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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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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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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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군자(3)

DUMMY

월성을 기준으로 남동쪽을 향한 곳이었다. 간단한 식사나 하려 갔다기엔 다소 먼 거리. 그탓에 따라나선 이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마침 나도 국학을 쉬는 날이네. 시기가 적절했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표정을 보니 의외인 것 같다는 얼굴이로군. 기루가 아니라 실망했나?”


저번 북서쪽 동네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깔끔과는 거리가 먼 구획이었다. 초가집이 널려있고 바닥은 질척하며 은은한 악취들이 풍기는 동네.


아까부터 얼굴이 약간 경직돼 있던 이훤은 박경휘의 말에 손사레를 치며 부정했다.


“절대 아닙니다. 그보단....”


이훤의 눈이 재차 주위를 훑었다.


금성에 온지 얼마안된 그의 눈에는 이런 광경조차 생소한 건지 이채가 돌았다. 금성에 대한 자신의 환상과 현실이 부딪히며 충격을 일으키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였다.


“공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직접 걸음하신다는게 신기했습니다.”


금성도 금성 나름인 법. 많은 인구가 분지에 몰려살다보니 넓게 가옥이 분포하게 되고, 그렇다보니 평생을 살아도 못가보는 곳이 속출하기 마련이었다. 가뜩이나 귀족자제라면 그게 당연했다.


“그렇군.”


박경휘는 이훤의 말에 별다른 감상을 표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말을 메어둘 곳도 마땅찮아 시종부터 그까지 걸어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만큼 걸었으면 식사를 했어도 슬슬 배가 고파올 시간.


“엇... 나으리!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로.....”


그런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어느 길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듯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해왔다. 박경휘는 익숙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한번이라면 그저 아는 사람을 만났나보다할 수 있는 일. 하지만 동네로 들어갈수록 점점 인사해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도련님! 또 먼 곳까지 산책나오셨습니까.”


“그러는 중이네. 그동안 잘 지냈는가.”


“물론입지요. 도련님 덕에요. 하하하.”


말을 걸어오는 주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하나같이 박경휘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는 것. 이훤은 갈수록 이상한 장면에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했다.


“지난번엔 도련님께서 치료해주신 덕에 아이가 다 나았습니다요. 참말로 감사합니다.”


“효험이 있었다니 다행이군.”


“정말 그때는 아이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설사가 멈추질 않아서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요... 그래도 공께서 해주신 치료 덕에... 흑흑.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그럼 잘됐군. 삯으로 자네 집에서 식사나 대접받지.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네.”


“아이고 그걸로 되겠습니까요?”


한가지 더 특이한 점은 감사하는 이유들. 가만보면 단순한 구휼이나 적선을 넘어 무언가가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누추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요.”


“부탁하지.”


허리를 깊이 숙이며 감사를 표한 주민은 박경휘의 말에 뒤이어 안내하듯 어딘가로 안내했다. 박경휘는 그런 주민을 별다른 생각없이 그대로 따라나섰다. 그의 시종도 마찬가지. 이훤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애써 입을 다물고 그를 따랐다.


그렇게 잠시 걸음을 옮겨 따라간 곳은 어김없는 허름한 초가집. 다 쓰러져가는 집에 성인남성 셋이 들어서자 안방은 거의 꽉찰 지경이었다.


“공께 감사하는 백성들의 얼굴에서 진심이 묻어나는군요.”


“그래 보였나?”


“예, 비록 제 식견이 짧으나 사람을 자주 보아와 어느정도 보는 눈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다들 가식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드르륵


“아이고~ 도련님들. 누추하고 차린 게 없습니다요. 죄송합니다.”


이훤이 말을 하는 동안 집주인과 그의 부인이 상을 들고 들어섰다.


부인의 말마따나 상은 조촐했다. 알이 굵은 잡곡이 든 투박한 밥그릇과 데친 나물들, 거기에 간장. 그리고 값싼 술 한 병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이조차도 서민들에겐 훌륭한 한상이었다.


“충분하네. 고맙소.”


“아이고... 맛있게 드십시오.”


“자네들은 식사 안하는가?”


“저희는... 하하. 그게 이미 밥을 먹어 버려서요.”


“알았네.”


웃고 있지만 거짓말이란 건 뻔히 보였다. 자신들의 식량을 내주고 굶으려는 모양이었다. 박경휘는 품을 뒤지더니 남자에게 손톱만한 철괴 하나를 건넸다.


“저번에 부탁한 일은 잘 하고 있나?”


“무, 물론입죠. 도련님.”


“수고가 많군. 그럼 촌주댁에 가서 경과 좀 물어보고 오게. 이건 오며가며 노잣돈일세.”


“아이쿠... 이걸 어찌 받아야할지... 참말로 감사합니다, 도련님!”


이훤이 시선을 모으니 그 자그맣던 철괴는 화폐같았다. 영문을 모를 거래현장.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허리가 구부러질만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나자 비로소 방 안엔 셋만이 남게 되었다.


“세상에... 밖에서 들자고 하신 게 이거였군요.”


마저 정리가 되자 이훤이 당혹스런 얼굴로 상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제서야 숟가락을 들려하는데, 일개 촌주의 장남인 그에게조차 이런 상은 심히 조촐한 모양이었다. 누가봐도 귀족에게 어울리는 상이 아니긴 했다.


“별식이라 생각하시게.”


“하하, 저에게도 생소한 음식은 아닙니다. 시위부 밥은 이보다 못하거든요.”


이훤은 작게 웃으면서 밥술을 뜨기 시작했다. 조촐한 밥이지만 시장을 반찬삼아 먹자 셋 모두 나름 맛있게 그릇을 비웠다. 여기에 술까지 한두잔 곁들이자 취기도 작게나마 올라왔다.


덕분에 긴장이 약간 풀린 이훤이 아까보다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금성의 도련님들이 모두 박공 같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생각이 깊고 통찰력이 있으시고 결단력이 있는... 그런 분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였지요. 뭐, 사람 사는데가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훤이 대뜸 꺼낸 이야기는 자신의 소감들. 길을 걸어오면서 나눈 근황들로 대략적인 소식은 파악했으니 슬슬 내밀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다. 시종 예견이 나란히 앉아있긴하나 이훤이나 박경휘나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비록 저도 살아온 날이 짧으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닙니다. 난세... 혹은 난세에 접어들기 직전이라 봐야겠지요. 작금의 세태는 말입니다.”


“....”


“이런 말씀 올려도 될까 싶지만... 금성이나 촌락이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공물의 부담은 커지고 백성들은 짓눌리고... 그와중에 소수의 누군가는 배를 불리며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지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주제. 박경휘가 가만히 듣고만 있자 이훤은 용기를 내어 말을 잇다가 문득 다시 주제를 넘겼다.


“난세에 앞서 공 같은 분이 계신 것은 신라에 큰 홍복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제가 도움을 받아 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후론 약간 낯뜨거운 소리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박경휘가 파악한 이훤의 성격상 전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공을 따르는 분들도 많더군요.”


“그때 그 무리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안그래도 공을 만나기 전에 국학을 비롯해 여러모로 사람들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의 명성과 넉넉한 인품도 들었지요. 이미 국학에서만도 공을 따르는 자제가 스물을 넘는다더군요. 거기에 오늘 같이 공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을 포함하면 족히 추종자라 할만한 무리일겁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말이 좋지 결국은 뒷조사를 했다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유력가문의 자제들은 누구나 하는 일이기도 했다. 금성이 곧 신라인만큼 이곳에서의 정보가 바로 정세인 탓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공께서 격의없이 아랫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실로 흔히 않은 귀인인 셈이지요.”


어딘가 결연한 어조에 방 안엔 잠시나마 침묵이 감돌았다.


조르륵


시종 예견이 자연스레 박경휘의 빈잔을 채워주었다.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지만 침묵을 깨우기엔 충분했다.


“이 항(항: 시위부 직책명)은 그 짧은 새 많은 것을 보고 느낀 모양이군.”


“그러합니다. 본래 저는 장남인지라 동생들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직접 이곳 금성까지 왔습니다. 오롯이 나라와 왕실에 충성을 다하려는 저의 신념 때문이지요.”


문득 마주친 이훤의 눈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눈빛에선 살짝 괴리가 보였으나 박경휘는 입을 다문채로 기다렸다.


“저의 이 충심을 공께서는 잘 헤아려주리라 믿습니다. 그걸 아시기에 또한 절 도와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속셈일까.’


박경휘는 잠자코 들으며 이훤의 의도를 추측했다. 역사에 남은 견훤의 행적을 볼 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순 있었다.


‘다소 과장과 거짓이 섞여있긴하나 얼굴과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는 보인다. 적어도 역심이라면 굳이 날 찾아올 이유도 없을테지.’


지금 이훤의 발언들은 다분히 야망에 찬 부류. 그것도 출세에 대한 욕망에 가까워보였다.


분명 돌이켜보면 견훤에겐 신라의 대장군이 되어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이는 그가 후백제를 세우고 멸망시키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드러나는 것이었다. 후백제를 참칭하면서도 내심 신라인이라는 정체성과 신라왕실에 대한 갈망이 그의 내면을 지배한 까닭이다.


“공께서는 화랑이 되려 하시는지요.”


“왜 그리 생각했지?”


“이제까지의 행적들을 보고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마치 과거 태대각간(김유신의 마지막 관직)과 같이... 공의 행보는 문관보단 무관. 그것도 호연지기가 넘치는 화랑의 것이었지요.”


“꼭 자네가 돕고 싶다는 것으로 들리는군.”


“만일 그러하다면 뭔들 못 도와드리겠습니까. 그저 제가 바라는 건 공께서 꼭 성공하시어 왕실과 나라를 지키는 것 뿐입니다.”


굳이 노골적으로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이훤의 의도는 확실해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자네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야겠군.”


“헛....”


그렇기에 역으로 본심을 건들자 이훤은 허를 찔린듯 말을 더듬었다.


“우리 둘 다 왕실과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네.”


박경휘는 긴장한 이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훤은 황급히 잔을 받아들곤 박경휘를 바라보았다.


“시위부라고 하나. 마음으로는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겠나. 날 돕겠다면 벌써 그걸로 내 낭도가 된 셈이지.”


“바... 박공!”


“그렇지 않은가?”


“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럼 낭도가 된 기념으로 한잔 하지.”


어설픈 자리건만 둘은 잔을 맞대더니 이어서 술을 비웠다. 마침맞게 마지막 잔이었다.


***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가는 길. 이훤은 인사를 올린 뒤 돌아가는 박경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록 내 면이 구겨지긴 했지만 소득이 있었다. 애초에 당연히 내가 굽히고 들어가야했으니 구겨진 것도 아니지.”


이훤은 박경휘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처음부터 지금껏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분명 자신보다 3살은 어린 도령임에도 뿜어져나오는 위엄과 기세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단순히 거인 같은 체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육신에 더해 차분하고 고요한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거친 삶을 살아온 이훤으로선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드잡이질도 많이 안 했을 신분이거늘... 그러나 박공에게선 경지가 느껴진다.”


본래 무예와 학문이 뛰어나 따르는 이가 많다는 건 익히 들은 바였다. 하지만 첫날 마주했던 그 인상은 재회한 지금까지도 적응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고개를 숙이며 다가선 이유라 한다면.


“이 또한 하늘이 내게 준 기회가 아니겠는가... 이찬 박공의 핏줄에 저만한 기개라면 각간은 족히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의 곁에 설 수 있다면 그만한 인연이 어딨을까.”


비록 일방적으로 밀리긴 했으나 이훤 역시 욕망과 결의로는 둘째가면 서러울 사람이었다. 아랫배에서 용솟음치는 뜨거운 기운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 아비가 널 서라벌로 보내는 건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친 아자개의 말도 머리를 휘감았다.


‘혹시 알아? 그가 각간을 넘어 왕이 될 지... 그럴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의 옆에 서서... 비단 대감에서 끝나지 않고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길 수 있으리....‘


분명 겪어본 적 없는 미래건만. 지금만큼은 부월을 들고 대군을 호령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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