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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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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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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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테스터 (1)

DUMMY

213화


‘근데 혓바닥도 없는 놈한테 아나운서는 왜 시킨 거야? 말 자체를 못하는 놈인데, 아무리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잠시 후 강 한복판에서 물방울들이 솟아오르더니 글자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지, 밥통아.’라는 문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지운이 응수를 하였다.


‘굳이?’

‘이백 미터 위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잘 안 들린다고, 온갖 쌍욕을 박아 댈 널 떠올려 봐.’


금세 수긍한 하지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사이렌들 말야... 그렇게 별로였어? 우리 나름대로 참가자의 취향을 최대한으로 반영해서 제작한 건데...’


다급하게 고개를 오른편 아래로 꺾은 하지운이 이를 악물었다.

웃지 말라는 경고를 이미 받은 마당에, 굳이 빵 터진 모습을 보여, 일주일을 건너뛰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어쩐지 체형이 천편일률적으로 쭉쭉빵빵하더라니. 모델이 너였냐?’

‘......’

‘무슨 이유로 자꾸 그런 것들을 배치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난 원래부터 인간의 형체를 가진 것들에게 별다른 애정을 못 느껴. 네가 특이 케이스였다는 얘기야. 너라는 오리지널이 있는데, 굳이 짭들에게까지 애정을 분산시킬 만큼 내 사랑이 넘치지를 못한다는 거지.’

‘자기야... 사실은 나도 벌써 얘기를 했었어! 이런 애들 다 필요 없다! 우리 자기는 이런 것들한테 홀릴 등신이 아니다! 그냥 힘 쓰는 애들 위주로 배치하자! 몇 번을 건의했었다니까! 근데 필수 코스라고,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거야. 뭐, 수천 년 동안 요망한 년들한테 홀려서 인생 조진 영웅들이 부지기수라나 뭐라나.’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래서 엘프로 부족해서, 사이렌까지 갖다 놓은 거야? 낯가죽 반반한 것들한테 시달려 보라고? 특히 사이렌들한테 호구 짓을 당하면서, 삶의 교훈을 얻어 보라는 건가?’

‘어, 정확해.’

‘저런... 의도는 나쁘지 않았는데... 결국 또 내가 문제였던 거네. 난 또 뭐 대단한 의도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 싶어서, 걔들이 울면서 똥을 지릴 때까지 패 버렸잖아. 아휴, 불쌍해라. 그런 교훈은 그냥 직접 말로 전해 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한 귀로 듣고는, 바로 한 귀로 부드럽게 흘렸겠지.’

‘그러네... 근데 자기야, 사이렌들은 그런 용도로 써먹기에는 너무 치명적인 문제가 있던데.’

‘어?’

‘잊었어? 나 투시 능력자야.’

‘아, 맞다! 너한테 그 빌어먹을 능력이 있었지.’

‘왜 승질을 내려고 해? 나오는 것들마다 투시 능력이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 없게 디자인해 놓고는. 거기다 내가 이 능력을 훔쳐보는데 사용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냐? 죄다 상대방이 능력 쓸 때, 대가리 속을 관찰하는 용도로만 사용했잖아. 빤히 다 내려다보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은. 잠깐! 생각해 보니까, 관음증 환자는 너잖아!’

‘......’

‘아니, 뭣보다! 제발 엘프고 사이렌이고 애들 옷 좀 입혀라! 네 눈치 보는 내 생각도 좀 해야 할 거 아냐! 이래 놓고 내가 조금이라도 한눈팔면, 쥐 잡듯이 잡으려고 할 거면서! 그래, 안 그래?’

‘절대 안 그래! 그리고 걔들 복장도 철저히 참가자의 개인 취향에 맞춘 거란 말야!’

‘아!’

‘네가 예쁘다고 느낄 만한 애들한테 네가 좋아할 만한 복장을 입혀 놨더니, 그 지랄이 났다고!’

‘아아...’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뭔데?’

‘껍데기는 잘 만들었던데, 껍질 속이 기괴할 정도로 엉망이더라고. 그걸 보고 밥맛이 떨어지려고 하는 판에, 이 잡것들이 감히 네 말투까지 흉내를 내잖아. 네가 애교 부릴 때 내는 그 특유의... 그래서 같잖아서 진심으로 존나 패 버렸지.’

‘아... 그랬구나... 아, 근데! 진짜 개 뭣 같은 투시 능력이! 이 거지 같은 능력을 우리가 만들어 놓고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변신 괴물들 속이 죄다 그 모양이라고! 투시 능력자한테는 얄짤없이 다 털리겠네!’

‘몸속 내용물들만 개조해서 업데이트하면 되잖아. 뭐, 야근하느라 고생은 좀 하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 일단 얘들 특정된 성별이 없어.’

‘엥?’

‘그게... 참가자 각자의 취향에 맞춰서 바로바로 변형되도록 설계되었다고.’

‘그 말은... 내가 게이였으면, 그것들이 수컷으로 변신해서 튀어나왔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잖아?’

‘응.’

‘푸흡!’


다행히 입 안에 있던 걸 남김없이 씹어 삼킨 후라 별다른 참사는 없었다.

한참을 끅끅거리던 하지운이, 눈물을 닦아 내고는, 다시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였다.


‘그 덩치 큰 아나운서는 원래 어떻게 불러냈어야 하는 거야? 그냥 퀴즈나 낼 거였으면, 알아서 먼저 튀어나오지. 괜히 사람 고민하게 만들고 말이야.’

‘그냥 강 중간쯤 가면 걔가 알아서 나올 거였어. 거기서 한 번에 퀴즈를 맞히지 못하면, 강변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도전하는 그런 방식이야.’

‘사이렌들은? 설마 옆에서 구경하는 거야?’

‘그럴 리가. 당연히 중간중간 기습하겠지. 그러라고 만든 애들인데.’

‘피곤했겠네. 근데 뭘 물어 보려고 했는데?’

‘별거 없어.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의 명칭, 국제기구의 호칭, 서로 연관이 있는 사건을 순서대로 나열 등등. 너라면 순식간에 다 맞힐 상식적인 수준의 문항들이야.’

‘허... 그런 걸 대체 왜 물어 보는 거야?’

‘그런 것조차도 모르는 돌대가리는 중용하지 않겠다는 저승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래. 무식하면 고생한다는 교훈을 각인시켜 주기 위해서인 거지.’

‘못 맞히면 영원히 이 강을 못 지나가는 거야?’

‘응.’

‘진짜? 그럼 맞힐 때까지 시험공부라도 해야 하는 거야?’

‘물론이지. 예상 문제집도 판매하고 있어.’

‘... 얼만데?’

‘황금 일 톤.’

‘... 그동안 긁어모은 거 다 토해 내라 이거야?’

‘응.’

‘나한테 내려던 문제가 뭔데?’

‘잠깐만. 동학 농민 운동의 계기가 된 여러 탐학 행위를 저지른 탐관오리의 대명.’

‘고부 군수 조병갑.’

‘딩동댕. 통과!’

‘이게 다야? 정말? 고작 이게?’

‘야, 세상엔 세계 지도를 보면서, 어느 게 자기 나란지 구분도 못하는 빡대가리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아.’

‘......’

‘진짜야.’


그러던 중 갑자기 말을 멈춘 승아가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오리고기를 뜯으면서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던 하지운이, 입 안에 있던 고기 조각을 모두 넘긴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마디 하였다.


‘자니?’

‘지운아, 잠깐만. 미안한데, 조금만 더 기다려 줘.’

‘......’

‘미안. 갑자기 큰언니가 와서는, 너한테 전할 말이 있다고 해서.’

‘큰언니? 어느 쪽? 고조선? 아니면 아시리아?’

‘아시리아.’

‘뭔 말인데? 그 정도 윗선에서 굳이 나한테 전할 말이 뭐가 있나? 설마... 지랄하지 말고 적당히 까불라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자기, 수련 중에 말야. 부업으로 베타테스터 할 생각 없냐는데.’

‘헐... 이제는 아예 참가자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하라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사실 자기는 더 이상 참가자로 분류할 수도 없어. 합격은 애저녁에 했잖아. 이제는 최종 순위만 남은 거지.’

‘그럼 급료도 줘? 예를 들어 황금을 톤 단위로.’

‘아니, 그냥 수료 후에 보상을 하나 더 추가해 주겠다는데.’

‘집어치워.’


「하지운 님, 베타테스터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신다면, 신혼집 거실에 순금과 다이아몬드로 마감한 실물 크기의 회전목마를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황금 같은 기회이니, 부디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민해 보세요.」


‘이 언니가 진짜 미쳤나 봐!!’


밥상 앞에 널브러져 있던 하지운이 벌떡 일어나더니, 몸가짐을 단정히 한 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건한 자세로 천천히 큰절을 올렸다.


‘이 미친 자기 놈은 또 왜 이래?’


정성을 다해 큰절을 세 번 올린 하지운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는,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처형, 성실한 임무 수행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눈이 부실 듯한 빛의 기둥이 쏟아져 내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발 앞을 내려다보던 하지운이 하체의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서 순금으로 된, 팔분의 일 사이즈의, 회전목마가 천천히 회전 중이었던 것이다.


「선금이니라.」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감격한 하지운이 오체투지를 한 채로 공손히 감사한 마음을 아뢰었다.


‘미친 변태들, 진짜 꼴도 보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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