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신라의 진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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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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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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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기의 시간(1)

DUMMY

극단에 치달았던 기싸움이 종결된지 며칠 후, 풍류회는 한결 조용해졌다.


“그럼 차주 김효종의 발언으로 다시 안건을 이어나가겠습니다.”


간사의 진행으로 한창인 회의. 명분은 간부급 화랑들이 모인다는 것이었으나 상석들중 하나엔 어느샌가 신참 화랑인 박경휘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더 중요한 건 그를 대하는 화랑들의 자세였다.


“경휘랑의 창고와 낭도 교육을 위해 여러모로 고심해봤습니다만....”


“크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화랑들이 효종의 눈에 들어왔다.


살짝 심기가 불편한 모습들, 하지만 이전처럼 무례하게 나서는 낭도나 화랑은 없었다. 그저 이따금씩 목을 가다듬다 박경휘의 시선에 눈을 피하기 일쑤.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편달을 아끼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마디 하지요.”


“예, 원신랑.”


“경휘랑의 향도회 역시 어엿한 풍월회의 일원이자 주역이 된지 오래지요. 따라서 풍월회 차원에서 조속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거기다 의외의 원군도 있었다.


“원신랑도 그런 의견이라면 좀 더 이야기가 쉬워지는군요.”


효종이 원신의 말에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이 같은 그림은 이미 회의 중간중간 여러차례 보이고 있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하동문이오.”


아까부터 화두가 던져질 때마다 한두 마디 보태지는 구원의 손길들은 덤.


‘지금 경휘랑에게 잘 보여야 그의 줄을 설 수 있을 테지.’


박경휘의 편을 드는 화랑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첫날부터 호의적이었던 김원신부터, 효종의 일파, 그리고 박경휘의 무예와 집안에 감명을 받은 일부 화랑들까지 합세하면서 이미 상당부분 세력화가 진행된 참이었다. 수를 하나하나 헤아리자면 자그마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수였다.


“크흠...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경휘랑의 의견이 중요할 터인데....”


그리고 기다렸다는듯 공을 넘기는 화랑 하나. 그는 아까부터 노골적으로 눈치를 살피던 김은택이었다.


‘일단은 녀석과 보조를 맞춰주는 모양새가 좋겠지.’


김은택은 초창기 박경휘와의 대립 탓에 한층 더 몸을 사리는 눈치였다. 박경휘는 간사한 눈빛의 김은택을 쳐다보지도 않은채 입을 열었다.


“화랑들께서 직접 도움을 주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국주께서 괜찮으시다면 이야기가 나온대로 진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다시 박경휘가 공을 넘겼다. 그러자 시선들은 김양정에게로 쏠렸다. 김양정은 순간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빛들에 미간을 좁혔다.


‘이미 대세가 기울고 있는 시점. 괜히 나서서 반대해봐야 내 면만 깎일테지.’


아직도 앙금은 있으나 김양정 역시 정치적 감각은 있는 편이었다. 당장 임관까지 몇 개월이 남지 않은 형국인 그에겐 더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임금의 총애에다 무력, 집안, 거기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비했던 세력까지. 섣불리 건드렸다간 내가 피를 볼 터. 지금은 물러나는게 맞아.’


잠깐의 침묵 끝에 김양정은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나온 방안들중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논의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국주님의 의견에 따라....”


이 모든 게 그날 이후 생겨난 변화였다. 격세지감을 체감한듯 일부 중립측에 속한 화랑들의 얼굴이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회의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박경휘의 일화가 서라벌에 퍼진 지도 며칠이 지난 날이었다. 풍월회의 논의에 따라 본격적인 지원이 이어지기 시작한 시점. 박경휘는 평소처럼 본거지로 가기 위해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향주님!!! 향주님!!!”


향주란 곧 향도회의 수장인 화랑을 가리키는 말. 지금은 박경휘를 향한 외침이었다. 대문 밖에서부터 들려온 소란에 예견이 급히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박경휘는 그런 소란을 곁눈질하며 마저 말에 짐을 실었다.


“무슨 일이냐, 도월.”


“헛! 예견 나으리! 얼른 향주님을 뫼시고 본영으로 가셔야할듯 싶습니다! 어느 귀족 어른께서 곡식들을 보내왔사온데, 향주님을 한참 찾았습니다!”


낭도 도월이 숨을 헥헥대며 말을 이었다. 요점은 누군가가 미리 예고없이 곡식을 보냈다는 것.


어딘가 짐작이 가는게 있는 상황. 예견은 마찬가지인듯한 눈치였다. 박경휘는 예견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곤 말에 올랐다.


“여어~ 이제 왔구만!”


도착한 본영엔 이미 계강을 비롯한 친우들이 나와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그들의 우두머리격인 계강과 박우진이었다.


“요즘은 국학에 안 가는 건가.”


부쩍 자주 보이는 얼굴들. 반가운 일이지만 의문이 생겨 박경휘가 물었다.


“어휴 말도 마! 계강이 이 자식 아주 화랑 놀이에 푹 빠져서는 요즘 국학에서 맨날 잔다고!”


그러자 대뜸 기다렸다는듯 박우진이 목청을 높였다. 계강도 우진의 말에 지지않겠다는듯 손사레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헤이, 왜 그래 우진랑! 박사님들도 말했잖아. 우리 낭도 활동하는 거 전부 재학기간으로 쳐주겠다잖아.”


“우진랑은 무슨! 하... 그리고 그렇다고 일부러 공부를 빼먹냐!”


“흐하핫! 이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빠져! 당연히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지!”


“에휴....”


고개를 내젓는 박우진과 달리 계강의 얼굴에서 즐거움이 비쳤다. 지루한 경학보단 역시 현장일에 흥미를 느끼는듯 계강은 부쩍 밝아진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낭도가 말한 그건가.”


박경휘는 티격태격대는 둘을 놔두고 본영 마당 한켠에 쌓여진 곡식더미들에 다가갔다. 박우진은 그런 경휘를 보곤 급히 달려와 마저 설명을 이었다.


“아아! 맞다 맞아. 안그래도 너 기다리다가 돌아갔거든. 너 오면 연락주기로 했어.”


박경휘의 눈이 곡식더미들을 향했다. 얼핏봐도 백섬은 넘어보이는 어마어마한 양. 이를 싣기 위해 우마차가 얼마나 필요했을지 짐작이 갔다.


“역시 단순히 기부라기엔 무리가 있군.”


박경휘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박우진은 동감이라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감이야. 하아... 의도야 좋으니 일단 받긴 받았다만... 역시 돌려주는게 낫겠지?”


“에에?! 여기까지 가져온 정성을 생각하라고!”


둘의 반응에 계강은 예상못한 것인지 말도 안된다는듯 손을 내저으며 완강하게 반발했다.


“화랑들을 위해서 특별히 싣고온 곡식이야. 고맙다고 인사도 없이 그냥 덜렁 돌려줘버리면....”


이어지는 해명에 박우진은 답답한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반박했다.


“하... 생각해봐. 왜 갑자기 이걸 우리한테 주냐고. 막상 따져보면 우리가 이걸 받을 이유는 전혀 없어. 이건 전적으로 경휘... 그리고 우리들의 집안에 바치는 뇌물이라고!”


핵심은 그랬다. 뇌물공여죄가 있는 세상은 아니지만, 엄연히 받는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당연한 이치를 감당하는 당사자가 자신들이 아닌 부친들이라는데엔 부담이 따랐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이해할만도 한 상황. 그러자 계강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럼 여기 10섬만 받고 나머지만 돌려주면....”


“아오!!! 계강아! 그냥 닥쳐 좀!”


물론 박우진은 재차 역성을 내며 말을 잘라먹었다.


‘후원금이라....’


박경휘는 다시금 둘을 내버려두고 생각에 잠겼다.


향도회에 귀족가문이나 부호들이 지원금을 내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어느 집단이든 운영을 위해선 돈이 들기 마련. 국가에서 정한 지원금이 없는한 그 비용은 고스란히 후원금에 의존해야 했다.


“이건 사실상 정치나 마찬가지라고! 우리가 낼름 먹고 치울 일이 아니야!”


박우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미래 고위공직자들인 화랑들에게 후원금을 낸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노골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마치 유명 축구구단이나 정당을 후원하듯, 부를 가진 집단은 간접적인 지원을 통해 특정 세력에 줄을 대기 마련이니까. 지금의 것도 분명 박씨일족에 대한 줄대기일 터.


하지만 한편으론 기왕 받은 연줄을 밀어내기도 아까웠다.


“어차피 외유를 나가면 화랑들은 향촌에서 징발을 한다지.”


“음... 뭐... 그렇다곤 하더라고. 도시락도 하루이틀이니깐.”


박경휘의 말에 박우진이 설마, 하는 눈으로 대답했다.


화랑들은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닐 권한이 있었다. 낭도들을 이끌고 외유하는만큼 거기엔 상응하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 당연히 그건 향촌의 몫이었다. 이는 훗날 향촌이 신라에 반감을 가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어찌됐건 유지비는 계속 늘어날 거야.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슬슬 한계인 상황이고.”


“어... 하지만... 이제 풍류회에서도 지원을 해준다곤 하고....”


어딘가 불안한 낌새. 박우진의 얼굴엔 점점 걱정이 드리워오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굳이 들어오는 물을 막을 필요는 없어.”


“그치? 그치?”


박경휘의 말에 계강은 기세좋게 끼어들어 편을 들었다. 그럼 그렇지, 라는 말을 하려는듯 계강은 다시 방끗 웃는 낯이었다.


“에... 말이 그렇게 되는 거야?”


고위낭도이긴하나, 이들 모두는 화랑의 의사에 따라야하는 입장. 박경휘가 입장을 굳히자 박우진은 계강을 흘겨보며 물러서는 태도를 취했다.


“이미 받았으니 인사치레나 제대로 하자고.”


“끄응...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마침내 내려진 결정에 계강이 쾌재를 질렀다. 다분히 박우진을 보라고 하는 과장이었지만, 한켠엔 진심도 느껴졌다.


“좋았어~ 하하핫! 이걸로 애들 특식이나 먹여야겠네. 기왕 쓰는 김에 우리 본영 건물도 좀 꾸미고! 애들 무구도 사고~ 흐하하하핫!”


***


상인과의 인사치레까지 끝난 지 며칠 뒤.


“어느정도 진척이 있으신지요?”


“......글쎄.”


박경휘는 여느 때처럼 저택에서 볼일을 보는 중이었다. 그의 주요 일과는 각지에서 보내주는 정보들을 취합하는 일. 쌓여가는 서류들이 그간의 노고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예견은 주인의 무심한 말에 다시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 서류들을 정리했다.


“향주님!!!”


그리고 이런 평화는 이내 들려온 소란에 깨졌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


예견이 능숙하게 먼저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자 이내 문이 열리며 종의 인솔을 받은 낭도 도월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요, 나으리! 향주님! 아무래도... 급히 본영으로 직접 오셔야할듯 싶습니다요!”


“음?”


어째 기시감이 드는 장면. 박경휘가 고개를 들어 낭도와 예견을 번갈아 쳐다봤다. 예견도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급히 말을 준비해 달리길 얼마 뒤, 슬슬 본영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흐음....”


박경휘가 멀리 본영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냈다.


저 멀리 행렬이 보였다. 얼핏 보기엔 유민 내지는 상인으로 보이는 무리들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광경은 처음 생각과는 멀어졌다.


“경휘랑이시다!”


“우오오오!”


긴 줄의 앞쪽, 일단의 무리들이 박경휘를 발견하곤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지만 적대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짐마저 내팽겨치곤 이쪽으로 급히 달려나오고 있었다.


“저들은....”


“아무래도 엊그제 상인의 기부를 받았다는게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예견이 박경휘의 말에 급히 의견을 내놓았다. 박경휘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경휘랑님!!!”


달려오는 자들의 행색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향주님! 소인 동시에서 장사를 하는 이리견이라 하온대....”


마침내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의 말. 뒤이은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급히 달려온 자가 십여명에, 저 멀리 길게 늘어선 행렬은 자그마치 백명은 될 것 같은 무리.


“이것 참... 큰일이군요.”


예견이 걱정과 기쁨이 반반씩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모두 기부를 하기 위해 달려와 줄을 서는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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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논공행상(1) +2 23.03.07 712 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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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위홍(1) +2 23.03.01 768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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