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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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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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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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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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하피?

DUMMY

들으나 마나 황제는 제국의 금고가 텅텅 비었다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을 심산이다.


“후우···. 이보게. 자네가 아무리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전쟁으로 인해 우리 제국의 금고가 텅텅 비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것 아닌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하지만 돈이 없다는 황제의 말은 거짓이다.

오늘 저녁 식탁에 오른 값비싼 요리들은 다 무슨 돈으로 샀다는 말인가.

주변 왕국들로부터 ‘보호세’라는 명목으로 거둬들이는 막대한 재화가 어디에 보관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황실 금고는 당연히 여실 각오를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뭣?”

“좀 도와주십시오. 다른 일도 아니고 악의 뿌리를 뽑는 일을 하겠다는데.”

“크흠···.”


황제는 돈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황궁에서 살아가는 이 남자는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는 제국군이 얼마나 처절한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제국의 가장 강력한 챔피언이자, 최후의 보루인 내가 시한부 삶이라는 건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 좋아요, 황제 폐하.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100만 골드 정도는 제가 부담하고···.]

[당장 돈을 내놔. 안 그러면 네 놈의 제국을 모조리 불태우겠다!]

[상황을 지켜본다.]


“추가로 핵심 물질인 농축 에테르와 플로지스톤까지 저희 손으로 어떻게 처리해볼 테니, 부지와 시설, 인재 정도만 지원해주시는 거로?”


[설득 성공]


“···그렇게 하면 얼마나 필요하지?”

“보수적으로 잡아도 총 900만 골드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9, 900만? 실버도 아니고 골드로 말인가?”


900만 골드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6조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그런데도,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마왕군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치면 이건 대단히 싼값이다.


이러한 사실을 루스베리온이 아는지 모르는지 나야 알 턱이 없지만,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인류 최강의 용사인 나의 부탁을 쉬이 거절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좋네. 그럼 1년에 310만 골드, 3년에 걸쳐서 총 930만 골드를 지원해주도록 하지.”


루스베리온이 결단을 내리자, 이때까지 말 한마디 없던 마스테마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칭찬을 건넸다.


“참으로 영민하십니다, 폐하.”

“···아까 말한 부지와 자금 조달 방식은 내각 회의를 통해서 나중에 전달해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럼 이야기는 다 끝났지? 좀 피곤하구나. 이만 물러들 가거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어느새 마스테마는 이 황실 놀이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내가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마왕군이 초토화한 폐허를 떠돌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이런 ‘사람 냄새’가 나만큼이나 퍽 그리울 수밖에.


약조도 받아냈겠다, 격식 있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마스테마를 따라 알현실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루스베리온은 할 말이 남은 것인지 나를 급히 붙잡았다.


“잠깐, 중요한 걸 깜빡했군.”

“더 의논해야 할 사안이 남았습니까?”

“아까 말한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뭐로 하면 좋겠는가?”

“흠···. 세상을 불태우는 검, 레바테인. 레바테인 프로젝트라고 명명하면 좋겠군요.”

“괜찮은 이름이군. 알겠네. 여봐라, 라피엘을 황궁 밖까지 모셔다드리거라.”


# # #


본격적인 연구는 차차 진행하도록 하고, 우선 루트리가에 있는 나의 저택에 가기로 했다. 이제 미친놈처럼 사냥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쌓인 여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전쟁의 영웅, 라피엘의 대저택]


여긴 7년 전, 그러니까 게임 시간으로 14년 전에 첫 번째 마왕을 쓰러뜨리고 상으로 받은 저택이었다. 그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집안 곳곳에 먼지가 가득했으나, 여전히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중앙 홀의 벽을 더듬거리며 불을 켜자, 주인인 나조차도 처음 보는 흑요석으로 만든 나의 동상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먼지에 덮인 동상을 빤히 쳐다보던 마스테마가 손가락으로 다리를 훑었다.


“이 먼지 좀 봐. 너 정도면 저택 관리인쯤이야 제국에서 알아서 보내주지 않아?”

“내가 보내지 말라고 했어. 어차피 쓰지도 않는 곳이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

“뭔데? 알현실에 지갑이라도 놓고 왔어?”

“아니, 그게 아니고 그 많은 에테르랑 플로지스톤을 어디서 구하지? 네가 그랬잖아. ‘농축 에테르’는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에테르를 모아도 부족하고, 고위 마법사들을 붙잡아 ‘인간 에테르’로 변환하는 미친 짓까지 해도 모자란다며.”

“···모아둔 것 없어?”

“뭐? 농축 에테르?”

“그래, 농축 에테르. 너 7명의 마왕을 모두 쓰러뜨렸잖아. 걔네가 떨어뜨린 것들은 어쨌어?”

“아, 설마 그게 그거였어? 인벤토리 창 부족해서 다 버렸는데···.”

“미쳤다, 진짜. 어떻게 보스가 떨어뜨린 아이템을 그냥 버릴 수가 있어?”

“···이럴 줄 몰랐지.”


정말 몰랐다. 몬스터를 쓰러뜨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전리품까지 살펴볼 여유 따위 없었다.

막대한 양의 마나를 품고 있는 에테르, 더구나 농축까지 된 물건이라면 굉장히 가치 있는 물건.

그걸 내가 몰라서 버린 것이 아니다.

정황상, 나에게 가치 있는 아이템이란 뛰어난 성능을 가진 장비 혹은 포션 같은 것뿐이었다.


중앙 홀을 ‘U’자로 감싸고 있는 계단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던가.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마스테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가만, 좋은 수가 하나 있어.”

“좋은 수라면?”

“나 말고 다른 용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했지?”

“응. 너와 비슷한 시기에 게임을 시작한 녀석이지. 한데 왜?”

“혹시 그 녀석은 지금 진행 상황이 어느 정도야?”

“어디 보자···. 아직 마왕은 구경도 못 했네.”


시작한 지 8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마왕을 한 명도 만나본 적도 없다고?

다 포기하고 어디 시골에 처박혀서 농사라도 짓고 있는 걸까.

어쨌든 그 녀석의 은둔생활은 나에게 있어서 호재임이 분명했다.


“좋아! 그 용사와 같이 파티를 맺어야겠어. 그러면 그 녀석이 잡아야 할 7명의 마왕을 나도 잡을 기회가 생길 테니까. 마스테마,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진 알지?”

“그, 그게···.”


우물쭈물하던 마스테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뗐다.


“···몰라. 그리고 그 용사는 내가 어떻게 하질 못하는 존재야. 나 말고 다른 녀석과 계약을 맺어버린 터라···.”

“뭐? 아니 그보다도, 너 말고 이런 짓을 하는 존재가 또 있었단 말이야?”

“내가 말 안 했나? 불꽃의 치천사 우리엘. 내 오랜 적수이자 친구지.”

“하아···. 시작부터 난관이구먼.”


천사고 나발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거 어째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개발자인 마스테마조차도 찾을 수 없는 은둔형 용사라니.

그 녀석을 어떻게 찾아야 하지?


띵동-


정적이 흐르는 대저택에 별안간 울리는 초인종 소리.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것도 수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대저택에 대체 누가 온단 말인가.

루스베리온 황제가 사람을 보내준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조만간 고용인들을 구해 이곳을 사람 사는 곳답게 정비할 생각이 있긴 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초인종 소리를 들은 마스테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가락에 묻어있는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일 처리 하나는 정말 빠르네. 벌써 하인들이 왔나 본데?”

“···흐음.”

“핵무기 개발에 사용할 부지도, 이처럼 빨리 처리해주면 좋으련만···.”

“아마 하인들은 아닐 거야. 내가 여길 쓰기로 한 건, 너와 나를 빼고 아직 아무도 모르거든.”

“어머, 그랬어? 이야기 다 끝내놓고 날 여기로 데려온 줄 알았더니.”

“누가 왔는지 가서 확인하고 올 테니, 그동안 네가 쓰고 싶은 방이나 정해놔.”

“알았어.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마스테마가 방을 정하러 간 사이, 현관의 웅장한 청동 문 앞에 홀로 섰다. 나의 영웅담을 조각해놓은 그 문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엘인지 우리 애인지 하는 천사 녀석이, 나를 구원해주진 못할망정 방해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청동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희미한 현관 등 아래엔 가죽을 씌운 짐가방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단발머리 하녀는 두 손을 배꼽 위에 포개고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채,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45도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라피엘 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난 하인들을 고용한 기억이 없다만?”

“어라? 그러셨나요?”


말투는 분명 당황한 것처럼 들리지만, 행동거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녀는 마치 이것 또한 예상하였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에서 하얀 날개가 돋아나왔다.


“이런, 내가 너무 서둘렀네. 정말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더는 내 정체를 숨길 필요 없겠지?”


하피? 아니다.

이 여자는 하피 따위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존재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광배(Halo)가 이를 증명하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집에 잘 왔어, 우리엘. 안 그래도 마침 널 만나고 싶었어.”

“어머, 우리가 구면이었나?”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우리엘의 짐가방을 들어주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했다. 나의 호의에 가벼운 눈인사로 보답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두꺼운 청동 문을 꼭 닫으며 소리쳤다.


“마스테마! 이리 내려와. 네 친구가 왔어.”


# # #


삐익-


천사, 악마 그리고 전설의 용사. 응접실을 가득 메운 이 어색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였다. 정적 대신에 향긋한 홍차 향이 응접실을 메우고 있을 때였다.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마스테마가 우리엘의 잔에 차를 넘치게 부었다.


“많이 마셔. 네가 좋아하는 얼그레이 홍차야.”

“흐음, 이 향기와 영롱한 빛깔 좀 봐. 넌 우악스럽게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히 섬세하다니까.”

“어머 얘는. 천계에서도 알아주는 미식가인 너의 더럽게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려면 이 정도는 신경 써야지.”

“호호호, 친구를 이리도 끔찍하게 생각해주다니. 조금 눈물이 나려고 하는걸?”


칭찬인 듯 욕인 듯 모호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기 싸움을 하는 두 여인.

한쪽 편을 들며 이런 시시한 싸움에 말릴 생각 없다. 내가 알 바인가?

서론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우리엘. 네가 계약을 맺었다는 용사가 어딨는지 알려줘.”

“우리 엘다라드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에게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 아니야. 위치 정도는 알려줄 수 있잖아?”

“싫은걸?”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안 된다지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겠다.

현실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이쪽 세상에서만큼은 신처럼 구는 존재가 고집을 피우고 있다.

아무리 레벨이 255라고 한들, 내게 신을 설득할 재주는 없었다.


“···그러면 우리 거래를 하나 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넘어간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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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23.09.23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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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23.09.20 4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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