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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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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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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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2)

DUMMY

남작성 내부는 주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화려하거나 크지 않았다. 복도는 전쟁이 났을 시 동선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놨다. 귀족의 권위를 보여주는 성이라기 보단 적을 방어하는 성벽의 느낌이 더 강했다.


“카일 공자. 2시간 후에 식당에서 보도록 하지. 그동안 여독도 조금 풀고.”


“알겠습니다. 남작님.”


“도노반.”


검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집사가 다가왔다. 머리를 넘기고 본 헤어라인은 실로 고르고 빽빽했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도노반입니다.”


도노반이 예법을 갖춰 인사했다. 양복 안으로 보이는 탄탄한 몸과 아직 갈무리되지 않은 기세. 그가 전직 용병이었다는 건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카일 자르온입니다. 이쪽은 이자벨라고.”


나와 이자벨라도 가볍게 목례했다.


“최고 귀빈실로 안내하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호의 감사합니다. 우선은 씻고 싶은데?”


***


“어때?”


“보채지 마세요. 공자님! 어떻게 두피 상태가 하루 만에 좋아져요.”


제법 그럴듯한 말을 뱉는 이자벨라.


“먼저 씻고 오세요. 짐 정리하고 있을 테니.”


“고마워.”


성에 있는 욕실은 거대한 중세 사우나를 연상시켰다. 조각상에서 흐르는 온천수와 거대한 온탕. 물 온도도 딱 적당했다.


“이게 얼마 만에 목욕이냐.”


느긋하게 목욕하고 방에 돌아오니


“지하 암반수 온천이라니! 아쉽구나. 나도 예전에는 한 피부 했는데. 얘야. 이자벨라에게 들었겠지만 내가 검을 휘두르면 꽃향기가 난다고 하여···.”


다리아의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포션은 얼마나 남았어?”


미리 말을 잘랐다.

이제는 분리불안뿐만 아니라 뭔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 것 같았다.


“이자벨라야.”


다리아가 이자벨라를 바라봤는데


“음···. 1주 일치?”


어지간하면 다 받아주는 이자벨라도 한번 겪어본 후로는 다리아의 말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시작할게요.”


이자벨라가 손에 포션을 톡톡 털어 두피에 정성스럽게 바르기 시작했다.

아하~ 좋다.


“시원해요?”


“응.”


이자벨라가 손가락에 힘을 줘 머리를 꾹꾹 눌러줬다.


“어째 점점 능숙해져?”


“매일 하다 보니.”


그렇게 두피 테라피를 하고 있을 때


똑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노반입니다. 식사가 준비됐습니다.”


***


음식은 대단히 맛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제대로 된 식사인가.


“육포나 음식 다 때려 박고 먹던 스튜랑은 차원이 다르지?”


그런 내 맘을 이해한 듯 스톤 남작이 껄껄 웃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저도요! 이 달짝지근한 소스는 뭔가요? 배우고 싶은데요?”


이자벨라가 먹고 있던 음식은 돼지고기 요리였는데 현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장조림과 비슷했다. 하지만 고기 살이 훨씬 연하고 육즙이 가득했다.


“다행이구먼. 많이들 들게.‘


한동안 정신을 놓은 채 음식만 흡입했다.

램브란트 말처럼 육포나 스튜만 먹다 이런 음식을 먹으니 맛있을 수밖에.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난 뒤


“이제 말씀하시죠. 부탁할 게 뭡니까?”


세상에 공짜란 없다.

우리가 브래넌에서 고블린을 몰아냈기 때문에 대접한다고?

그러기엔 그 값이 너무 과했다.


“역시 눈치가 빠르구먼. 데이지. 들어오거라.”


도노반이 문을 열어주자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풍기는 소녀 한 명이 들어왔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전체적으로 쾌활한 이미지의 예쁜 숙녀였다.


“뭘 봐?”


예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성격이 특징인가?


“어허! 데이지!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용병 시절 태어난 아이라 아직 예법에 익숙하지 않네.”


“괜찮습니다. 이쪽이 더 솔직한 거 같고.”


“소개하지. 이쪽은 내 딸 데이지. 데이지. 인사해라. 자르온가의 삼남. 카일 자르온이다.”


“자르온?? 어쩐지 외모는 잘생겼더라니.”


데이지는 마치 이미 자르온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내가 옆자리에 앉은 이자벨라를 바라봤는데 이자벨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설마?


나는 지금 약혼자가 없는 상태다.

샤를이 카일을 제물로 삼은 이유도 있었고 애초에 생모가 죽은 후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사교계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런 방구석 폐인과 누가 결혼하고 싶겠는가?


“저기. 전 아직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뭐? 허. 참 내.”


데이지의 반응을 보아 다행히 둘을 엮어주려는 건 아니었던 모양.


“휴~”


이자벨라도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너는 왜?


“하하하. 공자 너무 갔어. 내 부탁은 내 딸을 구해달라는 얘기네.”


“따님한테 병이 있습니까?”


“병이라니! 이렇게 건강한 여자한테 그 무슨 무례한 말버릇이니?”


아니. 넌 나 처음 보자마자 외모 품평했잖아.


“병이 있는 건 아니네. 조금 복잡한 얘기지.”


“일단 요점부터 말씀해주시죠.”


“카일 공자. 스톤 남작가의 이름으로 토너먼트에 참가해줄 수 있겠나?”


글리셰 대륙의 토너먼트는 내가 아는 중세 기사의 토너먼트와 조금 달랐다. 쉽게 말해 결투가 아닌 시합의 느낌. 귀족들이 구단주고 자신이 보유한 선수를 시합에 참여시킨다. 우승한 선수는 주최자 측으로부터 막대한 보상을 받는다.


“거절합니다.”


이 사람이 아주 그냥 한번 호의로 구해줬더니 벌서 권리인 줄 아네? 목욕탕에서 사우나 한번 시켜주고 맛있는 음식 대접했다고 자길 위해 싸우라고?


“귀족의 자제가 기사의 제자로 들어가는 일이야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공작가의 자제인 제가 스톤 남작의 수행 기사로 다닌다는 소문이 돌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공짜로 도와달라는 말이 아닐세.”


“남작님. 이건 돈 몇 푼 쥐여준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중립을 유지하려 하는 스톤 남작가가 자르온 공작가의 자제를 수행 기사로 데리고 다닌다. 이건 정치적으로도 여러 의미를 내포하게 됩니다.”


“공자님.”


내가 남작을 쏘아붙이자 이자벨라가 식탁 아래로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후···. 일단 상황이나 들어보죠.”


“테일러 자작이라고 들어봤는가?”


“압니다. 이번에 나인데일 백작에게 토지를 하사받고 봉신 계약을 맺은 귀족 집안 아닙니까.”


“그 차남이 지금 데이지를 노리고 있네.”


내가 데이지를 바라봤다.

충분히 남성들이 호감을 느낄만한 외모다.

하지만 데이지의 표정이 구겨진 종이처럼 찌그러졌다.

와~ 진짜 싫은가 보네.


“놈은 집안에서 내놓은 망종 중의 망종일세. 안하무인은 물론 남녀 가리지 않고 손을 올리는 녀석이지.”


램브란트가 책상을 내려치며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니까 판타지 세상 속 등장하는 망나니 중 한 명이라는 얘기네.


“어차피 집안에서 버린 망종, 정략결혼을 통해 남작님의 세력을 흡수하려는 심산이군요.”


“그 말대로네. 헌데 이 차남이 검술을 깨나 해서 또래 중에는 손꼽히는 강자라더군. 지금은 왕립 검술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데 성적이 꽤나 우수하다고 하네.”


“대충 그림이 그려지네요. 토너먼트 주최자는 나인데일 백작이겠네요?”


“그렇지.”


“뭐 대충 명분이야 자제들이 서로가 쌓아온 경지를 뽐내고 그 속에서 절차탁마한다. 이런 느낌이겠고.”


“정확하네. 놈들은 스티븐이 당연히 우승할거라 생각하겠지. 배우들도 몇 명 투입할걸세.”


이 얼마나 스토리 탄탄한 각본이란 말인가.


“데이지 양이 싫다 하고 거절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러면 자신을 모욕했다며 영지전을 일으킬걸세.”


“청혼 거절이 모욕이라기엔 명분이 너무 부족한데요?”


“우승 상품도 함께 줄 생각이겠지.”


“하루 이틀 만에 짜인 각본이 아니군요.”


스톤 남작은 정신 차려보니 그들이 짜놓은 촘촘한 거미줄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남녀 사이에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힘 있는 사람이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온갖 명분을 다 갖다 붙이면 없는 일도 사실이 된다.


“우승 상품이 뭔데 그럽니까? 끽해봐야 금화 아니겠습니까?”


“정화의 샘물일세.”


“에?!”


아니 여기서 갑자기 왜 정화의 샘물이 나온단 말인가?


“마시면 앓던 병이 낫고 주름진 피부가 펴지며 빠졌던 머리가 새로 난다는 그 정화의 샘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잘 알고 있군.”


“엘프의 숲에서만 얻을 수 있다 들었습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샀다고 하네.”


스토리만 빵빵한 게 아니라 투자사의 돈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은 작품이었다.


“하겠습니다.”


“어?”


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스톤 남작이 당황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토너먼트에 우승하면 그 정화의 샘물,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오케이. 이걸로 남작의 허락도 떨어졌다. 그게 진짜 정화의 샘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눈앞에 가능성이 있는데 어찌 놓칠 수 있단 말인가.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1%의 희망이 있다면 발버둥 치는 게 나 카일 자르온이다.


***


왜 테일러 자작이 결혼으로 스톤 남작과 묶이려는지 알 수 있었다. 마차를 타고 꼬박 하루. 남작령과 자작령이 말 그대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인접해있었다. 백작령은 서진을, 공작령은 동진을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뜻.


“데이지. 이곳은 성과 다르다. 행동에 특히 유념해라. 안 그래도 트집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사람들이다.”


“알겠어요.”


데이지는 벌써부터 속이 안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자도 들어감새.”


문이 열리자 화려한 연회장이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음악,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과 예복을 입은 귀족들까지.


“스톤 남작가의 가주 램브란트 스톤과 그의 영애 데이지 스톤이 입장합니다.”


스톤 가의 호명을 들은 동시에 귀족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어디서 흙냄새 나지 않습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밖에서 굴러먹어야 할 용병이 왜 귀족 옷을 입고 있는지.”


“사람 죽일 줄이야 알지, 춤은 제대로 출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

이건 거의 텃세가 아니라 집단 따돌림 수준이네.


“아주 지랄발광한다. 농부들은 보리 지키려고 쟁기 들고 고블린과 맞서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뛰쳐나왔다.

내 말에 몇몇 귀족들이 나를 노려봤지만 큰 키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조용히 눈을 피하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하하하 그러게나 말일세.”


“풉. 보리의 수호자라더니. 재밌는 남자네요.”


나의 빈정거림에 스톤 부녀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불편하겠지만 먹고 마시고 즐깁시다. 아주 미약하나마 저들의 재정에 타격을 입힐 수 있게.”


사실 수습 기사인 나는 밖에서 대기해야 했지만 자르온 공작가의 공자로서 연회에 참석했다.

뭐랄까?

수습 기사가 신분을 숨김.

이런 느낌이랄까?


“떨어지지 마세요.”


성에서는 말괄량이처럼 굴던 데이지가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자유로운 말괄량이라고는 하나 아직 소녀. 귀족들의 낯선 시선을 감당하기엔 그녀는 어리고 여렸다.


“불편해도 먹어. 아무것도 안 하면 더 무시한다.”


내 말에 데이지가 표정을 독하게 바꾼 뒤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저 멀리서 부담스러운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왔어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하는 데이지.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침착하게 행동하세요.”


이때 얼굴에 ‘나 인성에 문제 있어요?’라고 써진 어린노무색휘 하나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데이지 가리온 영애를 뵙습니다. 저는 스티븐 테일러라고 합니다.”


작품의 주연 배우가 등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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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얻은 것과 잃은 것 (1) 23.05.08 398 5 12쪽
25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4) 23.05.07 384 4 11쪽
24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3) 23.05.06 391 5 12쪽
»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2) 23.05.05 406 5 12쪽
22 이게 다 안 맞고 커서 그래 (1) 23.05.04 443 4 12쪽
21 처음 얻은 이명(異名) (3) 23.05.03 438 4 12쪽
20 처음 얻은 이명(異名) (2) 23.05.02 434 4 13쪽
19 처음 얻은 이명(異名) (1) 23.05.01 455 4 12쪽
18 용병단을 이끌다 (3) 23.04.30 470 5 11쪽
17 용병단을 이끌다 (2) 23.04.29 463 4 12쪽
16 용병단을 이끌다 (1) 23.04.28 503 4 12쪽
15 브래넌으로 가는 길 (3) 23.04.28 485 5 11쪽
14 브래넌으로 가는 길 (2) 23.04.27 480 4 11쪽
13 브래넌으로 가는 길 (1) 23.04.26 499 4 12쪽
12 원정을 떠나다 (4) 23.04.25 530 4 11쪽
11 원정을 떠나다 (3) 23.04.24 511 4 12쪽
10 원정을 떠나다 (2) 23.04.24 536 4 12쪽
9 원정을 떠나다 (1) 23.04.24 555 4 12쪽
8 맞아야겠지? (4) 23.04.24 551 4 12쪽
7 맞아야겠지? (3) 23.04.24 55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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