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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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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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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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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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김위홍(1)

DUMMY

“참으로 장한 일이오. 박씨족의 수장인 이찬공이 이렇게 솔선수범하다니!”


임금이 부쩍 밝은 얼굴로 박문원에게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평소 공적인 자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 그도 그럴것이 지금 둘은 임금의 처소에서 독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본심이 나온 것이다.


“여는 이찬공의 충심이 이토록 큰 줄 이제껏 모르고 있었소. 참으로 고맙소. 국난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 공은 꼭 잊지 않겠소.”


“신은 그저 작은 곡식을 내주었을 따름이옵니다. 그나마도 금성의 극히 일부만을 며칠 먹였을뿐이오니 너무 심려치 마소서.“


“아니야. 아니지! 작은 일이라기엔 이찬공이 미친 여파가 굉장하단 말이오! 여가 신료들에게 누차례 강조했소. 이찬공을 본받으라고! 그 덕에 얼마나 일이 쉬워졌는지 아시오?”


임금의 얼굴이 몰라보게 밝았다. 젊은 나이임에도 격무와 울화병으로 고생하는 헌강왕에겐 드문 모습이었다.


“누구나 알지만 쉽게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잖소. 하지만 몸소 이찬공이 나서겠다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일테지. 참으로 과감한 결단이었소.”


박문원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모르는척 겸양을 표했다. 그로서도 이미 정국은 훤하게 알고 있었다. 아니 그냥 금성에 사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긍휼미를 기점으로 여타 왕족들의 반강제적 기부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작은 공을 폐하께서 이리 기뻐해 주시니 저로선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다 그대의 공이지. 암... 남들은 몰라도 여는 그렇게 생각한다오.”


“앞으로도 소신이... 쿨럭...!”


“음?”


거듭된 칭찬에 애써 박문원이 입을 열었건만 말은 기침에 끊기고 말았다.


“쿨럭! 쿨럭! 크으으윽!”


당황한 임금이 바라봄에도 박문원은 연신 마른 기침을 토해내길 수차례. 마침내 기침이 그치자 박문원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박문원의 안색을 살핀 임금은 안타까운듯 고개를 내저었다.


“부쩍 더 몸이 안 좋아진 모양이오.”


“죄송하옵니다, 폐하.”


“아니야. 진작 챙겨드렸어야하는데... 여가 미안하오.”


“폐하... 소신은 천수가 다 돼가고 있을 따름이옵니다.”


“천수란게 있을 지라도 살아있는 동안엔 건강해야 좋지 않겠소? 여가 산삼을 보낼테니 부디 그걸 드시고 기력을 찾으시오. 이는 여의 마음이니 거절치 마시오.”


이 시기의 산삼이라 함은 자연에서 채취한 것. 가뜩이나 왕실에서 내리는 물품이라면 최상등급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만큼 임금은 진심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요즘 몸이 안 좋아 정무도 간혹 빠진다지....”


임금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이찬은 곧 병부령에 준하는, 제3재상에 맞먹는 관등. 지위를 생각하면 화백회의를 비롯한 정무모임에도 매일같이 참가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박문원이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조회를 비롯한 각종 정무에 빠지기 시작한 게 벌써 몇 개월 전이었다.


“송구합니다, 폐하. 도무지 몸이 충심을 따라갈 수 없어 빚어진 무례이오니 넉넉히 이해하여주시옵소서.“


“아니야. 여가 더 세심하게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인데 실수였네. 이찬공 역시 우리 왕실의 가족인데 말이오. 이제부터라도 여가 계속 신경쓸테니 쾌차하시오.”


손을 부여잡은 임금의 말에 박문원은 다시 황송하다는듯 고개를 숙였다. 복잡한 혈연으로 왕실과 엮인 고위귀족들의 경우 임금에게도 지극한 예를 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박문원이 취하는 태도는 당대의 기준에서는 상당한 저자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김위홍이 본다면 타고난 겁쟁이라 비웃을 모습.


하지만 이는 지난 수년간 이어진 그의 생존방식이기도 했다.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폐하. 비록 몸이 좋지 않으나 폐하께서 이리 챙겨주시고... 또한 덕이 많은 신하들과... 제 가아들도 충심이 깊어 폐하를 보위하리라 생각하니 저로선 걱정이 없습니다.”


‘자식이라....’


지나가는듯한 말이었지만 임금은 대화 중에 한 단어를 포착하곤 미소를 지었다.


“좋은 땅에서 곡식이 자라듯 훌륭한 가문에서 훌륭한 후손이 나는 법... 자식이라 함은 곧 이찬공의 장남을 가리키는 거겠지?”


임금은 아까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박문원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번엔 아까와는 약간 달라진 눈빛. 의도를 파악한 덕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이찬공의 장남이라면 나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소. 총명하다더군?”


“지극히 부끄러운 일이기에 소신이 애써 말을 아꼈사오나 오늘만은 꼭 이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아 입을 열었나이다.”


“여가 이번 기회에 모두 들어줄 터이니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시오.”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예 자세를 고쳐잡았다. 헌강왕의 얼굴엔 여전히 여유가 넘쳐났다.


어찌보면 흔하고도 당연한 대화긴 했다. 정치적인 거래.


‘결국에 정치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다면 독대를 할 이유조차 없었을터. 같은 편이면서도 권력의 균형을 위해 이리저리 눈치를 봐야하는 측근들과 달리, 임금으로선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나오는 반대측 세력이 더 쉽게 느껴졌다.


‘박씨족 수장조차 나와 밀월 관계를 맺어둔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를 수밖에 없겠지. 이번 사건을 빌미로 임금인 내가 밀어줘서 정통성 있는 후계자까지 나온다면 말이야.’


“이찬공이 그렇게까지 말을 할 정도라면 정말 중요한 일인가보군. 이제껏 말을 아껴오시지 않았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오.”


적극적으로 검토해볼테니 무엇이든 제시해보라는듯, 상당히 노골적인 언사였다. 그렇지만 박문원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궁금하던 차이니 잘되었군. 어서 말해주시오. 이찬공.”


박문원은 왕의 말에 황송하다는듯 고개를 한번 숙인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이 모든 공은 가아의 덕이옵니다.”


“음?”


“비록 몇 만이라곤하나 그만한 호를 먹일 식량이 어디에서 나왔겠나이까. 결국엔 소신의 식읍과 전에서 나온 소출들... 긍휼미를 베풀 정도로 많은 곡식을 낸 건 오롯이 경휘의 덕이옵니다. 경휘가 총명해 여러가지로 제 식읍들의 수확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지요.”


왕은 순간 이질적인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느정도 자식의 공치사를 논하리란 건 예상한 일. 그러나 지금의 것은 체면치레를 넘어서 무지성 자랑, 혹은 그에 준하는 자기고백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물들도 어찌나 많이 만들었는지요. 제가 천기를 두려워해 이제껏 숨겨왔습니다만 수도없이 많은 신물들이 저의 집안에 널려있나이다. 이것들은 때로는 삶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어쩔 땐 천기를 거스르기도 하고 또 어쩔 땐 농사일을 더 쉽게 만들어주기도 하였사옵니다.”


“으음....”


무언가 이상했으나 임금은 애써 입을 다문 채 박문원의 말을 들었다. 들어주겠다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문원의 터무니없는 고백은 점점 끝이 없어서 한동안 계속되었다. 노쇠한 이찬의 말이 끝에 다다른 건 한차례 침묵한 뒤 나온 한마디부터였다.


“...거기에 제가 이제껏 내린 결정들의 많은 부분은 경휘의 뜻을 따른 것. 이번 긍휼미 역시 경휘의 뜻이었사옵니다.”


“영식의 뜻이었다?”


“그러하옵니다. 도리어 신과 가신들은 모두 반대했었지요. 허나 가아가 고집을 부리다시피 주장해 관철된 일입니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폐하께서 치하하신 공은 모두 제 가아에게 돌아가야할 줄로 믿습니다.”


“요 며칠 간의 일들이... 그대의 영식 덕이었단 말인가...?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그러하옵니다, 폐하.”


“허면... 그걸 이제와서 이야기하는 이유라면?”


임금의 눈이 가늘어졌다.


헌강왕은 젊은 나이지만 정치적 능력은 여느 귀족들에도 뒤지지 않았다. 진위여부를 떠나 박문원이 이런 말을 하는데엔 분명 목적이 있기 마련.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의 선택지를 좁히고 있었다.


박문원도 임금의 심리를 간파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탓인지 그는 한층 더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소신도 들어 알고 있나이다. 폐하께서 5년 전에 보신 신묘한 일을 말이옵니다.”


“신묘한 일이라?”


지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는듯, 임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으나 그즈음 있던 가장 유명한 일이라면 정해져있기 마련. 세간이나 사간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붙이곤 했다. 이 모든게 김위홍의 안배라는 건 다행이면서도 살짝 불쾌한 일이었다. 일을 겪은 당사자에겐 특히나.


박문원 역시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듯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눈을 맞췄다. 흔들리는 임금과 달리 박문원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도 차분했다.


“소신은... 가아가 폐하께서 전해 들으셨던 신장이라 생각하나이다.”


***


“박문원이 독대를 해?”


“내시부 시종에게 들은 바니 틀림없습니다.”


김위홍이 보고들 들으며 인상을 썼다. 시종들을 비롯한 왕실의 귀를 장악한 그로서는 뻔하면서도 거슬리는 소식이었다.


반응이 어떻듯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정보가 유효하다는 것. 위홍의 심정을 읽은 시위부 장군 일겸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더군요.”


“아들?”


“박경휘. 그 놈 말입니다.”


“요즘 자주 들리는 이름이군.”


“이미 서라벌에선 소문이 파다하다지요. 창부시랑 김공의 차남도 소문에 혹해 몰려가 집으로 초대하고 친구로 사귀었다는데. 이미 세간에서는 화랑의 우정이니 기개니 하며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비록 월성에서 근무하지만 위홍의 눈에 들기 위해 넓은 정보망을 구축한 게 일겸이었다. 시종부터 저잣거리를 통한 세간의 정보까지 사실상 모든 정보가 그의 손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 위홍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빠삭한 그로서는 사소한 정보도 빠뜨릴 수 없었다.


“아랫것들이야 언제나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법이지.”


하지만 김위홍은 피식, 작은 웃음을 토하며 눈을 감았다. 그 건은 별 일이 아니라는듯한 반응이었다.


‘김인경의 아들마저 달려가 친우가 되었다? 흠, 그럴 수 있지.’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김인경은 본인의 핏줄이자 같은 계파. 그의 식구가 하나둘 친분을 맺는다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계파와 씨족이 달라도 좁은 사회인 금성에서 어린 시절 함께 자라 그만한 우정을 쌓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어차피 이해관계가 갈리면 멀어질 관계였다.


‘문제는 이것이지. 그토록 숨기던 아들을 왜 이제서야 드러내기 시작했냐는 것.’


다만 현실적인 대립구도는 신경쓰일만 했다. 그중에서도 박씨족의 수장격인 박문원이 움직인다는 건 더더욱.


“역시 의도가 있겠지요?”


“겁쟁이지만 아예 머리가 없는 건 아니니 그럴 테지.”


“뭐... 죽을 때가 다가오니 없던 용기도 생기는 걸지도 모르죠. 아니라면 후계구도를 굳히려는 거거나요.”


위홍의 심정을 꿰뚫어본 일겸이 보태듯 가설을 내세웠다.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나름 논리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방계로 갈수록 피가 옅어지며 관계가 멀어진다지만 그래도 중심이 되는 핏줄은 존재하기 마련. 바로 그 집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씨족문화야 말로 지금 이 진골의 핵심이라 할만 했다. 박문원이 이번 공을 빌미로 임금에게 후계자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면 굳이 방해할 필요가 없었다.


“듣자하니... 박경휘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꽤나 총명한 건 사실인듯 합니다. 화랑도 아니건만 벌써 따르는 이들이 상당하더이다.”


다만 일겸은 박문원보단 그 아들을 더 경계하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김위홍과는 다소 다른 관점이었다.


“키도 장대처럼 크고... 외모도 훤출하니... 화랑임을 자부하는 효종이 반할만 하지요. 호연지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화랑이니 말입니다.”


김씨족 역시 유년기부터 이어지는 엘리트 교육으로 곧 관직에 나갈 소년들이 즐비한 상황. 그런 탓에 위홍은 굳이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알아야겠군.”


그의 관심사는 조금 더 대국적인 것. 개개인의 움직임보단 씨족 차원의 변화가 더 중요했다.


“박문원의 행보가 걱정이신 게지요?”


“그동안 자세를 낮춰온 데엔 이유가 있을 게야. 계속 감시하게. 고름은 항상 가까이서 터지는 법.”


“명심하겠습니다, 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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