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는 지금을, 지금보다는 먼 훗날에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연회는 떠들썩했고 그리고 즐거웠다.
사람들이 많이, 다수 모이는 모든 모임이 그렇듯이
활기차고 유쾌하며 시끄러울 정도로 신명이 난
복잡하지만 기분 좋은 일종의 혼돈 같은 작은 소동이 있었고
그리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한쪽 눈이 의안(義眼)인 귀족 남자도 그 연회에서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술에 취하듯이.
사람은 역시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함께 있을 때에만
사람답게 흥겹고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단체와 집단에 적응하면 할수록.
저녁이 깊어졌고 밤으로 진입하여
더욱 저택은 밤으로 넘어서 흘러 들어가도 연회는 끝나지 않았고
연회가 열린 어느 대귀족의 대저택을 가득 메운 많은 불빛들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엔 자신이 가르치고 있던 음악 학교의 제자였던
어느 여자도 같이 참석해 있었다.
이제는 자신과 함께 더불어 또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는 음악 교사라는
같은 신분이 되었지만.
그 모든 것이 왕국 안팎에 생긴 급격한 문제들의
발생 및 누적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특히 블라스펙트 러페이케이퍼스가 대륙 곳곳을 누비고 출몰하여
왕국의 존립도 걱정이 될 정도로 왕국 전역을 덮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악령에게 마치 희생이라도 당하기라도 하듯이
인구가 너무 급감할 지경으로 대규모로 죽어나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따라서 음악 학교도 사람이 무척 부족하게 되었다.
가르칠 사람도 어떨 때는 배우겠다는 어린 나이의 사람들도.
그녀의 남동생이 더욱 탁월한 피아노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도 역시 보기 드문 인재였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녀는 전문적인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다만 후학을 양성하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을 교사로 채용할 수 있는지를 음악 학교에 문의했다.
학교쪽에서는 놀라기는 했으나
우수한 인물을 마다할 이유는
있지도 않았으므로
당연히 모교에서 음악과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는 걸
반가움 속에서 허락했다.
그러나 그 반가움에는 유망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섞여 있었다.
어찌 되었든 모교의 음악인이었으므로
그러니 피아노를 가르치든 피아노를 연주하든
그 어느쪽이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빛나는 명성을 장차 그것도 크게 구가(謳歌)할 터였다.
학교를 운영하는 높은 사람들은 그러나
끝끝내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녀가 피아노 연주를 그만 둔.
비록 그녀의 남동생은 더욱 거대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학교측에서도 그녀의 남동생이 도저히 인간성만큼은
그저 그렇다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처럼 마음에 들어하면서
일종의 기대하는 감정 같은 것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나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켜보는 음악 학교의 원로급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자꾸만 느껴졌었던 것이다.
그걸 따로 불만이라고 그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더라도
그 단어의 선택은 정확했을 것이다.
그의 눈에 보관된 왕국이 걸어온 지난 고난의 시절은
단순한 환란과 재해와 시련의 통과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참다운 모습들이나 진짜 얼굴이 다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도 그 흉터 같은 후유증이나 여파는 완전히 다 가시지도 않았다.
왕국 곳곳에 여러 분야에 마치 썰물이 빠져 나가면서
밀물 때 밀고 들어온 파도들이 가져온 바다의 무엇인가 여러 가지들이
해변의 모래밭에 그 후에 다 남겨지듯이.
그는 음악 학교에 교사로 재직하게 되면서
술을 일부러 멀리 했다.
예술과 음악의 길 위에는 술에 취한 흥분과
거기서 비롯된 쾌락과 그 광기가
그 길에서의 풍경 속에 들어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그만의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에 가까운 연회였었고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이 다 함께 쏟아져 나온 것처럼
일부러 매우 성대하게 참석한 모임이어서
당연히 술이 나왔고
다정하고 정답게 술잔이 오고 가며 서로 많이 주고 받게 되었다.
그는 따라서 많이 그리고 즐겁게 취하게 되었다.
연회에는 당연히 술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취할 것도 당연한 예정이니까
그는 말을 타고 가지 않았다. 혹은 마차도.
마차는 그가 몰고 귀가하거나 하지 않겠지만
왠지 그는 그 야심한 늦은 밤에
자신의 집으로 마차를 몰고 갈 하인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또 저택에서 나올 때 마차를 기다리다가
타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밤 늦게까지 마차가 영업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거나
또는 길거리에서 달리고 있을 리도 만무하니까.
그래서 하인만을 한 명 데리고 연회가 열릴 그곳으로 갔었다.
밤이 이윽고 너무 깊어서야
드디어 연회가 끝났다.
음악 학교의 새로운 위대한 교사로 자타가 추앙하기 시작한
비교적 젊은 나이의 음악인이자
그리고 당당한 대귀족 신분의 그는,
하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가의 풍경들은 어둡고 어둑어둑해서
암흑처럼 적적하고 기괴하면서도 고요했다.
끝없는 무음(無音)의 검은 바다처럼 보이기도 했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었고 그래서 길 옆에 나무들이 가끔 나타났고
그 나무들의 뒤로 숲이 검은 어둠 속에서 미미하게
일부만이 보였다.
민가(民家)의 집들도 이따금 보였으나
어둠 속에서 모두 다 공평하고 동일하게 그저 그림자들처럼만
그렇게 어슴푸레하고 불분명하게 보였다.
자신의 저택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아버지가 살던 저택에 도착한 그는
길고 화려한 복도에서
자신은 자신의 방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자신보다 나이가 몇 살 적은 건장한 체구의 하인에게는 수고했다고 하고
건물 밖에 있는 다른 건물인 하인들이 머무르고 숙식하는 전용 숙소로
이제는 들어가서 어서 쉬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인은 간단한 목례만을 하고 서둘러 떠나갔다.
피곤했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우두커니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옷도 벗어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그저 방의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윽고 그가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답답하고 이상하게 어두컴컴한 시간이
시간의 변화를 잘 짐작할 수 없는 분량으로 흘러갔다.
그대로 고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흘러간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가 두 눈 혹은 한쪽 눈을 떴다.
그가 갑자기 자기 앞에 놓인 작은 탁자를
가죽 단화를 신은 오른발로
몹시 맹렬하게 걷어찼다.
탁자 위에 있던 찻잔과 도자기 주전자 같은 것들이 다 날아가버렸다.
깨지고 튀어버리는 요란한 소리들이 났다.
바닥엔 물이 점차 멀리 멀리 넓게 번져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모든 걸 한참 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그 방에서는 그 후로도 어떤 움직임도 어떤 소리도 없었다.
마침내 어색하지만 완전한 밤이 도시를 가득 채웠다.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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