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선불패 수선전(修仙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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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H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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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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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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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창공 위의 나룻배

DUMMY

오색빛깔의 빛무리에 둘러싸인 손바닥 크기의 상자.


칙칙한 묵빛의 목함은 각 면마다 두루미, 거북, 연꽃, 구름 등 온갖 자연물이 양각되어 있었다.



‘저런 것을 두고 기연이라고 하던가?’


누님이 읽어주었던 이야기책에 등장하고는 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기연을 얻어 거친 강호를 주유하는 정의로운 협객이 되는 이야기.


-우리 소류도 언젠가 이 협객처럼 멋지게 자랄 거야!


누님은 동생이 포기하지 않고 병마를 이겨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거동도 힘든 병약한 소년은 오히려 비참한 현실만 선명하게 깨달을 뿐이었다.


그래도 소년은 누이를 따라 미소 지었다.


배시시 웃는 누이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소년은 누이를 떠올리다 흠칫했다.


목함?


저리 특별해 보이는 목함 안에는 가치가 높은 물건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래, 혹시나. 어쩌면.



소년은 쉽사리 가져본 적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정말 어쩌면, 누이를 살릴 수 있는 귀한 영약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소년은 누이를 조심스레 눕혀놓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목함에 손을 가져갔다.


손바닥만 한 크기는 영약 같은 것이 들어차면 꼭 알맞은 크기였다.


설마, 설마..!


그래, 천하제일인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엄청난 영약은 사실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누이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작디작은 기적 하나면 족했다.


그 정도는 바라도 되지 않을까?



달칵-


목함의 내부가 보이고 소년의 몸이 굳었다.



“허!”


털썩-




놀랍게도 그 속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하하···.”


텅 빈 내부는 먼지만 반겨줄 뿐이었다.



“하하하!”


열넷의 소년, 소류는 허탈한 조소를 지었다.


이 무슨 하늘의 농간이란 말인가.


세상에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그에게 희망을 심어주더니, 이제는 더욱 큰 절망을 던져 주었다.


끝까지 자신을 배신하는 하늘에 소류는 더 이상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하하···.”



상서로운 빛에 둘러싸인 저 목함은 분명 귀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저런 칙칙한 나무상자만으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 그래. 저것을 가져다 팔면 누님을 위한 약을 살 수 있겠지.


최소한 저런 빛무리에 둘러싸인 진귀한 물건이라면.



그러나···.



이 산골 촌구석에서 저런 보물을 가져다 팔 수 있는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조그마한 값이라도 쳐주면 다행이었다.


아마··· 저 목함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지나 않을까?


힘도 없고, 친지도 없는 그가 이런 촌구석에서 보물을 제대로 팔기는 요원한 일이다.


적어도 값을 제대로 받으려면 이곳에서 성인 걸음으로 석 달은 걸어야 하는 낙릉현에는 나가야 했다. 


그것은 현재로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에서 쫓겨난 그가 혼수상태로 며칠이나 지난 누이의 목숨을 붙들기도, 저주받은 몸뚱이를 이끌고 낙릉현에 도달하기에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다못해 조금만 더 빨리 주웠어도 그것을 팔아 누이가 이 꼴이 되도록 두지 않았을 텐데···.


그 이전에 무리해서 누님을 시집보내지도 않았을 텐데.



‘왜 이제 와서야···.’



소류는 이내 탄식을 흘렸다.



“애초에 밖을 나가지도 못했으니···. 하하···.”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덮쳐오는 끔찍한 고통에 거동도 힘들건만 어찌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겠는가.

혼자서는 일상생활도 할 수 없는 그가 어찌 기연을 찾으러 다닌단 말인가.


허망한 웃음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애초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껏 희망에 부풀다 좌절했기 때문일까?


“끄아아윽..!”


소류가 누이를 업고 오는 동안 외면해왔던 끔찍한 통증이 덮쳐왔다.



덜덜덜···.


짓쳐오는 통증에 사지가 바르르 떨리며 입에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소류의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이성의 끈을 놓으려던 그때.


눈을 뜨지 않은, 반쯤 뭉개진 얼굴로 자신을 향해 누워있는 누이가 시야 한켠에 들어왔다.



분명 하늘을 향해 뉘어 놓았을진대···.


그가 고통으로 얼룩진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포기할 때마다 그리 슬퍼하시던 누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울컥거렸다.


끝내 모든 걸 놓아버리려는 자신을 안타까워 하시는가.



소류는 흐느꼈다.


눈을 감고 있는 누이는 분명 의식이 없을 터인데도 자신을 향해 돌아누워 있는 그 모습이.



사무치도록 서러웠다.




“아···!! 아, 아!!!”


누이를 향한 마음과 억눌러온 온갖 울분이 뒤섞여 소류의 뇌리를 흔들었다.


소류는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울음을 토해내지 않고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류는 뻣뻣해진 목덜미를 억지로나마 움직였다.


‘그래 누님, 나 소류는 삶의 끝까지 포기는 하지 않겠소.’


그러나 소류의 의지와는 다르게 빈약한 육체는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제는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탓이다.


‘끄으, 으으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류에게 마지막 남은.


누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것.


누님이 평소에 바랐던 그대로.



소류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려 노력했다.


육체가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상관이 없었다.


닿지 않을 손을 뻗고 있다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누이의 그 바람만은 절대 외면하지 않으리라.


소류는 끊임없이 움직이려 노력했다.


티끌도 움직이지 않는 몸이건만, 그는 분명 누이에게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렇게 소류의 의지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비이성의 영역에 다다랐다.


도대체 이 행위가 무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을 때.



덩그러니 놓여있던 묵빛의 목함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금빛 섬광은 저 하늘 끝까지 빛기둥이 되어 뻗쳐나갔다.


가히 하늘을 꿰뚫을 듯한 금빛의 찬란한 기둥이었다.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소류의 귓가로 천상의 음률이 어슴푸레 들려왔다.


칙칙하기만 했던 목함에서 윤기가 흐르고. 양각되어 있던 자연물들이 목함의 표면에서 살아 움직인다.


쯔저어억-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목함의 정중앙에 가로로 실선이 그려졌다.


실선은 이내 힘겹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쩌적-


반쯤 벌려진 실선은 섬뜩한 눈동자가 되었다.


황금빛 색채의 동공을 가진 눈알은 데구르르 구르다 소류를 향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소류의 발악을 지켜보던 눈알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눈을 완전히 뜨려고 하는 양.



눈알의 둘레를 타고 진득한 피가 흘러내린다.


괴상하게도, 진득한 핏속에는 깨알 같은 문자들이 점멸하며 선형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활짝 떠진 눈동자가 슬쩍 휘어졌다.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그 광경을 끝으로 소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수마가 찾아왔다.



‘으윽···.’


묵빛의 상자는 두둥실 떠올라 소류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기억이 물밀듯 몰려왔다.






***





소류가 의식을 잃었을 무렵.



창공 위의 구름조차 생성되지 않는 높이에서 자그마한 나룻배가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나룻배의 위에는 가히 선풍도골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어느 노인이 정광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외유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으음···?”


무표정에 가깝던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심상치 않은 기운 한 줄기가 순간적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너무나 짧았던 탓에 노인마저 잘못 느꼈나 싶을 정도였다.


노인은 다시 눈을 감고 확인해 보았으나 느껴지는 것이 전혀 없었다.



“흐음···.”


구름과 해가 수놓아진 은빛 장포를 걸치고 면류관을 쓴 노인이 고개를 까닥였다.


자신의 경지로 이런 감각에서 실수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잠시간 곰곰이 생각을 해봤으면서도.


설마하니 자신에게서 기척을 숨길 수 있는 강자가 있을 리도 없다.


최소한 이 근방에서는 그렇다.



그만큼 노인의 경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드높았고, 노인과 다툴 수 있을 만한 선인(仙人)은 그 행방이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그러니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결국 노인은 자신의 의구심을 해결하고자 나룻배의 방향을 틀었다.


정확한 방향을 모르겠다면, 그렇다면 모두 뒤져보면 될 일.


그런 간단한 이치였다.



노인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지루한 여정 중에 이처럼 소소한 재미마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노인의 피부에서 옥빛의 주술 문자가 서서히 떠올랐다.


이내 그것은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진(陣)이 되어, 나룻배 위로 현묘한 서광(瑞光)을 폭포처럼 흘려내기 시작했다. 


쾌속을 넘어서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나룻배가 가속했다.


키이이잉-


무언가 어거지고 무리하는 듯한 소음이 들렸다.


“조금만 더 참아보거라. 본 문에 돌아가면 한층 더 좋은 재료로 담금해 줄 테니. 끌끌.”


노인이 탄 나룻배의 신형이 점점이 반짝이며 사라졌다.




소류가 있는 그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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