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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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백작
작품등록일 :
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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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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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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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밖의 조우

DUMMY

언덕을 내려가 검문소로 다가가자 다투는 소리는 점점 커져왔다. 만신창이인 무리의 옷매무새도 더 확실하게 보였다.


“두번 말 안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얼씨구? 이러다 한 대 치겠어?”


“못 할 것 없지요.”


극도로 험악해진 분위기에 뒤따르던 소년들에게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멀쩡한 건 계강과 시종 예견 정도였다.


“오냐... 나도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참이었는데 어디 힘 좀 써볼까.”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남루하기 그지 없는 복장들에 변변한 수레 하나없이 봇짐들을 들고온 모양새건만, 소년을 비롯한 장정들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그때문에 병사들도 말과는 달리 쉽사리 압도하진 못하는 분위기.


“엇... 혹시 어디서 나오신 분들이십니까?”


긴장은 뒤켠에 있던 일부 병사들이 이쪽의 접근을 알아채면서 잠깐 풀려났다.


“나으리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는지요?”


척봐도 지체 높은 무리라 여긴건지 병사들이 아까와는 달리 머리를 조아리며 다가왔다. 험상궂은 얼굴로 장정들을 향해 눈알을 부라리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병사들의 물음에 박경휘가 입을 열려는 순간, 계강이 선수를 치며 나섰다.


“이쪽은 예부령 이찬 박문원의 장남 박경휘시다.”


“헙! 이찬댁 도련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이 몸은 창부시랑 대아찬 박지원의 장남 박계강이시다. 엣헴!”


“소인들이 귀인을 뵙습니다!”


가장 선임인듯 보이는 병사는 기겁한 얼굴로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병사들도 나란히 고개를 숙여왔다.


아무런 관직도 없는 소년들이건만 이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도 이유는 있었다.


‘관직은 명분일뿐. 실상은 골품이 곧 직급인 나라니까.’


근 천년에 가깝게 이어져온 제도였다. 진골이라고 모두가 고위직을 맡는 건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보수성이 한층 더해가는 실정이었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특정 씨족들이 돌아가며 관직을 맡는 실정. 그렇기에 고위관료들의 자제들이라면 어지간한 태수 이상의 위세가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병사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자 한창 실랑이를 하던 소년도 이내 똑같이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병사들이 소년을 막아 더 가까이는 오지 못했지만 소년은 기어코 목청을 높이며 주의를 끌려 시도했다.


“나으리! 부디 저희 말 좀 들어주십시오!”


“어허! 물러나거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병사의 만류에도 소년은 치열하게 움직이며 이쪽의 주의를 끌으려 시도했다. 다시 화가 난 우두머리 하나가 이를 꽉 물며 나서려했으나 이번엔 박경휘가 그를 막아세웠다.


“내가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헛... 하지만 도련님. 들어봐야 부질 없습니다. 보나마나 구걸이나 하러온 거지떼인걸요. 수도없이 없이 보아왔습니다요.”


병사들은 영 곤란한 표정이었다.


“아까 익숙한 이름을 들은 것 같아 확인 좀 해보려 하오. 부탁합니다.”


“끄응... 정 그러시다면야....”


완강한 의사에 병사들이 어쩔 수 없다는 물러섰다. 그러자 간신히 기회를 얻은 소년은 다급한 표정으로 박경휘 앞을 향해 달려나왔다.


가까이서 관찰하니 확실히 복장이나 소지품이 평민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도적과 만난 모양인데.”


“그러하옵니다.”


“다친 사람이 있나.”


“다섯이 싸움 중에 죽어 그 자리에 묻었고, 셋은 상처가 심해 사람을 시켜 돌려보냈습니다. 도적들은 십여명을 죽이자 도망쳤습니다.”


이정도 무리의 장정들을 건들다니 도적들도 꽤나 규모가 컸던 듯했다. 금성 근방의 치안이며, 이들의 무력이며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았지만 박경휘는 애써 의문을 눌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소인은... 사벌주 가은현 촌주 아자개의 장남 이훤이라 하옵니다.”


이훤. 사벌주. 아자개. 세 단어로 모든게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아자개는 원역사에 따르면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의 아버지. 실제 성은 이씨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지금 들은 이훤은 나중에 가서는 견훤이 될 자였다.


‘정말 견훤이라니. 운이 좋군.’


박경휘는 그럼에도 생각을 감추며 추가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대부분은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이었다. 검고 서늘한 시선이 자신을 훑어보자 이훤은 아까와는 달리 살짝 주눅든 표정으로 눈을 피하며 말을 이어갔다.


“소인... 병부... 병부시랑 김상원 공의 명을 받아 서라벌에 이르게 되었나이다. 싸움 중에 증표를 잃어버려 당장 증명할 순 없으나... 이미 시위부에 있는 저희 고장 장정들과 병부 관리들을 만나면 해결할 수 있나이다.”


“네 동생의 이름은 무엇이지?”


“능애가 있사옵니다... 그리고 배다른 동생인 용개와 보개가 있나이다.“


이훤이 언급한 명령이며 관직의 인물들이며 가계까지 모두가 일치하고 있었다. 어차피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단순히 금성에 들어가기 위해, 그것도 유민이나 거지가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만하면 믿어도 될만한 수준의 검증이었다.


박경휘는 여러 질문들로 확신이 거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인해보니 이들의 말에 거짓은 없는 것 같소. 사실이라면 어서 어명에 응해야할 것이니 내가 이들을 맡아 금성까지 데려가겠소.”


박경휘의 말에 곧바로 병사들은 눈이 뒤집어질듯한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은 당연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 하지만 도련님! 이것은 절차에....”


“내가 보장할테니 위에는 내 이름을 보고하시오. 원한다면 그대들중 하나도 우리에 붙어 끝까지 결과를 보게 해주겠소.”


“그것은....”


“부친께 사람을 보내 남문에서 바로 처리할 생각인데... 만일 지금 보내지 않으면 병부와 중사성을 거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오. 거기다 이런 일이 있었단걸 알면 병부에서도 영 좋아하진 않을테지.”


일정 부분 과장이 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상주 일대는 왕실직할령으로 대우 받은 곳. 시위부의 병사들을 뽑는 곳으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그런만큼 왕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인데 자칫 이번 건이 정치적 분쟁을 일으킨다면 지금 병사들도 피해를 입을 터였다.


“그...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병사는 그제서야 한발 물러섰다. 오랜 경험을 발판삼아 기세 좋게 맞섰지만 만에하나 정말 이들이 사벌주의 장정들이라면 본인들도 억울한 꼴을 당할 테니, 그들로선 차라리 신분이 보장된 이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게 편했다.


“그... 그렇다면 소인이 시중드는 몇을 붙여 호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보험격인 제안에 박경휘는 별 감정없이 승낙했다.


뒤에선 병사들만큼이나 소년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박우진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는듯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대... 대체 왜....”


“준비되었으면 이만 가지. 곧 어두워질 거다.”


“으아... 이거 잘못되면 나 진짜 아버지한테 엄청 혼날텐데... 흐아아.”


하지만 박경휘가 재차 말에 오르자 소년들은 더 말하지 못하고 따랐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 지금으로선 서두르는 건 옳았다. 금성 주변이라 해도 날이 어두워지면 치안이 극도로 안 좋아지는 탓이다.


“소인 이훤, 도련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병사들에게서 조금 멀어지자 문득 이훤이 달려나와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박경휘는 일어나라 손짓하며 이훤을 내려다봤다.


“은혜랄 것도 없다. 왕실을 지키는 병사들이니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할 터.”


“지방민을 이토록 챙겨주시는 건 나으리가 처음입니다. 비록 제 식견은 짧으나... 나으리께서는 분명 명재상이 되실 듯합니다. 부디 그날이 오기 전에 나으리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훤이 매끄러운 입솜씨로 이름을 물어왔다. 소년들은 재촉하는 모양새였지만 워낙 이훤의 눈빛이 강렬한 탓인지 쉽사리 끼어들진 못했다.


“난 이찬 박문원의 아들 박경휘다. 호는 따로 없다.”


“박경휘... 부디 이 존함 세글자를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그리고 훗날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


‘무슨 이깟 일로 은혜를.’


박우진이나 계강은 그런 생각을 하는게 얼굴에 드러났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하급자의 입장에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덕인지 이훤의 눈은 아까 병사들과 싸울 때보다도 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번엔 분노보단 존경과 다짐의 의미가 더 강했다.


‘한창 야망과 꿈으로 불탈 나이일테지.’


기껏해야 본인과는 한두살 정도 차이가 날 터. 혈기가 왕성할 시기였다.


박경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곤 이내 걸음을 옮겼다.


***


“사벌주에서 올라온 시위부 장정들을 도와줬더구나.”


박문원의 말에 박경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심한 밤 달이 훤하게 보이는 누각에서 부자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박경휘가 귀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의 부름에 달려온 게 지금의 독대였다.


어두운 밤이건만 박경휘는 부친의 얼굴에서 근심과 놀라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들이 사벌주에서 온 줄은 어떻게 알았느냐.”


실상 박문원이 직접 나선 일은 없었다. 남문에 이르자 미리 언질을 들어 알고 있던 병부에선 알아서 관리를 보냈고, 간단하게 확인된 신분에 따라 이훤의 무리는 별 문제없이 금성에 입성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관리들의 질문에 따르다보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부친에게도 흘러간 것이었다.


“사벌주의 아자개라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자개라....”


“이씨 성을 쓰는 사벌주의 촌주이지요.”


“흐음....”


고작 일개 촌주 따위를 왜 알고 있냐는듯한 표정이 순간 박문원의 얼굴을 스쳤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아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나름의 답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말을 아꼈다.


“사벌주와 일대는 왕실령으로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미리 공부를 해두었습니다. 아자개와 더불어 사벌주의 촌주들... 그리고 가계까지 모두 옳게 대답하더군요. 그리고 불러보라는 병부의 관리들도 대부분 성과 이름이 일치했습니다.”


“흐음... 병부의 관리들 말이냐?”


“예, 병부시랑들과 낭중들의 이름이 일치했습니다. 그외에도 정황이 워낙 비슷한데다 요구하는 것도 말하는 것에 비해 작아 확신을 했습니다.”


이 역시 질문할 거리가 많은 대답. 도대체 왜 관직에도 오르지 않은 소년이 현직 관료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지는 이런 일에 익숙한 박문원조차도 놀라웠다.


“정말 관리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는 것이냐.”


“전부는 아닙니다.”


“흐음....”


고민이 깊어지는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박문원은 수심에 찬 얼굴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네가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진 않으리라... 이 아비는 믿는다.”


“....”


“허나 이 아비는 항상 걱정이 앞서는구나. 물론 이건 네 탓이 아니라 시류와 간신들 탓이겠지.”


문득 달빛이 밝아지며 부친의 얼굴이 환하게 비쳤다. 구름이 지난 덕이었다. 그렇게 보인 그의 얼굴엔 부쩍 많아진 주름살과 함께 수척한 기운이 가득했다.


“다행히 이번 일은 문제 삼을 자들이 없을 것 같다만... 어떻게든 핑계를 찾아서 끌어내리려는 자들이 많다.”


“명심하겠습니다.”


“끄흠... 신홍의 여파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느니....”


정확히는 김위홍계의 견제일터. 부친은 애써 말을 삼키는듯했다. 심란해진건지 그는 잠깐 몸을 일으켜 난간에 몸을 기대며 먼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야밤에도 등을 달아 윤곽이 보이는 황룡사 목탑이 있었다.


“나라가 기울고 있거늘... 서라벌은 밤에도 밝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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