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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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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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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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브래넌으로 가는 길 (3)

DUMMY

파코는 살아생전 발 디딜 일이 없을 거라 여겼던 공작성에 있었다.

그것도 공작가의 안주인이 기거하는 넓디넓은 처소에.


"공비님을 뵙습니다."


어정쩡한 궁중 예법으로 인사를 올리는 파코.


'저게 다 얼마야?'


자르온 공작가는 그 세가 기울었다 들었지만 그럼에도 역시 공작가였다.

가구와 장식품들은 배우지 못한 자신이 봐도 고급스러웠고 차에서는 생전 맡아보지 못한 향긋한 향이, 손님이라고 대접한 과자에서는 약탈하며 먹었던 과자와는 차원이 다른 달콤함이 느껴졌다.


"칠리산에서 왔다고요?"


"그렇습니다. 공비님."


"집사장만 빼고 모두 나가계세요."


이 상자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오직 공비와 집사장만이 감상할 수 있는 별미이자 특권이었다.

시녀들은 알아서도, 감상해서도 안 된다.


"상자를 열어보세요."


"예. 공비님."


파코가 상자를 열자.


"꺅!"


공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카일의 팔이 아닌 칼파도스의 목이 담긴 상자.

내용물을 본 집사장이 급하게 상자를 닫았다.


'공비님 심성이 약해서 상자를 보면 놀라실 거다. 그때 이 편지를 건네면 조금은 진정될 거야.'


파코는 미리 카일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라 공비의 반응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래서 곱게 자란 귀족 집 딸내미들이란.'


속으로는 공비를 욕하지만, 겉으로는 세상 비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파코가 품 안에서 서찰을 하나 꺼냈다.

파코와 공비 사이를 가로막으며 서찰을 받는 집사장.


'이 편지만 전하고 돌아오면 칠리산의 주인은 너다.'


"공자님이 전해주라 했습니다."


편지가 파코의 품을 거쳐, 집사장의 손, 이윽고 아들레인의 손에 전달됐다.

아들레인이 편지에 묶인 끈을 풀고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에티오티아의 골치로 여겨지던 칼파도스를 처리했습니다. 아 그리고 포션은 제가 가져갑니다.]


들고 있던 서찰을 힘을 줘 구겨버리는 아들레인.


"카일 공자가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공비님. 공자님이 칼파도스를 처리하는데 제가 큰 일조를 했죠."


"그래요?"


“예!”


파코가 다시 한번 힘줘 대답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귀족이다.

자신이 아무리 천한 것이라고는 하나 공작가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본인에게 노잣돈을 두둑하게 얹어줄 거라는 게 파코의 예상이었다.


"집사장."


"예. 공비님."


‘왔구나! 왔어!’


고개 숙인 파코의 입이 초승달 모양의 호선을 그렸다.


"둘 다 소리 없이 묻어버리세요."


"에?"


"알겠습니다."


집사장이 파코의 목덜미를 잡는다.

파코가 힘을 줘 버티려 했지만, 집사장의 팔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기요? 공비님! 공비님!!"


"집사장이 직접 마무리하고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공비님! 제발 살려주세요! 네? 공비님! 야이 악마 같은 년아!"


파코가 발악하며 끌려갔다.

그게 공비가 기억하는 파코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지금쯤이겠구나."


내가 보낸 선물을 받은 공비가 노발대발하며 파코를 죽였을 것이다. 마차를 습격해 남자를 죽이고 여자는 성노예로 삼고 재물은 착복하는 더러운 무리다.

그런 놈들을 뭐가 예쁘다고 살려주겠나?


"다 실었습니다. 공자님."


마차에 약탈했던 짐을 모두 실은 산적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공손히 대답했다.

그 사이 20명이던 산적은 5명으로 줄었다.


"살아남은 다섯 명만 살려준다. 대전은 1대1 토너먼트. 먼저 두 명 나와."


어젯밤, 무참하게 칼파도스에게 죽었을 남자들을 기리며 살인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죽인 건 칼파도스였으나 관전하고 환호하며 동조했던 그들이다.


받은 것은 돌려줘야지. 이번 관전자는 그들이 아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다. 대진은 그때그때 내 손끝에 걸린 놈들로 정해졌다.


"죽어!"


본래 명예와 근본도 없이 사람을 죽이던 놈들인지라 동료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자기가 살기 위해 함께 야영하던 녀석의 목을 찔렀고, 숨겨뒀던 암기를 던지는 놈도 있었다.

잔머리를 써 기권하는 녀석은 내 손으로 직접 죽였다. 그 결과 살아남은 5명이 이놈들이다.


"할 수 있겠어요?"


윌라에게 단도를 쥐여주며 물었다.


"남편을 죽인 놈이에요."


그것으로 충분했다.

칼파도스에게 몸과 마음이 유린당했음에도 복수를 생각하며 제정신을 유지했던 여인이다. 그녀라면 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후련한 거겠죠."


***


"앞으로 반나절이면 브래넌에 도착입니다."


마차는 홉스 부녀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나는 이자벨라와 함께 말을 타고 이동 중이고.


"안 불편해?"


"재밌는데요. 승마는 언제 배우셨어요?"


"길버트한테. 표면상 검술 교관인데 뭐라도 가르쳐줘야지."


"후후후후. 좋을 때구나."


다리아가 우릴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앞에 이자벨라가 앉은 상태에서 내가 말고삐를 잡고 있었는데 흡사 이자벨라를 뒤에서 안은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자벨라의 얼굴이 해사하긴 하지. 뭇 이름 있는 귀족가의 여식이었다면 공자들이 춤 한번 춰보겠다고 줄을 섰을 것이다. 넌 복 받은 줄 알아라!"


다리아가 호들갑을 떤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내 나이가 35살이다.

아 이제 1년 지났으니 36살이네.

이자벨라는 이제 18살.

어휴, 미성년자라니. 큰일 날 소리.


"너무 아름다워요."


"그러게."


산을 나오자 황금빛 노을을 머금은 들판이 드넓게 펼쳐졌다.

바람이 산뜻했는데 그 속에 실린 달콤한 꽃내음이 이자벨라에게서 나는 것인지 들판에 핀 이름 없는 꽃에서 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성에만 있었다면 이런 풍경 절대 못 봤겠죠?"


"그랬겠지. 앞으로 이런 풍경에서 실컷 풍찬노숙할 테니 기뻐하라고."


"에티오티아로 향하던 마차는 잘 도착했을까요?"


이자벨라의 말에 에티오티아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이어폰 없나?"


문득 음악을 듣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일어났다.


"네? 이..어폰? 그게 뭐예요?"


"있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물건."


"브래넌에 있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괜찮아."


이 세계에는 없거든.

눈을 감고 G선상의 아리아를 재생했다. 산적들의 모습이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비의 분노를 받아 목이 잘리는 파코.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쓰러져 산짐승의 먹이가 될 산적들.


그리고


굳센 눈으로 원수의 목에 칼을 박아넣는 윌라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전형적인 드라마 속 권선징악의 결과.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여기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여기가 스톤 남작령의 곡창지대 브래넌입니다."


브래넌의 첫인상은 유럽 시골 마을 그 자체였다.

우물을 긷는 여인들, 들판에 핀 이름 모를 들꽃, 풀을 뜯어 먹는 소와 양, 녹음이 짙은 나무와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질 것 같은 거목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카일님."


홉스와 밀리아, 그 외 다른 생존자들이 내 손을 맞잡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니에요. 가족들이 걱정할 텐데 얼른 가보세요."


"마을 중앙 광장에 홉스 상회가 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꼭 들려주세요. 카일님이라면 언제나 최저가입니다."


"꼭 들리겠습니다."


생존자와 헤어진 후, 우리는 홉스가 추천해준 여관에 짐을 풀고 방을 빠져나왔다.


"어디 가느냐?"


"시장조사요."


다리아는 더 이상 자신을 데려가라고 징징대지 않았다. 이제 내가 아니라도 이자벨라라는 말 상대가 생겼으니. 남자보단 걸즈 토크가 낫겠지.


"그것보다 상당히 삭막하네."


납치된 이들의 생환으로 기뻤던 것도 잠시, 브래넌의 분위기는 삭막 그 자체였다. 뭐랄까. 모래바람은 휘날리는 서부 시대의 버려진 마을 같달까?

딸랑.


"여긴가?"


딸랑.


"어서 오세요. 카일님!"


상회 문을 열자 밀리아가 나를 맞이했다.


"제가 너무 빨리 왔죠?"


"그럴 리가요! 뭐 필요한 물품이라도?"


"물건은 차차 보고 이 주변에 개인이 운영하는 양조장이 있습니까?"


"양조장이요?"


밀리아가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진 지도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덧붙여 그곳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고블린의 습격으로 보리가 원활하게 수급되지 않아 술을 만들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보리의 수급이 어려워 당분간 양조장 운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양조장을 시작으로 연달아 들른 네 곳의 양조장도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쉽지 않군."


이제 슬슬 맥주 효모가 떨어진다.


"맥주 효모요? 그게 왜 필요한데요?"


역시 머리숱이 빽빽한 밀리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매일매일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병에 걸렸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탈모 치료제의 효과는 이랬다. 모든 약효의 효과를 100으로 봤을 때 샴푸가 10, 바르는 약은 40, 먹는 약이 90이다. 합성 약물이 없는 이 세계에서 먹는 약을 대체할 수 있는 건 맥주 효모뿐이다.

맥주 효모가 탈모에 좋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도 검증됐다.

즉 지금 이 시대에서 내 머리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뜻이다.


"안 돼. 에드가 꼴이 날 순 없어!"


문득 이마가 나보다 1.5배는 넓은 에드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20대 초반에 그 정도 진행률이라니. 카일의 몸뚱이가 17살이라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청소년 탈모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비록 후천적 요인이라 하지만.

아니! 후천적 요인이라 더 무섭다.


"여관의 술이 바닥났으니까 내가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맥주 효모를 먹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고성이 들렸다.

고개를 들자 밀리아가 가르쳐 준 마지막 양조장 간판이 보였는데 험악하게 생긴 대머리 용병 하나가 입구를 막고 있었다.


"발효까지 하루는 더 남았다. 그리고 너한테 줄 술 없으니 썩 꺼져!"


희소식이다.

이곳에선 맥주 효모를 얻을 수 있다!


"아니 비축해둔 술 있을 거 아니야. 돈 준다니까?"


"2배, 3배를 줘도 안 돼! 계약이 최우선이야! 계속 여기서 행패 부리면 경비병을 부를 거다."


칼을 찬 용병을 보고도 주눅 들지 않는 주인장. 나이는 50대에서 60대로 보였는데 얼굴을 팍 구기며 용병을 노려보는 모습이 고집과 자부심이 있는 장인같이 보였다.


“믿음이 가는군.”


저런 고집을 통해 만들어진 맥주 효모라면 그 퀄리티 또한 최상품 아니겠는가?


"주인장 그거 아나? 경비병은 멀고 칼은 가까워."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용병이 허리춤에 칼을 뽑았다. 주인장은 이런 놈들을 여러 번 만나봤는지 칼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해봐. 술 몇 잔에 인생 망치겠다는데 기꺼이 망쳐드려야지!"


"이 노인네가 진짜!"


용병이 검집째로 주인장을 내려치려 할 때


“잠깐!”


내가 안개의 보법으로 접근해 녀석의 팔을 잡았다.


"뭐야 넌?"


놈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술을 많이 마셨으면 얌전히 집에 들어가서 발 씻고 잠이나 자라. 대낮부터 행패 부리지 말고.”


“어이 도련님.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가던 길 가세요. 내가 지금 알코올이 부족해서 기분이 퍽 안 좋거든?”


“하아~”


내가 설마 여기서 이 말을 또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맞아야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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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얻은 것과 잃은 것 (1) 23.05.08 398 5 12쪽
25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4) 23.05.07 384 4 11쪽
24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3) 23.05.06 391 5 12쪽
23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2) 23.05.05 406 5 12쪽
22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1) 23.05.04 443 4 12쪽
21 처음 얻은 이명(異名) (3) 23.05.03 438 4 12쪽
20 처음 얻은 이명(異名) (2) 23.05.02 434 4 13쪽
19 처음 얻은 이명(異名) (1) 23.05.01 455 4 12쪽
18 용병단을 이끌다 (3) 23.04.30 470 5 11쪽
17 용병단을 이끌다 (2) 23.04.29 463 4 12쪽
16 용병단을 이끌다 (1) 23.04.28 503 4 12쪽
» 브래넌으로 가는 길 (3) 23.04.28 486 5 11쪽
14 브래넌으로 가는 길 (2) 23.04.27 480 4 11쪽
13 브래넌으로 가는 길 (1) 23.04.26 499 4 12쪽
12 원정을 떠나다 (4) 23.04.25 530 4 11쪽
11 원정을 떠나다 (3) 23.04.24 511 4 12쪽
10 원정을 떠나다 (2) 23.04.24 536 4 12쪽
9 원정을 떠나다 (1) 23.04.24 555 4 12쪽
8 맞아야겠지? (4) 23.04.24 551 4 12쪽
7 맞아야겠지? (3) 23.04.24 55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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