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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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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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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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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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내일은 비록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엔티레이미크는 누워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뒷통수에 두 손을 깍지껴서 베개처럼 대고는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지 조그만 흐트러짐도 없이

명상이나 묵상 기도처럼 무의미한 무감정 속에서

침묵의 맹세를 장소가 정한 계율과 그에 따른 준수를 하고 있는

그가 있는 잔디밭은 빛들로 빛나고 있는 풀밭이었다.

바람이 가볍게 그의 잠든 머릿결을 흔들고 지나갔다.

맑은 빛살들이 지상(地上)의 속도보다는 더 느린 결로 내리고는

천천히 또 떠돌듯이 머물러서

그가 누워있는 주변은

빛들의 환영(幻影)이 겹쳐진 투명한 그늘이거나

빛이 투과되는 이상한 그림자들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광대한 화단과 정원이

지상(地上)의 솜씨와 기술로는 보이지 않은

일종의 신성하고 신비한 경지까지 도달한 미학으로

건축이라는 물적인 상징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하늘에 높이 그야말로 까마득하게 먼 곳인

허공 한복판에 떠 있는 공중 정원이었다.


정원의 가장 놀라운 점은 숲과 나무와 풀과 잔디와 흙

그리고 샘물마저도

전부 보석으로 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투명하고 번쩍번쩍거리는 휘황한 광채들과

각종 빛들로 복잡한 보석들이 뿜어내는

가라앉은 견고한 빛들의 향연은

안개처럼 정원을 휘감고 감싸면서

허락되지 않은 출입과 정해지지 않은 약속을

마법으로 행한 장치로 금지와 차단을 한 것처럼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인 듯이 또한 모든 곳에 배어 있듯이 떠 있었다.





그곳에서 어느 나무 그늘 밑의 잔디밭 위에

찬란하고 번쩍거리는 또 동시에 엷고 기이한 느낌의 투명함까지 보이는

금빛 옷을 위아래 입은 엔티레이미크는

얼굴의 이마 위와 콧등 주변을 어지럽게 떠돌며 문득 문득 나타나는

빛과 그늘의 무늬를 덮고서

잠자코 잠들어 있었다.



구름이 흘러가는지 바람의 소리 같은 것이,

뻑뻑하면서도 부드럽고 뭉클뭉클하면서도 기괴한 촉감 같은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액체의 흐름 같은 소리가

조용히 그의 귀를 간지럽히며

밀려오는 조수(潮水)가 해변을 어두운 색으로 물들이며

심리적인 질식처럼 정신의 목을 조여오듯이

그에게 검은 그림자들로 된 빛들로 다가왔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팔베개를 하고서 두 눈을 감고만 있었다.



나무들이 수직으로 높이 울창하게 솟아있고

그 숲들도 보석의 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면서

태어나서 본 적이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는 또 있을 것만 같은

다르지만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괴이한 풍경이

넓고 광대한 면적의, 정원이라는 건축학적인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새들이 섬세하고 무겁게 느린 선으로 날아다니다가

이윽고 천천히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그의 주변에도 가까운 곳에 몇 마리가 내려왔다.

모두 지극히 아름답고 신비해서 지상의 새들이 아닌 천국의 새들이거나

비현실적인 상상 속의 동물인 그런 새들로만 여겨졌다.

구름과 새들이 다시 풍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라도 하듯이

공중 정원 위에 떠돌듯이 그곳을 일종의 분위기로서 감돌았다.



구름이 말을 할 리는 없었다.

새들도 마찬가지로 말을 할 수 없으리라.

조용하고 괴괴할 정도로 적적한 무음(無音)과

진공(眞空) 같은 공백이 된 감수성이라는

이상한 갈증처럼 괴로운 침묵과

회색빛의 건조한 하늘 같은

혹은 같은 비슷한 불투명하게 검은빛의 샘물처럼

지독하게 고정되고 불필요하게 고착된

숨막히는 엔티레이미크 혼자만의 시간이

외딴 하늘의 놀랍도록 높은 허공의 공중 정원에서

흘러가듯이 고여만 갔다.




엔티레이미크가 두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은 너무 커서 흘러가는 구름들과 푸르고 파란 하늘 조각들과

그리고 공허할 정도로 큰 공간이

다 담겨져서 그대로 비쳤다.


엔티레이미크는 천천히 일어나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으로 앞에서부터의 역광이 비치고

새들은 땅에 앉아서 그런 그를 쳐다보기도 하고 쳐다보지 않기도 했다.

그가 몸을 굽히고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쓸었다.

흙도 광물질이고 보석의 일종으로 보여서

그가 손으로 쓸고 파헤치듯이 자꾸만 좌우로 치울 때마다

치워지고 그런 탓에 그 후에 나타나는 모습들이

지상(地上)의 흙과는 달랐다.



이곳을 방문한 자여


문장이 땅 속에서 나타났다.

유난히 빛나는 파란 글자들은 땅 속에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아주 청결하고 생생한 상태의 맑고 깨끗한 빛들을 발하고 있었다.


너의 목적이 무엇이든 삶의 유한함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어서 돌아가라


알 수도 없는 괴이한 고대 문자들인 그 문장을

엔티레이미크는 다 이해하면서 읽어나가고 있었다.

아름답게 벌어진 입술 사이의 미세한 곡선들로 이루어진 틈에서

계속 그의 해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상(地上)의 행복과 힘을 봉인한 이곳은

방문한 자에게 역설적으로 불안과 불길한 운명만을 드리우니,

그러므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느니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말라

많은 욕망이 오히려 인생을 방해하듯이

이곳의 봉인을 풀려면 반드시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인즉

깨끗하게 비워진 넋으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힘을 가지고 싶다는 그 마음을





경고인지 아니면 정보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을

소년은 열심히 그러나 침착하고 서늘한 아름다운 미소로

조용히 차분하게 읽어나가며

낮고 섬세한 어조로 차근차근 해석해나갔다.




봉인은,

원래가 풀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듣는 사람도 없고

그리고 그 듣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자신보다 많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없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고 적막한 곳에서

엉뚱하게 엔티레이미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구름이 지나가면서 그늘을 드리웠는지

일부가 엷은 검은 그늘 같은 일종의 이상한 그림자로 덮여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표정과 얼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미미한 잔물결 같은 것이 보일 듯 말 듯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찾아온 적도 없던 것 같기도 한

아주 엷은 결의 빛으로 된 이상한 표정으로

잠시 그는

그 문장이 새겨져서

기이한 광채들을 말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발하고 있는,

보석 가루로 된 굉장한 광채가 빛나고 있는 모래처럼

아주 가늘고 고운 흙을 파헤쳐서 나타난

찬란한 광휘가 어리어서 몹시도 번쩍거리는 땅 속에서

천천히 고요하게 떠오르기라도 하듯이

신성한 의무처럼 명징하게 들어가 있는,


예상하지 못한 혹은 예상하고 있었던 표지석과 비슷한 그것을

어떤 판단처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이미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신들의 정원처럼 거룩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이고

지극히 생경하지만 신성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룩한

공중 정원은 원래처럼 어떤 인기척이나 사람의 그림자도 또 소리도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구름들은 흘러간다기보다는 장식처럼 걸려있듯이

짐작도 잘 가지 않는 먼 고도의 상공에서 멈춘 것처럼 떠 있었고

바람 소리 같은 오히려 일종의 괴이한 무음 같은

놀랍고 거대한 저음(低音)들과

새들이 내려서 걸터앉은 나무들과 숲과 샘물들과 땅바닥이

보석처럼 번쩍거리는 광채들로

그 모든 것이 그 속에서 그렇게 은은한 휘황찬란함으로

휩싸여 있는 탓에

비밀스럽고 섬세한 전율로

인간의 육신 밑에 있는 심연 위에 불어오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지상(地上)에 알려지지 않은 공중 정원은

다시 천 년이 한순간 같은 영원한 정지처럼

고요한 혼돈 속의 한낮으로

저 아득하게 높은 곳에서 역시 언제나처럼

또 그대로 머물러있게 되었다.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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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세상엔 참된 계절도 없도다 23.12.05 4 0 5쪽
36 세상에 참된 평화 없도다 23.12.04 3 0 8쪽
» 내일은 비록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23.12.01 6 0 8쪽
34 추억처럼 고통스러운 미래 23.11.30 11 0 7쪽
33 봉인된 장미의 열쇠 : 기억 저편에서 불어오는 노래 23.11.29 3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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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언어는 사랑을 위장한다 23.11.15 6 0 5쪽
21 비와 당신의 묘지(붕괴와 시작의 서막) 23.11.14 3 0 7쪽
20 20회: 방황하는 가을날의 넋들 23.11.13 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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