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159 회
조회수 :
7,920
추천수 :
30
글자수 :
723,372

작성
24.02.16 18:00
조회
28
추천
0
글자
10쪽

집결 (6)

DUMMY

끼이익!


녹슨 문 경첩의 소리가 나며 이찬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화장실 가장 안쪽 변기 칸을 열어 들어가고는 굳게 문을 잠갔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팔 개월만에 보는 풍백 때문이었다.


“풍백? 살아 계셨습니까?”


-천신을 그렇게 만만히 보지 마라.


“만만히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고요. 왜 지금 나오셨습니까? 한 번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내 존재격의 고향이라지만 허용 상상력이 너무 적다. 내 격을 아무리 잘게 쪼개도 네 몸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 말을 들은 이찬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풍백을 마주보았다.


“그럼 지금은··· ···.”


-지금부터 내가 네게 하려는 얘기가 그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범상치 않아. 내 격의 일부일 뿐이지만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건 지금 지구의 ‘허용 상상력’이 매초, 매분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풍백이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며 명백한 긴장감을 표출했고, 그에 따라 이찬도 덩달아 긴장되고 말았다.


-네가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안에서 전부 들었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계획을 실행해라. 익주에 놈들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 너는 들었을 테지만, 함정이다. 놈들의 계획은 이미 비밀리에 시행 중이야.


이어진 풍백의 발언은 계획에 죽고 계획에 사는 이찬에게 패닉을 선사했다.


“그··· ··· 그럼··· ···.”


-당장 지금부터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


풍백이 이찬의 입장에서 가장 섬뜩한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지구는 멸망한다.”


***


“뭐라고요?”


상황은 가스페르와 이노에게도 비슷했다.


-조졌다고! 지금 저 미친 새끼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 ···, 하. 이미 늦었나?


“늦었다고요··· ···?”


-늦었을 수도 있어. 가능성은 낮지만, 이미 놈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려 각지역으로 떠났을 거야.


“그럼 어떡해요?”


-이찬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고. 빨리!


천만 다행히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둘이었기에 연락은 쉽게 닿았다.

허용 상상력의 폭증으로 시스템의 일부 기능이 일시적으로 활성화되었고, 그들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기능이자 다행히 가장 먼저 활성화된 기능인 ‘연락’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가스페르가 시스템을 킴과 동시에 이찬의 연락이 도착했고, 가스페르가 그 연락을 수락하자마자 이찬의 심각한 표정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스페르! 접니다. 놈들이 예상보다 일찍 움직였어요. 계획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스페르와 이노가 다급히 웃옷을 챙겨 입었다.


“지금 갑니다. 이노는 학교로 보내겠습니다. 저는 학교 근처 무주공산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이따 봅시다.


삑!


연락이 끊기는 비프음이 들렸고, 그 소리에 빠르게 반응하듯 이찬이 문을 열어 젖히고 아윤의 교실로 향했다.


“아윤아!”


아직 아침 종례 전이었기에 시간의 여유가 있던 이찬이 아윤을 불러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계획이 앞당겨졌어. 지금부터 시작이다. 때가 되면 신호를 보내 놓을게.”


아윤이 끄덕였고 순식간에 이찬과 아윤은 자리로 향했다.


***


광화문의 한복판.

공중에 뜬 세 신이 한탄했다.


[이 두 새끼는 왜 안 오는 거야?]

[내버려둬, 상상력 받기 싫은가 보지.]


세 하신.

그림자처럼 어둑한 모습에 뻘건 한 쌍의 눈을 가진 ‘어둠 속에서 우뚝 선 거대한 그림자’. 그슨대.

삼국시대 관료의 복장에 팔 대신 새의 날개가, 인간의 발 대신 새의 발이 달려 있는 ‘사람의 머리를 한 새’. 인두조수(人頭鳥獸).

그저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유사한 몸에 갈빛의 눈을 한 ‘창해로 내쫓긴 불꽃.’ 지귀.

인두조수가 자신의 날개를 슬쩍 훑었다.


[곧 시작이야. 준비해.]


적게는 몇백 년, 많게는 몇천 년을 하신으로 지내온 세 악귀의 원한이 서울의 광화문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둘 없으면 솔직히 이득이지. 다섯이서 나눠먹을 상상력 셋이서 나눠 받잖아?]

[그건 그렇긴 해.]


킥킥대는 두 귀신을 본 지귀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동시에 하늘이 깜빡였다.

잠깐 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신호 왔다.]


아무래도 그것이 시작 신호인 모양.

낮에는 밤의 모습이 깜빡깜빡 두 번 나타나고, 밤에는 낮의 모습이 두 번 깜빡이는 형태.


[시작하자.]


이윽고 대지로 깊게 스며든 악한 격이 폭발하며 지구의 멸망이 시작되었다.


“꺄아아악!”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이 악몽은 놀랍게도 얼마 지속되지 않았다.


[잠깐. 뭔가가 느껴진다.]

[행동자다. 달려! 저 새끼 한국에 있다! 내가 한국으로 배정받은 건 이 기회를 놓지 말라는 거였구나!]


세 신은 행동자의 이질적인 격이 느껴지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 격의 격발지로 향했다.


***


“격이··· ··· 돌아온다.”


이찬의 격이 이제 《관념》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이 치올랐고, 이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하게 격을 발현하자 학교 건물의 바깥에서 벽이 떨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강한 준동이 발생했고, 학생들을 포함한 학교의 전원이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뭐··· ···뭐야! 지진이야?”


일단 아윤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한 이찬과 아윤이 결연하게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레 발생한 지진에 학생들은 겁먹긴커녕 좋아하고 있었다.


“야, 우리 그럼 학교 일찍 마치냐?”

“와, 개꿀인데? 피방 고?”


이찬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지만 참았다.


“찬아, 이게 무슨 일이냐 대체? 마른하늘에 여기만 지진이 친다고?”


현규가 이찬의 곁으로 붙어 말을 걸어왔다.

이찬은 지금 현규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어··· ···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딱 나오자마자 지진이 멈춘 건 좀 이상한데?”

“원래 지진은 몇 번 안 쳐. 여러 번 느끼는 지진은 그저 여진일 뿐이야.”


현규에게 일일이 대답을 해 주면서도 이찬의 시선은 하늘로 고정되어 있었다.


“근데 넌 사람이 말하는데 고개를 얻다가··· ···.”

“왔다.”


***


콰아아아앙!


연회장의 한쪽 벽이 통째로 무너지며 공허한 바깥이 드러났다.

그 벽을 통해 연회장의 안으로 들어온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의 눈에 성인 남성을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는 신과 주민이 보였지만 그보다 더 빨리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뒤에 펼쳐진 커다란 스크린이었다.

여러 칸으로 나뉜 스크린에는 마치 CCTV실에 설치된 모니터처럼 서른에 가까운 신을 하나하나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이 공간은 초대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존재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회자와 서생원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소년이 이번 파티에 있었습니까?”

“아··· ···니.”


사회자가 왼손을 앞으로 뻗자 연회장 곳곳에 숨어 있던 사회자의 자객들이 앞으로 나서 소년을 향해 날붙이를 갖다 댔다.

그 자객들의 모습은 가스페르를 죽이기 위해 나타났던 셀리노프의 부대와 같은 문양을 새긴 같은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가스페르를 상대한 셀리노프의 경우와 차원이 달랐다.

다섯만 모여도 하신을 죽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위력이었다.


쇄애애액!


날붙이 날아드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소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소를 머금었다.


“저거 뭐··· ···.”


소년이 왼손을 들어 앞으로 뻗었다.

사회자의 행동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러자 부서진 벽면에서 천천히 다가온 바늘 같이 얇은 물체가 나타나 자객들의 심장을 하나하나 꿰뚫었다.


철벅!


사회자의 옆에 떨어진 바늘 같은 물체는 철도, 종이도 아닌 물이었다.

소년의 얇고도 얇은 물이 사회자의 정예를 너무나도 손쉽게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소년이 둘에게 다가갔다.


철벅! 철벅!


소년의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부분이 물로 변했다.


“너는 처음 보는데··· ···.”


신언이 아니다. 허나 신언만큼, 혹은 그 이상의 상상력을 담고 있는 목소리였다.


“크흐으윽!”


웬만해선 따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서생원조차 압도적인 격에 의해 무릎을 꿇으며 신음을 토해냈다.


“성··· ···.”


소년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결국 사회자가 결심한 듯 격을 발현했다.

달빛이 사회자에게 내리며 그의 눈이 은빛으로 변했다.


“고유격 발현.”


천천히 다가오던 소년의 발이 어떤 것에 묶여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똑똑하군.”


소년이 입을 떼자 일대가 진동하며 무너질 듯 기괴한 소리를 뿜었다.


“잠깐 진정하시죠. 당신은 분명··· ···.”


사회자는 알고 있다.

세상에서 이 정도의 격을 지금 당장 이곳에서 발현할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는 것을.

걸음걸이마다 바닥이 물로 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회자가 유추한 것은.


“당신은 마야의 신이시군요. 마야 신화 비의 신. 차크몰이시여.”


차크몰이었다.


“내가 이걸로 너희를 용서할 거라 생각 마라. 1차 목표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타겟은 너희다."

“용건만 간략히 말씀하십시오.”

“그건 네 뜻인가?”

“저희 신의 뜻입니다.”


그제서야 소년의 눈. 차크몰의 눈에 ‘관심’이라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렇지, 그렇지.”


으드드득!


차크몰은 얼어붙은 신발을 억지로 뜯어내고 서생원과 사회자를 무심히 지나쳐 당도한 스크린의 한 가운데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놈이군.”


서생원과 사회자의 눈에 역력한 기색이 강하게 일었다.

둘의 반응으로 확신한 차크몰이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는 말했다.


“이 놈은 내 거다.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명해.”


현 지구 최흉의 적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지의 편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0 대멸종 (1) 24.07.14 14 0 10쪽
129 영멸의 비애 (9) 24.04.26 35 0 12쪽
128 영멸의 비애 (8) 24.04.24 20 0 10쪽
127 영멸의 비애 (7) 24.04.21 17 0 11쪽
126 영멸의 비애 (6) 24.04.19 21 0 11쪽
125 영멸의 비애 (5) 24.04.17 21 0 11쪽
124 영멸의 비애 (4) 24.04.14 19 0 10쪽
123 영멸의 비애 (3) 24.04.12 22 0 11쪽
122 영멸의 비애 (2) 24.04.10 18 0 12쪽
121 영멸의 비애 (1) 24.04.07 18 0 11쪽
120 경계 (7) 24.04.05 20 0 11쪽
119 경계 (6) 24.04.03 18 0 10쪽
118 경계 (5) 24.03.31 22 0 11쪽
117 경계 (4) 24.03.29 14 0 11쪽
116 경계 (3) 24.03.27 23 0 10쪽
115 경계 (2) 24.03.24 17 0 11쪽
114 경계 (1) 24.03.22 19 0 10쪽
113 성지화 (14) 24.03.20 15 0 11쪽
112 성지화 (13) 24.03.17 22 0 12쪽
111 성지화 (12) 24.03.15 19 0 11쪽
110 성지화 (11) 24.03.13 23 0 11쪽
109 성지화 (10) 24.03.10 28 0 12쪽
108 성지화 (9) 24.03.08 25 0 11쪽
107 성지화 (8) 24.03.06 23 0 10쪽
106 성지화 (7) 24.03.03 27 0 10쪽
105 성지화 (6) 24.03.01 23 0 10쪽
104 성지화 (5) 24.02.28 37 0 10쪽
103 성지화 (4) 24.02.25 25 0 10쪽
102 성지화 (3) 24.02.23 20 0 10쪽
101 성지화 (2) 24.02.21 34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