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한가득 들고 있는 횃불들 덕에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음?”


“폐하!!! 폐하께서 위급하단 보고를 받고 곧바로 달려왔나이다!”


헐레벌떡 하마한 장수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그의 뒤로는 수많은 병사들의 무리가 도열하고 있었다.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이옵니다, 폐하! 부처님과 천신들께서 도움을 주신 게 분명합니다!”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는 장수를 놓고, 왕의 시선이 점차 뒤에 있는 무리들을 훑었다.


병사들의 겉모습은 누가 뭐라할 것없이 완벽했다. 시위부 특유의 금빛 소매를 한 경무장 차림에 칼과 노를 꼬나쥐고 장군기와 기마까지 끌고 온 것이 당장 교전을 벌여도 될 정도였으니까. 그야말로 완전무장을 갖추고 나온 셈.


하지만 그말은 곧, 사태를 인지했음에도 즉각 출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뒷북도 유분수지. 일찍들도 왔군.’


다른 누구보다도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시위부 장군 하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 탓에 사선을 넘나들었던 노장수였다.


“으음....”


그런 심정임에도 노장수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기껏 구하러 온 이들이니 별 내색을 할 순 없는 상황. 하지만 임금 역시 비슷한 심정인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랴! 이랴!”


“폐하를 최우선적으로 보위하라!”


여기에 더해 더 멀리서는 기마대의 소리가 더 들려오고 있었다. 익숙한 호각이나 구호가 없으니 저들은 순라군일 터였다. 궐내에 병력이 부족하다 생각이 들자 급히 들이게 된 사정일터.


보안을 중시하는 평소의 궁궐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 난장판인 상황에 왕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물었다!”


노기 섞인 왕의 고성이 쏟아져내렸다. 대부분은 지난 밤 있었던 사태에 대한 분노와 추궁이었다.


움찔


임금의 고성이 질책의 수준을 넘은진 이미 한참이나 된 시점. 왕의 분노가 터질 때마다 움찔하던 대신들은 저마다 목을 조여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칼바람이 불겠구나.’


확실한 건 이것. 이미 명분은 모두 왕에게 있으니 남은 처분권도 당연히 왕에게 귀속될 터였다. 왕의 격앙된 감정을 볼 때, 이건은 못해도 소규모 반란에 준해 처리될테고 그것은 곧 대규모 숙청을 의미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단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과 후속조치. 하지만 그 책임과 후속조치라 함은 임금의 기준에 달린 것이었다. 당장 무턱대고 책임을 따진다면 사태를 모르고 집에서 잠을 자던 대신도 참수를 당할 수 있었다.


“....”


오래 전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던 김위홍은 오래 전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항상 여유가 넘치는 평소와 달리 이번만큼은 그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한 것이 다른 대신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당장 김씨족의 수장이자 왕의 오른팔인 그가 이정도로 심각하다는 건 나머지 대신들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사태를 파악한 직후부터 이런 상황은 예상을 했다. 문제는 정치적 파장. 종국엔 누가 책임을 지느냐에 달린 것.’


위홍 역시 지난 밤의 사건을 보고 받아 알고 있었다. 급히 야밤에 걸음을 옮겨 궐내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월성의 규율을 만든 건 다름아닌 나. 거기에 시위부와 시종들 역시 뿌리를 타고 들어가면 나로 연결될 터. 책임을 피할 길이 없겠지.’


자신 같은 거물을 바로 쳐낼 수야 없겠지만 칼이 왕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위협으로 다가왔다. 친위세력의 실책을 자각한 왕이 박씨족이나 석씨족을 밀어줄 가능성도 있으니 더욱 그랬다.


“시위부의 책임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모두 처벌할 것이다!”


왕이 준엄한 목소리로 의지를 천명했다. 다소 누그러진 감정과 별개로 그의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은 섬뜩하기 그지 없었다.


“당시 후원을 지키던 병사들과 날 호종하던 자들. 그리고 궐의 외곽을 맡은 자들. 거기에 병사들을 순라군으로 차출해 궁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자. 그리고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즉각 출두하지 않은 대신들 모두! 짐은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니라!”


왕이 짐이라는 과분한 칭호까지 써가면서 열변을 토하는 와중에도 왕의 말에 토를 다는 대신은 없었다. 외왕내제를 하긴하나 짐이란 호칭은 가급적 삼가오던게 관례였던 상황. 왕이 그런 짐을 자칭한다는 건 그만큼 그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표현이었다.


‘아니꼬와도 일단은 적당히 호응하는게 낫겠지....’


물론 대신들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격앙된 감정은 언젠간 꺼지기 마련. 정치적 계산을 하다보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괜히 이 시점에 나서 불똥이 튀느니 당장은 한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자는게 대다수의 속내였다.


“사후대책도 세워야할 터! 이 같은 일이 없도록 대신들은 만반의 책략을 짜내야할 것이다!”


당분간 왕의 일방적인 지시가 줄을 이었다. 대신들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음성을 흘리며 동의를 대신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갈수록 차가워지는 시점.


“폐하의 고견이 참으로 맞습니다. 소신이 직접 각 부의 대신들을 불러 중차대한 문제들을 회의하고 방안을 짜겠나이다.”


의외로 총대를 멘건 시중 민공이었다.


원래부터가 집사성의 수장이기에 왕의 수족인 그였다. 그럼에도 그가 여지껏 위홍의 틈에 숨어 말을 아낀 건 오롯이 관등과 세력의 문제 탓이었다.


‘차라리 잘되었군. 상대적으로 나의 책임은 경한 지금, 폐하를 부추겨 내 입지를 다져야겠구나.’


같은 김씨족 내에서도 계파는 갈리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상대등 위주 구도를 탈피해 독자성을 갖추려면 어느정도 믿을만한 후원자가 필요했다. 민공에겐 지금이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회였다.


“이런 중한 일은 만사를 제치고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줄로 아옵니다. 부디 책임이 경하고 심지가 곧은 자를 중심에 세우시어 이 사태를 면밀히 조사케 하소서!”


그런 다짐을 한 덕일까 마치 혀에 기름을 바른듯 민공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전략이 맞아떨어진 건지 왕은 다소 만족스런 눈빛으로 민공을 내려다봤다.


“민공, 네 말이 옳다. 시중은 관등과 직책에 상관없이 특별회의를 소집해 특단의 신상필벌과 대책을 내놓도록 주재하라.”


“소인 민공, 폐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찌릿


순간 가만히 있던 위홍의 시선이 내려와 꽂혔다. 무슨 속셈이냐는듯한 분위기. 민공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하오나 폐하! 신 민공, 폐하께 진언을 드리고자 하옵니다.”


“진언? 말해보라.”


진언이라 함은 쓴소리에 해당하는 류. 순간 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상필벌이라 함은 모두에게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 그러나 마땅한 책임을 감내한 자에겐 상을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나이다. 부디 폐하께서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충신들의 신상 역시 고려해주시옵소서! 그리하면 가신들은 움츠러들고 충신들은 더욱 번성할 것이옵니다.”


“....”


다소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백번 옳은 말이자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비록 격분하다보니 감정이 앞섰지만 헌강왕은 어디까지나 정치인. 슬슬 이성을 찾고 계산을 할 차례였다.


“음... 과연 시중의 말이 옳다.”


역시나 사람은 말을 하는대로 감정을 느끼기 마련. 민공의 제안 덕인지 왕의 얼굴은 아까와는 대조적으로 밝아졌다. 공을 세운 자들을 따올리자 자연스레 미소가 걸리게 되는 것이다.


“끄응....”


위홍은 여전히 말없이 신음할 따름이었다. 아까와 같은 눈초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불만이 남아있는 얼굴. 민공이 자랑스레 그를 곁눈질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건 없었다.


‘음? 내가 뭘 잘못했나?’


화제를 전환해 공포분위기를 일소하는데엔 성공했다. 민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다했다고 믿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불만이란 말인가. 어차피 신상은 폐하의 마음대로 될 터인데....’


당장 위홍의 속셈이 어떤지 모르는 민공으로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위홍이 품은 걱정은 뒤이은 왕의 발언으로 현실이 되었다.


“과연! 당연히! 시중의 말대로 공을 세운 자들에겐 상을 줄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공을 세운 자라면 분명 있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호종군을 독려한 노장 원식.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며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범궐소식을 알린 말단병사. 호랑이를 추격해 입궐을 요구하고 지원군을 보낸 효종. 그리고,


“모두에게 크고 작은 공이 있지만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따로 있는 법. 짐이 그자를 직접 불러서 치하하겠다!”


그자가 누구인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미 지난 밤의 무용담은 서라벌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상은 짐이 아닌 박경휘가 정하도록 할 것이다. 짐은 직접 박공을 불러 치하하고 원하는 바를 물어볼 것이니라!”


“?!”


여지껏 들어본 적 없는 폭탄발언. 덕분에 조용하던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귓속말 정도 크기의 술렁거림이 대신들의 무리에서 흘러나왔다. 유례없는 지시에 동요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놓고 반대하는 간 큰 대신은 없었다. 가까스로 진화한 분노이기에 지금 토를 달았다간 독박을 쓸 수도 있는 상황. 결과적으로 대신들은 동의하는 모양새로 가야했다. 다만 눈치를 보는 탓에 어느 누구 하나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소신 박유경.”


의외로 침묵을 깨뜨린 건 구석에 박혀있던 대신이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한직 같은 자리. 그곳엔 낯익으면서도 의외인 인물이 서있었다.


“폐하의 하명에 감복하였나이다! 폐하께서 진정한 영웅에게 마땅을 상을 내려주신다니, 박씨족의 일원으로서 참으로 망극하나이다!”


예부령 박유경이 천연덕스럽게 지지선언을 이어나갔다. 그는 박문원과 함께 예부령을 맡고 있는 3인의 장관 중 하나로 박우진의 친부이기도 했다.


‘박유경!’


‘저, 저 놈이....’


박유경의 거침없는 발언에 순간 대신들의 눈길이 모아졌다. 대부분은 위홍계 대신들로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예부령 역시 같은 생각이라니. 더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구나.”


“본디 신상필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생각하나이다. 폐하께서옵서는 봉황과 같은 뜻을 펼치시어 위엄을 떨치소서!”


박문원이 자리를 비운 지금 사실상 박씨족의 수장격인 자였다. 그의 의견은 곧 박씨족의 의견. 모두가 눈치보는 이 순간 홀연히 입을 열어 박경휘를 지지한다? 이는 곧 노골적인 의사표현이기도 했다.


“그럼 되었다. 짐이 이 일을 처리하지 않고는 못배기겠으니 당장 박문원과 박경휘 부자를 부르라! 이곳 대전에서 짐이 직접 치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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