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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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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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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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4> 일월교 외진각주 설파혼

DUMMY

*

효지림이 운기조식으로 흩어진 진기를 대충이나마 갈무리하고 일어난 건 인시에서 묘시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다.

아직 곁에는 벽자룡과 취소연이 진땀을 흘리며 운기조식 중이었다.


지금 손을 쓴다면 두 명의 목숨을 앗는 건 종이장 뒤집는 것 보다 쉬운 일이었다.


‘흥. 일월교는 너희 중원놈들처럼 비겁한 수를 쓰지 않거든.’


돌아보니 로운이 문 옆 의자에 널부러져 잠이 들어 있었다.

효지림은 잠든 로운 곁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 그가 보여준 무공은 상상불허였어.

헌데 지금은 아무리 살펴봐도 내공이 느껴지지 않잖아. 약간의 내공만 있어도 내가 이렇게 다가온 걸 모른 채 곯아 떨어지지는 않을텐데...‘


효지림이 살며시 로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런데도 로운은 애기처럼 쌕쌕대며 단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로운의 손목을 잡고 맥박과 진기의 흐름을 느껴 보았다.

맥박에서도 그 어떤 진기의 흐름이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거대한 내공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걸까?


‘진짜 모를 사람이네.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의 모든 상식에 맞지 않는 사람....’


효지림이 로운의 손을 내려놓는데 그제서야 로운이 잠에서 부시시 깨어났다.


아직 덜 깬 눈을 부비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효지림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누, 누구세요?”


순간 효지림이 흠칫 놀랐다. 로운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이런! 운기조식에 힘을 쓰는 바람에 내 외모가!’


아직 내공을 제대로 갈무리 하지 못한 효지림은 삼,사십 대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 본 듯도 한데... 저기 효지림인가 하고 닮은 듯? 혹시 효지림 언니?”


효지림은 당황했지만 얼른 기지를 발휘했다.


“효, 효지림은!!! 내가 데려간다!”

“그니까 당신은 누구냐구요?”

“효지림을 구해준 은혜는 반드시 갚을 거야! 효지림은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니까! 일단 여길 떠! 곧 일월교의 고수들이 널 찾아내려 혈안이 될 테니까! 부디 살아 있어라! 그래야 효지림이 은혜를 갚을 수 있으니까!”


로운이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효지림은 다급하게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 봐! 너 누구냐고? 뭔데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는 효지림의 뒤에 대고 로운이 외쳤지만 끝까지 들을 수는 없었다.


효지림은 혹시라도 로운이 따라 나올까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어둠을 뚫는 화살처럼 그녀의 신형은 순식간에 객잔으로 부터 멀어졌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그 인간한테 내 본 모습 드러내는 게 뭐라고.’


효지림은 이렇게 도망치듯 나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름다운 20대의 외모를 유지하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때로 나이 든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다 해도 개의치 않았던 그녀였다.

세상에 빚진 것도 꿀릴 것도 없는 삶을 살았다.

설령 교주 앞이라 하더라도 숨기거나 부끄러워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그 녀석한테는 그 모습을 들키기가 싫었다.

누구 앞에서 부끄럽다는 생각, 이런 묘한 감정이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데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아냐아냐. 어쨌든 그 녀석이 내 생명을 구해준 거잖아. 내공을 주입해줬으니까. 그러니까 이럴 수도 있는 거야. 구해준 사람에 대한 감사 같은 거지!’


그렇다고 속으로 우겨봤지만 왠지 가슴이 뜨끈해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라고! 얼굴에 열 나는 건 아직 내공이 안정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데 혼자 소리를 빽 내질렀다.

자다가 이불킥 하듯.


자신도 모르게 경공에 속도를 올렸다.

얼굴에 닿는 찬 공기가 시원했다.


오늘밤은

왠지 어제까지의 수많은 밤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

아침 해가 뜰 무렵에야 벽자룡이 겨우 운기조식을 끝냈다.

일상적인 움직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직도 호흡이 고르지 않았고 함부로 내공을 끌어 올릴 수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취소연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운기조식 중이었다.


로운이 벽자룡한테 물었다.


“괜찮아졌어? 근데 쟤는 왜 저래? 너보다 많이 다쳤나?”

“다친 게 아니라 대협이 도운 것 때문입니다.”


벽자룡이 곧바로 취소연의 등에 손을 대고 운기를 도우며 말했다.


“뭔 소리야? 도와준 게 뭐가 문젠데?”

“과유불급! 너무 넘쳤습니다.”

“많이 도와준 게 문제라고? 돕는 건 다다익선이야!”

“어떤 영약이라도 넘치면 독이 되기도 합니다. 치유에 필요한 내공이 1인데 대협은 거의 5를 쓴 겁니다. 효지림이 감당 못하자 절 끌어 들였고 저 역시 취소저를 끌어왔지요.”

“효지림도 일어났고 너도 일어났잖아! 근데 취소연은 왜 이런대?”

“가장 많이 받았으니까요. 효지림이 1만 남기고 저한테 넘겼고 저 역시 넘치는 건 취소저한테 쏟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돌려줘! 다시 나한테 주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협 도와주십시오. 취소저를 데려가야 합니다.”

“취소저를 데려가? 어디로?”

“군웅맹이 있는 곳. 마교의 눈을 피해 마련한 비밀 장소입니다. 그 곳에 가면 임시맹주님을 비롯해 많은 고수들이 은거해 계십니다. 그분들이라면 취소저의 내공을 정돈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고?”

“이 곳에서 말을 타고 가면 사흘 남짓 걸리는 곳인데....”

“아! 그니까 어딘데? 딱 지명을 말해! 주소 없어? 주소?”

“불령산 소격동입니다”

“아... 불령산 소격동. 음... 거기가 어딘데?”


*

성곡현 현청으로 돌아간 효지림을 보자 가장 놀란 건 먼저 달아났던 편복들이었다.


“소, 속하들이 부각주님을 뵈옵니다!”

“돌아가신 줄 알고 저희들은!”


- 찌자자자자작--!


효지림이 손을 한번 휘둘러 따귀를 날리자 열 두 명 편복이 모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어? 이렇게까지 때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효지림은 가볍게 휘두른 손에 편복들이 나가떨어지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효지림이 혈편을 뽑아 휘둘러보았다.


- 콰아아— 콰릉--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채찍에 맞은 석상 하나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백령기 수하들이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부서진 석상을, 그리고 효지림을 돌아보았다.


‘이, 이게 뭐야? 내 내공이...?!’


밤 사이 내공이 반 갑자 이상 증진된 것이다.

틀림없이 로운이 주입한 내공 때문이었다.


믿지 못할 밤이었다.

예상치 못한, 예상할 수도 없는 상대를 만났다.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 싶었는데 오히려 그가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 뿐 아니라 엄청난 내공까지.

그리고 묘한 감정까지.


가슴이 벌렁벌렁 투근두근 거렸다.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추스렸다.


‘공사는 구분해야 해! 어쨌거나 그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경계를 넘은 인물이야.’


윗선에 한시라도 빨리 보고해야 일월교 전체의 대응책이 수립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편복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살 떨지 말고 지금 바로 각주님께 가라. 가서 우리가 겪은 걸 모두 보고해!”


명령을 받은 편복은 출발하는 대신 어정쩡한 모습으로 현청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미 보고는 모두....”


효지림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현청 건물 계단 위,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외진각주 설파혼.


은색의 옷에 뒤로 질끈 묶은 은색머리.

창백할 정도로 하얀 낯빛에 심중을 알 수 없는 그의 무심한 표정은 언제 보아도 압도되고 말았다.


효지림이 외진각 부각주의 자리에 선임되어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그에게 섭혼술을 펼치 보려고 했었다.


“나를 바라 보는 건 허락하나 나를 들여다보는 건 아니 되네.”


그의 첫마디가 그거였다.

표정만큼이나 무심한 듯 툭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모든 걸 정리했다.


설파혼은 효지림이 섭혼술을 시도하기도 전에 그녀의 불손한 의도를 파악했다.

그리고도 평온하게 말 한마디로 경계를 지었다.

효지림은 그 한 마디에 설파혼의 높이를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보다 몇 길 위라는 것을.


그 이후로 일월교에서 자신과 교주 사이에 오로지 단 한 명, 각주 설파혼 만을 인정하는 바였다.


효지림은 얼른 계단 아래로 날아가 설파혼 앞에 허리 숙여 예를 갖추었다.


“하명하신 일은... 아직 완수치 못하였습니다.”

“알고 있네.”

“다시 기회를 주시면 그들을 반드시 압송하여....”

“무슨 일이 있었나?”


설파혼이 효지림의 말을 끊고 물었다.


“아... 취소연과 벽자룡을 발견하였사오나 또 다른 인물이 개입하였기에.....”

“알고 있다 했다.”

“그러면 무엇을 여쭈신 건지....?”


설파혼은 대답 대신 무심한 눈으로 효지림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뭘 묻는지 눈치 챘다.


“그 자의 공격에 혼절하였는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찰나지간이지만 설파혼의 눈빛이 흔들렸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효지림이 혼절하였다는 것,

둘째는 그자가 효지림의 회복을 도왔다는 것.


그 둘도 놀랍지만 설파혼의 눈빛이 흔들릴 정도는 아닐 것.

설파혼이 알고 싶어 했고, 무심한 눈빛까지 흔들린 건 세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방금 지켜본 장면에서 보여준 효지림의 내공.

그자의 도움이 하루밤 사이 효지림의 내공이 급격히 상승한 부분일 것이다.


설파혼이 돌아서서 현청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따라오라.”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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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 주화입마를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니. +3 23.06.09 76 3 10쪽
33 <33> 꿈 속에 본 그녀 +5 23.06.08 80 4 10쪽
32 <32> 이 순간, 이 곳의 결정권자는 나! +2 23.06.07 80 4 9쪽
31 <31> 이로운의 한계 돌파 +3 23.06.06 89 4 9쪽
30 <30> 낙장불입 VS 금룡파천 +6 23.06.05 86 4 9쪽
29 <29> 각성인가 폭주인가, 로운의 분노 +5 23.06.02 88 5 9쪽
28 <28> 휘야, 소연은 형이 꼭 지켜줄게. +5 23.06.01 82 5 10쪽
27 <27> 저러다 다 죽겠는데? +3 23.05.31 81 3 9쪽
26 <26> 절대 위기의 임무라는 것. +3 23.05.30 93 4 9쪽
25 <25> 생사의 지옥도 +6 23.05.29 86 5 10쪽
24 <24> 수채의 의리, 장강칠우 +3 23.05.27 90 4 9쪽
23 <23> 추격자 관쌍의 음모 +4 23.05.26 104 4 9쪽
22 <22> 취소연의 마음 속엔 이미 로운이가 +2 23.05.25 100 4 10쪽
21 <21> 단봉이 울다 +4 23.05.24 107 4 9쪽
20 <20> 내 문파는 대한민국 경주 이씨 판윤공파 +9 23.05.23 115 6 10쪽
19 <19> 따뜻한 그 사내의 등 +4 23.05.22 112 5 10쪽
18 <18> 빠르다, 너무 빠르다. +8 23.05.21 107 6 10쪽
17 <17> 할배와 아이가 한 몸에! +6 23.05.20 120 6 10쪽
16 <16> 딱밤이라니! 치욕이다! +3 23.05.19 125 3 10쪽
15 <15> 음양노동 관쌍 +7 23.05.18 135 7 10쪽
» <14> 일월교 외진각주 설파혼 +4 23.05.17 132 5 10쪽
13 <13> 죽였다가 살렸다가 +6 23.05.16 132 4 9쪽
12 <12> 신의 사자가 말한 균열의 날이.... +10 23.05.15 146 7 11쪽
11 <11> 일월교주 율리납 +7 23.05.14 165 6 10쪽
10 <10> 섭혼음양지공 +4 23.05.13 177 6 9쪽
9 <9> 십이편복의 추격 +4 23.05.13 153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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