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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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백작
작품등록일 :
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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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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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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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

DUMMY

“으아아아아!”


제일 현장을 목도했으나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른 건 박우진이었다. 장내의 침묵을 깨지자 뒤이어 낭도들의 탄식도 터져나왔다.


“내가... 눈으로 본 게 진정... 현실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수를 쓴 게지?”


“화살을... 잡는다고? 이 거리에서?!”


한번 터져나온 웅성거림은 갈수록 커져갔다. 낭도들의 술렁거림은 곧 화랑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낭도들을 통솔하는 화랑들이 조용히 시킬 법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조차 내려놓은듯했다.


“으어어....”


단순한 감탄을 뛰어넘은 탄식. 혹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들이 이어졌다. 낭도들보다도 더 충격에 휩싸인 건 도리어 화랑들이었다. 김양정부터 김은택까지 모든 화랑들이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듯 아연실색한 채 입을 열질 못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미... 미친.”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놀란 당사자는 바로 본인, 활을 쏜 상엽이었다. 상엽은 차마 입을 잇지 못한 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데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던 세계와 자부심이 산산조각난 탓이었다.


“이러면 제가 이긴 거겠지요?”


침묵과 탄식을 끊어낸 건 박경휘였다. 태연한 얼굴로 화살을 손에 든 채 박경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화랑들은 그제서야 움찔하며 박경휘를 바라봤다. 불과 얼마 전까지와는 정반대의 눈빛이었다.


“어....”


연단 가운데 서있던 김은택이 다가오는 박경휘를 보며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시 더듬거렸다.


“내... 내가 쏜 화살을....”


상엽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 자리에 서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김은택은 잠깐 상엽에게 시선을 주다 재차 박경휘를 바라봤다.


“그, 그렇네. 박공. 추, 축하하네....”


충격을 받은 건 김은택 역시 마찬가지기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우선순위가 헷갈리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붙잡아?”


이미 제정신이 아닌듯 상엽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점차 혼미해져가는 정신에 발맞춰 시야가 흐려졌다.


김은택은 마침내 바로 앞까지 당도한 박경휘를 올려다보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그대의 승리일세. 경휘랑....”


“내가 쏜....”


김양정을 비롯한 화랑들 역시 마찬가지인 반응들. 김은택은 그들의 얼굴도 슬쩍 돌아본 후 이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끄응... 인정할 수밖에 없어. 대단하군.”


털썩


김은택을 말을 잇는 사이 짧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엔 상엽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커다란 활은 내동댕이쳐진지 오래였다.


“말도 안돼....”


곁눈질로 상엽을 바라보던 김은택은 속으로 측은지심을 가졌다.


‘끄응... 안됐구나. 상엽.’


놀라움이 지나치면 그간의 분노와 질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경외심이 자리잡게 된다. 놀라움을 넘어 공포심의 경지까지 다다른 김은택은 거의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번만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미안하다.’


낭도들도 마찬가지 심정인듯 김은택을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 박수소리가 번져갔고 장내는 온통 침묵의 박수로 가득차버렸다.


‘이 놈은... 진짜니까.’


***


천명이 넘는 목격자가 있던 참이었다. 이 일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화랑들로선 입막음을 하고 싶었으나,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박경휘의 이야기가 서라벌에 퍼지기까진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 임금을 구하고 화랑이 된 경휘랑이 화살을 손으로 잡았다는구먼?”


“응? 무슨 화살? 그게 뭐 중요헌가?”


“아니 이 사람아! 날아가는 화살을 손으로 잡았다고!”


“에에에!? 손으로? 정말?”


길을 걷던 두 남자들도 때마침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 박경휘. 전후 사정을 모르던 자들도 약간의 과장을 더해 설명해주면 금세 눈을 치켜뜨며 놀라기 마련이었다.


“헤에에엑! 그게 사실인가!?”


“아무렴! 내가 거짓말을 하려고. 낭도들이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단 말일세!”


“아니 뭐 그렇다면 사실이기야 하겠지... 그나저나... 갑자기 왜 그런 위험한 짓을?”


“아, 그게 화랑들끼리 신고식도 할겸 기도 죽여놓을 겸 실력을 겨뤘다나봐. 거기서 이미 경휘랑이 여러차례 이겼는데도 승복하지 못하고 화랑들이 자꾸 질질 물고 늘어지니까 대뜸 경휘랑이 제안을 했디야.”


“자신을 향해 활을 쏘라고 말인가?”


“그렇지! 아, 글쎄 허참 신기한 사람이야.”


구전을 할수록 이야기엔 살이 붙기 마련. 특히나 신화적 민담을 좋아하는 이 시대의 특성상 당시의 일화는 마치 영웅담처럼 바뀌고 있었다.


“아아... 한방에 확실하게 기선제압을 한 게로구먼! 나 이런 사람이니까 덤비지 마라! 뭐, 이런 거 아니겠나?”


“그렇지! 그렇지! 아, 글쎄 그러니까 대뜸 화랑들이 놀라서는 바로 꼬랑지를 말고 고개를 숙였다지 않은가!”


“끄응... 나라도 그랬을 것이야. 화살을 잡는 장군을 보고 누가 감히 대들겠나.”


단순히 베어낸 것이 아니라 화살을 잡았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신궁이라 불리는 낭도가 쏜 강궁을. 활을 한두번 만져본 자들이라면 다들 영웅이라 칭송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내 보니 얼마 안가 풍월주 자리도 경휘랑이 하지 않을까 싶구먼.”


“에이~ 암만 무예가 뛰어나도 그건 무리지. 나이가 어리잖나!”


“이보게 노리아범. 신장에게 나이가 뭣이 중요헌가. 하늘이 내려준 장군인데 그깟 풍월주가 대수여?!”


“아, 그럼 신장인가 뭔가. 그게 참말이었던 게로구먼!”


“그런 셈 아니겠나! 하하핫.”


점차 이야깃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작은 소리이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엿듣는 입장에선 더없이 재밌는 순간.


“크으....”


난간에 기대 귀를 빼꼼 내밀고 있던 효종이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멀어지는 두 사람들 바라본 뒤 이어서 시선이 향하는 건 길가가 아닌 기루의 안쪽. 정좌한 채 앉아있는 한 남자였다.


“공의 무용담이 서라벌 전체를 휘감고 있군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이훤이었다. 그의 눈엔 존경심에 가득찬 눈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김효종 역시 정도의 수준만이 다를뿐 마찬가지 얼굴이었다.


“크으... 그 장면을 직접 못봐서 아쉽구먼. 김은택 그 재수없는 놈이 놀라자빠지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효종이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가 손짓을 하자 바로 이어 기녀들이 거문고를 켜기 시작했다. 효종은 다시 빈잔들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웃는 얼굴로 각각 이훤과 박경휘에게 건넸다.


“오늘은 내가 낼테니 실컷 마시자고! 크하하핫.”


박경휘를 옹호한 일로 한동안 집안식구들은 물론 화랑들 사이에서도 매장당하다시피한 효종이었다. 그간 보이지 않던 것도 여러차례 질책을 듣고 근신하느라 틀어박혀있던 것. 마침 대결소식이 들려온 오늘이 풀려난 날이었기에 효종에겐 여러모로 겹경사였다.


“하하하하! 그렇게 헛소리들을 해대더니 꼴 좋다~ 내 욕을 바가지로 하던 것들. 지금은 그 입이 쏙 들어갔지. 하하하하핫!”


효종의 기분이 좋은 데엔 그런 통쾌함도 컸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시리 그도 어깨가 들썩이곤 했다.


“어쩌면 최연소 풍월주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이는 의제를 맺은 이훤에게도 좋은 일. 그 역시 자랑스럽다는듯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렇지. 충분히 가능해! 신라 역사에 그런 화랑은 없었으니까!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단 말이지... 그렇지 않나, 경휘랑?”


마침내 돌아온 공. 말을 아끼던 박경휘는 효종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군요, 형님.”


***


“참으로 기이한 자로다.”


누각 위에 선 헌강왕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소문은 서라벌을 돌기 전 가장 먼저 왕궁을 거치기 마련. 왕이 화랑들의 소식을 접한 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실로 그러합니다, 폐하.”


뒤에 선 시중 민공이 동조하며 고개를 숙였다.


“근거리에서 쏜 화살을 손으로 잡는다라... 실력은 둘째치고 기백과 배짱이 가히 사람의 범주가 아니군. 하긴 그정도는 돼야 호랑이를 잡겠지.”


“그런 장수가 폐하의 품에 안기다니 실로 홍복이옵니다.”


민공의 아첨을 뒤로한채 왕은 망루에 서서 서라벌을 눈에 담았다.


격무에 지쳐 오르는 월상루. 저녁 어스름에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서라벌의 전경은 그만의 천연 피로회복제였다. 우뚝 솟은 황룡사 목탑을 비롯해 네모반듯한 수십의 구획들과 주작대로, 그 사이사이를 빽빽하게 채우며 늘어선 기와집의 파도가 그에게 끝도 없는 힘을 주고 있었다.


“저즈음이 박문원의 집이었던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리고 오늘은 유독 동궁쪽 박문원의 저택이 왕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금성이 아름답구나.”


“폐하의 은덕에 집집엔 숲이 가득하고 금성엔 기와집뿐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


“여기에 유능한 신하들까지 생겨나니. 이 역시 폐하의 덕 아니겠사옵니까.”


매끄러운 혀를 가진 민공이었다. 다분히 아첨성의 발언. 왕은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왕께서는 박경휘에게 마음을 빼앗기셨구나.’


민공은 그런 왕을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 역시 명색은 위홍계 인사. 그러나 엄연히 말하자면 다른 계파인 것도 사실이었다. 재상이기에 그 역시 각간이라 불리지만 실제론 낮은 관등인 시중 민공. 그의 출세가 이어지려면 필연적으로 왕과 보조를 맞춰야했다.


“모두 그대들의 보좌 덕이지 여에게 무슨 덕이 있겠는가.”


민공과의 대화는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구절. 당대의 일상을 드러내면서도, 후삼국 개막 몇 년 전 있던 대화란 점에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불과 몇 년 뒤 나라가 위기에 처함에도 왕은 태평성대를 읊었다는 증거인 탓이다.


하지만 왕이라고 해서 전혀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신라의 모든 정보와 현실은 각 부들을 통해 직속으로 모이는 현재. 그 누구보다도 신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자가 그였다. 그렇기에 그가 꺼낸 말은 그저 마음을 녹이고 안정을 취하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었다.


‘허나... 이 기분을 굳이 망칠 필요야 없지.’


그 역시 아첨임을 알고 있으나, 이는 대화를 나눈 둘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바. 자신을 위한 말임을 아는 왕은 미소를 지었다.


“박경휘 그는 진정 신장인가 보구먼....”


“다소 조심스러우나... 소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민공은 왕의 의사표현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숙였다. 마침내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는 순간. 숙인 민공의 얼굴에서 눈이 반짝였다.


“흠... 그렇다는건....”


그러던 중 문득 왕은 박문원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폐하, 작금의 사라엔 뼈를 깎는 개혁이 필요하나이다!]


이후에도 수차례 박문원을 불러 독대했던 기억이 있었다. 호환 이후 부쩍 가까워진 둘이었다. 친분은 곧 정치적 연대로도 이어지기 마련. 그런 와중 박문원이 문득 했던 말이 있었다.


핵심은 곧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면세지와 식읍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 거기에 더해 세습화가 시작된 지방관들과 토관들을 순환시키는 것도 건의를 받았다.


‘뼈를 깎고 살을 바르는 고통이 수반될터.’


그가 가리킨 변화란 곧 귀족들과의 한판승부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다.


‘신장의 아비가 한 말이니 그것 역시 박경휘가 한 말이겠지.’


으레 비주류 세력들은 왕권강화와 함께 기득권 약화를 주창하기 마련. 그에게도 익숙한 일이긴 했다. 원래 박씨와 석씨들은 민생을 위하는 척 김씨를 공격하고 뒤로는 부를 축적해왔으니까.


하지만 유독 지금만은 다른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이유는 단연 박경휘의 존재. 그의 부친이 박문원이라는 점이 계속해서 그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게 진정 하늘의 뜻이란 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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