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82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10.03 13:05
조회
18
추천
0
글자
13쪽

18화

DUMMY

동굴로 기어들어 온 것은 하얀 공포가 아니라, 나조차도 처음 볼 정도로 거대한 늑대와 그 녀석을 따르는 작은 새끼 두 마리였다.


달빛에 비춰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털.

사나운 맹수에게서 찾아보기 드문, 고요하고 잔잔한 두 눈동자.

어미의 몸 군데군데에는 얼다만 피가 송골송골 맺혀있다.


은빛 늑대 무리는 우리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어슬렁어슬렁 스쳐 지나갔다. 녀석들의 느릿느릿하고,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둔한 움직임을 보아,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쯤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투기(鬪氣)는커녕, 어딘가 슬픔마저 느껴질 정도로 깊고 어두운 눈동자.

내 눈앞에 있는 늑대들을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영물(靈物)이라고 느껴서일까.

나는 조용히 활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어미 늑대는 그저 자식들을 품은 채, 구석에 바짝 엎드려 조용히 상처를 핥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방금까지 팽팽하던 긴장의 끈을 느슨히 풀었으나, 두 눈만은 녀석에게 고정한 채 한여름에게 돌아갔다.


“저 녀석은 그냥 두자.”

“그러다가 갑자기 우릴 덮치면 어떻게 하려고?”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번엔 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때까지 구경만 하지 않을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거기 있는 약초나 좀 줄래?”


[레프(NPC, Lv 136)]

[남은 체력]

[♥♥♥♡♡ 33% ♡♡♡♡♡]

[상태: 회복 중]


한여름의 활약 덕택에, 마침내 레프가 정신을 차린다.

당장 죽을 것 같았던 그는, 공교롭게도 이미 상당 부분 회복을 마친 상태였다.

아마도 우리와 재합류하면서, 레벨이 136으로 복구된 것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한여름의 손을 붙잡고 힘겹게 일어난 레프가 돌연 개라도 된 듯,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크, 흠···.”


한여름은 당혹감에 귀가 새빨개져서, 손을 마구 저으며 레프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내, 내가 아까 자다가 땀을 좀 흘리긴 했지만···. 난 체취가 별로 안 나는 엘프란 말이야!”

“아니, 아니요···. 이건 그쪽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고···.”


레프의 이상 행동에 때맞춰, 늑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딱 맞는 이 상황에 의아함이 느껴져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뭐야? 너 늑대인간이라도 되냐, 레프?”

“큼, 큼···. 예? 아니요. 전 늑대 인간이 아닙니다.”

“저쪽 녀석들은 으르렁거리고, 이쪽 녀석은 킁킁거리고···.”

“오랫동안 사냥꾼 일을 한 저처럼, 저 늑대들도 이미 냄새로 눈치챈 겁니다.”

“뭘?”

“···놈이 근처에 왔다는 것을, 바로 저기!”


인간은 어떻게든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려고 발버둥 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식자 짐승들은 자신의 기척과 존재감을 숨기려고 발버둥 친다.

그들의 강함은 어디까지나 사냥과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과시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겁을 상실하여 강자에게 싸움을 거는, 그런 무모한 개체들의 숫자는 자연계에 그리 많지 않다.


레프가 가리킨 천장의 바위 틈새에는, 푸른색으로 번뜩이는 안광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햐안 공포는 자신의 거처가 불청객들에게 더럽혀진 것에 분노한 나머지, 바위틈을 부수며 사납게 뛰어 들어왔다.


“크와아앙!”

“이제야 오셨구먼! 여름아, 받아!”


들고 있던 활을 한여름에게 던져주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굳이 저 곰을 잡으려고? 이미 레프를 구한 데다가, 저 곰은 퀘스트 목표도 아니잖아?”

“이런 소소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틈틈이 경험치를 쌓아야 하지 않겠냐?”


[하얀 공포(타이가 베어)]

[종류: 비스트]

[레벨: 61]


아스칼론을 뽑으려다 멈칫한다.

재주껏 살살 휘두른다고 쳐도, 61레벨짜리 몬스터를 이걸로 공격했다간 한방에 죽어버릴 거다.

저 곰이 와이번 만큼이나 강하게 생겼다 한들, 레벨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검을 뽑는 대신, 두 주먹을 가볍게 쥐고 있을 때였다.


“아우우우우!”


길게 하울링을 한 어미 늑대가 하얀 공포의 앞에 서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녀석은 자신의 싸움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새끼들을 시켜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내 옆에서 도끼를 움켜쥔 레프가, 고개를 높게 치켜들고 경계하는 그 새끼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런···. 어쩐지 낯이 익다고 했더니···.”

“아는 녀석들이야?”

“며칠 전, 고블린 노예를 잔뜩 구해서 돌아가던 때였습니다. 재수 없게 저 괴물 곰을 이곳 검은 숲에서 만났지요. 놈은 이미 새끼 늑대 두 마리를 잡아먹어, 입가에 피를 흥건하게 묻히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모자랐는지, 기어이 제 고블린까지 잡아먹고 나서야 돌아섰죠.”

“그렇다면, 저 어미 늑대는 새끼들의 복수를 위해 여기까지 온 걸까?”

“아마 그럴 겁니다. 늑대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그것 못지않으니까요.”

“그렇겠지. 한데, 너는 저 곰을 왜 잡으러 온 거야? 고블린이 네 자식은 아니잖아···?”

“자기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서 판매한다. 제가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입니다.”

“···너무 과한 거 아니냐, 그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짐승의 처절한 혈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은빛 늑대는 하얀 공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곰에 비해 덩치가 작은 건 고사하고, 이미 상처를 많이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쿵-


늑대 새끼들이 힘없이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미를 향해 앞다투어 뛰어갔다. 하얀 공포는 승리감에 취해, 두 발로 서서 포효했다. 곰이 피가 묻은 거대한 턱으로 늑대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가 놈의 다리를 걸었다.


콰당-


“끄어엉!”

“거기까지. 다음 상대는 나야.”

“크엉?”

“방금 싸움을 마쳤으니 잠깐 쉴 시간을 달라. 그딴 소리는 제발 하지 말아줘. 야생에 그딴 신사적인 배려가 어디 있겠어? 설마 이런 걸로 불평불만 하는 약골은 아니겠지?”

“크아앙!”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이지만, 내 도발은 확실하게 먹혀들어 갔다. 순리대로라면 포식자인 자신이 피식자인 나를 뒤에서 덮쳐야 하는데, 오히려 피식자인 내가 포식자인 자신의 앞에 당당히 나타난 것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뒷발로 선 하얀 공포가 선제공격해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린다.

풋내기 같은 놈의 텔레폰 펀치를 가뿐하게 팔로 막고 앞으로 나간다.

당황한 괴물 곰의 가슴팍에 파고들어 가볍게 러시안 훅을 날린다.


퍽-


[남은 체력]

[♥♥♥♥♥ 56% ♡♡♡♡♡]


퍽-


[남은 체력]

[♥♡♡♡♡ 11% ♡♡♡♡♡]


연달아 두 번의 펀치를 가슴팍에 허용한 하얀 공포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체력이 애매하게 남아있었으나, 여기서 한 대 더 쳤다간 죽을 것 같아 급히 공격을 멈추고 한여름을 불렀다.


“여름아!”

“말 안 해도 이미 조준하고 있었어!”


슝-


[남은 체력]

[♥♡♡♡♡ 10% ♡♡♡♡♡]


화살을 맞는 하얀 공포의 체력이 조금씩 차근차근 깎이고 있었다. 저렙제이긴 해도 그나마 희귀 등급의 활을 ‘+9’까지 강화했기에 망정이지, 한여름이 기존에 쓰던 헌팅 보우였으면 아예 가죽을 뚫고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여름이 하얀 공포를 향해 끊임없이 화살을 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 나타났다.


“너는 내 손으로 죽인다! 받아라!”


레프가 휘두른 거대 도끼가 하얀 공포의 목덜미에 꽂혀 피를 뿜었다. 다행히 놈은 즉사하진 않았지만, 정말 한대만 더 공격하면 죽을 정도로 체력이 빠져버렸다.


[레프가 하얀 공포를 마무리하도록 내버려 둔다.]

[→ 레프를 막은 후, 한여름이 마무리하도록 만든다.]


“야! 멈춰.”

“이대로 한 번만 더 내려치면 됩니다. 맡겨주십시오. 거의 다 끝났습니다!”

“···좋은 말로 할 때 멈춰라?”

“왜, 왜 그러십니까.”

“누가 너에게 이 사냥에 껴도 좋다고 했어?”

“그, 그건···.”

“넌 이미 이놈한테 한번 패배한 몸이야. 그런데 해볼 만하니까, 가만있다 갑자기 끼어든다고?”


나의 다그침에 레프는 별 말없이 물러난다.

자기가 어쩌겠는가?

레벨 255의 만렙 용사가, 자신을 구하러 온 구원자가 하지 말라는데.


레프가 물러난 틈을 타 한여름의 손을 떠난 화살이, 하얀 공포의 미간에 꽂히며 사냥은 마무리되었다.


[서브 퀘스트 완료: 한 입으로 두말하기]

[○ (선택) 마을을 수색하십시오.]

[● (선택) ‘검은 숲’의 폭군, ‘하얀 공포’를 쓰러뜨리십시오.]


퀘스트를 끝냈으니, 이제는 불만 가득한 표정의 레프를 달랠 차례다.


“어이, 레프. 얼굴 좀 펴라. 내가 널 가로막아서 화난 건 이해하겠는데···.”

“···그런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거짓말하기는···.”


마스테마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레프에게 얻게 될 당근에 대해서 다시 상기시켜주기로 한다.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채찍질만 하다가는, 시벌로마(施罰勞馬) 소리 듣기 딱 좋다.


“뭐, 아무튼 우리의 목표는 보흐고레를 잡는 거잖아? 이까짓 곰을 잡는 것이 아니고···.”

“맞습니다. 제가 순간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모든 사단은 보흐고레 그 자식 때문이었죠? 그 자식만 없었으면, 저 미친 곰이 여기 있지도 않았을 테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원래 여기 살던 놈이 아니었어?”

“하얀 공포는 저희 같은 노예상들이 잡아들인 고블린을, 이 숲을 통해 데려온다는 걸 알게 된 보흐고레가 풀어놓은 곰입니다. 이 굴의 형태를 보십시오. 너무 인위적이지 않습니까?”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긴 사실 곰 굴이 아니었다는 말이겠네. 어쩐지 저 늑대가 너무 자연스럽게 다른 포식자의 굴로 들어온다고 했다. 아무리 원수가 있는 곳이라고 해도···.”


으드득- 으드득-


뭐지? 내 뼈마디가 시려올 것만 같은, 이 생생한 뼈 부러지는 소리는?

뒤를 돌아보니, 기운을 차린 어미 늑대가 새끼들에게 곰의 뼈와 살점을 먹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레프와 한여름을 밖으로 나가는 통로 쪽으로 등 떠밀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잖아.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가자.”


무사히 굴을 빠져나오니, 슬로베스카의 아침이 우릴 맞이해주었다. 앞서가던 한여름은 세수하듯, 햇살을 얼굴에 비비며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푸하! 따뜻하네. 돌아가는 길은 편하겠어?”


우리를 뒤돌아보며 활짝 웃는 한여름을 향해, 레프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날이 밝아오고 있네요.”

“저기···. 그런 다리로 마을까지 걸어갈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용사님의 부하께서 치료해준 덕분에.”

“···부하? 무슨 부하?”

“저기 웃고 있는 엘프 말입니다.”

“음,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겠지만···. 여름이는 내 부하가 아니야.”

“예? 부하가 아니라고요?”

“그래. 나와 마찬가지로 용사야.”

“아, 그러셨습니까? 용사가 한 분 더 계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저 녀석은 이제 막 용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견습이거든.”

“두 분께선 마치 사제 간 같군요?”

“···스승과 제자? 흠, 그럴지도.”


우리 일행은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여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얼마 가지 못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누구야? 그 악명높은 노예상, 레프잖아? 장사가 잘 되는가 봐? 이젠 경호원까지 데리고 다니네?”


우릴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따뜻한 햇볕만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안내 23.10.06 28 0 -
공지 주요 등장인물 소개 및 일러스트 23.09.17 69 0 -
21 21화 (연재 중단) 23.10.06 28 0 13쪽
20 20화 출범식 23.10.05 18 0 13쪽
19 19화 23.10.04 18 0 13쪽
» 18화 23.10.03 19 0 13쪽
17 17화 23.10.02 42 0 13쪽
16 16화 슬라베스카의 노예 사업 23.10.01 24 0 13쪽
15 15화 23.09.30 24 0 13쪽
14 14화 23.09.28 27 0 13쪽
13 13화 23.09.27 33 0 13쪽
12 12화 23.09.26 28 0 13쪽
11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23.09.25 35 0 13쪽
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3 0 13쪽
9 9화 23.09.23 34 0 12쪽
8 8화 루트리가 대학 23.09.23 36 1 12쪽
7 7화 23.09.22 30 0 12쪽
6 6화 [팁: 알고 계셨나요?] 23.09.21 37 0 12쪽
5 5화 23.09.20 45 0 13쪽
4 4화 23.09.19 63 0 12쪽
3 3화 ...하피? 23.09.18 94 1 12쪽
2 2화 23.09.18 103 2 13쪽
1 1화: 방화벽에서 이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을 차단했습니다. +1 23.09.18 202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