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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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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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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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각이 잡힌 승무원 모자를 고쳐 쓴 여직원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안 됩니다! 그랬다가 만약, 드래곤한테 공중 여객선이 격추당하는 날엔···.”


뭐가 뭐에 격추당해?

공중 여객선한테 드래곤이 격추당하는 거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국군이 호위함대를 보내지 않더라도, 내가 타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듯한 이 어린 직원은 아직 뭘 모르는 것 같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어, 그러니까···. 오늘로 8주차입니다.”

“합숙 교육 기간은 빼고 말해야지. 경력에 수습 기간을 포함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 그런 식으로 치면 3주차···.”

“역시···. 한데 이상하네. 항공사에서 내가 예약한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왜 신입 직원 혼자만 덜렁···.”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년 사업가의 고함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베테랑 직원이 잰걸음으로 뛰어온다.

그녀는 신입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뒤,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라피엘 님. 미숙한 접객 서비스를 제공해드린 점,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잖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 안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우르사그라드로 이동하시는 일에, 차질 없도록 조처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오렌지 주스를 다 마신 한여름은, 탁자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일어나.”

“으, 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어제 한숨도 못 잤단 말이야.”

“잠은 이따 공중 여객선에 타서 자도록 해. 이제 곧 출발할 거야.”

“으, 응? 옆자리 사람들 이야기로는, 드래곤이 길을 막은 거라 오래 걸릴 거라고 하던데···.”

“그거라면 이미 해결했어.”


- 안내 말씀드립니다. 우르사그라드행 공중 여객선의 운행이 재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탑승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헐, 정말이네?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여기선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주문이지. 불가능한 일은 없어.”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네, 너.”

“어제 상점가에서 봤잖아? 내가 마법 부리는걸.”


# # #


[공중 여객선 ‘루시타니아’호]


졸린다던 사람 어디 갔나?

흐리멍덩하던 한여름의 두 눈은, 유리구슬보다도 더 반짝거리고 있다.

그녀는 난간에 아슬하게 매달려, 지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좀 봐. 에버가드 장성이 엄청 작게 보여!”

“조심해! 그러다 떨어질라.”

“괜찮아. 어차피 난기류를 제어하는 마법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며?”

“마법이 급변풍(Wind Shear)을 막아줄 수 있을진 몰라도···.”

“에이, 이 기회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기분을 충분히 만끽해야지!”

“엄청 들떠있네···. 전에 비행기 타본 적 없어?”

“응, 난 어릴 때부터 병원에 거의 살다시피 했었거든.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딱 한 번 있었다.”

“그게 언젠데?”

“갑자기 쓰러져서 헬기로 이송된 적이 있었어. 의식을 잃은 채로 탄 거라 기억은 안 나지만.”

“항상 드는 생각인데. 네 현실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딘가 숙연해지는 기분이야···.”

“어쨌든, 좋은 경험시켜줘서 고마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야.”


부우웅-


호위로 따라붙은 공중전함 두 척이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구름을 뚫고 우리가 탄 여객선 바로 옆을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갔다. 한여름은 거대한 3 연장 주포를 앞뒤로 두 문씩 설치한 그것들을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고래다, 고래!”

“···벌써 힘 빼지 마. 우르사그라드에 도착하려면 한참 멀었어.”

“얼마나 걸리는데?”

“아직 북동쪽으로 4시간은 더 가야 해. 하, 철도만 멀쩡했었어도, 마공학 고속기차로 2시간 반이면 갔을 텐데···.”

“뭐? 4시간이나?”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치는 것으로 보아, 한여름도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이 공중 여객선은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나 다름없다.

차가 막힐 일이 없다는 것뿐, 지겹도록 오래 걸린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멋진 풍경을 4시간이나 더 볼 수 있다니!”

“···그럼, 거기서 더 구경이나 더 하고 있을래? 난 잠깐 돌아다니면서 정보 좀 얻고 오게.”

“응, 이따 객실에서 보자.”


게임의 법칙 하나. 어느 곳에서 진행이 막혔다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져봐라.

예후디엘을 만나는 일이 정식 퀘스트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곳에 중요한 힌트가 있을 것이었다.

우리엘의 말처럼, 능동적인 서사 경험을 제공하도록 설계된 게임이라면 반드시 그럴 것이다.


식당 겸 휴게실로 쓰는 널찍한 공간에 들어서자,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불평이 들려왔다.


“나 우유 안 마시는 거 몰라? 난 무조건 산양유만 마신단 말이야!”

“손님께서 아까 주문하실 때, 그런 요구사항은 말씀이 없으셨···.”

“척 보면 몰라? 어? 아직도 몰라? 내가 이런 평범한 카페라떼나 마시려고 특등석을 끊었겠어?”

“죄송합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산양유로 바꿔서 금방 다시···.”


이런 광경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상 고객을 워낙 만나봐서 그런가.


앞치마 차림의 승무원이 들고 있는 카페라떼를 빼앗았다.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를 쳐다보며, 세상에 불만 많은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오렌지 주스로 부탁해.]

[정말 서비스가 엉망이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앞에 있는 신사분한텐 그냥 물이나 갖다줘. 어이, 물 괜찮지?”

“어, 엇! 예···.”

“이건 내가 마실게.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이만 가봐도 좋아.”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지는 승무원을 눈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아까 라운지에서도 직원들을 아주 못살게 굴더니. 좀 좋게 말하면 안 돼? 열심히 하시잖아.”

“으, 흠. 흠. 안녕하십니까, 라피엘 님.”

“그건 그렇고···. 당신 아까 우르사그라드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었지, 아마?”

“맞습니다. 한 10년 전부터, 식품 사업을 크게 하나 굴리고 있기에···.”

“오, 그러면 그 동네를 잘 알고 있겠네?”

“허허. 우르사그라드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훤합니다, 제가.”

“혹시 예후디엘이라는 사람 알아?”

“아, 예후디엘? 알죠. 슬라베스카에서 제일가는 괴짜 공학자 아닙니까?”

“공학자랑 식품 사업은 크게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예전에 연구자금을 모금하는 행사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정말 보기 힘든 천족 여자라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죠.”


엄밀히 말하면, 마스테마가 마족이 아닌 것처럼 우리엘과 예후디엘도 천족이 아니다.

마족과 천족은 그들이 가진 본성의 일부를 본떠서 만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혼돈 악’의 마족과 ‘질서 선’의 천족. 반면, ‘혼돈 선’의 면모를 지닌 마스테마와 ‘질서 악’에 가까운 우리엘.

이것만 봐도 카피는 오리지널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중년 사업가는, 자신의 꼼꼼한 기억력에 만족스레 웃고 있었다. 뭐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저 조용히 따라 웃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친해?”

“어디로 가야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사업가는 주머니에서 고급스러운 만년필과 메모지를 하나 꺼냈다. 남은 잉크를 확인한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굴리더니, 이내 어떤 주소를 거침없이 휘갈겨 썼다.


“자, 받으십시오. 여기로 가시면 그 여자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만약에 이 주소에 없으면?”

“유감스럽지만, 거기까진 제가 도와드릴 수 없겠습니다. 제가 직접 소개해드릴 정도로 친한 관계는 아니라서 말입니다.”

“뭐, 못 만나더라도 그 근처를 수소문해보면 어떻게 되겠지. 으윽, 근데 이거 뭐가 이리 텁텁해? 아, 못 마시겠다. 그냥 너 다 마셔라.”


# # #


얕은 잠을 청하고 있는 한여름의 햇빛 가리개를 자처하며, 정오의 햇살을 램프 삼아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쾅- 쾅- 쾅-


객실이 흔들릴 정도로 거센 포격음과 함께, 긴급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 현재 드래곤이 출몰하여 제국 공중함대가 대응 중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객실에서 대기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소리에, 놀라서 잠을 깬 한여름이 부스스 활을 챙겨 일어났다.


“엇, 드래곤이 나타났나?”

“그래. 어서 나가보자.”


성검 두 자루를 챙겨 한여름과 함께 급히 갑판으로 나가보니, 좌우의 공중전함이 와이번 2마리를 향해 함포를 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게 고작 와이번이었어? 고작 저것들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웠다니.

놈들도 드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드래곤의 한 종류긴 하지만, 어째 김이 팍 새는 기분이다.

드래곤이라 부르려면 폴리모프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특정 원소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지.


갑판에 서서 와이번들을 눈으로 쫓고 있는데, 함께 탄 제국군 병사가 총을 쏘다 말고 내게 뛰어왔다.


“라피엘 님! 신경 쓰지 마시고 안에서 쉬고 계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놈들이 다가오기 전에 요격하면 제일 좋겠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잖아, 만약이라는 것이.”


펑-


공중 여객선을 향해 날아오던 와이번 중 한 마리가 포탄을 맞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으나, 아직 기뻐하긴 일렀다.


결국 내 예상대로, 화망을 화살처럼 뚫고 들어온 와이번 한 마리가 갑판에 착륙하여 길게 포효했다.


“크륵!”


고막이 터질듯한 괴성에 병사들이 괴로워하며 주저앉았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한여름도,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재빨리 전투 태세로 복귀한 베테랑 병사 한 명이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이미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레바테인 대신, 한여름으로부터 빌린 아스칼론을 만지작거렸다. 이번 전투는 이 성검에게, 퍽 어울리는 훌륭한 데뷔 무대였다.


[잠들어 있는 성검(★☆☆☆☆), 아스칼론(신화)]

[용살자(1단계): 드래곤 유형의 적에게 2배의 피해를 줍니다.]


쏟아지는 총탄이 간지럽다는 듯, 몸을 털어낸 와이번이 나를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날개에 달린 조그마한 손을 앞다리 삼아, 성큼성큼 다가오는 놈을 보며 아스칼론을 가볍게 뽑아 움켜쥐었다.


“덤벼, 이 되다만 드래곤 자식아.”

“크르르!”


긴 모가지를 뽐내며 기세 좋게 뻗은 와이번의 머리를 살짝 굴러 피한 뒤, 곧장 놈의 가슴팍에 검을 휘둘렀다.


단 한방. 아스칼론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풋내기 성검이었으나, 와이번을 쓰러뜨리는 데 필요한 것은 단 한방이었다.


쿵-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와이번이, 갑판 위에 힘없이 모가지를 축 늘어뜨렸다.


“좋았어. 다행히 아직 안 죽었군.”

“끄륵, 끄르륵···.”


와이번의 피가 갑판 위로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승부는 이미 끝났으나, 이대로 놈의 숨통을 끊을 생각은 없다.


“여름아, 그러고 있지 말고 여기로 와. 빨리!”

“응? 이미 죽은 거 아니야?”

“시간이 없어! 어서!”

“아, 알았어. 금방 갈게!”


멀리서 손뼉을 치고 있던 한여름이, 나의 다급한 부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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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23.09.25 35 0 13쪽
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3 0 13쪽
9 9화 23.09.23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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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23.09.20 4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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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23.09.18 10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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