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판타지

새글

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연재수 :
1,744 회
조회수 :
1,181
추천수 :
9
글자수 :
512,582

작성
24.05.27 10:30
조회
3
추천
0
글자
10쪽

쓸데없는 욕망의 시체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음산하고 불길해서 더 깊이 마음에 파고 들었다.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서 동요되는 마음이 늘 그렇듯이

소리는 더욱 마음에 스며들었다.

소리가 그렇기보다는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달리 할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소리에 꼼짝도 못하고 사로잡힌 것처럼

침대에 누워서 흰 눈처럼 깨끗하고 큰 얇고 흰 이불을 덮고

가만히 두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육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둥글고 밝게 멀리 퍼져 나갔으나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딘가 조각이 나서 깨진 것처럼

적어도 그의 귀에는 들렸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바다가 없었다.

멀고 먼 북동쪽에 바다가 있었으나

수도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전투의 신을 따라서 모방처럼 전쟁을 하듯이

선조들이 모시던 고대 전쟁신처럼 정복과 전쟁을 하던

왕국의 초기 건국 과정에서 자꾸만 어쩌다가 전쟁의 이동 경로는

달라지고 달라져서 바다가 멀어지게 되었다.

꿈꾸는 듯한 바다의 해조음(海潮音)이 들려왔다는 것은

전부 문헌이나 특히 문학 속에서 읽어본 것이지

웬만한 사람들은 바다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구경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 점이 더 정확한 지적이었다.

일상의 생업에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 멀어서

그곳까지 가지 못한다는 편이 더 옳았다.

누가 그리고 그 춥고 궁벽한 어촌까지 간다는 말인가.

가도 볼 것도 없고 사람들도 정말 숫자를 셀 수 있게 적게 살고 있는

사실상 어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겨울 바다에 가서 뭘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음험하고 낯선 소리가 자꾸만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그 음악처럼

어차피 사라질 그 모든 것들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불성실한 태도와는 담을 쌓겠다는 어리석은 결심처럼 그렇게

바깥의 밤처럼 시커먼 자신의 내면 속에서 있었다.

그 소리는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으나,

이윽고 점차 명확해지고 소리의 미세한 단위까지 뚜렷해지자

비로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였다.

달콤하고 쓸쓸한 그래서 씁쓸한 추억처럼 그 음악은

주기적으로 그리고 강박적인 주술을 걸 듯이

마치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라고 말하듯이

잔잔하게 그러나 격하게 그렇게 전진하듯 다가오고 있었다.

소리가 너무 자주 가까이 다가오며 같은 구간이 반복되고 있어서

소리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도 없었다.

문법이 잘 맞지 않으나 표현만큼은 주목하고 싶을 만큼

호소력이 담긴 문장처럼 그의 마음을 표면부터 그리고 그 밑의

저 깊은 감정들까지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그 음악을 잘 알고 잇었다.

다만 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디에 피아노가 놓여있는지 그리고 그게 가능한지는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이 음악은 그에겐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음악은 그에게 그를 죽이겠다는 살인의 협박과 같은 의미였었다.










한 덩이의 얼음처럼 얼은 빵을

부패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으므로

겨우 소금을 쳐가며 간신히 먹었던 그 멀고 먼 고대의 시절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살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난과는 아주 높고 큰 담을 쌓고 살았었다.

그에게 주어진 고난은 그런 단순한 가난이나 경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었다.

그 점이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너는 그런 걸로 그렇게 힘들게 지낸다는 말이냐?

물어볼 것도 말할 것도 없이 그런 반응들일 것이므로

그는 아예 내색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내색을 하든 고백을 하든 그렇지 않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든

그에겐 언제나 그를 괴롭히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가 가난과 완전히 거리가 멀어도

그도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누가 그런 그의 고민과 고충을 알 수 있으리오.






같은 보석 보관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그는 늘 그 점이 궁금했다.

너희들은 영광스러운 보석의 보관자들이지만

과연 인생이 행복한가?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왜 이렇게 서글프고 우울한가?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는 유쾌하고 명랑하며 장난기 가득하게 지내지만

나를 이해해줄 사람들은 없겠지?

내겐 비밀이라고 해도 너희들에게는 이해가 아니라

공감도 되지 않을 문제들이겠지?

그는 자신이 안고 가야 하는 고뇌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고 존재한 적도 없는지

가끔 살펴보듯 의심스럽고도 조심스럽게 탐색했다.

보석의 보관자들끼리도 서로에 대해서는

거의 잘 모르고 있었으므로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손톱을 깨물다가 피가 배어서 스며나올 정도로

초조와 분노가 섞여서 괴로워하였으나

그를 도와줄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신분이 굉장한 귀족들이어서

그들에게 걸린 체통과 가지고 있는 위신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역시 자신들이 가장 급하고 소중했었던 것이었다.

겨우 고작 꼬마 하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잃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새벽은 점점 더 다가왔으나

그의 정신은 점점 더 깊이 어둠 속으로 후퇴라도 하듯이

마음 속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디에서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지 알고 싶었다.

그 곡목은 <검은 물 위에서>라는 음악이었다.





왕국에서는 100명을 특수한 목적으로 선발해서

고도의 훈련을 시켰었다.

그 각종 훈련들은 거의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어쩌면 위험한 훈련들이었다.

지극히 불온하고 위태로운 실험들로

100명의 귀들인 200개의 귀가

놀라울 정도로 경이로운 청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최후에는 이 200개의 귀들을 전부 다 모아서

그 기능을 단 한 개의 귀에만 몰아서 이식을 시켜버렸다.

그 귀의 소유자는 그렇게 특별하고 위대한 청음의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음악에 관한 능력만이 그 당사자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되면

나머지 199명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왕국은 그런 목적으로 그런 희생을 시켰다.

왕국 전체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언제나 없었다.

이 모든 사실들을.

청력을 고도로 강화시키는 마법인 로기엔을 얻게 된 사람은

왕국이 특별히 관리하는 사냥개였다.

아니면 맹도견이거나.

그러므로 100명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1명이 된다고 해서

특별히 영광스러워지는 신분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특혜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왕국에서 시키는 임무를 위해서 키워진 왕국의 개였을 뿐이었다.

지금껏 그렇게 유구하게 로기엔을 배우게 된 전승자가 탄생했고

역대 로기엔의 전승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 점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왕국은 아주 정교하고 대단히 치밀한 정책으로

그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열광적으로 고취시키는

신성하고 거룩한 감수성이 극에 달한 사상 교육을 매번 행했었다.

그리고 고작 메달과 훈장과 상장 같은 돈으로 바꾸지도 못할

한낱 예쁜 쓰레기들 같은 그런 명예나 칭찬 따위에

그들은 미칠 듯이 흥분해서 가끔은 목숨도 기꺼이 내놓았다.

사람은 칭찬에 목숨까지도 내다 버릴 수 있는 법이다.

칭찬은 곰만 춤을 추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단순히 물질만으로 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왕국이 결국엔 원한 것은 이들 전승자들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굉장히 막대한 물질적인 이익이었다.

이 점이 가장 큰 난제이고 아주 미묘한 모순이었다.

1명의 로기엔 전승자를 위해서 선발한 나머지 199명을 합한

200명의 명단이 적힌 장부가 나돌았다.

유출을 시킨 자를 찾아서 왕국이 은밀하게 급파한 사람들은

그러나 차례차례로 시체가 되어서 돌아왔다.

혹은 돌아온 것처럼 발견이 되었다.

어떤 자에게는 끓는 쇳물을 목구멍에 부어서 송장으로 만들어서 돌려보냈다.

어떤 자는 머리가 터져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음악을 듣고는 머리가 터져 버렸을 거라고

왕국의 수뇌부는 조사를 끝내고 결론을 내렸다.

로기엔의 마법에서 그런 살해의 능력과 살상의 기능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었다.

자꾸만 길어지는 수사의 길고 긴 그늘 속에서

왕국은 점점 더 초조해져만 갔다.

그러나 왕국도 그들을 모르고

그 쪽도 역시 왕국에게 그저 방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왕국이 이런 간악한 배반을 하는 이유는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만행은 왕국 같은 거대한 집단 수준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개인 대 개인의 일상 생활에서는

더욱 흔하고 흔했다.

그저 진심은 밑바닥 어디쯤에 따로 숨겨져 있는 사람들과

그런 기관과 단체가 언제나 저지르는 흔해빠진

인간세상의 일상적인 악행에 속할 뿐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그 진심을 꿰뚫어보라, 라는 이 이 흔한 가르침을

아무리 전수받고 학습받아도

번번이 세상 사람들은 늘 실패했다.

아름다운 것은 결국엔 늘 겉모습들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늘 그 겉모습에 반했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한 번, 똑같이 당해봐라,

그래야만 공평해지지? 하는

못 말리는 농담처럼

다음 번엔 다른 사람들에게 과거에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더욱 큰 규모로 다시 또 다른 타인들에게 저질렀다.

돌고 도는 악순환의 구조는 영원하다기보다는

서로 권장하고 서로 추천하는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 점이 본질이지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결국에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악마적인 전통은 유구하고 장대하게 이어졌다.

이쯤 되면 인간에게 들어있는 진정한 본성이 시켰다고 봐야 했다.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잘 보관해두고 있는 그 검은 본성이.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9 다정한 어리석음은 이렇게나 달콤하구나 24.05.28 2 0 12쪽
» 쓸데없는 욕망의 시체들 24.05.27 3 0 10쪽
47 더 많은 배가 필요한 밤 24.05.26 4 0 15쪽
46 소리를 잡아먹는 고양이 24.05.24 3 0 15쪽
45 세월의 뼈, 고통의 화석 24.05.23 2 0 11쪽
44 무음(無音)과 망각(忘却)과 무의미(無意味) 24.05.22 2 0 15쪽
43 약속의 땅 24.05.15 3 0 14쪽
42 검은 물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 24.05.13 6 0 6쪽
41 세상의 낯선 음악 24.05.12 2 0 15쪽
40 기억이 멈춘 곳에서 시간의 공백을 기다린다 24.05.11 4 0 11쪽
39 빛을 잃은 약속과 다가올 운명들 24.05.10 2 0 13쪽
38 세상엔 참된 요리도 없도다 : 불가사의한 마법의 맛 23.12.06 4 0 9쪽
37 세상엔 참된 계절도 없도다 23.12.05 4 0 5쪽
36 세상에 참된 평화 없도다 23.12.04 3 0 8쪽
35 내일은 비록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23.12.01 6 0 8쪽
34 추억처럼 고통스러운 미래 23.11.30 10 0 7쪽
33 봉인된 장미의 열쇠 : 기억 저편에서 불어오는 노래 23.11.29 3 0 5쪽
32 가버린 날들의, 흩어진 추억들 23.11.28 2 0 6쪽
31 예전보다는 지금을, 지금보다는 먼 훗날에 23.11.27 4 0 7쪽
30 침묵으로 봉인된 이름 23.11.23 3 0 3쪽
29 이토록 간절한 슬픔의 가을 23.11.22 5 0 5쪽
28 9월의 이빨 23.11.21 9 0 5쪽
27 7월의 눈동자 23.11.20 6 0 6쪽
26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하는 한계, 23.11.19 6 0 7쪽
25 세계는 욕망들의 총체이지, 사실들의 총체가 아니다 23.11.18 5 0 5쪽
24 세계는 나의 의지로부터 말할 수 있는 곳과 나의 의지로 말할 수 없는 곳까지일 뿐이다 23.11.17 7 0 6쪽
23 보여질 수 있는 사랑은 말해질 수 없다 23.11.16 6 0 7쪽
22 언어는 사랑을 위장한다 23.11.15 6 0 5쪽
21 비와 당신의 묘지(붕괴와 시작의 서막) 23.11.14 3 0 7쪽
20 20회: 방황하는 가을날의 넋들 23.11.13 3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