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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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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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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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맞아야겠지? (2)

DUMMY

이자벨라의 이마에 동전 크기의 멍이 생겼다.

그녀는 끝까지 계단에서 넘어진 거라 잡아뗐지만 내가 시녀장에게 직접 찾아가려 하자 로윈이라는 시녀가 한 짓이라 고백했다.


“로윈? 누구를 모시고 있지?”


“율리안 공자님이요.”


율리안이 버린 짓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제 고작 열두 살이다.

그렇다면 공빈데.


“율리안 공자님은 아무 관계 없어요! 그냥 제가 잘못해서 그런 거예요. 진짜예요.”


난 믿지 않았다.

뻔한 그림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로윈이라는 시녀가 이자벨라를 트집 잡아 치도곤했다.

공비의 위세를 엎고.

이게 내 생각이다.


“언제부터 이랬어?”


“......”


“이자벨라.”


“어젯밤부터···.”


어젯밤이면 율리안이 대련 신청을 포기한 시점이다. 너무나 명백한 메시지.


“일로 와. 이자벨라.”


내가 팔을 걷자 이자벨라의 팔에 일직선으로 뻗은 보라색 멍이 보였다.


“시녀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


“......”


“다 한통속이다?”


“공자님! 안 돼요!”


내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일어나자 이자벨라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로윈에게 안내해라.”


“전 괜찮아요.”


“공비를 등에 업고 있다곤 하나 시녀장도 아니고 시녀다. 그녀가 어디 가문이지?”


“들어본 적 없는 남작가였어요.”


감히 이름 없는 지방 남작 따라 여식이 이자벨라를 건드리다니! 하지만 이자벨라가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에게 다가올 해코지가 아니라 내 얼굴에 먹칠을 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뻔히 보였다.


“이자벨라. 난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한다.”


“공자님. 그럼 1주일 후에 하세요.”


이자벨라의 목소리가 떨린다.

울분을 억지로 삼키며 뱉는 떨림.


“지금 공자님이 로윈에게 가면 사리 분별 못하는 망종으로 낙인찍힐 거예요. 그들이 저와 공자님의 염문설을 터트릴 수 있는 명분도 주고.”


“1주일이면 명분이 된다?”


“차고 넘치죠.”


“많이 힘들 거야.”


“더한 일도 당했는데요. 뭐.”


멍든 얼굴로 미소 짓는 이자벨라의 모습이 나를 더욱 마음 아프게 만들었다.

투둑.

스트레스로 머리카락 한 올이 바닥에 떨어졌다.


로윈.

넌 내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자벨라와 머리카락을 동시에 건드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똑똑히 알려주겠다.


***


로윈의 손길은 여전히 거침없었다.

흰 장갑을 끼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그어 먼지 한 톨이라도 발견되면 이자벨라에게 바로 손이 올라갔다.

이자벨라가 모든 업무를 철저히 완수해도 없는 흠을 만들어 치도곤했다.


"후욱... 후욱... 후욱...."


그동안 난 훈련에 매진했다.

훈련에 매진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가 연무장에 오래 머무를수록 이자벨라도 내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지금 당장 그 아이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선택지는 없어요. 이긴다. 이것만 있지."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은 있지."


"그게 뭡니까?"


"기초 검술 연습이 끝나면 보법 연습만 몰두해라. 천 번을 휘두른 검술이라도 보법이 무너지면 그 힘이 반감된다. 반대로 보법이 탄탄하면 한 번의 휘두름도 천 번 휘두른 검 이상의 힘을 낸다."


훈련은 그 어느 때보다 고됐다.

아침, 점심, 저녁 훈련량 마친 뒤 밤이 되면 보법 연습에 매진했다.

몸이 비명을 질러도 이 악물고 참았다. 나보다 더 괴로운 아이가 옆에서 이 악물고 참지 않는가.

하지만


“씨발!!!”


로윈의 손은 우리의 계획을 비웃듯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자벨라의 터진 입술이 말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


"안 됩니다. 공자님."


"네 얼굴을 보고도 그런 얘기가 나와!"


곱디고운 이자벨라의 얼굴이다.

허나 지금 그녀의 얼굴을 보라.

오른쪽 뺨은 빨갛게 부어있고, 입술은 터졌으며 이마에 멍은 하나 더 늘고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이자벨라가 어찌 여인의 속살을 보려 하냐며 만류했지만, 옷을 들치고 본 등에는 폭력이 할퀴고 간 상처가 가득했다.


"안내해!"


"공자님!"


흥분해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나의 신형을 이자벨라가 침대로 밀어 넣는다.


"공자님. 4일 남았습니다. 제가 본 공자님은 큰일을 하실 분입니다. 몸이 쓰러지도록 그 힘든 훈련을 견딘 분이 어찌 1주일도 참지 못한단 말입니까?"


이자벨라가 양손으로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침대에 눕혔다. 이자벨라의 눈을 보며 분노를 삼켰다. 지금 가장 화나고 힘든 사람은 그녀다. 그런 그녀가 날 위해 참는데 내가 그녀의 배려를 무시하면 어떡하겠나.


"내가 준 약은?"


"잘 바르고 있죠. 덕분에 편히 잘 수 있어요."


“아끼지 말고 듬뿍 발라. 이자벨라를 위해서라면 그깟 약 얼마든지 구해줄 테니까.”


“고마워요.”


이자벨라가 웃는다.

손바닥이 찢어질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세계는 약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세상이었고 복수까진 너무 긴 시간이 남았다.


***


‘놀고들 있네.’


다리아의 영체가 이를 갈며 자고 있는 카일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둘 다 너무 곱게 자랐구나. 이번만 내가 인심 쓰마. 이건 너와 이자벨라를 향한 행동이니 예외로 쳐야 할 거다."


다리아의 영체가 카일에 스며들었다.


***


"제길."


길버트는 이런 유치한 정치 싸움이 환멸을 느낀 상태였다.

하지만 이자벨라가 처한 상황을 보고할 순 없었다. 결국 시녀장 또한 공비의 사람.

로윈이 이자벨라에게 손을 대는 걸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것은 이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쾅!"


그때 문을 열고 카일이 나왔다.


"얘야.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어느 쪽 사람이냐?"


‘뭐지?’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억지로 화를 참던 카일 공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심지어 말투도 카일과는 조금 달랐다.

길버트는 외출 때 목격했던 또 하나의 인격이 나온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 쪽 사람이냐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잖아. 뭘 물어."


"호위 기사는 곧 주인의 것. 저는 공자님의 사람입니다."


"한 번만 더 물어볼게. 솔직하게 대답해줘. 넌 누구의 사람이니? 아 참고로 그건 알아둬.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어."


"공자님의 사람입니다."


카일의 투명한 눈이 길버트를 바라본다.

마치 그 말의 저의를 파악하려는 듯.


"멍청하네. 쓸데없이 올곧고."


"....."


"그래서 믿을 수 있겠어. 지금 당장 시녀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해. 안 그러면 큰 사달 난다."


폭력이란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많이 갈구한다.

폭력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폭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더 많은 양을 찾아도 말라 죽지 않는다는 거다.


***


쨍그랑!!


시녀들이 묵는 숙소.

식당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식탁에 먼지가 나왔어!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주근깨가 가득한 소녀 로윈이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씩씩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짝!

로윈의 우악스러운 손이 이자벨라의 뺨을 후려쳤다.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는 이자벨라.


"내일부턴 카일 공자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바로 복귀하도록 해라. 내가 시녀장님에게 직접 말씀드릴 테니."


"공자님이 샤워하기 전까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밤 시중이라도 드는 거야? 그 공자 덩치만 크지 남자구실은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공자님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지 마세요.”


“뭐? 지껄여? 이년이!”


로윈이 제 흥분을 주체 못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뾰족한 유리 조각 하나를 집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시녀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불의인 줄 알면서도 외면하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전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눈을 왜 그렇게 떠?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폭력이란 광기가 눈을 가려버린 로윈.

그녀가 집고 있는 접시 조각이 부어있는 이자벨라의 볼을 그으려는 순간,


쨍그랑. 퍽.


"악!"


창문을 깨고 날아온 돌멩이가 정확히 로윈의 손목에을 명중시켜 유리 조각을 떨어트렸다.


"궁금한데."


시녀들의 숙소에 동굴 같은 중저음이 울린다.


"네 뒤에 누가 있는데?"


목소리에 서린 웅혼함.


"공자님."


창문 너머, 카일 공자의 살기 어린 눈빛에 로윈의 숨이 덜컥 막혔다.


'저게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던 공자라고?'


털썩.

창문을 넘어온 공자가 로윈가 이자벨라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대답해봐. 네 뒤에 누가 있는데?”


벌레 보듯 로윈을 내려보는 갈색 눈빛.

밤하늘의 달빛을 머금은 그 눈빛은 북부의 삭풍보다 싸늘하게 느껴졌다.


"제가 율리안 도련님을 전속으로 담당하는 시녀인 것은 알고 계시겠죠?"


"그래서?"


“그 의미를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로윈. 허면 지금 네 눈앞엔 누가 있는가?"


"공자님이 있습니다."


"그게 뜻하는 바가 뭘까?"


"네? 허!"


로윈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카일 공자가 왜 저리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야 뻔했다.

그 나이 때 이성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자신이 봐도 이자벨라는 진흙 속에 핀 연꽃만큼 그 미모가 아름다웠다.


‘어차피 작위 세습은 물 건너간 거, 시녀 하나 꼬셔 작은 영지에서 알콩달콩 살아갈 계획이겠지.’


"공비에게 전해라. 공비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겠다고."


"무슨 말씀인지 잘."


"로윈. 기억해라. 네 뒤에 서 있다는 공비가 너를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너는 결코 알 수 없을 거다."


말을 마친 카일이 쓰러져있는 이자벨라를 안아 올렸다.


"지금부터 이자벨라는 내가 마련한 거처에서 지낼 것이다. 그리 알거라."


".... 알겠습니다."


로윈은 자기도 모르게 공자의 말에 대답했다.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며 또박또박 내뱉는 카일 공자의 말에는 자신이 거역할 수 없던 어떤 힘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


"같이 검의 길을 걷는 자로써 형님과 검을 맞대며 절차탁마할 수 있다니! 이 동생은 벌써부터 몹시 흥분됩니다."


지랄하네.


눈 떠보니 나와 이자벨라가 계획했던 모든 일이 엎어져 있었다


"......"


내가 다리아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그저 팔짱을 끼고 율리안의 경지를 가늠하고만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연무장 안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현 자르온가의 가주 샤를 자르온은 물론 율리안의 친모인 아들레인 그리고 아들레인의 손에 들린 마법구까지.


‘가지가지 한다.’


굳이 마법구를 통해 제 손주가 어떤 활약을 하는지 보겠다는 할애비나 그걸 생중계해주겠다는 엄마나.


"불쌍하구나."


나도 모르게 율리안을 동정하게 됐다.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도 모르고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아이. 여전히 양손과 양발에 실이 달린 채 어미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


"이번 대련에 심판을 보게 된 길버트 램파드입니다."


심판이 램파드라.

공정함은 지키되 실력으로 철저히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인가?


"대련의 승패는 한쪽의 패배 선언 혹은 기절을 통해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련 시작!"


몸을 뒤로 물리는 길버트.


"아 근데 그거 아십니까?'


율리안이 목검을 든 채 어깨를 풀며 히죽 웃었다.


"그 시녀 말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뭐?"


"로윈한테 명령한 거, 어머니가 아니라 저란 말입니다."


"그래? 하... 하하.... 하하하하하!"


"뭐가 웃깁니까?“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율리안은 말 그대로 공비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이 어린애를 목검으로 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본인이 앞장서 그 짐을 덜어줬다.


"고마워서."


네 면상을 망설임 없이 후려칠 수 있게 만들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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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얻은 것과 잃은 것 (1) 23.05.08 398 5 12쪽
25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4) 23.05.07 384 4 11쪽
24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3) 23.05.06 391 5 12쪽
23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2) 23.05.05 405 5 12쪽
22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1) 23.05.04 443 4 12쪽
21 처음 얻은 이명(異名) (3) 23.05.03 438 4 12쪽
20 처음 얻은 이명(異名) (2) 23.05.02 434 4 13쪽
19 처음 얻은 이명(異名) (1) 23.05.01 455 4 12쪽
18 용병단을 이끌다 (3) 23.04.30 470 5 11쪽
17 용병단을 이끌다 (2) 23.04.29 463 4 12쪽
16 용병단을 이끌다 (1) 23.04.28 503 4 12쪽
15 브래넌으로 가는 길 (3) 23.04.28 485 5 11쪽
14 브래넌으로 가는 길 (2) 23.04.27 480 4 11쪽
13 브래넌으로 가는 길 (1) 23.04.26 499 4 12쪽
12 원정을 떠나다 (4) 23.04.25 530 4 11쪽
11 원정을 떠나다 (3) 23.04.24 511 4 12쪽
10 원정을 떠나다 (2) 23.04.24 536 4 12쪽
9 원정을 떠나다 (1) 23.04.24 55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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