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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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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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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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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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뜬금없는 변심

DUMMY

어렸을 적 부모님 따라 처음으로 결혼식에 갔을 때의 설렘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식이 끝나고 이어지는 피로연 자리에서, 엄마는 내게 김밥 같은 거 말고 더 맛있는 걸 먹으라며 혼냈었지.

그러나 지금 내겐, 홀에 가득 퍼진 김밥 냄새가 너무나도 맛있게 느껴진다.


대화 소리가 오고 가는 홀의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음식들을 앞에 두고, 마스테마가 한여름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여기 이 흰 곡물을 삶은 양배추로 감싼 후, 사이에 햄과 여러 가지 채소를 넣은 샌드위치 같은 음식의 이름이 뭐라고?”

“김밥이라고 해. 김이 없어서 양배추로 대체하긴 했지만, 꽤 맛있을 거야.”

“한번 먹어볼까···. 어디···.”


젓가락질하는 마스테마의 손끝이 영 불안해 보였다. 한여름은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손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포크를 챙겨주었다.


“어머, 우리엘은 금방 배우길래 너도 그럴 줄 알았는데···. 자, 이거 써.”

“야, 한여름.”


포크를 홱 가로챈 마스테마가 젓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한여름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으, 응?”

“···이 젓가락질이라는 거. 나중에 한번 시간 내서 제대로 가르쳐줘, 알았지?”

“아하하···. 알았어. 약속할게, 마스테마.”

“흠, 그러면 여기 이건 무슨 요리야? 닭을 통째로 물에 넣고 삶은 이거 말이야.”


맞은 편에서 능숙한 젓가락질로 음식을 자기 접시로 옮겨 담은, 우리엘이 젓가락을 한번 쪽 빨고서 답했다.


“그건 삼계탕이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냥 물이 아니고, 여러 가지 약초를 넣어서 우려낸 거야. 수프라고.”

“삼계탕? 이름 한번 독특하네.”

“인삼과 닭을 넣어 끓인 탕이라는 뜻이지. 여기선 인삼 대신 만드라고라를 넣지만.”

“엑, ‘만드라고라’라고라?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맞아. 사람처럼 생긴 뿌리식물 말하는 거.”

“···최음제에 쓰는 재료잖아, 그거?”

“네가 기대하는 환각물질 같은 건 다 제거하고 쓴 거니까, 너무 기대하진 말아라?”

“기, 기대하긴 누가 기대했다고 그래?”


정말 보기 드문 두 여자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조용히 젓가락을 챙겨 식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삼계탕의 다리를 한쪽을 뜯어 우리엘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삼계탕이 뭔지 용케 알고 있네? 여름이가 전에 자주 해줬었나 봐?”

“왔어? 일은 잘 끝냈고?”

“그럭저럭. 휴, 온종일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하네. 아, 거기 소금 좀 줄래?”

“자, 여기.”

“땡큐.”

“자주까지는 아니고 이렇게 가끔 해줘. 엘다라드가 해주는 것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야. 수프 맛이 아주 일품이란 말이지.”

“하하, 뭘 좀 아네. 삼계탕은 역시 국물이야, 그렇지?”


이번에는 남은 다리 한쪽을 마스테마의 접시에 담아주며 말을 붙였다.


“빨라야 내일 오후쯤은 되어야 한다더니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네, 마스테마?”

“어라?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삼계탕 국물을 떠먹는 우리엘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마스테마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닭 다리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이에 질세라, 우리엘도 그녀를 따라 닭 다리를 뜯었다.


정말 유치한 악마와 천사다.

둘 사이의 경쟁 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것 같다.


손에 묻은 기름기를 냅킨에 닦아낸 마스테마가, 아직 반도 못 먹은 우리엘을 보며 히죽 웃었다.


“도와주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방해를 하는 것도 아니야. 도통 이해가 안 가는 녀석이라니까. 안 그래?”

“너도 이해가 안 가는 판국에, 나는 오죽하겠냐?”

“하하···. 근데 두 개밖에 없는 다리 한쪽을 왜 쟤를 준 거야? 네가 안 먹고?”

“한국말에 이런 말이 있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무슨 뜻이야?”

“미운 사람일수록 잘해 주라는 말이야.”

“···그 말, 나도 포함되는 거야?”

“어느 정도는?”

“칫, 그나저나 넌 아침에 루트리가 대학에 갔었다면서? 어때, 성과는 좀 있었어?”

“마도학부의 페르미 교수와 그 제자인 슈뢰딩거, 이 둘은 무조건 우리 프로젝트에 끌어들여야겠더라. 네가 구상하는 그림과 가장 근접한 인물들이야. 이거 한번 볼래?”


아까 페르미 교수와 슈뢰딩거가 설명해준 것을 빠짐없이 받아적은 메모를 마스테마에게 건넸다.


“오호···. 정말이네. 약간의 이론적 결함이 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겠어.”

“나중에 그레고리 준장에게 부탁해서 한번 만나봐. 아마 이야기가 잘 통할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마스테마가 갑자기 눈을 거칠게 비볐다.


“흙먼지 날리는 황무지를 너무 돌아다녀서 그런가,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이러네.”

“어디 봐. 헉, 엄청 빨갛네?”

“···내 눈은 원래 붉은색이야.”

“그랬었지, 참···. 혹시 눈병 난 거 아냐?”

“그런가? 뭐,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눈이 충혈된 마스테마를 보던 한여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부엌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푸른빛의 투명한 즙이 들어있는 컵을 들고 돌아왔다.


“짜잔!”

“뭐니 그건 또.”

“우리 엘프들이 눈이 가려울 때 쓰는 안약이야. 눈보라 민트라고 불리는 허브를 짜서 만드는 거지.”

“···가만있어도 나을 텐데.”

“이래 보여도 난 약초술 만렙이야. 자, 사양하지 말고 고개 젖혀봐.”

“알았어, 알았어. 이 정도면 됐어?”

“아니! 더 젖혀야지. 기껏 만든 건데 옆으로 다 새버리면 아깝잖아.”

“됐어?”


마스테마는 입이 살짝 벌어질 정도로 고개를 크게 젖혔다. 약을 눈에 정확히 떨어뜨리기 위해, 한여름이 입까지 벌리며 고도의 집중력을 자랑하던 때였다.


슛.

골!

한여름의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축구공처럼, 정확하게 마스테마의 입으로 떨어진다.


“퉷, 퉷! 야!”

“어머!”

“눈에 안약을 넣으라니까, 뭐 하는 거야? 더럽게···.”

“앞에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었나 봐. 정말 미안해!”

“···다시 해봐. 이번엔 실수하지 말고, 알았어?”

“응! 쓰읍.”


이번에는 힘을 주어 입을 꾹 다문 마스테마의 눈에 안약이 정확히 들어갔다. 확실히 안약의 효과는 물약 상점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빨갛게 달아올라 있던 그녀의 눈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 # #


식사 자리를 마치고, 우리는 서재에 모여 앞으로의 계획을 주제로 토론했다. 말이 토론이지, 사실상 내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누가 뭐라 해도 이 게임을 끝낼 핵심 인물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연구팀 관리 및 이론 정립, 마스테마.

나와 동행하며 에테르 및 플로지스톤 수집, 한여름.

저택 관리 및 손님 접대, 우리엘.


검은 칠판에 그린 간단한 표를 통해, 각자에게 적절한 역할을 배분해주었다. 다들 맡은 임무에 수긍하는 얼굴이었으나, 단 한 사람만이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우리엘?”

“당연히 있지. 내 역할은 왜 저것밖에 안 돼?”

“···그거야 넌 하녀니까. 설마, 인제 와서 우리 프로젝트에 한몫 끼어들고 싶어졌어?”

“뭐, 조금은?”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누구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개입 안 한다더니···.”

“그게 말이야. 얼마 전에 너희를 도와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거든.”

“청소가 어지간히 지겨웠나 보네···.”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허접한 이유는 아니야.”

“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러니 더 캐묻진 않겠어. 묻는다고 제대로 답해줄 것 같지도 않고···.”


우리엘의 뜬금없는 변심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한여름의 구원을 위해서? 아니면 마스테마처럼 개발자로서 자존심 때문에?

이유야 어쨌든, 우릴 도와주겠다면 누구든지 환영이다.


“레바테인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을 환영해. 한데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생각해둔 역할이 있나 봐?”

“더도 말고 덜지도 말고, 자문 위원 정도만 시켜줘.”


저택 관리 및 손님 접대 및 자문, 우리엘.

마스테마는 칠판에 고쳐 쓴 내용을 아니꼽게 보는 눈치였으나,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어떤 면에선, 자기 일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러면 됐지?”

“응. 참고로 저택 관리는 내가 계속할 거야. 1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니까.”

“그건 알아서 해.”

“그런데 청소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지금 있어.”

“중요한 문제라니?”

“핵무기를 만들었다 치자. 그걸 어떻게 몬스터들한테 쓸 거야? 적진 한복판에 들고 가서 터뜨릴 수는 없잖아.”


중요하다길래 뭔가 했더니.

누굴 바보로 아나.

투발 수단을 말하는 거라면, 벌써 생각해둔 것이 있다.


“그거야 당연히 공중 군함에 실어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엘은 나에게서 분필을 뺏어 칠판에 크게 원을 그렸다. 그녀는 원 한가운데에 작은 점을 하나 찍고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원은 핵무기의 대략적인 폭발 반경을 의미해. 여기 있는 이 작은 점은 공중 군함이고.”

“그래서?”

“공중 군함의 최대 고도 및 속력과 핵폭탄이 낙하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폭격 임무에 나선 사람들은 절대 제시간에 탈출할 수 없어.”

“···사실이야?”

“더구나 2억이 훨씬 넘는 수의 몬스터를 모조리 해치우려면, 못해도 천 발 정도는 연속으로 투하해야 할걸? 아마 제국 내에 있는 공중 군함을 다 모은다 한들, 그렇게까지 하진 못할 거야.”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로 한다.

다행히, 핵무기 투발 수단이 항공 폭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사일은 어때? 제한적이긴 하지만, 제국군에서 그런 비슷한 걸 쓰던데?”


나의 제안에 마스테마가 우리엘을 대신하여 답해주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사거리가 여기서 에버가드 장성까지도 도달 못할 수준이야. 그것도 비교적 가벼운 물체를 실었을 때 이야기고···. 훨씬 무거운 핵폭탄을 그런 거에 실어서 쐈다간···.”

“안 되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네가 미사일 기술도 같이 연구해주면 안 될까, 마스테마?”

“야, 그것만은 참아줘. 나는 핵폭탄 개발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란 말이야.”

“그, 그렇겠지?”


난처한 표정으로 마스테마를 쳐다보는 나를 향해, 우리엘이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쯧쯧. 이것 봐라?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을 환영한다더니, 순 거짓말이었네? 나는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는구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우리엘?”

“있다마다. 예후디엘이 우르사그라드에 있어. 그녀를 찾아가 봐.”

“우르사그라드라면 슬라베스카 왕국의 최대 공업도시 말이지? 근데 예후디엘? 그건 누구야?”

“내 전임자. 잘 설득해서 우리 쪽으로 데려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런 분야가 전공인 여자거든.”

“그것참 잘됐네! 근데 말이야···.”

“왜 그래?

“예후디엘은 네가 데리고 오면 안 될까? 난 슬슬 첫 번째 마왕도 잡아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안돼. 그 여자는 나를 엄청나게 싫어해서 만나주지도 않을 거야. 그래, 첫 번째 마왕을 쓰러뜨리러 가는 길에 만나면 되겠다. 그놈이 슬라베스카 왕국에 있으니까.”

“무슨 소리야? 첫 번째 마왕은···.”

“넌 자기가 무슨 처지에 놓여있는지 잘 모르나 보네. 엘드라드?”


우리엘의 부름에 한여름이 퀘스트 창을 들고 다가온다.

레벨 255인 내게, 메인 퀘스트 내용을 감히 설명해주시겠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드는 건지. 웃기지도 않아 대충 펼쳐본다.


스르륵-


어, 어라?

그녀의 퀘스트 창을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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