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터지기 시작하는 재난(1)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태블릿으로 현재까지의 자료를 훑어보던 존은 입맛을 다셨다.
‘쩝.......’
아공간을 통해서 들어온 반인반마의 생명체가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
인간을 하등생물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바탕으로 평범한 인간과 비교되지 않는 지능을 가진 외계생명체라면..
아직은 소모품에 불과한 실험용 괴물을 지구로 침투시키고 있다는 뜻.
그러면서 놈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지구상의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인즉,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본격적인 침략이 이루어질 것.
지구의 군사력이 그들의 총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전 세계 헌터 협회, 주요 국가들의 리더와 몇몇 기관을 제외하면 지구 침략을 준비하고 있는 외계생명체의 존재도 모르고 있는 평화로운 지구인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알고 있다고 해도 놈들을 막을 효율적인 무기도 없다.
알린다고 해도 믿지 않고 괴담으로 치부할 인간도 부지기수일 터.
”...지구의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암담한 눈빛으로 존이 언뜻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솜털 구름 뒤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
그 사이로 언뜻 훈련받고 있던 댄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망이 완전히 제로인 것은 아니겠지....“
시스템의 완벽한 정상화를 위해 좀 더 남아 있던 자신과 달리 먼저 출발한 댄.
미친 듯 성장하는 그를 떠올리며 존이 간신히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있었다.
일본 니가타현 아가마치.
”아오야마.“
짙은 회색의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벽돌담을 기어 올라가는 젊은 남자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슬며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오야마에게 그가 손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낡은 농가 안의 한쪽 구석.
황톳빛의 털로 뒤덮인 아르수스 한 마리.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긴 시체의 복부에 주둥이를 집어넣고 있다.
갈비뼈를 우걱거리며 씹던 놈이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떤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인 남자.
그런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오야마의 눈빛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마지막 손가락이 접히는 순간.
”....이야아압!!“
거친 기함과 함께 두 사내가 아르수스를 덮쳤다.
화려한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카타나.
벽돌담에서 뛰어내린 젊은 남자가 땅바닥을 굴렀다.
그런 그의 양손에 쥐어있는 단검.
아래에서 위로 일직선으로 긋고 지나간다.
”...꾸에에에엑!!
급소를 당한 아르수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해치웠다!”
다리를 파르르 떠는 놈을 보는 두 사내의 얼굴에 안도의 빛과 함께 기쁨이 흘렀다
“.....으아아아악!!”
웃음 가득했던 젊은 사내의 표정이 돌변한 것은 다음 순간.
그의 복부를 뚫고 튀어나오는 뿌연 빛을 뿜고 있는 뿔.
공중으로 냅다 들려진 사내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다시 마당 한복판으로 내던져져 고꾸라진 헌터.
목뼈가 부러진 그의 몸은 이미 숨이 끊어진 후.
복부에 뚫린 커다란 구멍에서 시뻘건 선혈 덩어리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른 사내의 눈동자에 비치는 괴생물체.
그들이 해치운 아르수스보다 좀 더 큰 놈.
“.....쿠오오오오우우우!!”
이글거리는 은안으로 노려보는 놈이 허공에 포효를 한다.
그런 놈의 주둥이 양쪽으로 나 있는 뿔의 표면에 범벅이 되어 흐르고 있는 선혈.
그 옆에 옹기종기 모이고 있는 또 다른 괴생명체.
다 자란 시바견 크기의 거대 토끼를 닮은 놈들.
회색빛의 털로 덮인 놈들의 주둥이에 늑대처럼 튀어나온 주둥이.
으르렁거리는 놈들의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놈들을 노려보던 사내가 침음을 흘렸다.
양손에 단단히 쥔 카타나의 끝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놈들을 향해 치뜬 그의 눈빛.
아무 때라도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사무라이의 정신.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입 밖으로 길게 터져 나오는 기합과 함께 그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나비처럼 날아오른 그가 시퍼런 카타나를 휘두르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창졸간 뻗어 나온 두툼하고 길쭉한 혓바닥.
순식간에 그의 허리를 휘감은 혀가 무섭게 뒤로 돌아갔다.
...쨍그랑!
마당에 떨어진 카타나가 울리는 구슬픈 소리.
이미 그 검의 주인은 허리가 반으로 꺾인 채 붉은 갑옷을 두른 갈리니쿠스의 입안으로 사라지고 있다.
“나까가이치! 아오야마!”
동료의 이름을 외치며 마당 안으로 들이닥친 두 헌터.
그들의 손에는 각각 창과 활이 쥐어져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괴생명체들.
놈들의 숫자에 압도당한 두 헌터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그들의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이 연이어 들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화살을 메고 있는 사내.
그런 사내가 노려보고 있는 것은 가르고토르 한 마리.
논두렁을 따라 치달려오는 놈을 겨냥한 사내가 한순간 숨을 멈췄다.
불끈거리는 손으로 화살을 잡아당기던 그가 한순간 가볍게 손을 놓았다.
“...쐐애애애액!”
날아간 화살이 달려오던 놈의 어깨에 박혔다.
달리던 걸음이 점점 느려지는 괴생명체.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떨군 놈이 한순간 논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잡았다!”
의기양양해진 헌터가 풀숲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서 검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있던 다른 사내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사내가 자신의 옆에서 환희에 찬 궁수를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던 궁수.
사내의 눈빛이 이채를 띄기 시작했다.
수풀 속, 논두렁, 밭이랑에서 헌터들을 마구 농락하던 중형종 괴생물체들.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며 마치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듯 사지를 비튼다.
납작한 콧구멍과 아가리를 통해 검은 핏물을 공기 중으로 분사하고 있는 괴생명체들.
“뭔가 이상해. 놈들을 봐.”
“놈들이 지구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의 뒷편 언덕 위로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노인.
자신의 세배나 됨직한 창을 손에 쥐고 있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가 주변의 지형에 몸을 숨기고 있는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놈들은 어차피 지구환경에서 오래 버티지 못해. 마을 밖으로만 나가지 못하게 방어한다!”
“....와아아아아!!”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함성.
온갖 무기가 허공으로 솟아 올라왔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킨다. 한국에 무슨 대단한 헌터가 있다는 얘기도 다 개소리야!”
“옳소! 옳소!”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그런 헌터가 나올 리가 없잖아?”
“아무렴. 미국이나 다른 유럽나라라면 몰라도!”
“그 소문 다 우리나라에 사는 조센징들이 내고 있는 거야.”
“거긴 헌터도 고작 네 명이라면서?”
그 말에 여기저기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네 명이라는 거, 실화냐?”
“우리나라만 해도 70명이 넘어가는데...”
“싱가폴만 해도 다섯 명이라고 하던데?”
“자, 자, 클리어가 눈앞이다. 힘을 내라!”
그의 말에 헌터들의 사기는 다시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에 이미 몸의 움직임이 둔해질 대로 둔해진 괴생명체들이 하나둘씩 스러져갔다.
그런 그들로부터 1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곳.
가파른 산기슭으로 연결되기 전, 언덕 위 작은 구릉지대의 한쪽.
직경 3-4미터 크기의 거무스름한 막이 지상에 형성되어 있다.
마치 짙푸른 호수의 표면처럼 일렁이고 있는 액체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장막.
어느 순간,
날카로운 괴생물체의 발톱 하나가 막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오오!”
괴성을 지르며 우악스럽게 막을 뚫고 나온 괴생명체.
체고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 괴물.
에어로퀼(Aeroquill)
머리 위로 솟아오른 V자 형태의 벼슬.
황금빛을 띠는 맹렬한 눈빛.
등 뒤로 솟아오른 거대한 날개.
마치 강철판을 겹쳐 만든 듯, 단단하고 촘촘한 깃털로 덮여있는 거대한 몸뚱이.
그리고 부리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엄청난 크기의 혹.
멀리서 언뜻 보면 초거대 독수리와 펠리칸을 기괴하게 결합해 놓은 듯한 외형.
“...크오오오우우우”
놈이 거대한 부리를 벌려 크게 괴성을 지르자,
주둥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곤충을 닮은 괴생명체들.
개미, 바퀴벌레, 거미, 딱정벌레....
지구상의 곤충을 닮았으나 크기는 수십배.
부리 밖으로 쏟아져 나온 놈들이 처음으로 하는 행동은....
마구 서로를 잡아먹는 것.
그렇게 몸을 마구 키워내는 놈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에어로퀼이 다시 한번 주름이 흉물스럽게 진 혹을 부르르 떨었다.
“......꾸륵.꾸륵.”
“...꾸르르륵.”
“.. 꺼어어어억!”
기괴한 소리와 함께 놈이 또다시 혐오스럽게 생긴 괴생물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을 이미 엄청나게 커진 놈들이 어미새에게 모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들처럼 포식을 하고 있다.
서너 차례 똑같은 과정을 거친 후,
단단한 껍질로 온몸을 뒤덮은 놈들의 크기는 이미 대형견 만큼이나 커져 있다.
“꾸웍! 꾸웍! 꾸웍! 꾸웍!....”
에어로퀼의 기괴한 울음에 놈을 올려다보던 백여 마리의 놈들이 인가를 향해 언덕을 쏜살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놈들을 내려다보던 에어로퀼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날개를 펴고 한순간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서울의 한 고급 일식집 안.
“그럼 이번에도 김 기자님만 믿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언제 회장님을 실망시켜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술기운으로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기자 기자가 두툼한 봉투를 자신의 서류가방에 넣었다.
“그럼 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표시를 하며 모 기업회장이란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겸사겸사 최고급 요리 더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회장이 VIP 룸의 문을 닫고 나갔다.
“...어어. 좋다아..!”
건실한 기업의 회장도 굽신거릴 정도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김기자.
정부의 각 부처, 검사, 국회의원, 기업, 시의원까지....
깊은 뿌리를 내리고 검은 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한 거대 나무.
사방으로 뻗은 가지에 매달린 셀 수 없이 무성한 이파리까지.
그의 그늘에서 눈, 비를 피하는 권세가가 한둘이던가.
자신의 손끝에서 나오는 한 쪽짜리 글빨에 매달리는 재력가들.
자기만족에 취한 김기자가 만족한 표정으로 ‘꺼억’ 하고 트림했다.
-똑똑
“들어와.”
또다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질 별미.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넌, 뭐야?”
회색 추리닝에 후드티를 걸친 어린 놈.
“잘도 차려서 처먹었네. 쓰레기 새끼.”
겨우 스물 좀 넘었을까 한 어린 놈이 조소로 가득한 눈빛으로 시건방지게 막말을 내뱉는다.
“너, 뭐야? 이 섀끼! 내가 누군 줄 알고!”
“걸...레에...기이이.”
입에 담기도 혐오스럽다는 표정.
“김기자. 오늘 넌 내 손에 뒈지는 거다.”
그의 말에 놀란 김기자가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미친! 여기! 밖에 아무도 없어?”
고래고래 악을 쓰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놈의 눈동자에 회심의 빛이 흘렀다.
그런 그의 눈앞에 퍼드득 튀는 푸른 불꽃.
젊은 놈의 손가락 끝에서 터진 푸른 번갯불이 한순간 자신의 이마로 튀었다.
“....허어억!!”
순식간에 전신이 감전된 김기자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코에 돼지 굽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제 그놈 인생은 끝났다. 김기자!”
젊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김기자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다음은.......”
마치 무슨 어려운 결정이라도 내린다는 표정으로 그가 김기자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잔인함으로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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