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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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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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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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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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회: 내게는 뭔가가 없었다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결국 자신의 내부에 없다면

세상의 어디에도 없는 법이라네.


자신에게 있지 않으면

자신의 외부인 세상의 도처 곳곳에

돌이나 흙이나 풀이나 공기처럼

흔하게 많이 널려 있어도

그것을 그것들을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다네.

자신에게 없었기 때문이지.

그냥 처음부터.


흡수되지도 이식되지도 못하는

왜 그렇게 되는지는

그건 아마 창조주만이 알고 계시겠지.

이 세상과 세계를 구성하고 만들 때

그렇게 만들었으니.


흘러들어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닮은 것들을 찾아서 방황이든 탐색과 탐험이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자신의 내부의 것들과

그리고 닮아있는 외부의 것들이

함께 있게 되는 것,


결합이든 뭐든

그렇게 되는 것이라네.


그래서 연인들이 늘 서로 같이 있어도

가끔은 외로울 수 있는 것이라네.

내 마음 속에는 그녀가 없는 거야.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런 자신의 부재를

내 마음에서 감지하는 것이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지척에서

부재 때문에 그리워하는 것.


샘물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갈증을 느끼지만 떠 마실 수 없는 상태


믿을 수 있겠나?

이해가 가는가?


적어도 그녀와 닮은 부분이 그에게는

내부에 없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안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각자 따로 있고

각자 있는 것이지.


나는 네가 될 수 없어

변신의 문제도 문제지만

내게는 너의 그 무엇들이

처음부터 내 속에 없었던 거야.

적어도 최소한 언제인가

사라진 것이고.


내 속에 없는 것들이

그 부재로 불가능성과 그에 따른

불가항력을 초래하는데,


어떻게 나는 너를 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너는 내가 될 수 있을까.


나의 내부에 없다면,

자신의 내부에 없다면 자신의 외부인 이 세상에

그 무엇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네.


내가 공주님과 끝끝내 이루어지 못한 것은

공주님과의 신분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네.

나도 꽤 용맹한 명성을 가진 기사(騎士)였고,

내 할아버지도 플로레이라피시에의 시장이셨다고.

내 아버지가 무능해서 보잘 것 없는 집안이 되고 말았지만.


나의 내부엔 그녀가 없었어.

그녀와 관련된 것들이.

적어도 그녀가 원하는 것들은 없었어.

아마 공주님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녀의 내부엔 또 내가 원하는 것들이 없었지.


흠...

레이왈드렌프케스는 오른손으로 그의 넓적하고 큰 턱을

슬슬 천천히 느릿느릿 신중하게 문지르며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집중하고 있었다.


내 그토록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내 것이 더는 될 수 없었던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미소,

그 빛나던 두 눈동자에 떠가던 은빛 구름들,

그 따뜻하고 맑은 음성


다 내 것이 아니었던 거야.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그녀 그리고

그 모든 내 소망들과 소원들



벽에 너울거리듯 춤추고 있는 그림자가

초의 불빛은 있으나

그 앞에 놓여있던 대상인 어떤 물체가 사라지면

그 그림자마저도 이윽고 사라지듯이.


내가 내 인생을 걸고

모든 죽을 힘을 다해서

고생과 노력을 해가며

그토록 원했던 그녀와 그 무엇들이

결국엔 나를 떠났네.

결코 내 안으로 들어와서 정착할 수 없었던 것이지.


재능이든 능력이든 성실성이든

노력이든 집념이든 의지든

미덕이든 윤리든 양심이든 아름다움이든

기회든 행운이든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외의 무엇이라고 부른다고 한들

내게는 없었던 거야. 내게는.


우습지? 믿겨져?

믿을 수가 없지?

내 무력감이?

난 불가항력하게

거대하고 까마득하게 높은 벽 앞에서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네.


운명이라고 해두지,

그 벽을.


그런데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네.

삶에서 이루고 싶은, 달성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그런 모든 목표들과 소망들과 욕망들에도 또한 그런 건

그대로 적용이 되고 마는 거라네.

물건과 추상적인 개념에 해당하는 것들마저도

내 안에 그 무엇들이 없다면

결코 내게로는 흘러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끝끝내 나의 내부에서는 생성이 되지 않는다는 것.


성공이라고 하는 것마저도

재능이든 소질이든 기회든 행운이든 우연이든 운명이든

노력이든 열정이든 정열이든 성실이든 의지든 계획이든


그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그런 것이 내게 처음부터 없었다면

평생을 찾아서 그 뒤를 추적하듯이 쫓아다녀도

내게는 없다는 것, 내게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너무나 자명한 이치인데도

정말 너무 너무 뒤늦게서야 알게 된 거라네.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렸는데도.

막은 벌써 내렸고

커튼 뒤로 연극배우들은 이미 퇴장하고 난 뒤인데.

너무 늦게 알게 된 거야.

너무 나중에.

너무 늦게.




칼 판매상의 담담하고 건조한 어조에

듣고 있던 친구인 덩치 큰 사내 레이왈드렌프케스가

말을 꺼냈다.

눈빛이 좀 당황한 사람처럼 달라진 색채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그...

그렇지 만,

자네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남아있어.


뭐가?

칼 판매상의 대답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했다.



아니, 아니야.

자네는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야.

물론...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늘 내일 하는 병든 환자나

재산 상속 문서를 미리 미리 쓰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늙은 사람들의 운명도 아니잖아?


어쩌면 필사적인 느낌마저 드는 어조로

더듬더듬거리며 레이왈드렌프케스는

당황한 사람처럼 말을 어찌 되었든 이어나갔다.


그런 실패에는

나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네.

그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과

깨닫고 있었던 것,

그런 단 두 가지만이 있을 뿐이라네.


칼 판매상 맥퀘이의 목소리는 차분해서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걸 깨닫고 있었다고 해도,

내게는, 나의 내부에,

그런 것들이 없었는데

뭐가 그렇게 크게 달라지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다르겠냐고?


맥퀘이의 음성은 어딘가 먼 곳에서 오는

혹은 유령의 목소리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가게 밖의 달밤이 너무 아름다울 정도로 환해서

그런 탓인지도 몰랐다.

시장 골목 거리들은 조용해서

깊은 바다 밑바닥처럼

정돈된 투명함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일종의 환상 같이.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그렇긴... 해. 그렇긴 그렇지,


왠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묘하게 말을 끝내지 못하고 흐리면서

레이왈드렌프케스가

오른손 한 손으로 오른쪽 귀 위의 부근을

긁어가면서 대꾸했다.

약간 신경질이 난 것 같기도 하고

좀 곤란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한 몸짓으로.














달은 흐르듯이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물 속에서 씻겨가면서 강물에 잔잔하고 부드럽게 떠밀려서 흘러가듯이

밤하늘의 한복판 높은 곳에서

고요의 정점에 도달한 정지한 의식의 상징처럼

유연하고 청명하게 흐릿한 빛으로 아주 고요히 떠 있었다.

구름은 밤하늘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공주님을 찾아갔을 때,


찾아갔는데?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진

레이왈드렌프케스가

칼 판매상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지나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주인공인

칼 판매상이자 전설적인 은기사(銀騎士)였던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면서

질문 같은 의미로 혼잣말을 했다.

두 팔을 한팔인 오른팔을 왼팔 위에 올려놓고

엇갈려서 탁자에 대고는

그 상태로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면서 내밀고 있어서

레이왈드렌프케스의 두 손은 양쪽 겨드랑이 밑의

어딘가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공주님은 없었네.



궁전에? 그럼 어디 갔을까?



궁전이 아니었다네.


칼 판매상은 침착하게

레이왈드렌프케스의 추측을 거절하듯이 부인했다.



아!


궁전은 아니고

공주님이 그날 외출을 한 곳에

내가 찾아갔었지.

공주님은 취미 삼아 음악을 배우고 있었는데

음악 학원에 내가 직접 찾아간 거야.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음악을 전혀 모르잖아?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지.

내가 음악에 조예가 있든 없든 그게 뭐가 본질인가?

공주님이 거기엔 없다는 거야.

그 말만을 남기고 외출을 하려는

그 학교의 교장이 타고 가려는 마차를

내가 뒤에서 붙잡았다네.

그 마차는 뒤에서 보았을 때

마차의 사람들이 타는

그 작은 방 같은 부분의 뒷벽에

발로 딛는 발판 같은 받침대와

거기에 서서 타고 가는

하인들이나 짐꾼들이 붙잡는 세로로 된 막대기가

좌우 양쪽에 있기 마련인

그런 종류의 마차였는데

없는 마차들도 있고,

그 오른쪽의 붙잡는 손잡이용 막대기 부분을

내가 꽉 잡은 거야.

두 마리의 말이 끌고 가는 마차였었지.

공주님 같은 귀하신 분들이 와서 교습을 받는

고귀하고 초고급스러운 학원이였기에

마차도 대단히 화려한 장식과 문양이 들어간

눈부시게 새하얀 순백색의

온통 미려하고 품위있게 만들어진 마차였다네.

말들도 깨끗하고 정성스레 돌보아서

어디에도 더러운 것들이 묻어있지 않은

한눈에 봐도 명마들이더군.

자네도 알다시피 내게는

특별한 능력들이 몇 개 있지.

있었던 것인지 뭐 어쨌든.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런 평범한 키와 체격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한 힘이 있었다네.

선천적으로 그냥 가지고 태어난 거야.

이미 여러 번 자넨 목격했었지?

나와 같은 사람들은 내 가족 중에도

내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어디에도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지극히 강한 힘이 내 이런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몸집 속에 들어가 있다네.

두 마리 크고 아름다운 말들은 두 앞다리를

제각각 허공으로 앞으로 들어올리고 내밀면서

있는 힘껏 투레질을 하면서 요동치듯

거리의 텅 빈 공기를 마구 발굽들로 부수듯이

미친 듯이 발길질을 했다네.

말들이 고통스럽게 내뱉는 소리들 때문에

온통 주변이 떠들썩하고 너무도 시끄러웠다네.

그러나 내 힘에 짓눌린 것처럼

마차는 조금도 출발하지 못했다네.

급기야 마차에서 마부와 다른 사람들이 내리고

학교의 어디에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뛰어오듯이 또 나타났다네.

마차에서 내린 교장이 흥분을 해서 붉어진 얼굴로

내게 고함을 치며 화를 내기 시작하더군.

그래서 나는 그냥 그의 정수리를 눌렀다네.

나보다 키가 약간 컸지만

그도 그리 큰 키는 아니어서 그게 가능했었지.

그는 숨도 못 쉬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그냥 거기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네.

그의 얼굴이 경악과 공포로 차츰 그리고 점점 더

시커멓게 변해가더군.

급기야는 통증으로 울상이 되어가면서

호흡까지 곤란해지는 것 같았어.


레이왈드렌프케스야말로

호흡이 곤란한 것처럼 보였다.

놀라서 휘둥그래진 두 눈으로 뚫어져라

친구인 칼 판매상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다가는

자칫 교장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그만 그를 풀어주었지.

그의 정수리를 내 오른손으로 꽉 누르고 있다가

슬그머니 손을 뗀 거야.

그가 비틀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결국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 같은 표정으로.

그러자 사방에서 분노에 찬 고함소리와 욕설들이 터져나오더니,

어떤 제복 같은 걸 모두 입은 남자들이

내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네.

그런 남자들의 무작정 휘두르는 주먹질을

적당히 이리저리 피하다가

아무나 한 명 팔뚝을 확 낚아채고는

고함을 아주 크게 질렀다네.


너는 팔뚝이 뼈째로 부러지고 싶냐?


내가 꽉 붙잡은 그의 팔뚝이 점점 아파왔는지

그 남자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얗게 공포로 질려갔다네.

나는 그런 굵기의 나무들을

야전(野戰) 때나

야외에서의 비슷한 훈련 때에

밤에 장작불을 피울 때 산이나 들판에서 주워와서

마구 뚝 뚝 뚝,

너무도 많이 실제로 부러뜨려서 불을 피우고는

그 당시 야외에서 참으로 여러 번의 밤을 보냈었는데

사람의 팔뚝쯤이야?

정말로 너무 아파오기 시작했는지

그가 뭐라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군.

너무 작은 목소리라서 잘 들리지가 않았어.


뭐라고?

내가 화가 나서 물어보았지.


사,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목 목숨만... 살려주세요.

얼굴이 거의 무참하게 일그러진 남자가

공포로 땅속까지 꺼져들어가는 목소리로

애원을 하고 있더군.

그의 오른쪽 팔뚝을 내가 풀어주었지,

내게서 풀려난 그는 거의 탈진한 것처럼

간신히 뒷걸음질을 쳐서 뒤로 물러났다네.

다시는 다른 남자들 그 누구도 내게 덤비지 못했었지.

나는 교장에게 물어보았다네.


그 학원에서 음악을 만약 배우게 된다면

한 달 학원비는 얼마냐고?

레이왈드렌프케스가 침이라도 삼키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물어보았다.


아니야.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라네.

여기에 몇 명이나 배우러 옵니까?

그걸 내가 물어본 거야.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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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회: 노인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23.10.30 9 0 9쪽
8 8회: 연금술에 대하여 23.10.27 13 0 15쪽
7 7회: 칼 판매상의 마지막 이야기 23.10.26 16 0 9쪽
» 6회: 내게는 뭔가가 없었다네 23.10.25 18 0 12쪽
5 5회: 칼 판매상과 도시 23.10.23 29 1 15쪽
4 4회 : 내 이름은 엔티레이미크 23.09.19 46 1 4쪽
3 3회 : 금지된 마법서 +1 23.09.18 50 2 10쪽
2 2회 : 세상에서의 처세 +1 23.09.13 95 3 10쪽
1 1회 : 시장에서 +2 23.09.12 265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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