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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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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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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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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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연재 중단)

DUMMY

늦은 오전, 한산하던 대저택은 출범식에 참여하는 수많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볐다. 화려한 복장으로 치장한 귀족들 못지않게, 정성껏 꾸미고 온 페르미와 슈뢰딩거가 각자 마실 것을 하나씩 집어 들고 인사를 하러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페르미 교수. 연구실에 있을 때랑 분위기가 사뭇 다른걸?”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데, 대충 입고 올 순 없지 않겠어요?”

“하하, 누가 보면 귀족 영애인 줄 착각하겠어. 오늘 참석한 사람 중에 가장 우아해 보이는데?”

“에이, 농담도 그런 농담을···.”


농담이 아니다.

페르미가 먼저 와서 인사하지 않았다면, 솔직히 누군지 못 알아봤을 것이다.

주로 만화 같은 곳에 단골로 등장하는, 집 안에 있을 때와 외출할 때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

그녀가 딱 그런 캐릭터였다.


이번엔 페르미의 옆에 바짝 붙어있는 슈뢰딩거가 손 인사와 함께, 가벼운 안부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셨어요?”

“어, 안녕. 슈뢰딩거 네가 입은 그 옷도, 페르미 교수가 입은 것 못지않게 퍽 예쁘네. 곤드와나의 아웨란들이 입는 복식을 뭐랄까, 상당히 현대화한 것이···.”

“후후,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이건 제 고향에서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제국에서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아웨란은 본 적이 없는데?”

“전 곤드와나 출신이에요.”

“뭐? 제국 태생의 아웨란이 아니었어?”

“10살 때 유학을 왔다가, 어쩌다 보니 눌러앉게 되었죠. 그 바람에 곤드와나보다 루트리가 제국이 제 고향처럼 되어 버렸지만요. 지금은 여기가 더 집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거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네. 나도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니까···.”

“서울? 거긴 또 어디에요? 처음 듣는 지명인데?”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헛소리니까 잊어.”


곤드와나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동양’ 이미지를 가진 대륙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을 하는 동안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곳이다.

조만간 기회가 생기면, 곤드와나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어째서인지, 거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 음식이 뼈에 사무치게 그립네.


한창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던 슈뢰딩거가 마스테마 쪽으로 걸어가며, 나에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잠깐 실례할게요, 라피엘 님. 마스테마 씨? 저번에 물어보셨던 것 있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슈뢰딩거와 마스테마가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쟁반 위에 레몬즙으로 맛과 향을 낸 탄산음료 잔을 하나 집어, 페르미와 살짝 건배를 나눴다.


“프로젝트 상황은 어때? 마스테마랑 이야기는 좀 나눠봤어?”

“어제 잠깐 만나서 짧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주 똑똑한 분이시던걸요?”

“될 것 같아?”

“···뭐가요?”

“뭐겠어. 핵무기 개발 말이야.”

“저기, 라피엘 님?”

“응?”

“오늘이 출범식이라는 걸 잊으셨나요?”

“앗, 그랬었지···. 미안해, 어쩌다 보니 내가 너한테 압박감을 심어주는 것처럼 돼버렸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반드시 해낼 테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든든하네.”

“좀 여유 있게 기다려보세요. 그게 재촉한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그런 물건도 아니잖아요?”

“···하하.”


멋쩍은 웃음으로 이 상황을 넘어가려는데, 슈뢰딩거가 페르미의 팔짱을 확 잡아끌었다.


“자, 안부 인사는 이 정도로 끝내고 어서 아멜리아 공녀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굳이 그래야 할까?”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가봐야지. 더 지체하다간, 불같이 화를 내실 거라고.”

“귀찮은데···.”

“그럼 라피엘 님, 출범식 끝나고 이따 뵈어요!”


페르미와 슈뢰딩거가 다녀간 이후, 수많은 사람이 나에게 안부 인사를 하러 찾아왔다. 따로 명찰을 달고 다니진 않으나, 나를 대하는 태도만으로 그들이 제국을 이끌어가는 두 집단 중 어디에 속해있는지 구분할 수 있었다.


“저택 관리에 무심하시다더니, 이렇게 멋진 집을 가지고 계셨을 줄이야···. 훌륭합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해. 하녀장에게 말해서 시정하라고 할 테니까.”

“아, 그 천족 하녀 말입니까? 허허, 라피엘 님 정도 되면 천족을 하녀로 부릴 수 있는가 보군요. 과연 전설의 용사님다우십니다. 꽤 부럽군요.”

“거, 부러울 것도 많다···.”

“흠, 저는 언제쯤 천족 하녀를 부릴 정도로 권세를 얻을 수 있을까요?”

“···에버가드 장성 밖 잃어버린 땅을 모두 수복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쌓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쉽지 않겠군요. 허허.”


이 자는 충성파다.


“라피엘 님! 저번에 드래곤 게이트에 갔다 오셨다면서요?”

“응? 그랬었지. 오크들에게 볼 일이 있어서.”

“오크들이요? 그런 일이라면 저희에게 맡겨주셔도···.”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할 중요한 일이었어.”

“그러셨군요. 아휴, 그런 거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쪽 지리에 밝은 자들을 뽑아서 보내드렸을 텐데.”

“그곳 지리는 나도 빠삭하니까 괜찮아. 밥 먹듯 들락거리던 곳인데, 뭘.”

“아무튼,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이 자는 민중파다.


루스베리온 황제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충성파’와 용사인 나를 적극 지지하는 ‘민중파’.

표면상으로는 서로 협력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서로에 대한 견제와 갈등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

나와 황제가 정치적 파트너면서, 동시에 은밀하게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쟁? 엄밀하게 말하면, 황제 쪽이 나를 일방적으로 견제하는 것에 가깝다.

왜 그러는 것일까? 내 나름대로 추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루스베리온과 나의 관계는, 비유하자면 선조와 이순신 장군의 관계에 가깝다.

내가 황제가 되겠다고 야심을 드러낸 것도 아닌데, 저 스스로 너무 과민반응 하는 것이지.


복잡한 제국 내 사정을 잠시 잊고, 귀족들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며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출범식을 주최한, 그리고 주인공을 자처한 그 사람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일부러 지각하다니. 그래도 황제다 이건가?”


내 옆에서 함께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마스테마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검지를 입에 갖다 댔다.


“쉿. 지나가던 사람이 들으려면 어쩌려고 그래?”

“여기서 며칠 지내더니, 아주 루트리가 사람이 다 됐네, 마스테마?”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입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들으면 뭐? 자기들이 뭘 어쩔 건데? 황제에게 가서 꼰지르기라도 하겠대?”

“기억해. 황제는 우리의 최대 후원자야. 꼬투리 잡혀서 좋은 것 없어.”

“날 너무 무시하지 마. 내가 없었으면 이것들은 벌써···.”

“야, 야. 저기 온다. 어서 예를 갖춰.”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시종장이 저택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어서 청동 문을 열라고 지시한 뒤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다들 무릎을 꿇어, 폐하께 경의를 표하십시오!”


자신이 황제임을 증명하는 거대한 훈장.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왜 매고 있는지 이유를 모를 사선 방향의 널찍한 띠.

딱히 전투에 나간 적도 없으면서,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늘 챙겨입는 화려한 갑옷.

귀한 자리 나온다고 힘을 잔뜩 주셨구먼.


루스베리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정부 수반들 사이에서, 가장 앞장서서 따르던 그레고리 준장이 눈에 띄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곧장 내 앞으로 다가온 황제는 친근하게 악수를 청했다.


“오늘같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함께 빛내줘서 정말 고맙네, 라피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이거야 원···. 내가 괜한 소릴 해서 귀찮게 한 건 아닐까 모르겠네. 초라한 오두막에서 해도 된다고 했거늘···.”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가 오신다는데 그런 누추한 곳으로 모실 수야 없지요.”

“하하, 그런가?”

“자, 폐하도 오셨고 하니···. 우리엘? 손님들을 홀로 안내해드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를 내가 모를 리 없다.

예를 갖춰 황제를 홀로 모신 뒤, 본격적인 출범식을 거행했다.


어젯밤에 우리엘이 첨삭해준 원고를 들고 청중들 앞으로 나가 목을 가다듬었다. 평소 반말이 입에 붙은 나였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최대한 예를 갖춰 존댓말로 첫마디를 꺼냈다.


“다들 이렇게 모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2년. 길게는 3년 동안 여러분들의 열렬한 지원과 지지가 이어질 수 있다면, 마왕군과 몬스터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잃어버린 고토(古土)를 반드시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루스베리온이 가볍게 박수를 치자, 뒤따라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왔다. 뒤이어 원래 원고에 없는 말이었으나, 나는 미리 생각해둔 한 마디로 축사를 마치려는 때였다.


“···나는 이제 용사요, 세상의 구원자가 되었도다. 이런 포부 넘치는 마지막 말로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처음보다 더 우렁차진 박수가 이어지던 찰나, 충성파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쪽에서 날카로운 협박 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라피엘 님! 그 핵무기라는 마법은 당연히 황제 폐하에게 귀속되는 것이겠지요? 그런 어마어마한 권능은 오직 세상에 한 분뿐인 절대자, 황제 폐하만이 다스릴 수 있으니까···.”


당연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가.

이런 무기를 이 게임에 속한 누군가에게 쥐여줬다간, 반드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쪽 세상에서 핵무기는 본래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서도 안 될 엄청난 무기니까 말이다.

일전에 레프가 한 짓만 봐도 그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민감한 주제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있던 민중파 쪽 인물 하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물음에 정면으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 누군가 단독으로 소유해선 안 될 힘입니다. 악에 맞서는 자들 모두가 함께 소유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경의 말은 마치 제국에게 복속되는 것을 거부하는 다른 왕국들, 예를 들면 슬로베스카 왕국, 바다 건너 아웨란 족들의 연합왕국, 숲속에서 은둔하는 엘프들, 깊은 지하 동굴 속을 뒤지는 드워프들까지 이 무기를 쓸 권리가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안될 건 또 뭐랍니까? 우리를 이 좁은 장성 안으로 밀어 넣은 마왕군을 무찌를 수만 있다면, 그 누가 써도 상관없지요.”

“이 무슨 큰일 날 소릴! 그랬다가 이게 우리 제국을 시기하는 잠재적 적들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잠재적 적들? 거참 위험한 소릴 하십니다? 여기에 적들이 어디 있답니까?”

“어쨌든, 그 신성한 힘은 반드시 우리 제국이 독점해야만 하는 힘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폐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데다가 심지어 아직 완성된 무기도 아닌데, 출범식에 참여한 자들은 서로 핵무기의 소유권에 대해서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출범식 자리에서, 루스베리온은 말을 아끼고 있다.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간 민중파는 물론이고, 그들의 수장 격인 나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서다.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는다 뿐이지, 사실 나의 정치적 태도를 일정 부분 대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불순 분자들! 너희들은 애국자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어!”

“뭐라고? 불순 분자? 대전쟁 때 한 것도 없는 너희들이 그게 할 소리인가?”

“한 게 없다니? 말 다했나? 이런 배은망덕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뒤에서 골드 주머니만 뿌리면 그게 다인 줄 알아? 피를 흘린 건 바로 우리야!”


점점 더 불타오르는 홀 내부를 진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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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23.09.25 36 0 13쪽
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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