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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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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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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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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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열역학이 어쩌니, 유체역학이 어쩌니.

장황한 설명 끝에 다다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달에 가고 싶다.

예후디엘이 로켓 공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예후디엘은 프리스타일 농구 선수처럼, 들고 있던 달 모형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돌렸다.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걸작이지. 동시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물건이기도 하고.”

“현실에서도 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 근데 여기선 어떤 기능을 하는데? 장식이 아니었어?”

“장식이라니 무슨 소리! 마력의 힘으로 자전하는 이 행성이 CPU 역할이라면, 달은 그 쿨러쯤 되는 존재야.”


한때 용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예후디엘의 설명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쉽게 말해, 달은 게임이 원활히 돌아가게 만드는 무언가라고 요약할 수 있다.


예후디엘이 달 모형을 제자리에 내려놓는 사이, 한여름이 머리에 쥐가 나기 일보 직전인 얼굴로 내게 귓속말했다.


“야, 이게 무슨 이야기야?”

“이쪽 세상에선 달이 마니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이지.”

“아니, 그건 나도 대충 알겠는데, 예후디엘이 달에는 왜 가겠다는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귀가 유난히 밝은 것인지, 우리의 귓속말을 용케 들은 예후디엘이 귀를 쫑긋거리며 다가왔다.


“달에 가려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아이고, 깜짝이야.”

“내가 전임자라는 이야기는 들었겠지? 바로 그 문제 때문이야.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난 앞으로 3년 길게 잡아도 4년 뒤에 여길 떠나야 해. 그전에 내가 만든 작품을 마지막으로, 직접 눈앞에서 보고 싶어서 그래.”

“3, 4년 남았다···. 너도 우리와 같은 처지였구나?”

“응? 너희들, 이 게임을 오래 했나 보다? 그럼 어디 레벨들 좀 한번 볼까?”


[파티장: 라피엘(Lv 255) (상태: 접속 중)]

[파티원: 엘다라드(Lv 17) (상태: 접속 중)]


우리의 레벨을 본 예후디엘이 눈을 비비며 두세 번 더 확인했다.


“255레벨, 놀라운데? 17레벨, 이것도 다른 의미에서 놀랍고···. 아, 자꾸 이야기가 딴 길로 새네. 금방 뭐라고 했더라? 맞아, 성능 좋은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그걸 어디에 쓸 생각이야?”

“그 전에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뭔데? 말해봐.”


아직 예후디엘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덜컥 내 계획을 먼저 술술 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엘이 나를 돕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직 미심쩍은 상황인데, 오늘 처음 만난 천사는 오죽하랴.

그녀는 NPC와 다른 존재이기에 선택지 따위는 없으나, 내 나름대로 두 가지 정도 질문을 추려냈다.


[→ 우리엘 하고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슬라베스카에서 널 만난 적이 없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아주 철천지원수 취급이더구먼···.”

“또 그놈의 우리엘 이야기야?”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그 천사는 여기 있는 한여름의 계약자이자, 내 계획의 동조자니까.”

“흐응? 그게 뭐 어쨌다고?”

“앞으로 같이 일할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어야지. 안 그래?”


이건 이른바 직원 면담 같은 거다.

무릇 훌륭한 관리자라면, 직원들이 겪는 고충이나 그들 사이의 불화 정도는 빠삭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혹여 프로젝트 진행 중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예후디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었다.


“후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말해줄게. 난 이 게임의 기획 단계 때부터 참여했던 천사야.”

“기획자 겸 개발자였구나. 그 두 가지를 모두 도맡아 했었다니, 대단한데?”

“후훗···.”


예후디엘의 입꼬리가 슬며시 다시 올라간다.

아무래도 이 천사는 칭찬에 약한 여자임이 틀림없다.

그런 그녀의 약점을 파고들면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아무튼 알파 버전이 완성되어갈 때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과 더불어 네 번째 세라핌(치품천사)으로 추천받을 수 있었어.”

“이야, 세라핌씩이나? 천사들 사이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존재들이잖아? 꽤 잘나갔구나, 너?”

“중간에 입에 침도 안 바른 칭찬을 하면서, 자꾸 말 자르지 말아줄래?”


반응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어렵다. 이 게임.


“하여튼 바로 그때 우리엘이 끼어든 거야. 당시 QA 팀에서 근무하던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온갖 버그를 들먹이며 나를 마구 깎아내렸지. 개발을 함께 맡았던 악마, 마스테마한테 한 것보다 더 심하게! 덕분에 세라핌 자리에 오를 기회도 멀리 날아가 버렸지.”

“아, 그런 이유로···. 한데, 생각해보면 우리엘은 자기 일을 충실한 것밖에 없지 않아? 그것만 들어봐서는, 너한테 증오를 살만한 짓은 안 한 거 같은데?”

“뭐?”

“아니, 생각해봐···. 버그 덩어리 게임을 누가 하고 싶어 하겠어? 아무리 서사가 재미있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게임이면 뭐해? NPC가 벽에 끼거나, 몬스터 시체가 제멋대로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퀘스트 진행이 불가하거나 하면 안 되잖아.”

“그, 그건 맞아. 맞는데···. 사, 사과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사과는 우리엘이 아니라, 네가 해야 하겠다.”

“···너 일부러 나 긁으려고 그러는 거지?”

“난 그저 논리적으로 설명해준 것뿐이야. 그건 그렇고···.”


[→ 슬라베스카에서 널 만난 적이 없는데?]


“예전에 퀘스트 때문에 여길 들락날락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예후디엘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거든? 풍문으로라도 한 번쯤 들어볼 법했을 텐데.”

“예전이라면, 언제?”

“글쎄, 한···. 현실 시간으로 6, 7년 전쯤?”

“그때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서 로켓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어. 그러니 나를 만날 이유가 없었겠지. 잘 알다시피, 난 NPC가 아니니까.”

“거참 이상하네···.”

“이상하다니?”

“루트리가 출신의 어떤 사업가가 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거든?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면서, NPC들이 너를 어떻게 알고 있지?”

“자식이 부모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해?”

“아, 그런 이야기?”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제국력으로 3년 전에 돈 좀 있다는 녀석들을 불러다 시연회를 했었지. 아마 그때 알았을 거야.”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어. 그때 시연회를 열 정도였으면, 지금쯤 연구가 완성되고도 남았겠지?”

“반복적인 시험 발사와 개선 작업만 남은 단계야. 개발 과정에서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라···. 아, 잠깐 기다려봐.”


창고로 들어간 예후디엘이 들고 온 것은 작은 로켓의 부품들이었다. 어릴 적 과학의 날 행사 때 쓰던 물로켓처럼 생긴 것을, 쪼그려 앉아 이리저리 조립하던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내 정신 좀 봐. 이쯤 하면 궁금증은 다 풀렸겠지? 이젠 내 질문에 답해줬으면 하는데.”

“성능 좋은 미사일이 왜 필요하냐? 이거 말이지? 거기에 핵무기를 탑재할 생각이야.”

“···핵무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핵무기?”

“맞아. 이 게임을 클리어하려면, 그걸 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

“아하, 인제야 이 먼 곳까지 날 찾아왔는지 잘 알겠군. 나를 구워삶아서 핵미사일을 만드시겠다?”

“구워삶다니. 이건 너도 얻어가는 것이 무척 많은 제안이야. 달에 가시겠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돈은 내가 대줄 테니까. 대신, 핵무기를 발사할 미사일만 내게 만들어줘. 네가 할 일은, 그거면 충분해.”


배급에 의존하며 반지하에 살아가는 가난한 천재 공학자.

그런 그녀를 제한 없이 지원해주겠다는 후원자.

우린 썩 좋은 한 쌍이 될 여지가 다분했다.


나의 제안에 예후디엘은 일말의 고민 없이 곧바로 수락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천사답게, 또한 게임 개발자답게 ‘IF 문’을 전제로 깔아놓았다.


“좋아. 그런 거라면 기꺼이 도와주도록 하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어?”

“···그런 말도 알고 있어? 어쨌든,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단, 조건이 하나 있어.”

“무엇이든 들어줄게. 말해봐.”

“아까 회색 광장에서 식량 배급을 해주는 거 봤지? 원래 슬라베스카는 이렇게까지 힘든 사정이 아니었어.”

“그건 나도 좀 눈에 걸리더라. 내 기억에 이렇게까지 힘든 상황은 아니었던 거 같았는데···.”

“이게 다 남부지방을 오크 놈들이 장악한 탓이야. 왕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식량을 그곳의 곡창지대가 담당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말인데, 거기 있는 오크들을 몰아내 주고 오면 안 될까?”

“···그냥 순순히 루트리가로 오면 안 될까?”

“너희들이 어떤 존재인지 여기로 빙의하면서 망각했나 본데, 이건 게임이야. 시련 없는 용사는 이 세상에 없는 법이란다? 덧붙여 떠나기 전에, 오랫동안 신세 진 이 왕국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하는 부탁이야.”


잠깐만, 오크라고?

우리가 물리쳐야 할 마왕도 오크 아니었나?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어, 한여름을 급히 불렀다.


“여름아! 네 퀘스트 목록 좀 다시 보자.”

“퀘스트 목록? 가만있자···. 여기.”


[메인 퀘스트]

[1장: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 워로드 휘하의 군단장 4명을 모두 제거하십시오.]

[○ 이라의 마왕, 오크 워로드 킬그로트를 쓰러뜨리십시오.]


“예후디엘, 그 남부지방을 장악했다는 오크 놈들···. 혹시 킬그로트라는 놈이 이끄는 무리야?”

“맞아, 바로 그놈.”

“이야, 이게 이렇게 아다리가 맞네. 좋아, 네 부탁대로 남부지방으로 가도록 할게.”

“아다리가 맞다니? 무슨 좋은 일 있어?”

“마침 우리가 제거해야 할 대상이 바로 그놈이었거든. 이거 완전 일타쌍피네.”

“그거 잘됐네. 그러면 어서 가서 해치우고 와. 나머지 일은 그때 다시 의논하자.”


# # #


[검은 땅, 체르레시야 북부]


루트리가였으면 벌써 해가 졌을 시간이지만, 얼음 덮인 이 땅은 아직이었다. 덕분에 큰 난관 없이 체르레시야 북부의 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땅 대부분은 이미 오크의 발아래 짓밟혔지만, 아직 이렇게 문명의 손길이 남아있는 곳이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보다, 해가 예상보다 늦게 떨어졌다는 것이 더 큰 다행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추위에 터무니없이 약한 한여름을, 어미 닭처럼 품고 말을 몰아야 했을 것이다.

그거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혼자 말을 탈 때보다, 두세 배는 족히 힘들거든.

말 입장은 더 이상 말해 뭐하겠나.


“진짜 얼어 죽는 줄 알았네. 으···.”

“가르쳐주니까 이제 제법 잘 타네. 근데 너, 추위에 약해도 너무 약한 것 아니야?”

“난 여름에 태어났단 말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추위에 약하지.”

“그런 부분까진 이름값을 할 필요는 없는데.”

“뭐어?”

“그런 식이면 난 이름이 오판호라서, 이 게임을 시작하는 오판을 저지른 거겠네?”

“어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뭘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받냐···. 이런 날씨에, 맞바람까지 맞으면 얼마나 추운 줄 알아?”

“···농담이야, 농담. 자,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여관이나 찾아보자. 밖에 더 있다간 너 감기 걸리겠어. 이 동네는 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조차도 벌벌 떨 정도로 추워지니까.”

“저, 정말로?”

“오, 마침 저기 괜찮은 여관이 하나 있네. 들어갈까?”

“빨리 들어가자, 빨리!”


한여름이 타고 있던 말까지 여관 앞에 고삐를 단단히 묶어놓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불행하게도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뜨끈한 스튜나 푸근한 인상의 여관주인 같은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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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3 0 13쪽
9 9화 23.09.23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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