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65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09.25 12:45
조회
34
추천
0
글자
13쪽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DUMMY

[메인 퀘스트]

[1막: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 워로드 휘하의 군단장 4명을 모두 제거하십시오.]

[○ 이라의 마왕, 오크 워로드 킬그로트를 쓰러뜨리십시오.]


오크 워로드라니?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마왕은 마족의 왕을 의미하는 것 일 텐데?

내가 쓰러뜨렸던 7명의 마왕은, 분명히 모두 다 마족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우리엘? 사악한 걸로는 오크도 만만찮지만, 놈들은 마족이 아니잖아?”

“마왕에는 마족 출신의 왕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야. 사악한 것들의 왕은 모두 마왕이라고 할 수 있지.”

“좋아, 거기까진 이해하겠어. 근데 왜 여름이는 나랑 목표가 다른 거야? 용사들의 퀘스트가 다 똑같은 게 아니야?”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 네가 마지막 일곱 번째 마왕을 쓰러뜨렸을 때, 엘드라드의 메인 퀘스트는 실패 처리 후 재구성됐지. 이건 너의 선택에 따른 결과야.”

“아깝다. 목숨이 걸린 악마의 게임만 아니었어도, 정말 재밌게 했었을 텐데···.”


이 얼마나 갓겜인가.

결코 비꼬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서 변화하는 동적인 서사구조와 끊임없는 새로운 경험의 선사.

게임 불감증에 시달리던 내 입맛에 딱 맞는 게임이었다.


“좋아,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자. 여름아, 너는 잠깐 나 좀 볼까?”


천사와 악마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 복도로 흩어지는 사이, 칠판을 닦던 한여름이 손을 털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너는 이따 내 방으로 와.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래.”

“화, 확인해볼 것이 있다고?”

“우린 이제 파티잖아. 네 장비를 한번 점검해주려고.”

“아···. 난 또···. 알았어! 이따 봐.”


내일 아침 동이 트면, 한여름을 데리고 우르사그라드로 떠날 생각이었다. 마왕 따위는 만렙인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파티 사냥을 진행하려면 반드시 파티원과 동행해야만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같은 날 밤, 나는 한여름이 들고 온 장비를 천천히 살펴보고 있었다.


[무기: 헌팅 보우(일반)]

[방패: 없음]

[투구: 밤까마귀의 깃털이 달린 머리 끈(고급)]

[갑옷: 평범한 모험가 천옷(일반)]

[액세서리: 없음]


활을 능수능란하게 쓰는 엘프 궁수.

거기에 엘프의 종족 특성인 ‘민첩’을 극대화하기 위한, 활동성을 최대한 살린 천옷.

너무나 당연한 조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대단히 문제 소지가 있다.

한여름이 평범한 엘프였으면 몰라도, 그녀는 나와 같은 용사이기 때문이다.


“···여름아. 이게 다 뭐냐?”

“헤헤, 네가 쓰고 있는 장비에 비하면 좀 보잘것없지?”

“수준은 둘째치고···.”

“어쩔 수 없어. 난 몬스터 사냥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네 검은 어딨어? 성검 말이야.”

“아, 이거?”


[잠들어 있는 성검(★☆☆☆☆), 아스칼론(신화)]


한여름은 장비 상자에서 용이 칼날을 삼킨 것처럼 생긴 아스칼론을 꺼내 건네주었다. 꽤 멋진 검이었으나, 새것처럼 번쩍이는 그 자태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후···. 너 이 검 써본 적은 있어? 없지?”

“내가 우리엘한테 부탁해서 괜히 엘프로 만들어달라고 했겠어? 활이 내 주 무기야.”

“활도 충분히 강한 무기긴 하지만, 넌 용사잖아. 이런 좋은 무기를 놔두고 왜 헌팅 보우 따위를 쓰고 있는 거야, 대체?”

“난 궁수 캐릭터를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정말 미치겠다, 미치겠어. 눈이 있으면 두 무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봐. 누가 봐도 성검이 훨씬 좋지?”

“그,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너 왜 그러냐 정말, 어? 자체적으로 하드코어 모드라도 하겠다는 거야? 싸우는 게임 잘 못 한다며.”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짜증 섞인 다그침에 한여름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그래, 맞는 말이다. 이건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다.

수면 아래에 애써 가라앉혀 놓은 조급함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왔나 보다.


“미안해. 내가 너무 말이 심했어.”

“아니야. 네 말이 맞아. 난 용사로서 실격이야. 성검 쓸 줄도 모르고···.”

“뭘 또 그렇게까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잖아? 몬스터만 잘 잡으면 됐지.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자세히 따지고 보면, 현재 상황에서 한여름이 반드시 아스칼론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나야 독고다이로 다녔으니까 효율을 가장 중시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

어쨌든 마왕의 심장에 칼을 꽂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크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볼 수 없었던 침울한 얼굴의 한여름에게 헌팅 보우를 건네며,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활을 계속 쓰고 싶어?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더는 몰아세우지 않을 테니까.”

“···응.”

“알았어. 대신 네 성검은 내가 키워줄게. 이런 무기를 놀리고 있으면 아깝잖아.”

“그러는 편이 좋겠어. 창고에 처박아두는 것보다야.”


[아이템 소유권 설정 완료]

[‘아스칼론(신화)’의 소유권이 ‘라피엘’과 공유되었습니다.]


아스칼론을 검집에 넣어 허리춤에 차고서, 헌팅 보우를 들고 말했다.


“하지만 명색이 용사인데, 이런 허접한 걸 들고 다녀서야 쓰나.”

“그래 보여도 토끼나 사슴 같은 건 잘 잡는다, 뭐···.”

“따라와. 나와 함께 장비상점에 가자.”

“상점? 너무 늦은 시간이라 문 연 곳이 없지 않아?”

“후후, 내가 누구야? 대전쟁의 영웅, 라피엘 님 아니냐.”


# # #


한여름은 가게를 가득 채운 가지각색의 아이템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살펴보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궁수들이 흔히 착용할법한, 가죽과 천이 혼합된 방어구 세트를 골라왔다.


“이거 어때?”


일단 상의는 그렇다 치고 가죽 바지가 너무 짧아, 맨다리가 다 드러날 지경이다.

민첩성을 중시하는 궁수의 전투 방식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디자인이겠지만, 이딴 것이 ‘방어구’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크게 상관은 없다. 게임에서 말하는 방어력은, 현실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괜찮네. 그걸로 할래?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일단 입어 보고 결정할래.”

“좋은 생각이야. 참고로 탈의실은 저쪽이야.”

“알았어. 갔다 올게. 흠, 이거 나한테 너무 작으려나? 어디 한번 입어볼까?”


총총걸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을 보니, 나에게 쌓인 감정은 이미 훨훨 날아간 모양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더니.

게임이든, 현실이든 돈이 가진 힘은 과연 대단한 것이었다.

쇼핑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한여름의 신난 뒷모습을 함께 쳐다보던 장비상점 주인이, 두 손을 비비며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라피엘 님. 매번 저희 가게를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거 참, 미안하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아뇨, 아뇨!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피엘 님의 부탁이라면, 언제가 됐든 열어드려야지요.”


루트리가 시내에서 내가 단골이 아닌 가게는 없다.

장비상점, 물약 상점, 대장간 기타 등등···.

255레벨까지 도달하는 동안, 이런 상인 NPC에 쓴 돈이 얼마인지 셀 수조차 없다.

그러니 이런 특급 VIP 대우 정도는 당연하였다.


“그것참 고마운 말이네. 한데, 방한복은 없나? 어째 안 보이네?”

“방한복 말씀이십니까? 아직 겨울철이 아니라서 창고에 있는데···. 방한복은 갑자기 어쩐 일로?”

“내일 슬라베스카 왕국으로 떠날 예정이라서 말이야. 자네도 잘 알다시피, 거긴 여기보다 좀 춥잖아?”

“허허, 그건 그렇죠. 흠, 근데 라피엘 님은 이미 방한복이 많지 않으신가요? 저희 가게에 새로 들어온 물건이···.”

“아, 내 것 말고 저 엘프가 입을 것이 필요해.”

“어이쿠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부탁해.”


장비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한 우리가, 다음으로 갈 곳은 대장간이었다. 술이 덜 깬 얼굴로, 멍하니 화로를 지켜보던 수염 덥수룩한 드워프 대장장이가 내게 툴툴댔다.


“블러디 헬. 기다리다 늙어 죽을 뻔했네. 이제야 오냐?”

“최소 300년은 사는 드워프 주제에 엄살은. 그리고 너도 방금 막 나왔으면서 뭘 그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날 불러낸 이유가 뭐야? 한창 쭉쭉 마시고 있었는데.”

“실패할 위험 없이 강화할 수 있는 최대 수치가 몇이었지?”

“그거 물어보려고 날 불러낸···.”

“몇이냐고?”

“8. 아, 아니. 9. 9야.

“그러면 여기 있는 아이템들 싹 다 9까지 강화해 줘.”

“···달이 서쪽에서 뜰 일이네. 네가 동료를 데리고 오다니? 거기다가 아이템까지 직접 강화해 주고?”

“군소리 말고 일이나 시작하지 않을래?”

“예, 예. 그러합죠.”


쉬익- 쉬이익-


나의 재촉에 대장장이가 힘차게 풀무질한다.

그가 투박한 손으로 있는 힘껏 망치를 두드리자, 장비들의 성능이 쭉쭉 올라간다.

하나 재밌는 점은 천으로 만든 옷도, 나무로 만든 활도 저 망치에 닿으면 강화가 된다는 점이다.


[강화 완료: +9강]


어느새 일을 모두 마친 드워프가, 의뢰받은 아이템들을 돌려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야간수당까지 합쳐서 1.5배 더 줘.”

“훌륭하게 일을 마쳤으니 2배로 주도록 하지.”

“용무 끝났으면 가봐. 술을 마저 마시러 가야 하니까.”

“다음에 또 올게.”

“오지 마.”


끼익-


새 신발을 사고 나면 신고 있던 신발을 쇼핑백에 담아가는 것처럼, 대장간을 나서기 전 새로운 장비를 착용한 한여름이 방어구의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보며 나를 올려다봤다.


“고맙긴 한데, 돈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희귀 등급 아이템도 모자라, 강화까지···. 이거 너무 부담스러운데.”

“희귀 등급이라 해봐야, 16레벨제 아이템은 별로 비싸지도 않아. 그리고 어차피 남는 게 돈이야.”

“그렇다면···. 고마워. 잘 쓸게.”

“가는 길에 맛있는 와플 하나 사주고 싶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어서 돌아가자.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니까.”

“알았어, 후훗.”


아무리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해도, 자꾸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한여름이었다.


# # #


[루트리가 공항의 VIP 라운지]


- 우르사그라드행 공중 여객선이 연착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승객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쪼옵- 쪼옵-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던 한여름이 나를 힐끔 쳐다보며 하품했다.


“하암, 괜히 일찍 일어났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천천히 나올걸.”

“잠깐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올게.”


앳된 얼굴의 지상직 여직원 한 명이 라운지 입구 근처에서, 프록코트를 입은 중년의 사업가 앞에 두고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죄송합니다, 손님.”

“···그래서 언제 공중 여객선이 뜰 수 있다는 거야?”

“그것은 저희도 어떻게 장담할 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중요한 사업 미팅이 있단 말이야!”

“정말 죄송합니다.”

“에잇, 됐어. 쯧쯧.”

“죄, 죄송···.”


본인이 어찌하지 못하는 클레임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여직원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죄송합니다!”

“아, 아니. 뭐라 하려는 건 아니고, 연착된 이유 정도만 알 수 있을까?”

“앗, 라피엘 님! 그게···. 항로에 드래곤이 출몰했다고 해서···.”

“뭐야, 별일 아니었잖아? 관제사한테 그냥 이륙시키라고 해.”

“예에?”


나의 명령에, 여직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안내 23.10.06 28 0 -
공지 주요 등장인물 소개 및 일러스트 23.09.17 69 0 -
21 21화 (연재 중단) 23.10.06 28 0 13쪽
20 20화 출범식 23.10.05 17 0 13쪽
19 19화 23.10.04 16 0 13쪽
18 18화 23.10.03 17 0 13쪽
17 17화 23.10.02 41 0 13쪽
16 16화 슬라베스카의 노예 사업 23.10.01 24 0 13쪽
15 15화 23.09.30 24 0 13쪽
14 14화 23.09.28 26 0 13쪽
13 13화 23.09.27 32 0 13쪽
12 12화 23.09.26 26 0 13쪽
»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23.09.25 35 0 13쪽
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3 0 13쪽
9 9화 23.09.23 33 0 12쪽
8 8화 루트리가 대학 23.09.23 34 1 12쪽
7 7화 23.09.22 30 0 12쪽
6 6화 [팁: 알고 계셨나요?] 23.09.21 36 0 12쪽
5 5화 23.09.20 44 0 13쪽
4 4화 23.09.19 62 0 12쪽
3 3화 ...하피? 23.09.18 94 1 12쪽
2 2화 23.09.18 102 2 13쪽
1 1화: 방화벽에서 이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을 차단했습니다. +1 23.09.18 202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