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자 출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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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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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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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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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무상검결(無常劒訣)

DUMMY

신선루로 돌아온 시운학은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곽정에게, 그리 취해서야 어찌 심부름인들 하겠느냐 나무라고, 좌정을 시키고는 진기를 돌려 주기(酒氣)를 날려 버리고 곽정의 내공을 살폈다. 명가의 자손이라 나름 정순한 내공을 갖추고 있었지만, 나이가 어려 운기조식한 시간이 부족했는지 단전의 크기가 생각 외로 작았다.


동정어은 곽달의 인의한 마음 때문에 많은 목숨을 구하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베풀게 되는 은혜를 입었다 여긴 시운학은, 곽정의 단전을 넓혀 주고 곽씨세가의 운공법으로 운기조식하는 그대로 진기를 돌려 가며 내공의 양을 키워 줬다.


시운학은 동정어은 곽달과 원앙검 부부, 곽정과 곽앵 오늘 하루 함께했던 시간을 돌아보고, 좌선에 들어 운기조식 중인 곽정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무림맹주 자리에 있으면서도 강호사에 초탈해 보였던 여시준과, 강호가 어려운 시절 칠선이라 불리고도 강호에서 멀어졌던 독곡주 독선을 생각하니, 강호 무림을 아끼는 은자들이 처처에 남아 있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신선루주 하려려도 잠시 시운학의 뇌리를 스쳐 갔다.


시운학은 진기조식에 깊이 빠져든 곽정을 두고 정자로 나갔다. 하루 종일 술을 마셨지만 시운학의 반박귀진(返璞歸眞: 진실된 자아로 돌아감)에 이른 몸은, 몸 안에 탁기(濁氣)를 남겨 두지 않았다.


시운학은 시운학에게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서 있던 하녀에게 술상을 차려 오라 했다. 하녀들이 얼른 대답하고 나가자, 정자 기둥에 등을 기대고 높이 솟아오른 밝은 달을 바라봤다.


'장강십팔채의 산왕들도 동정십팔채의 수적들도, 결의문을 포구마다 내걸고 난 뒤로 평소와 달리 구역을 지나는 배들에게 예물을 요구하지 않았고, 장강 수로를 지나는 어떤 배의 통행도 막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궁세가의 박주상단은 포구에 들어 머물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내건 결의문에 분명하게 적시(摘示)해 당문의 상선만을 지목했건만, 그들은 결의문에 적힌 대로 믿지 못했던 것이다.'


'남궁세가 박주 상단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에 따르면, 내일 늦게나 모레면, 남경으로 보낸 물건을 내리고 사천으로 돌아가는, 당문 성도 상단의 배가 동정호에 드는 것이 확실했다.'


'이미 성도 상단 사람들도 결의문이 붙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강십팔채와 동정십팔채가 함께 움직이지 않았으니, 상단이 보유한 호위들의 무력을 믿고, 지나치는 곳에 보이는 한두 수채를 본보기 삼아 몰살시켜, 감히 수채따위가 당문을 건드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겠다 자신하며 속도를 높여 오고 있을 것이다.'


당문과 당문 상단들의 속을 들여다본 것 같자, 시운학의 입가에 잔잔한 그러면서도 잔혹하게 느껴지는 미소가 피어났다. 기척을 느꼈어도 하녀들이 술상을 봐 오는 것으로 여겨 돌아보지 않았는데, 루주 하려려가 술상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기에 표정이 그리 무섭습니까?"


시운학은 어이가 없었다. 기척은 느꼈지만 그렇다고 하녀들과 루주 하려려의 기척을 구분하지 못했다니, 당문을 시작으로 강호 무림의 죄를 물으려 생각이 깊었기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문 성도 상단의 상선이 곧 들어올 것이라 들었소이다. 어찌 다스려야 좋을지 생각하다 그만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소이다."


"호호호

당문에 죄를 물으실 생각을 하시느라, 표정이 그리 잔혹해 보였군요?"


"그리 보였소이까?"


"하녀들이 들고 왔더라면, 질겁하고 달아났을 겁니다."


"소생이 루주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오?"


"적어도 반겨는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아침에는 너무 과한 선물을 받았소이다."


"신선루에서 준비했다 밝히지 않으셨습니까?"


그 정도는 돼야 호남 제일 주루인 신선루의 자부심을 보일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소생, 신선루에서 준비한 음식과 술이라 분명하게 밝혔소이다."


"호호호

기루에 머무신다 밝히셨다는 말씀이신지요?"


"밝히지 못할 것이 있소이까?"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시는 공자십니다."


기루에서 뒹굴며 지낸다고, 오해받지 않았느냐는 뜻이었다.


"어딘들 마음이 편하면 되는 것이지, 소생이 신선루에 머문다고 부끄러울 이유가 있소이까?'


"마음이 편하다 하시니 정성을 다해 내드린 보람이 있었군요."


"거듭 감사드리오."


"그 정도로 공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니, 언제든 말씀만 하시지요. 신선루 영업을 못 하더라도 얼마든 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어떤 소식을 듣고 오셨소이까?"


"마치 찾을 줄 알고 계시는 듯 말씀하십니다."


"루주께서 소생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여기시니 묻는 게 아니오?"


"호호호

참으로 말씀도 재미있게 하십니다. 하나 어쩌지요? 이미 아시고 계시니 더는 드릴 말씀이 없는걸요."


"그럼 갖고 오신 술이나 마십시다."


루주 하려려는 잔을 채워 시운학에게 건넸다. 시운학이 중천에서 조금 비껴간 달을 보며 천천히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면 루주 하려려는 바로 잔을 채웠다. 그렇게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거듭하다, 시운학이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하늘에 눈을 두고 잔잔하게 읊었다.


'기가 있으니 검이요.

무심히 뻗어 내니 무상(無常)이라.

천하만검의 위에 있으니

마음이 향하는 곳에 검이 있구나.

무초(無招)가 유초(有招)이니 연연(戀戀)할 필요가 없으리.'


시운학이 손을 뻗어 허공 중에 느릿하게 휘두르는데, 희뿌연 빛이 길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넘어가던 달을 숨긴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루주 하려려는 그 모습에 어찌나 크게 놀랐는지, 잔이 비면 따르려고 들고 있던 호로를 놓쳐 버렸다.


일곱 어린 나이에 기루에 들어 끝없이 공부하여, 지학(15살)에 기적에 올랐고, 뛰어난 미모와 지혜로 약관(20살)도 못 돼 명기의 반열에 올랐다. 이립(30살)쯤에 루주가 되었고, 온갖 풍상을 겪으며 신선루를 운영하다 보니, 어느새 불혹(40살)을 넘긴 지도 몇 해가 지났다.


비록 무공에 입문하진 못했지만, 그동안 신선루를 거쳐간 영웅호걸이 한둘뿐이었겠는가? 천하제일이라 큰소리치는 호한은 그저 귀여울 따름이었고, 절정, 초절정, 화경의 고수라며 온갖 대접을 받던 고인들도 무수히 지켜봤었다.


시운학의 읊조리는 소리에 심신이 다 맑아지는 듯 느꼈는데, 분명 빈손을 뻗어냈건만 흐릿한 빛줄기가 보이는 듯싶더니, 굵은 가지들이 홀씨처럼 흩날렸다. 루주 하려려의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떨어지던 호로가 어느새 시운학의 손에 잡혀 있었는데, 시운학은 호로를 하려려에게 내주며 따르라는 듯 빈 잔을 내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셨기에 호로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시오?"


루주 하려려는 무언가 놓친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시운학이 내미는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공자께서 읊조리신 시문이 너무 마음에 와닿는지라, 되뇌여 보려 하다 그만 실태를 보였습니다."


" 강호 무부들의 노래가 어찌 루주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시오?"


"무부의 노래라 하셨습니까?"


"소생은 검결이라 부르지만, 칼 든 무부들의 노래가 맞소이다."


"검결인 것입니까?"


"정확히는 무상검결이지요?"


"소첩이 들어 알던 검기나 검강은 아닌 듯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눈썰미를 가지셨소이다. 보신 것이 들으신 검결에 따라 행한 무상검이외다."


"사문의 비전 검결일진대 소첩이 알아도 되는 것인지요?"


"비전은 무슨, 공자와 맹자께서도 아시고, 노자와 장자께서도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설파하신 말씀이외다. 듣는 것만으로 깨우칠 수 있다면, 강호 무부 대부분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외다."


"어찌 그렇습니까?"


"작은 상자에는 큰 물건을 담을 수 없고, 깨닫지 못하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니 그렇소이다."


"공자님 말씀은 누구라도 깨달으면 나갈 수 있다 하신 말씀이신지요?"


"루주께서 깨달으셨소이까?"


"호호호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만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했고, 되뇌니 아련하기는 했습니다."


"루주께 내공이 없어 다행이시오.

아련함은 번뇌이니 내공을 갖추셨다면, 아마도 주화입마에 빠지셨을 거외다."


"두려운 말씀이십니다."


"그리되지 않을 줄 아니 드린 말씀이오."


"어찌 다스릴 생각이신지 여쭈어도 되겠는지요?"


"이제야 하시려던 말씀을 물으시는 것이오?"


"소첩이 하려던 말씀이라니요?"


"그리 감추려 들지 말고 바로 물으셔도 될 것이오. 아니 소생이 말하리다. 하루 종일 동정어은 곽 대협과 이야기하다 돌아왔소이다. 말씀 중에 마지막까지 호생지덕을 베풀라 하셨소이다.

곽 대협의 인애하심에 감복해 목숨은 거두지 않겠노라 약조해 드렸소이다."


시운학의 말에 신선루주 하려려의 표정이 수시로 변화했다. 시운학이 강호 무림 모두와 적대하며 싸우려 들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거듭 생각해 봐도 시운학이 시작하려는 싸움은 승산이 떨어졌다.


말리려면 처음부터 말려야 했으니, 상차림을 기회라 여겨 오늘 밤 다시 찾은 것이었다. 보여 준 것인지, 보여진 것인지 모르나, 시운학이 행한 것은 무공을 모르는 하려려라 해도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듯싶었다. 그러니 이제 시운학의 뜻이 확고하다면, 당문을 단호하게 응징하라 말하려 했다.


그런데 호생지덕이라니, 동정어은 곽달이 의협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맞지만, 당문과 전쟁을 시작한 마당에 목숨을 거두지 않을 것을 약조하게 했다니, 하려려의 생각에 동정어은이 받아 낸 약조는, 시운학의 양손을 묶어 놓고 싸우라는 것과 같았으니 노기가 절로 솟구쳤다.


시운학은 천변만화하는 신선루주 하려려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왔는지도 알고 있었고, 무상검을 보고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정어은 곽달도 지금 곁에서 무상검을 본 신선루주 하려려도, 시운학을 일 할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당문의 상단이 아니라 당문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에 지울 수 있었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강호 세력들도, 시간이 걸릴 뿐 지우고자 하면 언제라도 지워 없앨 수 있는 사람이 시운학이었다.


수천문주와 수천문 노사님들의 지시로, 수천문이 강호를 위해 보관해 오던 비급들을 강호로 돌려주고자 나온 것이지, 강호를 장악하려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강호 무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강호 무림 스스로 정리되도록,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내주고자 했던 비급을, 그들은 잠시의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수천문을 도모했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모를까 건드려 왔으니, 그에 합당한 죄를 묻고 벌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시운학은 누가 뭐래도 건드려 왔으니, 그들이 범한 죄를 묻고 합당한 벌을 내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약조한 대로 목숨을 거두지 않는다 해서, 당문이 받을 벌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오."


"어찌 그럴 수 있는지요?"


"목숨은 살려 보낼 것이나 배는 불태우고 물건은 수채에 내줄 것이오. 살아남은 자들은 당문으로 보내질 것이나, 당분간 무공은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니, 그만하면 일차적인 당문의 죄에 가늠할 만하지 않소이까?"


"말씀하신 대로 이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내일 늦어도 모레면 보시게 되지 않겠소이까?"


"보여 주신다고요?'


"원하신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오.

당문의 상단이 지난다는 말을 들으시면 포구는 그렇고 능수진 곽 대협 댁으로 오시오."


"공자께서는 그곳에서 당문의 상단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시렵니까?'


"그런 건 아니고 약조를 했으니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 한 말이외다."


"아이들을 포구로 내보내 알아보라 이르겠습니다."


"루주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렇게 하시오. 어디 있다 나간들 달라질 것도 없으니."


루주 하려려는 자신을 위해 시운학이 생각을 바꾼 것에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시운학은 자신이 한 말 그대로 어디 있다 나간들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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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50화 광인방을 멸(滅)하다 +2 23.10.05 2,548 25 13쪽
149 149화 전화위복(轉禍爲福) +3 23.10.04 2,458 25 13쪽
148 148화 아비규환(阿鼻叫喚) +2 23.10.03 2,462 24 13쪽
147 147화 만금전장(滿金錢場) +1 23.10.02 2,478 25 16쪽
146 146화 무림맹의 변신 23.10.01 2,499 25 14쪽
145 145화 은창 유성 화경에 들다 +2 23.09.30 2,640 24 12쪽
144 144화 마무리는 단호하게 +2 23.09.29 2,532 24 14쪽
143 143화 시작은 가볍게 +1 23.09.28 2,512 22 19쪽
142 142화 탐화랑(貪花郞) 23.09.27 2,582 24 15쪽
141 141화 풍우지절(風雨之節) +1 23.09.26 2,670 21 14쪽
140 140화 당소소 (2) +1 23.09.25 2,748 26 14쪽
139 139화 당소소 (1) +1 23.09.24 2,674 23 15쪽
138 138화 협상 23.09.23 2,671 22 17쪽
137 137화 개파대전 +1 23.09.22 2,662 25 13쪽
136 136화 불꽃 (3) +1 23.09.21 2,652 21 15쪽
135 135화 불꽃 (2) +2 23.09.20 2,667 23 15쪽
134 134화 불꽃 (1) +1 23.09.19 2,651 24 17쪽
» 133화 무상검결(無常劒訣) 23.09.18 2,665 25 12쪽
132 132화 곽가촌 23.09.17 2,677 23 15쪽
131 131화 매가 약이다 23.09.16 2,702 21 13쪽
130 130화 동정풍운(洞庭風雲) +2 23.09.15 2,784 24 14쪽
129 129화 혼돈지절(混沌之節) +1 23.09.14 2,741 23 16쪽
128 128화 전화위복(轉禍爲福) 23.09.13 2,750 21 13쪽
127 127화 운룡설산(雲龍雪山) (3) 23.09.12 2,740 24 13쪽
126 126화 운룡설산(雲龍雪山) (2) 23.09.11 2,747 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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