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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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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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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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회 : 세상에서의 처세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감정적인 논리라는 게 있다네.


뭐가?

메퀘크파이렐텐이 고개를 들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몸을 틀면서 그 말을 하느라 동작을 정지한 채로 있었고

평범한 잡화점 주인이자 과거에 은기사(銀騎士)였던

메퀘크파이렐텐도 한참을 멍하니, 그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비스듬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지가 않아.

않아라는 두 글자를 또박 또박 끊어서 혹은

그 두 글자만 길게 늘려서 발음을 하느라

말의 끝은 달라졌다.


자네가 생각하기엔

자네의 잘못이 아닌 것 같지?


메퀘크파이렐텐은 그러나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저 그를 보고만 있었다.

마치 어서 다음에 해야 할 말들을 하라는 듯이.


그래. 실제로 또 자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

자네의 상대방인 그쪽이 전적으로 잘못을 한 것일 수도.

그러나,


세상은 자네가 당연히 양보를 하기를 원한다네.

자네가 손해를 좀 보는 거래를 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그 계약을 장래에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심 쓰듯이 계속 해줬으면,

하듯이. 그런 거라네.


그쪽은 자신들의 잘못이나 문제를 알지도 못하고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네.

그냥 상대방인 이를 테면 자네 같은 사람들이

손해를 좀 보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그대로 협력을 해줬으면,

함께 사업을 앞으로도 계속 같이 했으면,

하는 거야.


그게 세상에서 말하는 마음이 너그럽고 성격이 원만한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취해야 하는 태도라네.


그럼, 여기서 관건은

은기사(銀騎士)였던 주인 메퀘크파이렐텐이

그러나 고개는 돌리고 나서 숙이며 말했다.

장부를 들여다보고 펜을 들었기에

그를 외면하듯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다.


손해는 내쪽에서,

늘 당해야만 한다는 거네?


메퀘크파이렐텐,

잘 알잖아?


뭘 알아? 내가?

그걸 욕망적인 논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

나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게 아니야. 그런 걸.

철학적으로도 규명하거나 설명이 가능하겠지.

논리학에서는 도저히 어처구니가 없는 비논리에 해당하겠지만.



이봐,

자네가 나보다 나이도 더 많고 또 나와 전쟁터를 무수히 누비던

같은 부대의 같은 군인 출신이지만

자네는


정말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나?

잡화점 주인 메퀘크파이렐텐은 똑바로 고개를 들어서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메퀘이...

키도 덩치도 우람한 남자가 난처하다는 듯이

똑바고 서서 두 손에 쥔 것들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그리고 원망스럽다는 듯이

과거의 은기사(銀騎士) 메퀘크파이렐텐을 바라보았다.

키와 덩치가 큰 그가 진열대에 놓으려던 것들은 약품 같아 보였다.


모든 것이 희미해져만 간다.

희미해지면 희미해질수록 그리고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토록 흔적으로만 남은

지나간 날들의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혼란과 혼돈으로 어지러웠던 복잡함들이

이제는 사소한 얼룩이 되어 너무나 단순해졌다.

눈에 띄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아주 작은 때가 묻은 옷처럼

피가 바래어진 끝에 결국은 옷에 튄 음식물 얼룩처럼 변해버린

비슷한 느낌의 하찮은 잔재로 희미하게 남은 최후.

핏방울이라는 강렬하고 불행한 삶의 슬픔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으로서의 가치조차 없어졌다는 마지막.

괴로운 가치조차 되지 못하는

의미가 사라진 의미라는 무의미가 되어서

고통과 편안 사이에 아무런 차이점도 없는 그저 평범한 것이 되고 만다.

이토록 쓸쓸한 헛수고를 위하여 그토록 먼 길을

달려왔어야만 했던가.

그렇다면, 그 많은 고통스러운 쓰디쓴 여정들이

왜 필요로 했을까.

적어도 여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삶의 여행이라는 것은 좋은 것만을 보고 듣고 취하는

다분히 모순적인 것일까.

특별히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그런 것들만을 원하는.


희미한 옛 추억을 안고

나는 이제 평범하게 살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와 더불어

나는 조용히 살고 있다.

마치 숨어 살듯이.


전장(戰場)은 흉맹하고 불길하며 끔찍했다.

세상 어디의 전쟁터에서

평화가 넓고 부드러운 날갯죽지를 내려서 접고

편히 쉬고 있으리오.


혈맹의 국가들이 서로 이합집산한다.

나도 기사(騎士)의 한 명으로 여러 전쟁에 참가했다.

은(銀)기사. 은(銀)의 기사, 은(銀)으로 된 기사, 은빛의 기사.

지극히 까다롭고 지극히 공정하며

대단히 영광스럽고 가장 뛰어난 명예를 얻어야만,

그런 기준으로 선정되는.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기사들은

금(金)기사, 금(金)의 기사, 금(金)으로 된 기사,

금빛의 기사들뿐이지만

그들은 오로지 왕족에서만 선발된다.

전투에서의 능력이나 무훈과 업적과는 상관 없이.

그러나 이제 와서 내가 신분을 숨기고 이름을 바꾼 후에

이런 곳에 아는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제2의 삶을

낯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명예의 깃발들이 휘날리던 날들이

내게 삶에서 무슨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붙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잘 보이지도 않는 것들

나는 허무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공허할 뿐이다.

이상하게 공허하고 허탈한 마음만 들 뿐

이런 것은 좌절과 같은 감정은 아니리라.

잃어버린 것과 아직 남은 것들,

그리고 그 사이에 가득한 무의미한 것들.

나는 너무 늦은 것이다.

삶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제는 내 나이도 내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들도,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과 그것들에게 묶여진 내 시간도.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37세에 구운 닭다리봉(棒) 특별 양념 조림을

야식으로 처음 먹는다면

그렇다면 너무 늦은 걸까.

너무 늦었겠지만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첫 시도겠지만

나도 살아가야지.

살려면 구운 닭다리봉(棒) 특별 양념 조림이나 먹어야지.


시장 잡화점 주인인 37세 메퀘크파이렐텐은

천천히 장부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작은 부엌이 나왔다.


가만히 부드러운 속살을

천천히 지긋이 그리고 세심한 속도로

친절한 주의를 기울여서

나릇한 마음에서 나온 섬세한 감각으로

조심스럽게 깨물어본다.

내 사랑스러운 소고기는

그 뼈에 달라붙어있던 두터운 애정처럼

충실하고 변함 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살을 내게 내어주면서

자신의 내부를 겸허하고도 전적인 열린 자세로

그 내밀하고 애틋한 미각의 공간을 아낌없이보여준다.

내게로 건너온 너,

한 조각 살코기인 소고기여.

아아, 너는 어찌하여 이름이 소고기인가.

너를 다르게 그 아름다운 이름들로

불러도 좋으련만.

그렇다고 하여도 아무런 잘못이 없으련만.

나의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여.

너와 빵이 만나면

내 입안은 황홀하고 온화한

지상에 내려온 천국.

지금 이 순간 마시는

검은 빵에 부은 걸쭉한 고기즙 수프는

내게 찾아온 반가운 손님.

나를 위해서 자신들을 내어준

여러 고기들아.

모습들은 다 달라도

너희들의 그 충성스러운 마음들은

다 한결같이 똑같구나.

잠시 나는 행복한 어린 양이 되어

상냔한 상념에 잠긴

평화로운 식사의 시간을 즐기네.


아, 안 된다.

안 되네.


아무리 내가 명랑한 척 해도

나는 결국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야만 하는

아픈 환자에 지나지 않아.

나는 병든 소녀에 불과해.


소녀는 침대의 머리 근처에 뒤에 직각으로 세워져 있는

섬세하고 복잡한 장식으로 가득한

육중하고 두꺼운 갈색 목재 판 앞에

베개를 비스듬히 세워서 대고는

등을 기대면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눈부신 순백색의 흰옷은

위아래가 다 붙은 원피스의 종류였고

그래서 그 선명한 흰색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보이게 했다.

그녀의 얼굴도 같은 분위기의 흰 얼굴이었지만.

배 밑으로는 얇고 넓으며 길고 큰 고급스러운 재질의 흰 이불이

그녀의 육체를 덮고 있었고,

흰 이불 밑에 무릎과 정강이와 발로 짐작되는

그녀 몸의 부위들이

보이지 않게 흰 윤곽으로만 돌출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특이한 점은 두 눈썹 위에서

머리카락들이 처음으로 돋아나는 정수리 바로 밑의 부근까지의

거리와 그 거리가 만드는 면적이

지나치게 멀고 너무 넓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크고 아름다운 엷은 황금빛 두 눈과

누르면 들어갔다가 서서히 나올 것만 같은

특별한 대리석 같은 흰색의 극치인 피부와

부드러운 슬픔 같은 적절한 아름다움의 두께로 이루어진 입술을 가진

세상에서 찾기 힘든 미소녀가 우울한 얼굴로

상냥하고 쓸쓸한 나머지 서정적이기까지 한

예민한 슬픔에 젖어서

금빛이 사방에 번쩍거리는,

아직 어두컴컴한 엷고 흐린 빛만 큰 창문들로 들어오는 큰 방에

홀로 있었다.



아주 멀고 먼 어느 나라에

그리고 정확히도 알 수 없는 곳에

영원히 살 수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샘물이 있다고 한다. 혹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샘물


영생(永生)이라는 이 치명적이고도 매혹적인

유혹과도 같은, 유혹의 동의어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가치와

가장 거대한 충동을

그러나 함부로 평범한 사람들은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 단어적인 환상을

욕망의 범주에서 가장 극단적까지 가서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불가능한지도

겨우 파악할 수 있는 이 시도를 하려고 했었던

무수한 사람들이 이 샘물을 찾아서

먼 곳에서부터 각자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용감한 사람들이 고생의 끝을 경험하고

영생(永生)의 샘물을 마시고

지난 날의 피곤하고 곤란스러운

모든 고통을 그보다 어쩌면 더 많이 보상해줄

그 샘물의 마법적인 신비한 효능으로

오래 오래 잘 살게 되었다면

반드시 그 자랑스러운 명성과 소식이

질투 어린 시선들을 받더라도

전해지고 전파되어야 하는데.


영생(永生)의 샘물에서

그 영원한 생명의 물을 너무 많이 퍼마셔서

그만 머리가 잘못 되어서 실성이라도 한 것일까.

배탈이 나서 영원한 설사라도 지금까지 하는 것일까.


왜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까.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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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회: 블라스펙트 러페이케이퍼스 23.11.01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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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회: 칼 판매상과 도시 23.10.23 29 1 15쪽
4 4회 : 내 이름은 엔티레이미크 23.09.19 45 1 4쪽
3 3회 : 금지된 마법서 +1 23.09.18 49 2 10쪽
» 2회 : 세상에서의 처세 +1 23.09.13 95 3 10쪽
1 1회 : 시장에서 +2 23.09.12 265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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