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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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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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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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3)

DUMMY

시위부의 차출로 해이해졌다하나 호랑이들이 쉽게 범궐한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첫째론 인원부족으로 인한 경계해이가 뽑히겠으나,


[크르르릉]


“도, 도망쳐! 도망... 커헉!”


“으아아악!”


“어디냐? 어디?”


“호랑이들이 수풀 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월성의 구조적인 한계도 있었다. 본디 깊고 넓은 해자와 언덕을 천연방벽으로 삼아온 월성이었으나 방어구조물로서의 역할은 통일 이후 무너진 지 오래. 물론 사람에겐 남은 담벼락과 나무들도 충분한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위급할 때가 되면 거진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호랑이들에겐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이것들이 담벼락을 넘어왔구나.”


맨처음 호랑이의 범궐을 알리던 병사는 어느새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다른 호랑이에게 물려 목이 꺾였다. 그걸 보고 도와주러오던 병사 역시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사람 살려!”


“조용! 이놈들! 궁내에선 침묵하렷다! 조용히... 커헉!”


개중엔 병사들을 헤치고 걸어가면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침묵하라 고함을 치는 대신들과 시종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몇몇은 그렇게 고함을 치다 달려든 호랑이에게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어떡합니까, 대두님?”


“이, 일단 호각을 울려라!”


“그 다음은요?”


“그... 그 다음엔 그래! 숙직소로 가자!”


“호각을 불고 말입니까?”


“이것들을 잡든 쫓아내든 수가 모여야할 것 아니냐! 어서 호각을 불어!”


“......그... 그것이....”


“이노오오옴! 네가 감히 두려워서 호각도 제대로 못 불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셋째는 궐내의 기묘한 규율 탓이기도 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이미 병사들이 흩어졌으니 먼저 몸을 피하심이....”


“이노오오오옴!”


[크와아앙]


“끄억!”


“으힛, 사람 살려!”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기묘한 침묵이 감도는 시점. 호랑이들에 쫓겨 달아나는 일부가 이따금씩 침묵을 깨드릴뿐, 아수라장 한가운데에도 궐내는 기본적으로 조용했다.


“제기랄! 이대로 가다간 사람이 모이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죽겠어!”


쏜살같이 도망치던 병사 하나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불평을 토해내기도 했다. 경계가 삼엄한 월성이기에 이는 심히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반란에 따른 보안규율 때문이었다.


“조원전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느껴지느냐?”


“잠시 소란했으나 지금은 조용해진 걸 보니 작은 소동이 있던 게 아닐까 싶사옵니다. 신이 가서 알아보겠나이다.”


“그래, 요즘 호환으로 민가가 시끄럽다하니 궁이라고 다를쏘냐. 어서 가서 확인해보거라.”


기묘한 침묵과 무너진 지휘계통으로 상황전파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 덕에 범궐 소식은 평소처럼 후원에서 잠을 청하던 헌강왕에게까지 전해지지 못했다. 어렴풋이 들려온 비명이 밤귀가 밝은 임금에게 들리던 게 유일한 단서였다.


“상황이 있으면 호각을 불었을텐데....”


시종과 임금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에 호각을 불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침묵의 계율 탓이었다.


본래 목적은 궐내에서의 임의적인 소란을 막아 통제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 소란을 일으켜 관심을 끈 뒤 시해를 시도한 경우가 많아 생긴 규율로 실제 신홍의 난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침묵의 규율이 있으면 미리 약속한 호각과 신호를 통해 아군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소음이 나는 곳을 적으로 간주해 처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외부의 적을 상대로 한다면 충분히 유효한 전략. 그러나 사람이 아닌 존재에겐 별 의미가 없는 방책이었다.


“아아아악! 호랑이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무엇이? 지금 바깥에서 무어라 외치고 있는 것이냐?”


“폐하... 그, 그것이....”


얼마뒤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마침내 결심한 병사 몇몇이 도망치며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소리의 크기를 고려할 때 상당히 지척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범이 여기까지 들어왔단 말이냐?!”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순간, 임금은 불안을 참지 못하고 전각을 뛰쳐나왔다. 겉옷도 걸치지 못한 모습이었다.


후원내 전각의 근처엔 근위시종들과 시위부 장교들이 배치되기 마련. 애초 궐내에서는 안전이 보장되기에 임금의 처소엔 시종과 궁녀들을 빼면 소수의 군사가 호종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설마... 왕인 내가 호랑이에 물려죽는 일은 없을테지? 설마... 하지만... 만약 호랑이가 정말 여기까지 온다면...?’


불안한 생각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양새. 임금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작은 문을 열어 제끼자 마당엔 놀란 얼굴의 군사들이 횃불을 든채 서있었다. 그들 역시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다.


“폐하! 바깥은 위험하니 전각 안에 머무르소서.”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여더러 가만있으라는 것이냐?”


분노한 임금이 환관 하나를 꾸짖었다. 허나 제정신이 아닌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꼼짝못할 시종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공포가 극대화되는 순간, 임금이 다시 한번 시종들을 일깨우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그게 대체 무슨....”


“헛?”


그러나 임금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미미한 횃불에 비친 시야 너머로 거무튀튀한 무언가의 윤곽이 보인 탓이었다. 거기에 잠시 비친 두 개의 안광까지 더하자 임금은 말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임금이 입을 다뭄과 동시에 그것은 반대로 입을 열고 있었다.


[크르르르]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호종하던 무리들 역시 잠시동안 임금과 마찬가지로 얼어붙었다. 침묵 가운데 들려오는 으르렁 소리만이 둘 사이를 가득 메웠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일소한 건 유일하게 제정신이던 시위부 장군이었다.


“폐하를 감싸라!”


늙은 장군의 명령에 시종과 병사들이 황급히 뛰어들어 둥그런 방어진을 그렸다. 그러자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밀집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수. 비록 제대로된 무장을 갖춘 이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짐승을 상대론 충분할 터였다.


적어도 일반적인 종류의 금수라면.


[크르르르]


“허... 허헉.”


“저, 저게... 정녕 내가 알던 호랑이가 맞단 말인가.”


“사, 상대는 한낱 금수다! 물러서지 마라!”


하지만 그런 기대는 달빛 아래 호랑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순간 무너져내렸다.


“무슨... 호, 호랑이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심지어는 장군마저 침음성을 흘릴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앞에 서있는 건 정말 소에 필적할만한 크기의 괴물이었다.


***


궐내의 시위부만큼이나 급박해진 건 밖에서 호랑이들을 쫓던 순라군도 마찬가지였다.


“동궁구 순라군이 한마리를 잡았다 합니다!”


“다행이구나. 어서 우리도 공을 세우자!”


“가자! 으라아아앗!”


호랑이들의 수가 제법 많았다곤하나 상대는 무장한 집단이었다. 그들중 일부는 말까지 탄 무사들.


처음엔 야음을 틈탄 침입으로 혼선을 빚었지만, 각 구획에서 모인 순라군들과의 합동으로 느슨한 포위망이 구축된 상태. 놀란 호랑이들이 점점 시가지 내로 깊숙이 들어가는 탓에 순라군들에겐 나름 역전의 기회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동궁 외곽을 맡은 효종의 구획도 비슷했다.


“전령에게 들으니 벌써 하나둘 잡히고 있다는군. 남은 녀석들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말을 탄 효종이 흥이 오른 얼굴로 확신했다.


“미련하게도 알아서 포위망 안에 들어온 셈이지. 결과를 놓고보니 정말 경휘 말대로야.”


순라군의 추적부터 낭도들의 몰이까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아까부터 모든 상황이 박경휘의 예상대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비록 날고 기는 범이라하나 상대는 엄연한 집단이기에 별 수 없는 일. 이대로 가면 얼마 안가 사태를 진압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걱정이 남았습니다.”


“걱정?”


“이제것 본 것들 중 가장 큰 세 마리가 이리로 사라졌습니다. 월성으로 향하는 길이지요.”


“그럴리가! 거긴 이미 이훤이가....”


박경휘의 지적에 효종이 그럴 리 없다는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곳엔 이훤과 낭도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종이 바라보던 곳에서 누군가가 달려나오면서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형님!”


기대가 무색하게 호랑이가 갔다는 곳에서 이훤이 다급히 달려오고 있는 모습. 분명 불길한 징조였다.


“무슨 일이냐!”


“범 셋을 놓쳤습니다! 아무래도 언덕을 타고 월성에 들어간듯 합니다. 궐내에서 소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이럴 수가... 큰일이구나.”


이훤의 보고에 효종이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하는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스치는 탓이었다.


“아무래도 궁 안으로 들어간듯 싶군요. 훤이가 알려준 지리대로라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월성엔 시위부가 있으니 알아서....”


효종이 사태를 부인하듯 반론을 펼쳤다. 하지만 그건 다급하게 끼어든 이훤에 의해 가로막혔다.


“어서 알려야 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면 궐내의 경계는 엉망인 상황입니다.”


“그걸 네가 어찌... 아!”


당장 시위부 소속인 이훤의 지적. 효종이 절망스런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궁에 들어가려면 수문장에게 허락을....”


제아무리 순라군이라 해도 입궁하려면 긴급한 사유와 허가가 필요한 상황. 이는 지체높은 진골과 종친이라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화랑인 효종이라면 적당한 사유를 둘러대 진입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이럇!”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말을 달려 현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이훤이 연신 결단을 물어왔다. 효종은 여전히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호랑이들이 정말 월성에 진입했을 지는 의문인 상황. 물론 그런 희망회로는 세명이 나란히 적나라한 장소에 도착하면서 녹아내렸다.


“발자국들이 저 언덕을 향해 나있군요.”


“하아....”


점점 의심을 넘어 확신이 되어가는 시점. 효종이 다시 길게 탄식을 뱉었다. 하지만 더는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입궐허가는 훤이 네가 받고 있거라.”


“제가 말입니까?”


“하지만 용케 받는다 해도 이미 너무 늦어.”


박경휘의 말에 효종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박경휘는 그런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에 메인 짐들을 챙겼다.


“기다릴 시간은 없습니다. 형님과 훤이가 허락을 받는 동안 들어갈 생각입니다.”


“네가? 아니지... 들어간다면 어떻게?”


효종의 물음에 박경휘가 말없이 언덕 너머를 바라봤다. 완만하지만 말을 타고 가기엔 애매한 경사. 우거진 수목에 더해 사람에겐 꽤나 높은 담벼락까지 있었다.


“설마... 저기로? 길도 모르면서?”


“훤이 덕에 궁내 지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녀오지요. 부탁합니다.”


“자, 잠깐! 경휘! 기다리게!!!”


안타깝게도 박경휘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었다. 외마디 통보와 함께 박경휘는 그대로 말을 달려 언덕을 향해 달려나갔다. 말이 언덕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박경휘는 거의 튕겨나가듯 몸을 놀려 하마한 뒤 꼭대기를 향해 달려나갔다.


말에 활과 화살마저 내려둔 상황. 박경휘는 가벼운 차림으로 최소한의 무장만 챙긴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에 입이 벌어지는 사이 박경휘는 이미 꼭대기 부근 성벽에 다다라 있었다. 어떻게 올라가려나 의문이 드는 순간, 박경휘는 달려가던 속력 그대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아니!”


번쩍


눈 깜짝할 사이 박경휘는 성벽 상단부의 돌출부 하나를 붙잡은채 튀어올랐다. 발을 걸치고 몸을 굽힌 박경휘는 성벽의 중간에서 다시 한번 튀어올라 성벽 위 기와에 손을 뻗쳤다. 그리고 그걸 끝으로 박경휘는 벽을 넘어 사라졌다.


“저... 저게... 과연 사람의 몸놀림이란 말인가?”


“이럴 수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에 효종은 물론 이훤마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저 탄식에 가까운 감탄이 그들이 낼 수 있는 유일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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